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95
8.
투수가 가장 실점을 많이 하는 때는 과연 몇 회일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정해진 답은 없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 투수마다 약해지는 타이밍은 제각각이다.
경기 초반에는 위태위태하다가 경기 후반에 오히려 더 대단한 공을 던지는 투수도 있고, 5회까지는 언터쳐블의 피칭을 보이다가 6회가 되는 순간 갑자기 힘이 빠지는 투수도 있다.
중요한 건 투수가 실점할 때는 그전에 분명하게 조짐이 있다는 것.
예를 들어 투수가 분위기에 취할 경우, 이 경우 투수는 평소보다 절대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없다.
여기에 만약 그 투수가 그날 6이닝 동안 1피안타 1볼넷 10탈삼진의 피칭을 하는 와중에 냉철함을 잃는다면 그 사실은 방심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런 상황 속에서, 분위기에 취한 채 방심을 하는 상황 속에서, 6회까지 90구나 되는 공을 던지면서 구속이 저하되고, 체력이 떨어지며 결과적으로 구위가 저하된다면?
반대로 상대팀 타자들이 90구나 되는 공을 보며 슬슬 타이밍을 읽기 시작한다면?
그러다 보면 결국 사고가 일어난다.
빠악!
7회 초, 선두타자로 나온 홍우형이 버틀러가 던진 초구 패스트볼을 잠실의 펜스, 그 머나먼 곳으로 보내는 대형사고가 일어난 이유는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 넘어갔습니다! 홍우형! 엔젤스의 새로운 해결사가 드디어 한 방을 날렸습니다.
– 높게 들어온 패스트볼을 제대로 잡아 당겨 쳤네요. 비거리가 정말 대단하군요.
7회 초, 드디어 길고 길었던 0대0의 균형이 1대0으로 기울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사고는 연달아 일어나는 법.
빠악!
– 어? 어?
– 어?
– 큽니다! 큽니다! 큽니다! 중견수가 결국 공을 쫓는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지켜봅니다.
– 넘어갔네요.
– 예! 넘어갔습니다! 엔젤스의 백투백 홈런! 박준형, 엔젤스의 슈퍼 루키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홍우형의 뒤를 이어 출전한 4번 타자 박준형, 그가 흔들리는 버틀러를 상대로 백투백 홈런을 날렸다.
“우아아아!”
“으아아아······.”
그렇게 두 개의 포물선이 잠실구장을 반으로 가르자, 반으로 갈라진 한 곳에서는 탄성이 다른 한 곳에서는 탄식이 동시에 흘러나와 그라운드를 채우기 시작했다.
– 아! 버틀러가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그게 마운드에서 버틀러가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소리였다.
6이닝 2실점.
평소의 버틀러라면 앞으로 한 이닝 정도는 더, 그 이상도 소화할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지금 버틀러는 평소와 달랐다.
– 2실점을 했다고는 하지만, 버틀러를 여기서 내리는 건 너무 이른 거 아닐까요?
– 아무 이유 없이 투수를 내리는 일은 없죠. 무엇보다 이번 실점은 단순한 실점이 아니에요. 시소가 한쪽으로 기우는 점수지요. 생각보다 타격이 클 겁니다.
평소와 다르게 이진용의 도발에 응수를 하면서, 자신의 한계치를 끄집어냈던 버틀러에게 백투백 홈런은 팽팽하게 당겨진 실을 연달아 두 번 끊는 것과 같았기에.
그렇기에 더 이상 버틀러에게는 오늘 경기를 계속 이어갈 힘도, 체력도, 정신력도 없었다.
그렇게 버틀러가 내려간 자리를 곧바로 데블스의 불펜 투수들이 채우기 시작했고, 이후 엔젤스는 1개의 안타와 1개의 볼넷을 얻어냈지만 추가 득점 없이 7회를 마무리했다.
2대0.
이제 마운드 위의 주인공은 한 명만 남은 채 7회 말이 시작됐다.
원맨쇼가 시작됐다.
9.
7회 말.
이진용이 마운드에 올라오는 순간 엔젤스 팬들은 이진용의 이름을 전력을 다해 소리쳤다.
이호우! 이호우! 이호우!
그 호명 속에서 마운드에 올라온 이진용은 타석이 있는 전광판을 지그시 바라봤다.
4회 말부터 지금까지 계속 반복한 그 행동에 이제 모두가 집중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이제는 마운드 위의 주인공은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이호우는 대체 왜 자꾸 전광판 확인하는 거야?”
대부분의 투수들은 전광판을 잘 보지 않는다. 수시로 확인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오히려 반대, 보고 싶어도 억지로, 일부러 외면하고는 한다.
“보통 투수들은 전광판 잘 안 보잖아?”
“그렇지, 봐서 좋을 거 없으니까.”
전광판에 나오는 숫자들 중에 투수에게 그다지 좋은 것은 별로 없으니까.
만약 팀이 지고 있으면 투수는 초조함을 느끼고, 반대로 팀이 이기고 있으면 투수는 방심하고는 한다.
때문에 투수들은 전광판을 무시한 채 마운드 위에서 본래 준비했던 것을 그대로 펼친다.
하물며 만약 그 투수가 아주 기념비적인 기록을 현재 진행 중이라면 더더욱 전광판을 확인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이진용 퍼펙트게임 페이스네.”
예를 들어 노히트노런이나 퍼펙트게임 같은 기록이 현재 진행형이란 사실을 전광판을 통해 알게 되면 투수가 느끼게 되는 부담감과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니까.
“이호우, 저러다가 퍼펙트게임 페이스인 거 알면 어떻게 해?”
“그러게.”
오죽하면 선발투수가 퍼펙트게임 중이면, 더그아웃의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일 정도.
그런 상황에서 현재 6이닝 퍼펙트게임 페이스를 유지하는 이진용이 전광판을 바라보는 사실에 대해서 엔젤스 유니폼을 입고 있는 무수히 많은 자들은 우려를 표했다.
“가만.”
그리고 그중 일부, 이진용이 어떤 인간인지 잘 알고 있는 자들은 의문을 표했다.
“저렇게 전광판을 수시로 확인하는 놈이 자기가 퍼펙트게임이란 걸 모를 리 없잖아?”
이진용이 자신이 퍼펙트게임 페이스란 걸 모를 리가 없다고.
“그렇지.”
“저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 행동은 의도된 것일 수밖에 없다고.
“뭐?”
“일부러 보는 거라고!”
“무슨 소리야?”
“이진용이 자기 퍼펙트게임인 걸 마운드 위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거라고!”
“그게 말이 돼?”
“이진용이잖아?”
“아, 이진용이지······.”
이진용은 그렇게 하고도 남을 또라이라고.
그들 덕분이었다.
“진짜인가? 자기가 퍼펙트게임 중이라는 걸 가지고 지금 광고를 하는 거야?”
“대체 왜?”
“설마······ 데블스 애들에게 압박감 주려고?”
“너희들 퍼펙트게임 당하는 중이니까 긴장하라, 뭐 그런 의미로?”
이진용, 그의 의도가 이제는 잠실구장에 있는 이들 그리고 지금 이 경기를 보는 무수히 많은 시청자들이 알 수 있게 된 건.
“맙소사······.”
그렇게 7회 말, 이진용의 펙트 폭행이 시작됐다.
10.
퍼펙트게임.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장명부가 한 시즌에 400이닝을 소화하고, 최동원이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거두고, 선동열이 한 시즌에 262이닝을 던지면서 방어율을 0.99로 마치는 시대 속에서조차 나온 적 없었던 기록.
때문에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프로야구에 있어 퍼펙트게임은 전무후무한 기록이 아니라, 아직 야구의 신이 허락해주지 않은 기록이라고.
그런 한국프로야구 무대에서 퍼펙트게임에 도전한다는 건 투수에게 있어서 그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작업이었다.
– 이진용 선수, 이번 7회 말도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한다면 자신의 무실점 이닝 기록을 58이닝으로 연장하게 됩니다.
– 예, 하지만 이진용 선수에게는 지금 무실점 기록 같은 건 보이지도 않을 거예요. 앞으로 이진용 선수가 이번 7회를 포함해 3이닝 동안 모든 타자를 출루 없이 잡는다면 대기록을 달성할 테니까요.
– 이진용 선수가 느끼는 부담감이 상당하겠습니다.
– 상당한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아득한 수준일 겁니다.
너무 아득해서 부담감을 느끼는 감각조차 마비될 정도.
그리고 지금 그 아득함을 느끼고 있었다.
‘미치겠다.’
이진용이 아니라 데블스의 타자들이.
말 그대로였다.
‘퍼펙트게임이라니······.’
‘정말 우리가 퍼펙트게임을 당하는 거야?’
‘어떻게 하지?’
지금 이 순간 데블스의 타자들, 아니, 데블스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두가 퍼펙트게임의 희생양이 되리란 사실에 지독한 부담감을 그리고 참담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과 부담감은 이진용이 전광판을 확인할 때마다 더 강력해졌다.
이진용이 전광판을 볼 때마다 모두가 마법에 홀린 듯이 전광판을 바라봤으니까.
지금도 그랬다.
마운드에 올라온 이진용은 가장 먼저 전광판을 바라봤고, 모두가 이진용을 따라 전광판을 바라봤다.
김진호도 마찬가지였다.
– 진용아, 저 왜 자꾸 전광판을 보는 거야?
저도 모르게 이진용을 따라 전광판을 보던 김진호가 결국 궁금증을 참다못해 질문을 던졌다.
“펙트 폭행을 하려면 지금 제가 퍼펙트 중이란 걸 어떻게든 광고를 해야죠.”
– 뭐?
“그리고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까 이제 대충 눈치 챈 거 같네요.”
– 맙소사.
그제야 이진용의 의중을 깨달은 김진호가 헛웃음을 흘렸다.
– 정말 넌 대단한 또라이야.
그 헛웃음 사이로 감탄이 나왔다.
물론 이진용 입장에서는 딱히 듣기 좋은 감탄은 아니었다.
“자꾸 또라이라고 하시는데, 제가 무슨 또라이입니까?”
그런 이진용의 말에 김진호가 사과를 했다.
– 미안, 그럼 이제부터 또라이라고 안 할게. 대신 골라. 미친놈, 크레이지맨, 퍼킹 크레이지맨, 이진용 같은 놈. 이 네 가지 중에 하나 고르면 그렇게 불러주마.
김진호의 그 말에 이진용은 표정을 구긴 채 말했다.
“시끄러워요.”
그 말을 끝으로 이진용은 제 입에서 글러브를 치웠다.
그리고는 타석을 바라보고, 데블스의 더그아웃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 장난기는 없었다.
이곳은 사냥터.
그리고 이진용은 이제 6이닝 동안, 수 시간 동안 던져놓은 밑밥을 이용해 노리던 사냥감을 본격적으로 사냥할 생각이었다.
그 사냥감은 당연히 지금 이진용이 바라보는 곳, 데블스의 타자들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이진용의 눈빛이 칼처럼, 이빨처럼 번뜩였다.
‘거듭 퍼펙트게임만 강조했다. 덕분에 데블스의 머릿속에 역전이란 단어는 삭제됐겠지.’
그 눈빛과 함께 이진용은 그들의 머릿속을 읽었다.
‘무조건 퍼펙트게임을 깨려고 덤벼들 테고, 안타를 치기 위해서 덤벼들겠지.’
이제 자신의 사냥감이 된 그들의 머릿속을.
‘안타를 치려고 덤벼드는 겁먹은 타자들에게 뭐가 좋을까?’
그리고 고민했다.
‘아, 체인지업도 좋고 투심도 좋고, 스플리터도 좋고, 다 좋아서 너무 고민되네.’
무엇으로 그들을 잡아야 할지.
‘일단······.’
그리고 무엇을 해야 보다 완벽하게 사냥을 할 수 있을지.
“심기일전.”
이윽고 이진용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을 떠올렸다.
“라이징 패스트볼.”
긴장한 사냥감을 더 당황하게 만들어서 공황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것.
“리볼버.”
7회 말.
이진용, 그가 오늘 경기 처음으로 리볼버를 꺼냈다.
11.
퍼엉!
공이 포수 미트에 들어오는 순간, 주심은 망설임 없이 큰 몸짓과 함께 소리쳤다.
“스트라아아아이크!”
그러나 주심의 그 스트라이크 콜은 7회 말 타석에 올라온 1번 타자 최정훈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맙소사, 또 139?’
그저 전광판에 찍힌 139킬로미터라는 구속을 그저 말없이 바라만 볼 뿐이었다.
‘어떻게 7회에 이르러서 구속이 이렇게 빨라지지? 심지어 이렇게 완벽한 제구라니······.’
139킬로미터.
솔직히 말해서 최정훈에게 있어 그 구속은 조금도 무서워할 이유가 없는 구속이었다.
그는 150킬로미터짜리 공을 던지는 투수들을 상대로도 큼지막한 안타를 뽑아낸 적이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그러나 지금 이진용이 던진 그 공 앞에서 최정훈은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까지 130대 초반 공을 던진 이진용을 상대로 제대로 된 싸움조차 못했던 최정훈에게 이진용이 꺼내든 139짜리 패스트볼은, 그것도 완벽하게 제구가 되어 자신의 몸 쪽 낮은 코스를 완벽하게 찌르는 그 공은 최정훈의 전의를 단숨에 잘라냈다.
‘맙소사.’
‘설마 이제까지 힘을 숨겼다고?’
그리고 이진용을 상대로 마지막 몸부림이라도, 퍼펙트게임을 주지 않기 위한 최후의 저항을 하려던 데블스 선수들의 전의마저 잘라냈다.
“리볼버.”
그런 상황에서 이진용은 3구째마저 리볼버를 사용했다.
잘려나간 전의가 다시 이어지기 전에, 사정없이 짓밟기 위해서.
그렇게 다시 한 번 139짜리 포심 패스트볼을 최정훈의 바깥쪽 낮은 코스에 찔러 넣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퍼펙트게임을 향한 아웃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12.
7회 그리고 8회.
이 두 이닝은 조용하게 지나갔다.
초, 엔젤스 타자들은 더 이상 점수를 낼 의지가 없었고 또한 그들이 점수를 내기를 바라는 이들도 없기에 조용했다.
말, 모두가 숨죽인 채 아웃카운트가 하나씩 올라가는 것만을 지켜보느라 조용했다.
9회 초는 그 어느 때보다 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엔젤스의 타자들 중 그 누구도 타석에서 타격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제발 나한테 공 오지 마라.’
‘제발 쉬운 공이 와라.’
‘그냥 삼진 잡고 끝나라.’
몇 분 후 글러브를 낀 채 자신들을 향해 날아올지도 모르는 공만으로도 이미 가득 찬 그들의 머릿속에 지금 마운드 위에서 날아오는 공이 들어올 여지는 없었으니까.
“스트라이크 아웃!”
그렇게 9회 초가 삼자범퇴로 마무리되고, 9회 말이 시작되는 순간.
– 이진용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이제 단 3개의 아웃카운트만 잡으면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존재치 않았던 기록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 순간 가장 짙은 침묵이 잠실구장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역사적인 순간의 목격자가 되는 순간, 그 순간 대부분의 이들은 그 순간을 그저 지켜보고는 하기에.
그렇기에 모두가 입을 꽉 다문 채 그저 바라만 봤다.
자그마한 체구의 투수가 마운드 위에 올라오고, 마운드 위에서 등을 돌린 채 전광판을 바라본 뒤 모자를 고쳐 쓰고는 그대로 글러브로 자신의 입을 가리는 모습을.
‘젠장.’
그런 투수를 상대하게 될 데블스의 7번 타자 안수현 역시 입을 꾹 다문 채 그 투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죽기 아니면 살기다.’
그러나 이 순간 안수현의 눈동자에는 불씨가 남아있었다.
‘쉽진 않겠지.’
사실 솔직한 심정을 말하면 안수현은 물론 데블스의 전의는 7회 말 이진용이 139짜리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순간 상실된 상태였다.
130대 초반의 공을 던지는 이진용도 상대하지 못한 데블스에게 130대 후반의 공을 던지는 이진용은 전혀 다른 괴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은 못 죽어.’
그러나 전의의 불씨조차 사라진 건 아니었다.
자그마한 불씨가 남은 채 반전을 꾀하고 있었다.
후웅!
“스윙 스트라이크!”
그 불씨는 안수현이 이진용이 던진 초구, 스플리터에 애달프기까지 한 헛스윙을 하는 순간에도 남아 있었다.
‘악마 같은 스플리터네.’
어차피 이미 벼랑에서 떨어지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데블스는 살아남을 생각이나 기대 같은 건 이미 하지 않고 있었다.
하는 생각은 오직 하나.
‘그래도 칠 수 있어. 일단 치기만 하면 돼.’
동귀어진.
이진용의 영광에 조금이라도 흠집을 내는 것이 지금 데블스 그리고 안수현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내야에 굴리든 띄우든 일단 어떻게든 치자.’
지금 필요한 건 1점도 아니고, 펜스를 맞는 장타도 아니었으니까.
볼넷 혹은 내야수의 머리를 살짝 넘기는 안타.
하다못해 내야수를 향해 굴러간 공이 야수 실책으로 세이프만 되어도 데블스는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것만 하자.’
그것조차 하지 못하겠다고 말할 거라면 그냥 야구를 그만두는 게 나을 것이다.
후웅!
“스윙 스트라이크!”
그렇기에 안수현은 또 한 번 애처로운 헛스윙과 함께 투스트라이크 상황에 몰리는 상황에서도 탄식을 내지르는 대신 자신의 마음에 남은 작은 불씨를 지켰다.
‘나는 할 수 있다. 내가 아니더라도 내 다음 동료가 할 수 있다.’
그런 그를 향해 이진용이 3구째를 던졌다.
이번에도 스플리터였다.
그러나 앞서 던진 것보다 더 빠르게 떨어지는 그 스플리터 앞에서 안수현의 배트는 다시금 허공을 갈랐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우우우웃!”
삼구삼진아웃.
‘게임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렇게 아웃을 당하는 순간에도 데블스는 여전히 반전의 불씨를 남겨두었다.
안수현이 아웃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대기 타석에 있던 8번 타자가 그리고 더그아웃에 있던 9번 타자를 대신할 대타가 반전의 불씨를 품은 눈으로 마운드를 바라봤다.
“호우!”
그때 불씨 위로 기습 호우가, 4회 말 이후 사라졌던 호우가 내렸다.
“헉!”
“으헉!”
“으허헉!”
그렇게 갑작스럽게 내린 호우는 고요했던 잠실구장을 단숨에 장악했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마운드 위의 이진용을 바라봤다.
고개를 돌려 전광판에 자신이 잡은 25개의 아웃카운트를 확인하고, 남은 2개의 아웃카운트를 확인하는 이진용을.
확인을 마치고 다시 타석을 향해 걸어오다 그대로 몸은 굳어버리고, 전의는 꺼져버린 8번 타자를 노려보는 이진용을.
그 순간 사실상 게임은 끝이었다.
완벽하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