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01)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01화(101/140)
아토스 산 원정대 – (4)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인 오리온은 또다시 자신에게 달려드는 오르토스와 힘겨루기를 하면서 생각했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가 이긴다. 다른 영웅들이 크리사오르를 붙잡는 것을 까마귀 신수가 도와주고, 내가 이 오르토스만 죽인다면…’
티폰의 자식인 오르토스는 그가 생전 처음 만나보는 호적수.
2개의 개 머리가 쉴새없이 그를 물어뜯으려 하고 꼬리에 있는 뱀 머리는 빈틈이 생길 때마다 그의 다리를 노려온다.
가죽은 또 어떠한가. 여태까지 오리온이 사냥한 어떠한 괴물이나 짐승보다도 두터운 외피를 자랑했다.
크르릉! 키잉!
“후우… 슬슬 힘이 빠지는구나, 이놈.”
그래도 반신이자 거인 사냥꾼인 그가 이기지 못할 정도는 아니였다.
비록 오리온도 몸 여기저기에 깨물린 상처를 통해 피가 흘러나오고, 괴물의 앞발을 받아낸 몸이 고통을 호소했지만…
화살에 의해 다리가 꿰뚫린 채로 오리온과 싸워야 했던 오르토스의 상태보다는 나았기에.
헥헥…
그는 다량의 피를 쏟아내며 바닥에 혀를 내밀고 쓰러진 티폰의 자식을 내려다보았다.
놈의 무뎌진 가죽이 볼썽사납게 보인다. 그 윤기나던 털들은 오리온의 쉴 새 없는 몽둥이질에 너덜너덜해졌다.
곧 해신의 아들은 괴물을 잡고 엄청난 위업을 쌓을 수 있을 터.
그가 아폴론 신의 여동생과 엮이지 않았다면, 말이다.
오리온이 지친 괴물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다가가던 그 순간…
아폴론 신의 신수, 까마귀가 이쪽으로 날아왔다.
오리온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오던 까마귀가 그의 근처에서 갑자기 날개를 펼치며 솟아올랐고…
그리고 그 까마귀를 맹렬하게 뒤쫒던 크리사오르의 황금 검은 방향을 바꾸지 못한 채, 오리온을 향해 날아갔다.
“무슨…!”
푸우욱-
뒤늦게 오리온이 지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돌렸지만,이미 날카로운 금속이 몸을 파고드는 느낌이 들었고…
옆구리에 깊숙히 들어온 차가운 황금 검의 감촉에 오리온은 끝을 직감했다.
“안돼! 오리온!”
“젠장…! 앞의 괴물에 집중해라!”
“금방 그쪽으로 갈… 치잇!”
그는 해신의 아들. 의원에게 잘 치료받는다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겠지만 이곳은 전쟁터다.
사방에서 영웅들과 괴물의 사투가 벌어지는데 그 하나를 신경 쓸 여유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오리온은 있는 힘을 다해 오르토스를 노려보았다.
자신은 이미 끝났다. 살 수 있다는 희망은 버린 지 오래. 그렇다면…!
“아케론 강을 건널 길동무로… 너 정도면 적당하겠군.”
그가 마지막 힘을 다해 몽둥이를 들어올리자 옆구리의 상처가 더욱 크게 벌어지며 끔찍한 고통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 직후, 괴물의 머리를 향해 내리친 일격은 흔들리지 않고 곧게 뻗어나갔다.
퍼억- 푸확!
티폰의 자식이자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먹은 오르토스가 영원히 잠드는 순간이였다.
그러나 이 놀라운 위업을 쌓은 영웅은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다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크으… 윽.”
까아악! 깍!
하늘에서 들리는 신수의 울음소리가 죽음이 임박한 영웅의 귀를 간지럽힌다.
주변이 느려지는 느낌. 이것이 주마등인가?
검은 까마귀는 아폴론 신의 신수. 오직 태양신의 명만을 따르는 충실한 동물이자 부하.
그래서 분명 크리사오르의 검을 분산시켜 원정대를 도와주리라 믿었는데…
자신 앞에서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꾸면, 뒤를 따라오던 황금 검이 내게 꽂히리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을 리도 없다.
하지만 그는 태양신에게 별다른 원한을 사지 않았건만… 어째서?
고민하던 영웅의 머릿속에 한 여신이 스쳐 지나갔다.
사냥이라는 같은 취미를 가지고 그와 친해진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
그녀의 오라버니가 아폴론 신이였지.
아. 하. 하하… 역시 신과 얽히면 끝이 좋지 않다니까…
그 사실을 깨달은 오리온은 밀려드는 허탈감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몸이 움직이지 않는 까닭은 옆구리의 상처 때문일까. 아니면 마음 어딘가가 비어버린 듯한 공허함 때문일까.
차갑게 식어가는 몸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잘 모르… 겠군. 저승에서 계속… 생각해봐야…’
무릎 꿇고 주저앉은 영웅의 뒤에 거대한 전갈 괴물이 다가와 독침을 찌를 때까지도…
그는 전혀 움직이지 않은 채, 죽음을 맞이했다.
* * *
구름 위, 올림포스 신궁.
아름다운 달의 여신은 그녀의 오라버니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폴론 신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일 뿐.
“오리온을 죽인 것, 분명 오라버니가 시키신 거죠.”
“동생아. 너는 잘 모르겠지만 전쟁터란 원래 그런 것이다. 찰나의 방심이 죽음을 불러오지.”
“왜 제가 아끼는 인간을 죽인 건가요?!”
“내가 왜 저 인간을 죽이겠느냐. 대체 무슨 이득이 있다고.”
달의 여신은 더욱 사납게 태양신을 노려보았다.
황금검을 유인하던 까마귀가 하필 오리온의 앞에서 방향을 꺽은 것은 분명 태양신의 입김이 있었으리라.
하지만 강하게 추궁할 수는 없었다.
그가 신수를 조종했다는 명확한 증거도 없었으며, 그녀의 오라버니가 오리온을 죽일 동기도 불분명했다.
정말로 오리온을 죽인 것이 아니라면 스틱스 강에 맹세라도 해보라고 하고 싶지만…
같은 신에게 맹세를 강요하는 것은 엄청난 무례. 신들의 왕이자 자신들의 아버지인 제우스조차 스틱스 강의 맹세를 강요하지 않는다.
“고작 저 인간 하나가 죽었다고 왜 이리 화를 내는건지, 그리고 설령 내가 죽였다 한들, 너와 무슨 상관이냐.”
“오리온은…”
“너는 설마 이 오라버니보다 저 필멸자가 더 소중하다는 거냐?”
피가 나도록 짓씹은 입술 사이에서 화를 억누른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말이 맞다. 고작 필멸자 하나 때문에 태양신에게 따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행위… 심지어 같은 12주신임에도 불구하고 다재다능한 아폴론은 그녀보다 더욱 강했다.
“이익! 저는 이만 가보겠어요!”
“아, 아르테미스.”
어딘가로 급히 달려가려는 그녀를 붙잡는 아폴론.
일순간, 달의 여신을 바라보던 태양신의 눈이 싸늘하게 변했다.
“저들에게 너무 많은 정을 주지 말아라.”
“……!”
“너는 순결을 맹세한 여신 아니냐? 고작 저런 필멸자에게 신경쓰다가는 네 마음고생만 심할 뿐이다.”
* * *
아토스 산 원정대와 괴물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이곳.
오르토스와 오리온. 그 둘이 나란히 죽음을 맞이하고 바닥에 쓰러질 때, 전황은 다시 달라졌다.
이미 망자가 된 영웅들이나 죽어나간 괴물들과 사투를 벌인 경험이 풍부한 테베 출신 영웅들의 활약.
그들 덕분에 주변의 괴물들이 점차 정리되었고, 그에 따라 황금 검의 크리사오르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더욱 늘어났다.
촤아악-
처음으로 거대 뱀의 비늘을 뚫고 길다란 상처가 난 것 역시 그 성과였다.
기껏해야 생채기 선에서 끝나던 여태까지의 공격과는 달리, 처음으로 만들어낸 유의미한 부상.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반신의 격을 갖춘 괴물이 고통과 분노로 울부짖는다.
샤아아아!!!
“드디어 검이 들어가는구만! 저 쪽을 집중적으로 노려!”
“젠장, 오리온이…”
“까마귀가 날아다니는 황금 검을 맡는 동안 상처를 조금이라도 더 입히자고!”
크리사오르가 죽인 영웅들의 숫자도 적지 않았으나, 죽어간 괴물의 수 역시 셀 수가 없었다.
온통 붉은 피로 가득한 바닥에는 티폰의 자식인 오르토스도 보였다.
강한 힘뿐만 아니라 지혜도 어느 정도 갖춘 크리사오르의 눈에 보이는 것은…이곳으로 달려오는 수많은 인간들.
그와 함께 울려퍼지는 뿔피리 소리와 짙은 금속의 냄새.
뿌우우-
“헉. 헉. 마케도니아 왕국에서 온 지원군이다!”
“왕국에서 군대가 왔다고, 조금만 더 버텨! 아니지, 여기서 전부 죽이자!”
“신들께 영광을! 죽은 오리온을 괴물들의 시체로 기리자!”
창칼과 방패를 들고 저 멀리서 다가오는 군대가 보인다. 왕국의 전 병력을 동원한 듯, 그 수는 절대로 적지 않았다.
이에 환호하는 영웅들과 이를 드러내며 그르렁대는 괴물들.
전황이 불리해진 것을 깨달은 크리사오르가 있는 힘을 다해 주변의 영웅들을 밀쳐낸다.
사납게 맥동하는 거대한 몸체에 기겁하며 물러나는 원정대원들이였지만, 그의 목표는 전투가 아닌 도주.
스으윽-
“어어… 잠깐. 이놈이 도망친다!”
“대지에 갈라진 균열의 틈새로…! 하지만 뒤쫒기에는…”
“젠장, 그냥 보내줄 수밖에 없겠군. 땅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
거구임에도 놀랄 정도로 신속하게 움직인 크리사오르.
자신이 조종하던 황금 검을 물고 땅 속으로 사라지는 괴물은 마치 패잔병과도 같았다.
간발의 차이로 마케도니아 왕국의 군대가 도착했고, 영웅들과의 전투로 지친 괴물들은 군대의 물결에 뒤덮였다.
크리사오르나 오르토스 정도로 강력한 괴물이 아니라면 군대와 다른 영웅들의 힘만으로 충분히 처리가능한 범주.
크허엉! 꽤애액-
아폴론의 도움과 테베 출신 영웅들의 활약으로 괴물들은 대부분 처리되었지만, 원정대의 피해도 막심했다.
오리온을 비롯한 다수의 영웅들이 죽거나 다쳤으며 불구가 된 자들도 심상찮게 있었다.
그러나 티폰의 자식인 오르토스는 죽었고 크리사오르는 꽁지 빠지게 도망쳤으며,
다른 괴물들은 박멸했으니절반의 성공이라 볼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