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90
1.
한국프로야구 연속 이닝 무실점 신기록인 49.1이닝.
그 아득하기 그지없는 기록을 넘어 51이닝 무실점이란 대기록을, 심지어 그 기념비적인 기록을 그냥 완봉도 아니고 11이닝 완봉승이라는 놀라운 피칭으로 마무리한 날.
기쁘기 그지없는 날이지만, 그 기록을 이룩한 당사자에게는 그 기쁨을 즐길 여력은 없었다.
11이닝 완봉승, 선발투수에게 있어 이 기록은 마라토너가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한 후에 4킬로미터를 더 뛰는 것과 같은 기록이었으니까.
마운드를 내려오는 순간 그대로 잠들어도, 누구 한 명 뭐라고 할 수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구은서를 비롯해 홍보팀장과 전력분석팀장, 구단 운영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찾아가는 건 아주 강력한 기습 공격과도 같은 것이었다.
대비는커녕 제대로 대응조차 할 수 없는 기습 공격.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습 공격을 받은 이진용은 결코 기습 공격을 당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보다 다들 경기 보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경기가 좀 길었죠? 점수가 나왔으면 더 빨리 끝났을 텐데, 하하.”
오히려 반대, 구은서가 등장하는 순간 이진용은 기습에 당황하는 모습은커녕 마치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보다 그때 이야기 말입니다.”
자연스레 대화는 이진용이 주도권을 쥔 채로 이루어졌다.
“대기록을 세우면 뭐든 지원해주시겠다는 말, 그때 하신 약속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게 주도권을 쥔 이진용은 단도직입적으로, 간을 보는 일 없이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아무래도 제가 선수단 내에서 좀 더 제대로 된 몫을 하려면 구단 차원에서의 지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즉, 구단이 아니라 모기업 차원에서 저에 대한 무언가 힘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좀 쉽게 말하면 빽이 필요합니다, 빽이.”
오히려 이진용이 구은서를 비롯한 이들에게 기습 공격을 하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그 기습 공격을 당한 이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의미죠?”
그런 상황에서 구은서는 용케 반문했다.
“말 그대로입니다. 지금 선수단 내에서 저는 그다지 영향력이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전 내세울 학벌도 없고, 인맥도 부족하고, 그렇다고 한국프로야구에서 경력이 긴 것도 아니죠.”
하지만 이진용은 이미 이 상황을 미리, 진작에, 대략 일주일 전부터, 구은서와 홍보팀장이 그를 불러다 이야기를 했던 이후부터 준비하고 기획한 상황이었다.
“굳이 말하면 외국인 투수라고 해야 할까? 좀 잘하는 외국인 투수, 그뿐이죠. 외국인 투수가 구단 내에서 성적 외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는 많지 않죠.”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닌가요?”
이진용은 구은서의 반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를 향해 몰아치듯 제 의견을 내뱉었다.
“선수 한 명이 잘한다고 해서 팀이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아무렴!
“그랬다면 김진호 선수는 자신의 커리어 중 절반을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로 채웠을 겁니다.”
– 아무렴! 응? 야, 왜 갑자기 내가 나와?
“김진호 선수 같은 위대한 선수도 혼자서 해낼 수 없는 게 우승이란 겁니다. 심지어 김진호 선수조차 우승을 위해 팀을 옮겼음에도 우승하지 못했습니다. 월드시리즈 반지 하나 없이 야구 커리어를 끝냈죠.”
– 그야 그런데······ 젠장, 얘가 지금 날 물 먹이는 거야 칭찬하는 거야?
청산유수.
김진호의 피쳐링 속에서도 거침없이 나오는 이진용의 말 앞에서 구은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그녀와 함께 온 둘, 변형채와 장병헌은 감히 이 대화에 나설 수조차 없었다.
그저 열심히 눈동자만 굴렸다.
물론 똑같이 눈동자를 굴리는 모습과 달리 둘의 속내는 전혀 달랐다.
‘이 미친 새끼, 뭐하는 새끼야?’
장병헌은 자신이 며칠 전 봤던 얼빠진 표정을 짓던 때와 전혀 다르게, 마치 노리던 사냥감을 이미 한 입 크게 물어뜯은 맹수마냥 구은서를 상대하는 이진용의 모습에 그저 당황할 뿐이었다.
‘정론이다.’
반면 변형채는 이 순간 이진용의 모습에 놀라는 한편, 그의 의견에 격렬한 동의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엔젤스가 올해 우승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건가요?”
물론 구은서는 그 사실에 동의하지 못했다.
“시즌이 이제 고작 6월에 접어든 상황에서?”
그녀에게 이번 시즌 엔젤스의 우승은 무엇보다 간절한 것이었으니까.
간절한 것이었기에 그녀는 이번 시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했다.
당장 데려온 외국인 선수들에게 준 돈은 공개된 액수보다 훨씬 더 많았으며, FA로 잡은 차운호와 홍우형의 몸값 역시 공개된 액수보다는 1.5배 가까이 들어갔었다.
“그것도 이번 시즌이 프로 경력이 처음인 당신이 엔젤스가 올해 우승하지 못한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나요?”
이번 시즌 초반에 부진하는 중이지만 말 그대로 부진이었다.
본래는 그보다 훨씬 더 잘해야 하는 게 당연한 전력이지만, 그러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부진이란 표현이 나오는 것이었다.
때문에 반등을 기대했다.
특히 이진용의 등장은 반등을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근거이자, 요소였다.
압도적인 에이스의 등장으로 팀의 분위기를 바꾼다면 언제든 우승을 노릴 수 있을 테니까.
그게 지금 구은서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였다.
이진용에 대한 대우를 해주기 위해서.
“확신할 수 있다면 근거가 뭐죠?”
그런데 지금 그 이진용이 지금 우승을 할 수 없다고, 이대로는 우승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구은서의 희망을 끊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구은서는 이진용의 의견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저기 구 팀장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얼마든지 하세요. 그것 때문에 이진용 선수에게 불이익이 간다면 제가 성을 갈죠.”
그런 그녀에게 이진용이 펀치를 날렸다.
“지금 엔젤스란 팀에서 우승에 목숨을 건 사람이 몇 명이나 있다고 보십니까?”
진실이라는 펀치를.
2.
엔젤스 선수단이 홈에서 치를 주말 3연전을 위해 서울로 향할 무렵.
다른 선수들은 이미 서울로 올라갔지만, 당분간 경기에 나올 이유도 없고 내일 훈련을 받을 필요도 없는 이진용은 광주에 마련된 호텔 숙소에 머물게 됐다.
– 우리 진용이 살아있눼!
물론 혼자는 아니었다.
– 재벌가 회장 손녀님 앞에서 응? 그렇게 막 대뜸 팩트 폭행하고 응? 그러다가 이제 조만간 검은 양복 입은 사람들 오고 응? 갑자기 바다에 던져지고 응? 물고기밥 되고 응?
이진용의 곁에는 언제나 그렇듯 김진호가 있었고, 김진호는 몇 시간 전 있던 이진용과 구은서의 이야기를 가지고 이진용을 열심히 놀리고 있었다.
– 나랑 똑같이 귀신 되고 응?
그런 김진호 앞에서 이진용의 표정은 당연히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심장 떨리는데 자꾸 긁으실래요?”
오늘 11이닝 완봉승을 할 때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짓을 해버리고 말았으니까.
“어휴, 지금도 쪼그라든 간이 펴지질 않네.”
구은서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그녀 입장에서는 아주 속 쓰릴 수밖에 없는 돌직구를.
“젠장, 너무 갑자기 던졌나······.”
– 뭐,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지.
당연한 말이지만 이진용은 이 돌직구를 던지면 구은서가 웃으면서 공을 받아줄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둘은 돌직구는커녕 그냥 야구공으로 캐치볼을 할 만큼 친한 사이도, 관계도 아니니까.
– 정확히 말하면 지금 아니면 다음에는 늦는 거지.
그럼에도 그렇게 한 건 그렇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 그리고 네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고.
“그렇죠.”
무엇보다 이진용이 던진 게 괜한 헛소리나 수작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것, 그것이 이진용을 움직이게 했다.
“김진호 선수가 말한 대로 지금 엔젤스에는 저처럼 꼭 우승해야 하는 선수가 없죠.”
우승을 간절히 바라는 이가 없다는 것.
그게 엔젤스의 현실이었다.
물론 프로 구단 그리고 선수는 모두가 우승을 바란다.
우승을 위해 열심히 뛰어야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기에 그저 바라는 것만으로는 아무도 우승할 수 없다.
다 바라니까.
다 바라니까 결국 더 간절하게 바라야 한다.
우승을 위해서는 뭐든 하겠다고, 이 한 몸 불사를 각오도 됐다는 간절함이!
하지만 지금 그런 선수가 엔젤스에는 거의 없었다.
– 엔젤스가 우승 못해도, 선수들은 포스트시즌에만 진출해도 연봉 인상은 따 놓은 당상일뿐더러, 지금 잘하는 선수들 입장에서는 그깟 우승이 대수겠어? 몸 성히 커리어 만든 후에 FA로 대박 내는 게 우선이지.
일단 기존의 엔젤스 선수들에게 우승을 하면 보너스가 나와서 좋고, 성취감도 있겠지만 그들에게는 그것보다 더 큰 먹잇감들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특히 지금 주전급 선수들 중에 프로 데뷔 연차가 5,6년 정도 된 선수들, 그야말로 팀의 주축이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에게 만약 FA에 대박과 팀의 우승,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다들 FA대박을 고를 것이다.
물론 열심히 안 한다는 건 아니다.
단지 뭔가를 할 때 최대한 몸이 성한 쪽, 자신의 커리어를 위한 쪽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
– 이번에 FA로 온 선수들은 더더욱 그렇지. 우승보다 계약한 시즌 동안 자기 성적만 잘 내는 게 더 중요하니까. 우승 위해서 불사르다가 부상으로 2,3년 쉬어봐. 옵션은 옵션대로 못 받고 비난은 비난대로 받고······
그리고 마지막 계약 4년째에 부진하면 경기장에서 달걀도 받고, 맥주캔도 받지. 그래서 투수가 최고라니까. 마운드까지 맥주캔 던질 놈이면 관중석이 아니라 더그아웃에 데려와야 할 테니까.
이번 시즌 FA로 어마어마한 돈을 받고 온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오히려 더더욱 몸을 사려야 하는 입장이었다.
1년에 적게 잡아도 20억을 넘게 받는 몸이 된 그들 입장에서는 4년 동안 평균적으로 20억 성적을 내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
실제로 구단도 그러기를 바란다.
FA로 데려온 선수들이 드러누우면 그야말로 허공에 수십억 원이 날아가는 격이니까.
– 외국인 선수들이야 애초에 메이저리그 뛰던 놈들이 한국시리즈 우승에 목을 맬 이유가 있을 리 없고. 예전에는 아예 그냥 용병이라고 불렀잖아? 용병. 그냥 전력을 위해서 데려와서 쓰고 끝내는 용병.
외국인 선수들은 애초에 논외 대상이었다.
막말로 엔젤스란 팀에 입단한 지 고작 1,2년이 된 선수들이, 그전까지는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엔젤스란 팀이 있는지는 더더욱 몰랐던 선수들이 엔젤스 우승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운다?
이제는 선수를 비하하는 표현이라서 쓰지 않게 됐지만, 지금도 여전히 구단은 외국인 선수들을 용병으로 본다.
팀의 일원이 아니라, 그냥 전력 강화를 위해 영입한 선수.
그런 대우를 받는 외국인 선수들이 소속팀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품기를 기대하는 건 과한 기대다.
당장 일본 혹은 메이저리그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오퍼가 오면 내년에라도 떠날 이들이다.
결국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주축 선수들 중에서, 팀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저력을 가진 선수들 중에서 우승을 해야 할 만큼 간절한 이는 이진용밖에 없었다.
“에휴.”
사실 이진용 입장에서도 그리 좋은 건 아니었다.
“내가 어쩌다 이런 팀에 와서······.”
– 야, 내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마라. 내가 우승 한 번 하려고 그 지랄이란 지랄을 다 했는데······.
이진용 입장에서는 솔직히 엔젤스를 고른 이유 중 하나가 어느 팀보다 전력상으로 우승 가능성이 높았던 점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설마 이번 일로 저한테 불이익이 오진 않겠죠?”
– 무슨 불이익? 뭐 받는 것도 없는데. 오히려 구은서 입장에서는 널 빼면 진짜 우승은 어림도 없어지는데? 구은서가 정말 우승을 원한다면 널 지원해주겠지.
“어떻게 지원해줄까요?”
– 글쎄, 너랑 애인 사이라고 말해주지 않을까? 구단주나 다름없는 여인을 여친으로 두면 그보다 더한 빽은 없잖아?
그 말에 처음으로 이진용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당연히 실소였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 나도 그냥 한 소리야. 상식적으로 구은서가 재벌집 회장 손녀가 아니더라도 너 같은 애랑 사귈 리가 없잖아?
그러나 그 미소는 오래 가지 않았다.
“너 같은? 그건 무슨 의미입니까?”
– 의미가 아니라 사실인데?
이진용과 김진호, 둘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파직!
스파크를 튀기면서.
“한 번 해보자는 건가요?”
– 어쭈? 한 번 해볼까? 확 호부호모 해버린다? 응?
“빌어먹을, 그런 치졸한 협박을 하다니······ 어쩔 수 없지. 이 패는 안 쓰려고 했는데······.”
그 스파크 속에서 황금빛 룰렛이 모습을 드러냈다.
– 어? 너 이 새끼 룰렛을 왜 꺼내?
“간만에 골드 룰렛으로 염통을 한 번 조져드리죠.”
그 룰렛 앞에서 김진호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 웃기시네. 까봤자 그냥 체력이나 오르겠지. 돌려봐 새끼야!
“돌립니다.”
이윽고 그 둘 사이에서 돌아가던 룰렛이 멈췄다.
– 아니, 씨발 진짜······.
“염통 조졌고, 다음은 간 조져드리겠습니다.”
– 지, 진용아 잠깐! 우리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
“에이, 천하의 김진호 선수 혓바닥이 왜 이렇게 길어요?”
그리고 다시 황금빛 룰렛이 모습을 드러냈다.
– 진용아!
이윽고 룰렛이 멈췄다.
– 윽!
김진호의 목소리도 멈췄다.
그렇게 밤이 지나갔다.
3.
늦은 밤.
그 늦은 밤중의 논산천안고속도로 위를 사각형의 검은색 SUV 한 대가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부아앙!
야성미가 넘치는 모난 곳 투성이의 고가의 차량, 벤츠 G바겐의 질주는 그 외형처럼 거칠기 그지없었다.
안에 탄 이가 아름다운 미녀라는 사실을 그 누구도 감히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심지어 그 미녀는 보통 미녀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이 한 손안에 꼽히는 현성 그룹의 회장의 손녀.
때문에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조금의 고민과 불만이 있을 리가 없는 여인, 구은서.
“쯧!”
그런데 지금 그런 그녀의 표정은 그렇지 못했다.
‘이진용······.’
이진용과의 대화가 그녀의 표정을 그렇게 만들었다.
이진용의 말은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래, 이진용의 말이 맞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진용의 말 자체가 충격적인 건 아니었다. 그가 한 말은 명백한 사실이었으니까.
‘내가 야구를 얕봤어.’
충격적인 건 그런 이진용의 말에 구은서, 자신이 단 한 마디도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저 단순히 전력 보강만으로 우승을 꾀할 수 있다고 너무 자신했어.’
이제까지 구은서가 상황을 잘못 판단했다는 것, 그것이 구은서의 표정을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만든 이유였다.
‘그런 식이었다면 할아버지가 정정하셨을 당시에 이미 우승을 수도 없이 해봤겠지. 그동안 투자한 게 얼만데.’
솔직히 그녀는 엔젤스의 전력이 우승전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전문가들이 시즌 시작 전 엔젤스를 우승 후보 팀으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4월 그리고 5월, 두 달 동안 50경기를 넘게 치른 엔젤스는 현재 5할 승률조차 유지 못한 채 중위권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팀이었다.
반등?
물론 반등할 수 있다.
엔젤스가 6월과 7월 동안 전력을 재정비할 수 있다면, 충분히 반등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못한다면?
가능성이 그저 가능성으로 남는다면?
그럼 끝이다.
결국 다음 시즌을 기약해야 한다.
‘그래, 선수들에게는 그저 시즌 하나가 끝날 뿐이지.’
보통 선수들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일이다.
엔젤스라면 더더욱 그렇다. 엔젤스는 그렇게 20년 넘게 우승을 하지 못한 채 살아왔으니까.
‘그게 엔젤스였지.’
30년이 조금 넘는 한국프로야구 역사 속에서 우승을 못한 채 20년을 넘게 살아왔으니까.
‘올해 무조건 우승을 위해 뭐든 할 인간은 엔젤스에 이진용하고······.’
이런 상황에서 우승에 대해 절박한 건, 1년짜리 이면 계약을 맺은 이진용뿐일 터.
‘······나밖에 없어.’
그리고 동시에 구은서, 그녀 역시 올해 무조건 우승을 해야 했다.
그렇기에 더 이상의 고민은 없었다.
‘빽이 필요하다고? 좋아.’
더 이상 불만도 없었다.
‘진짜 빽이 뭔지 보여주지.’
구은서 그녀가 눈빛을 빛내며, 그대로 엑셀을 힘껏 밟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