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81
1.
월요일 그리고 오후, 이제 점심도 먹고 퇴근을 기다리는 야구팬들이 오늘은 야구 경기가 없다는 사실에 몸부림칠 무렵.
그 무렵에 등장한 이니셜로 점철된 찌라시 기사의 위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그리고 그럴 만했다.
– 이거 누구임?
ㄴ 뻔하네. A구단은 레이번스, B선수는 안찬섭, C구단은 엔젤스, D선수는 이호우이지.
ㄴ 안찬섭이 이호우 씹었다?
ㄴ ㅇㅇ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한국프로야구무대에서 여러모로 가장 뜨거운 두 놈의 충돌이었으니까.
– 그러고 보니 시즌 시작 전에 안찬섭하고 이진용 붙지 않았었음?
ㄴ 뭔 개소리임? 둘이 어떻게 붙음?
ㄴ 사회인 야구팀으로 한 번 붙었음.
ㄴ ㄹㅇ?
ㄴ ㄹㅇ!
하물며 그 둘의 충돌과 함께 그 둘 사이에 있던 몇 달 전의 에피소드가 등장하자, 한국야구팬들은 야구 경기가 있었을 때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관심은 자연스레 두 팀의 경기로 향했다.
– 이번 레이번스 대 엔젤스 매치업 개쩔겠네.
ㄴ 얘네 둘은 모기업끼리 라이벌이잖아?
ㄴ 두 모기업 회장들 전부 병상에 드러누운 것도 똑같지.
5월의 끝 그리고 6월의 시작과 함께 치러지는 레이번스 대 엔젤스의 주중 3연전에 야구팬들의 관심이 쏠렸다.
– 그런데 이러면 안찬섭 대 이진용 매치업 가능할까?
ㄴ 힘들 듯. 벤자민 자리에 갑자기 이진용 넣는 것도 이상하잖아? 4선발이 1선발 자리에 앉는 건데.
– 하지만 이진용은 이번에 10이닝 피칭 때문에 휴식일 길잖아? 가능성 있지 않을까?
ㄴ 하려면 못할 건 없지만, 엔젤스가 굳이 안찬섭에 이진용을 붙일까?
ㄴ 붙일 이유는 없지. 찌라시는 찌라시이니까. 괜히 심란한 이진용 멘탈에 금이 가는 짓을 할 이유는 없지.
ㄴ 이호우가 멘탈이 흔들릴 놈 같진 않은데······.
ㄴ 멘탈이 흔들리기보다는 이상한 놈이니까 더 문제 아니야? 난 안찬섭하고 이진용 붙이면, 이진용이 무슨 짓을 할지 겁나서라도 그렇게 못하겠는데?
ㄴ 무슨 짓을 하긴, 호우를 하겠지. 호우!
물론 그들은 안찬섭과 이진용, 이 구설수에 휘말린 둘의 매치업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 사실상 불가능할 듯.
– 그냥 엇갈려서 붙겠지. 굳이 엔젤스가 억지로 이진용을 안찬섭에 붙일 필요는 없잖아?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 그렇지.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은.
그저 막연한 그리고 자그마한 기대감을 품고 있을 뿐.
그렇게 막연하고도 자그마한 기대감을 품은 그들에게 엔젤스의 감독, 봉준식 감독은 확실하게 말했다.
2.
“6월 1일 선발은 이진용.”
경기 시작 전, 더그아웃에서 이루어지는 기자들과 감독의 대화.
“예?”
“6월 1일 선발은 이진용이라고.”
대개 경기 외적인 것들을 주고받는 그 무대에서 봉준식 감독이 갑작스럽게 터뜨린 폭탄에 기자들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봉준식 감독의 말은 그 정도였다.
산전수전.
더 나아가 그 전쟁터를 만드는 야비한 수작까지 일삼으며 닳고 닳은 기자들마저 얼빠지게 만들 정도.
그렇게 얼빠진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질문했다.
“로테이션으로 이진용이 6월 1일에 출전하는 겁니까, 아니면 이진용이 1선발로 출전하는 겁니까?”
그 물음에 봉준식 감독은 담담히 대답했다.
“1선발로 출전하는 자리에 출전시키는 거지. 그게 아니면 굳이 이진용을 6월 1일 경기에 출전시킬 필요가 없지.”
“그럼······.”
“이제부터 엔젤스의 1선발 투수는 이진용으로 갈 생각이야. 이진용이 제 몫을 해준다는 가정 하에서.”
꿀꺽!
그 말에 기자들이 추가적인 질문 대신 벙어리가 꿀을 삼키듯 자신들의 침만을 삼켰다.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질문은 없나?”
봉준식 감독의 되물음에 기자들 중 그 누구도 질문을 뱉지 않았다.
지금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모두가 무언의 담합을 마쳤다.
“없으면 다들 자기 일 하자고.”
이윽고 나온 봉준식 감독의 말에 기자들이 부리나케 더그아웃을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기자들이 소리쳤다.
“이진용 1선발 파격 승급!”
“6월 1일, 찌라시 매치 성사다!”
“안찬섭 대 이진용 붙는다!”
주사위가 던져졌다.
3.
5월 31일 수요일.
대구구장.
이제는 여름에 접어든 듯, 밤이 내려왔음에도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그곳에 환호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 경기 끝! 레이번스가 엔젤스를 상대로 7대3으로 승리합니다!
– 1승 1패씩 서로 나눠 가지네요.
레이번스의 홈구장인 그곳에서 레이번스가 승리를 거둔 것에 대한 환호성은 딱히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지금 대구구장을 채운 환호성에는 다른 무언가에 대한 환호성이 분명 섞여 있었다.
– 내일 이곳에서 위닝시리즈를 걸고 싸우는 두 팀이 마지막 결전을 치릅니다!
그 기대는 다름 아닌 내일 이곳, 대구구장에서 펼쳐질 매치업에 대한 것이었다.
– 레이번스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그리고 자숙 끝에 레이번스의 에이스인 안찬섭 선수가 올라옵니다.
– 1년이 넘는 공백 끝에 치르는 복귀전이지요. 정말 기대가 됩니다.
– 그에 맞서 엔젤스는 새로운 엔젤스의 에이스가 된 투수! 이진용을 내보냅니다.
– 정말 재미있는 그리고 흥미진진한 투수전이 될 겁니다.
안찬섭 대 이진용.
레이번스의 돌아온 에이스 대 엔젤스의 새로운 에이스.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투수 대 이제는 새로운 대표가 되고자 하는 투수.
그리고······.
“미치겠네, 저런 130짜리 놈하고 비교나 되고······ 씨팔 어쩌다 내가 이런 꼴이 됐는지.”
“안찬섭, 너 그런 말 또 한 번 기자 앞에서 하면 벌금이야, 벌금!”
“아니, 할 말도 못합니까?”
“찬섭아, 입 좀 조심하자. 너 이번에 또 문제 생기면 그때는 구단이 커버 못 해줘.”
“압니다, 알아.”
“내일 제대로 해라.”
“엔젤스 같은 허접 팀 따위로 제가 제대로 해보지 않은 적이 있기는 합니까? 예? 점수나 내세요, 그럼 알아서 이겨드릴 테니까.”
씹은 선수 대 씹힌 선수의 대결.
그토록 기다리던 찌라시 매치업이 시작됐다.
4.
등판일, 등판할 무대 그리고 등판할 선수.
이미 일찍이 예고된 대로 6월 1일 대구구장의 마운드 위로 안찬섭이 올라왔다.
“스트라이크 아웃!”
그리고 마운드에 올라온 안찬섭은 예고는 아니지만, 모두가 예상한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줬다.
“아웃!”
안찬섭.
제2의 김진호라 불릴 정도로 신이 내린 재능, 150킬로미터를 가뿐하게 넘어가는 패스트볼을 영원토록 던질 수 있을 것 같은 어깨를 가지고 태어난 그는 1년이 넘는 자숙의 기간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삼자범퇴.
그것도 1회에 마운드에 올라와 오로지 포심 패스트볼, 그것 하나만을 던져 만들어냈다.
– 안찬섭 선수 놀랍습니다. 그동안의 공백이 무색해질 정도로 예전 그대로의 피칭으로 엔젤스 타자들의 1이닝을 그대로 앗아갔습니다.
그러나 안찬섭은 자신의 복귀전에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듯, 더 놀라운 것을 찍었다.
– 예전 그대로가 아니라 예전 이상이네요. 설마 1회에 포심의 구속이 154가 찍힐 줄은 몰랐습니다.
154킬로미터.
과거 안찬섭이 프로 무대에 막 데뷔했을 때에 보여주고는 이후 보여주지 못했던 구속이 전광판에 찍혔다.
그 사실에 대구구장을 찾은 수만 명의 이들이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우와!”
“우와······.”
관중들은 레이번스와 엔젤스라는 응원팀의 구분 없이 모두가 감탄을 토해냈고, 기자석을 채운 기자들 역시 안찬섭이 1년이 넘는 공백 후에 보여준 존재감에 자신들의 할 일마저 잃은 채 마운드를 내려가는 안찬섭의 모습만을 바라봤다.
그리고 기자 한 명은 그런 안찬섭을 바라보며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1년 넘게 잘 놀고먹은 모양이군.”
“황 선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야. 1년 넘게 괜히 이상한 짓 안 하고 놀고먹은 덕분에 피지컬 컨디션이 회복됐어.”
황선우, 그가 비릿한 미소 사이로 내뱉는 말에 그의 옆에 있던 후배 기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놀고먹으면 몸이 회복되는 건 그렇다 쳐도 일반적으로 운동 능력이 떨어지지 않나요?”
“150짜리 패스트볼은 타고나는 거니까. 그리고 애초에 150짜리 뻥뻥 던질 때도 안찬섭은 놀고먹은 놈이었지. 안 그래?”
“그랬죠.”
“애초에 저놈은 그렇게 타고난 놈이야. 딱히 제대로 운동하지 않아도 언제든 150짜리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는 놈. 그런 와중에 1년 넘게 쉬면서 자잘한 부상도 전부 회복된 거지. 어쩌면 자기 최고 구속을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와······.”
황선우의 설명을 이해한 후배 기자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에휴.”
그리고 이내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 불공평하네요. 누구는 평생 이 악물고 훈련해도 140짜리 공조차 못 던지는데, 누구는 그냥 타고났다는 이유만으로 놀고먹으니까 오히려 155에 근접한 공을 던지니······.”
“그게 세상 이치지.”
말을 하던 황선우는 다시금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압도적이다.’
본인 스스로는 무덤덤하게 말을 내뱉긴 했지만, 안찬섭이 보여준 모습은 황선우에게도 분명 충격이었다.
‘오로지 재능만으로······.’
안찬섭의 재능은 이미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그저 단순히 타고난 재능의 크기만으로는 지금 메이저리그에 있는 유현보다 낫다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
단지 재능을 타고났으되, 그 재능만으로 살아가기에 발전이 없었을 뿐.
하지만 그런 재능이라고 해도 1년이 넘는 공백기를 무색하다 못해 오히려 그 공백기를 빌미 삼아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건 충격적인 일이었다.
‘저 재능에 다른 누구도 아닌 투수들이 기가 죽었지.’
그리고 그 사실에 가장 큰 충격을 받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안찬섭과 같은 무대를 쓰는 한국프로야구의 투수들이었다.
야구팬들 그리고 야구관계자들에게 안찬섭의 재능은 놀랍고, 대단한 수준에서 그치지만 안찬섭과와 같은 직업인 투수들에게 안찬섭의 재능은 현실의 불합리함과 불공평함 그리고 참담함을 깨닫게 해주는 재능이었다.
그야말로 악마와도 같은 무자비한 재능인 셈.
‘과연 이진용은······.’
그런 안찬섭의 재능이 그야말로 폭발한 무대를 향해 엔젤스의 투수가 천천히 걸음을 내디디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황선우는 짧게 혀를 찼다.
‘역시 이진용이라고 해도 오늘 경기는 평소처럼 할 수 없겠지.’
자신과 다르게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사내.
그 사내에게 비참하게 모욕을 당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 팀의 에이스가 되어 그 사내와 맞상대를 한다는 것.
여러모로 부정적인 요소들만이 가득한 상황 속에서 황선우는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진용의 첫 패배 무대가 대구구장이 되겠군.’
오늘 경기는 어느 때보다 이진용의 패색이 짙은 경기라고.
그리고 그게 지금 이진용이 글러브로 얼굴을 가린 채 마운드에 오르는 이유라고.
5.
마운드 위로 향하는 길.
아웃카운트 세 개를 잡지 못하는 이상, 혼자서는 내려올 수 없는 그 길을 이진용은 글러브로 자신의 얼굴을 덮은 채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관중과 시청자들 그리고 선수들과 코치들은 생각했다.
‘표정 관리가 안 될 정도로 화가 났다는 건가?’
지금 이진용이 자신이 가린 글러브 사이로 험악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짓고 있을 거라고.
‘하긴, 이니셜이라고 하지만 팬들도 아는데 선수 본인이 모를 리가 없지.’
‘자신이 기록을 낸 것을 가지고 한국프로야구 수준이 내려갔다고 씹혔는데 기분이 좋으면 이상한 거겠지.’
그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심지어 이제는 1선발 자리에 올라왔으니······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작심을 한 정도가 아니라, 배수의 진을 쳤겠지.’
때문에 오늘 마운드에 오르는 이진용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공을 던질 수밖에 없을 거라고.
물론 이진용, 그가 글러브로 얼굴을 가린 채 마운드의 오르는 이유는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 아빠! 힘내세요! 진호가 있잖아요∼!
“닥쳐요, 제발······.”
– 아빠!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 힘내세요!
“아, 힘이 빠진다······.”
김진호.
약속대로 이진용을 아버지로 모시기 시작한 그가 이진용을 참담하게 만드는 원인이었고, 그것이 이진용이 제 얼굴을 글러브로 가리고 있는 이유였다.
– 왜? 아버지라고 불러달라고 해서 내가 열심히 응원가까지 불러주고 있는데?
그런 이진용의 모습에 김진호가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반문했다.
이진용은 여전히 글러브로 제 얼굴을 덮은 채 말했다.
“그 거래는 없던 걸로 합시다.”
– 남아일언중천금! 나 김진호! 한 번 한 약속은 절대 어기지 않는 신념의 사나이이다!
“제발.”
–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지 못······.
“젠장, 어떻게 하면 닥쳐주실래요?”
그제야 김진호가 하던 말을 멈추고, 이진용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 일단 나에 대한 존경심을 좀 더 표현할 것.
이진용이 대답 대신 얼굴을 가리고 있던 글러브를 치웠다.
– 내가 보고 싶은 거 있으면 딴청 피우지 말고 잽싸게 보여줄 것.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얼굴을 끄덕였다.
– 마지막으로······.
그 무렵 이진용이 그라운드 위의 흙더미를, 마운드를 밟았다.
– 오늘 타자들 전부 죽여 버릴 것.
그리고 김진호도 말을 마쳤다.
그러자 곧바로 알림이 들렸다.
이제는 익숙해진 알림.
그리고······.
새로운 알림까지.
그 알림에 이진용이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호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