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92
8.
잠실구장 근처 주차장.
끼익, 끼익!
제법 비싼 차들이 줄지어 늘어선 그곳에서도 유난히 비싸 보이는 듯한 검은색 묵직한 SUV 한 대가 주차선 주변을 낑낑거리고 있었다.
– 오라이, 오라이!
그리고 그 SUV의 주변을 귀신 한 명이 얼씬거리고 있었다.
– 스탑!
이윽고 귀신이 스탑을 외치는 순간 자동차는 소리를 멈췄고, 덜컥! 운전석 문이 열렸다.
그러자 우악스러운 차에 비해 작은 체격의 사내가 등장했다.
“으으······.”
그런 사내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4억 원이 넘으며, 한정판이라서 중고가는 그보다 더 값비싼 자동차의 주인답지 않은 얼굴색이었다.
– 어떻게 된 게 주차를 하는데 한세월이냐? 응? 여기 오는데 30분, 주차장에서 주차하는데 30분, 이게 말이 되냐?
그런 이진용을 바라보며 김진호가 혀를 찼다.
“젠장, 긁히면 좆 되는데 어떻게 하라고요!”
그런 김진호를 향해 이진용이 진심을 담은 분노를 내지르며, 자신의 옆에 있는 G바겐을 바라봤다.
“에이, 진짜!”
G바겐을 바라보는 이진용의 눈빛은 마치 원수를 보는 듯한 눈빛과 비슷했다.
‘겁나서 못 몰겠네, 겁나서!’
이진용이 구은서로부터 아주 제대로 된 지원을 받은 지 5일째.
현재 이진용에게 그 지원은 짐이 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였다.
‘그냥 국산차나 한 대 받았으면 속편하게 끌고 다니겠는데 이건······.’
처음에는 좋았다.
이런 값비싼 자동차를 공짜로 탈 수 있는 날이 쉽게 오는 것도 아닐뿐더러, 이 자동차는 곧 이진용이 프런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는 명명백백한 증거였으니까.
하지만 차량에 탑승하는 순간, 시동을 걸고 운전대를 잡고 액셀을 밟는 순간 이진용은 깨달았다.
‘사고 나면 진짜 좆 된다.’
이 차에 있는 가죽 값이 이진용의 몸값보다 비싸다는 사실을.
하물며 이진용이 받은 건 차가 아니라, 차량 지원이었다. 이진용은 이 차를 잘 탄 후에 돌려줄 의무가 있었다.
그때부터 이진용의 쫄보 운전이 시작됐다.
– 아니, 고작해야 4억밖에 안 하는 차 타면서 뭘 그렇게 벌벌 떨어? 원래 차는 기스도 나고, 고장도 나고 그러는 거야! 응? 그러다가 사고 나면 까짓것 연봉에서 까면 되잖아? 응?
그리고 그런 이진용의 모습에 당연히 김진호는 오랜만에 물어뜯을 곳이 넘쳐난 갈비마냥 이진용을 열심히 맛있게 물어뜯었다.
“예예, 애플 주식으로 수천억 대 재벌이 될 뻔하셨던 분에게 이 정도 차는 장난감이겠죠. 아무렴요!”
물론 이진용이 그런 김진호의 입을 다물게 하는 데는 그다지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 에이, 진짜 잊을만하니까 그걸 또······.
그렇게 애플 주식을 떠올리며 입을 꾹 다문 김진호를 뒤로한 채 이진용이 고개를 돌렸다.
거대하기 그지없는 잠실구장이 이진용의 눈동자에 비치자, 이진용의 눈빛이 달라졌다.
‘결전의 날이군.’
이진용은 구은서를 등에 업는 순간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인터뷰를 통해 선수단에게 분명하게 말했다.
자신이 출전하는 다음 경기에서 어떤 식으로든 7회 이전에 점수를 뽑으라고.
그건 분명한 경고였다.
타자들 그리고 선수들에게 어떻게든 승리를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하라는 경고.
동시에 그건 이진용, 자신을 향한 경고이기도 했다.
‘내가 실점을 하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만약 오늘 경기에서 이진용이 실점을 한다면, 타자들의 득점 지원 속에서도 결국 이진용의 실점으로 승리하지 못한다면 이진용이 준비한 것이 물거품이 될 테니까.
전력을 다해라!
선수단에게 그런 경고를 날림으로써 이진용 역시 본인 스스로를 절벽에 몰아넣었다.
이진용에게 오늘 경기는 어느 때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이진용이 각오 어린 표정을 짓는 이유였다.
그런 그의 표정에 김진호가 다가와 말았다.
– 진용아, 똥 마렵냐?
“에이, 진짜.”
– 아, 미안. 영웅본색 표정이구나. 다음에는 맞출게.
“됐습니다!”
말과 함께 잠실구장으로 떠나는 이진용, 그런 이진용을 따라가던 김진호가 대략 50여 미터를 걸어갈 무렵에 말했다.
– 진용아 너 문 안 잠갔다.
“예?”
– 차 문 안 잠갔다고.
그 말에 이진용이 정말로 자신이 문을 안 잠갔다는 걸 떠올리며 김진호에게 말했다.
“그걸 왜 지금 말해주세요?”
그 질문에 김진호가 씨익, 미소만 지었다.
이진용의 결정의 날이 그렇게 시작됐다.
9.
한국프로야구의 페넌트레이스는 3월 말에 시작되어 9월에 끝난다.
여기서 중요하지 않은 달은 없다.
매달, 매달 그리고 하루하루가 중요하다.
그래도 좀 더 중요한 달을 고르라고 한다면, 감독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분명하게 그 달을 고를 것이다.
“6월도 이제 중순에 접어들었으니, 이제부터 7월 올스타 전까지 지옥이 시작되겠군.”
6월.
이 6월은 고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4월 동안 본격적인 시즌을 치르면서 각 구단들은 자신들의 문제점과 부족한 점을 찾아낸다.
이후 5월 동안 그 부분을 채우고자 노력하며 전력을 재정비한다.
그럼 자연스레 6월에 재정비된 전력들이 다시 격렬한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다.
하물며 7월에 치러지는 올스타 전을 시작으로 한국프로야구는 전반기가 끝나고 일주일 동안 휴식기를 가진다.
그 휴식을 앞두고 풀악셀을 밟는 건 당연한 일.
“그렇죠. 전반기의 순위가 정해지면 그때부터는 그 순위를 두고 한 단계 싸움을 하니까요.”
더 나아가 그렇게 전반기의 끝과 함께 순위가 정해지면, 그때부터는 한 단계 싸움이 시작된다.
막말로 전반기가 끝나고 6위 팀이 1위나, 2위 자리는 노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2002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만들어내고 빌리 빈의 머니볼 신화의 정점이기도 했던 20연승 같은 기록을 하지 않는 이상은.
결과적으로 6위 팀의 경우에는 5위를 노리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되고, 실제로도 그렇다.
선두권은 선두권끼리, 중위권은 중위권끼리, 중하위권은 중하위권끼리 치고받는 체급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전반기 동안 어떻게든 한 단계라도 높은 순위를 노리는 건 당연지사.
아니, 그 전에 다른 모든 구단들이 상위권을 노리고 전력으로 질주하는데 자기 혼자만 가볍게 뛰면 결국 뒤처질 수밖에 없다.
프로의 무대는 그냥 잘하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놈보다 잘해야 하는 곳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6월 13일 화요일부터 잠실에서 시작되는 엔젤스 대 데블스의 라이벌전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매치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전 주중 잠실벌 천당지옥 매치는 끝장전이네요.”
현재 두 팀은 각각 리그 6위와 4위를 하는 중이었고, 만약 한쪽이 시리즈 스윕을 한다면 그 이상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저번 목요일에 11이닝 던진 이진용 첫 경기에 내보내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때문에 엔젤스는 이 중요한 매치업의 선봉으로 에이스를 내보냈다.
“정상적으로 4일 휴식을 취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11이닝을 던졌는데······.”
11이닝 완봉승 이후 4일 휴식을 마친 이진용이 출전하게 된 것이다.
무모한 출전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선발투수들은 4일 휴식을 기반으로 로테이션을 소화하니까.
선발 로테이션상으로도 문제는 없었다.
5선발 로테이션을 돌릴 경우 데블스와의 3연전 첫 경기는 5선발이 나올 차례이지만, 지금 엔젤스는 확실한 5선발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5선발을 건너뛰고 곧바로 1선발 에이스 투수를 내보내는 게 좀 더 이득인 상황.
그리고 어느 때보다 그 이득이 필요한 때이기도 했다.
“이진용이 이 제안을 용케 받아들였네요. 나 같으면 그냥 배 깔고 드러누웠을 텐데. 그렇잖아요? 더 뛴다고 연봉이 엄청나게 받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무리하는 건 분명한 사실.
그 점을 거듭 꼬집는 후배 기자의 말에 황선우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으니까.
‘등판을 자처한 건 이진용이다.’
지금 엔젤스에서 일어나는 몇 가지 사건들을.
‘확실하게 서열 정리를 하겠다, 이거지.’
이진용이 구은서의 자가용을 지원받고, 이후 선수단을 향해서 제대로 야구를 하라는 경고를 한 사건.
그리고 그런 이진용이 직접 코칭스태프를 찾아서 본래는 수요일이었던 자신의 등판 일정을 화요일로 앞당겨 달라고 요청한 사건까지.
‘서열 정리를 끝내고, 그때부터는 이 팀을 끌고 가겠다는 의미. 노리는 바는······ 굳이 여기서 이런 짓을 하면서 노리는 건 하나밖에 없지.’
더 나아가 황선우 기자는 그런 이진용이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이진용은 엔젤스를 우승시킬 속셈이다.’
우승.
‘그게 아니라면 구은서가 이진용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힘을 실어줄 리가 없지.’
이진용이 노리는 바였고, 그것이 구은서가 이진용에게 막강한 힘을 실어준 이유였다.
‘내가 보기에 엔젤스는 이진용이 그냥 잘 던지는 것만으로는 절대 우승할 수 없는 팀이야.’
황선우가 지금 이곳, 잠실구장에 온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팀을 우승시킨다면······ 이제까지 어디서도 본 적 없던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미이지.’
그리고 경기를 앞두고 잠실구장의 마운드를 바라보는 황선우가 미소를 짓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의 감이 이번에도 말해줬으니까.
‘오늘 뭔가 굉장한 게 일어날 것 같군.’
이곳에서 또 한 번 이진용이 세상을 놀라게 할 무언가를 보여줄 것이라고.
‘그런데 이제까지 보여준 것보다 더 놀라운 건······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 없는데.’
10.
오후 6시 10분.
관중석은 관중으로, 기자석에는 기자들로, 더그아웃 벤치는 선수와 코치들로 채워지기 시작할 무렵.
라커룸에서 홀로 남아 오늘 경기를 위해 준비한 것을 복기하던 이진용이 더그아웃에 모습을 드러낸 건 그 무렵이었다.
‘왔군.’
그런 이진용의 등장에 더그아웃에 있는 모든 이들이 이진용의 존재를 의식했다.
물론 모두가 좋은 마음을 품고 이진용을 의식하는 건 아니었다.
‘올해가 첫 프로인 놈이 아주 당돌해.’
‘어디 한 번 해보자 이거지?’
오히려 반대 적지 않은 엔젤스 선수들은 이진용의 행보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상한 건 아니었다.
어쨌거나 이진용이 한 건 공격이니까.
야구 똑바로 합시다, 예?
올해 프로 입단 1년 차, 그 전까지는 경력이라고 할 만한 것조차 없는 애송이 놈이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부터 야구를 시작해 이제는 초등학생, 중학생 자녀를 둔 이들에게 그리 공격했다.
그게 진실이라고 해도 공격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 공격을 받았는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자기 반성과 자기 성찰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 게 가능한 자들을 성인(聖人)이라 부르는 이유다.
엔젤스 선수단에 그런 성인은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엔젤스 선수들 대부분은 반성이나, 자기 성찰을 할 생각이 없었다.
‘오냐, 어떻게든 점수 뽑아준다.’
‘공에 몸을 갖다 대는 한이 있더라도 출루해주마.’
‘우리가 점수 냈는데, 네가 실점해서 게임을 지면······ 그렇게 되면 두고 보자.’
대신 이제는 그 공격을 당하지 않기 위한 방법을 전력으로 강구할 뿐.
그런 분위기 속에서 게임이 시작됐다.
11.
타자와 투수는 많은 부분이 다르다.
타자는 배트를 들고 투수는 공을 던진다.
타자는 타석에 서고, 투수는 마운드에 선다.
투수는 이닝을 소화하고, 타자는 타석을 소화한다.
아이러니한 건 투수를 가장 잘 아는 건 타자들임과 동시에 타자들을 가장 잘 아는 건 투수들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다.
타자들은 투수들보다 투수들에 대해 잘 안다. 투수들은 서로가 마운드 위에서 어떤 버릇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타자들은 그 투수가 마운드에서 로진백을 만지는 것조차 의미를 두고, 기억해둔다.
투수 역시 마찬가지다. 투수들은 타자가 타석에서 하는 행동을 보고 그 타자의 심리마저 꿰뚫어 보고는 한다.
하물며 일류, 그 이상의 경지에 도달한 투수나 타자들은 귀신이나 마찬가지로 봐야 한다.
타자가 타석에 서는 순간, 배트를 휘두르는 순간 그 타자가 무엇을 노리고, 그것을 노리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왔는지 그 타자조차 모르는 걸 꿰뚫어 보는 귀신!
때문에 1이닝이면 충분했다.
– 진용아, 아무래도 타자들이 구은서가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1회 초.
엔젤스 타자들이 타석에서 보여준 모습을 통해 그들이 어떤 각오를 품었는지 가늠하는 데에는.
– 아주 그냥 어떻게든 점수를 내려고 이를 꽉 문 게 보이네, 보여.
오늘 엔젤스 타자들은 어느 때보다 득점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떻게든 데블스의 선발로 나온 외국인 투수 저스틴 버틀러를 상대로 공을 하나라도 더 던지게, 2사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출루를 해서 득점 기회를 만들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 뭐, 그것만으로는 버틀러를 상대로 점수 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물론 점수는 없었다.
– 쟤도 보통이 아니니까. 내가 보기엔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선발로 뛸만한 녀석이거든.
오늘 선발로 나온 저스틴 버틀러는 데블스에서 2017시즌을 포함해 5시즌을 뛰며 통산 65승을 거둔 투수였다.
어지간한 한국 베테랑 투수보다 한국프로야구를 잘 알고, 매 시즌 10승 이상을 거두는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급 투수라는 의미!
– 특히 엔젤스 상대로는 장난 아니더라. 거둔 65승 중에 엔젤스 상대로 거둔 승리가 11승이나 돼.
더 나아가 저스틴 버틀러는 엔젤스에게 아주 강한 투수이기도 했다.
엔젤스 상대로 통산 성적이 11승 1패, 방어율 1.66!
때문에 붙여진 별명 중 하나가 바로 사탄!
천사들이 고작 각오 하나 달라진 것으로 잡을 수 있는 존재가 결코 아니었다.
– 야, 웃음이 나오냐?
“나오죠.”
그게 이제 글러브와 모자를 챙기고 마운드에 올라온 이진용이 옅게 웃고 있는 이유였다.
“그런 사탄 같은 버틀러를 상대로 어떻게든 점수를 내려고 이를 악물었다는 거잖아요?”
–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누가 봐도 힘든 상대.
점수를 내는 것보다는 포기하고 싶어지는 상대.
그런 상대 앞에서도 점수를 내기 위해 1회부터 이빨을 드러내는 타자들과 함께 야구를 하는 건 이진용에게 있어서 프로가 되고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 어느 때보다 동료들이 믿음직스러웠으니까.
그 모습을 본 김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 사이로 나지막이 말했다.
– 오늘 경기는 완벽한 경기가 될 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그런 김진호의 목소리는 이진용에게 들리지 않았다.
“플레이 볼!”
베이스볼 매니저의 알림 소리와 주심의 외침.
호우우우!
그리고 그라운드로 흘러내려오기 시작한 엔젤스 팬들의 함성 소리는 너무나도 거대했기에.
더불어 굳이 김진호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오늘 어느 때보다 자신이 없다.’
이미 이진용 역시 느끼고 있었으니까.
‘질 자신이.’
오늘의 자신은 이제까지 보여준 어느 때보다 끝내주리란 것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