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02)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02화(102/140)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 – (1)
아토스 산 원정대는 가이아의 함정에도 불구하고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
황금 검의 크리사오르가 도주한 건 아쉽지만 애초에 가이아의 함정에 빠지고도 거둔 성과.
그런데 오리온의 죽음에는 조금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아폴론의 신수인 까마귀가 저리 움직인다고?
저 신수의 지능은 절대 아둔하지 않다. 자신의 뒤를 쫒아오는 황금검의 경로 정도는 예측이 가능할 터.
“하데스 님. 그런데 방금 오르토스를 처리하고 죽은 저 영웅 말이에요.”
“포세이돈의 아들인 오리온 말이냐.”
나와 함께 이승을 지켜보던 페르세포네가 궁금증이 담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신도 원정대를 지켜보고 싶다며 조르길래 허락해줬더니 정말 집중해서 관찰하더라.
필멸자들의 처절한 분투가 신에게는 찰나의 여흥이라… 으음. 보는 관점의 차이겠지, 아마도.
“저번에 올림포스 신궁에 올라갔을 때, 하계를 내려다보면서 알게 되었는데요.”
“무엇을?”
“아르테미스 언니랑 같이 지상에서 사냥하고 있더라고요. 그 언니가 굉장히 아끼던 인간 같던데…”
나와 만나기 전까지 올림포스 신궁에서 벌어지는 연회에도 가보지 못했던 페르세포네가 신궁에 다녀왔구나.
그녀는 이제 내 부인으로 알려져 있었으니, 데메테르가 안심하고 연회에 참석하는 걸 허락해줬겠지.
헌데 아르테미스가 아끼는 인간이 오리온이였다라… 아폴론의 신수가 이상한 행동을 한 이유가 감이 잡힌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태양신을 추궁할 수는 없다.물증도 아닌, 심증만을 가지고 조카를 혼내기에는 너무 과도한 간섭.
“그러니까… 잘못을 기억했다가 한번에 제대로 혼내야겠군.”
“네?”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이승에 강림한 크로노스와 싸울 때는 기민하게 도와주었던 아폴론이지만,
그가 이번에 벌인 일은 다소 실망이 크네.
고작 인간 하나 정도라고 생각했겠지… 물론 아폴론이라면 그리 생각할 동기는 충분하다.
본질적으로 인간을 낮춰보는 것이야말로 신인데, 올림포스 12신이라는 직위도 있으니까.
필멸자는 신과 동등하지 않은 피조물이라는 생각에, 여차하면 신수의 실수로 뒤집어 씌우면 될 거라고 여겼으려나.
이성의 신이라면서 사랑과 여동생 문제면 이성이 날아가버리는 조카놈을 어찌 교육하지.
하지만 자식을 아끼는 포세이돈이 어떻게 반응할까.
어차피 아폴론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원정대가 전멸했을 테니까, 찜찜함을 느끼면서도 그냥 넘어가지는… 그럴 리가 없겠지.
옆에 앉은 페르세포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이승을 바라보았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군대가 뒤늦게 몰려와 영웅들과 힘을 합쳐 괴물들을 쓰러뜨리고 전장을 수습중이였다.
“헤헤…”
오리온도 이제 곧 저승으로 오겠고,
저기서 죽어나간 수많은 용자들 역시 지금쯤 타나토스의 손에 이끌리고 있으려…
“하데스시여, 달의 여신께서 저승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아르테미스가 저승으로 왔다고? 들여보내라.”
그래, 아르테미스가 그 인간에게 품은 감정이 제법 깊은 모양이구나.
* * *
“하데스 큰아버지… 제발.. 오리온을 되살려주세요…!”
나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다짜고짜 애원하는 조카를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
나와는 그리 사이가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았던 조카가 맑은 눈물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내게 간청하고 있었다.
네가 그 인간, 오리온에게 품은 마음이 그 정도였느냐?
고고한 여신이 필멸자를 위해 저승으로 찾아와 무릎꿇고 애원할 정도였다니, 설마 사랑하는 사이였나.
순결을 맹세한 여신이라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피해갈 수 없었구나.
“그게 불가능한 부탁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 않더냐?”
“하지만… 저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요. 그걸 알아챈 아폴론 오라버니가 일부러 죽인 것이 틀림없다고요…”
“하아…”
역시 아르테미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구나. 하지만 그래도 되살려줄 수는 없다.
“탄탈로스의 자식을 살려준 일화 때문에 이러는 것이냐?”
“네에… 큰아버지께선 억울한 죽음을 맞은 인간은 되살려주시니… 제발…”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끔찍한 범죄 행위였으며, 그가 온전한 피해자였기에 영혼을 이승으로 돌려보내준 것이다.”
탄탈로스의 일화는 대부분의 신들이 격노한 사건.
범죄를 일으킨 당사자는 타르타로스에서 영원히 고통받으며 지내고 있었고, 그가 왕으로 있던 왕국은 폐허가 되었다.
그런 심각한 사건이였기에 되살려준 것이였다만…
“오리온의 경우에는 그 예외를 적용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원정에 나섰고, 크리사오르의 황금 검에 죽은 대영웅이니.”
“황금 검이 아니라… 아폴론 오라버니가…”
“…설령 아폴론이 그 인간을 죽였다고 해도, 그를 되살릴 수는 없다.”
아름다운 얼굴에서 눈물을 계속 쏟아내는 달의 여신.
아폴론이 간접적인 살해를 저질렀다고 해도 죽은 자는 죽은 자. 아르테미스의 간청으로 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하지만 그는 티폰의 자식인 오르토스를 상대해 죽인 대영웅. 과업에 대한 보상 정도라면…
“이만 가보거라. 네 연인인 인간의 죽음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
“제우스에게 돌아가 오리온을 별자리로 만드는 것을 내가 요청했다고 전해라. 하늘에 새겨진 대영웅을 영원토록 기리는 것은 나쁘지 않겠지.”
“네. 감사… 흑. 합니다…”
“만약 네가 원한다면 한번은 오리온을 만날 수 있게…”
대화를 마치자,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알현실을 나가는 달의 여신.
슬픔이 조금은 가신 눈치여서 다행이다. 그나마 자신의 연인이 하늘에 새겨진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하는 모양.
티폰의 자식을 죽인 영웅이니 별자리로 만들 위업도 충분하겠고, 제우스도 별다른 불만 없이 그를 하늘에 올려주겠지.
그럼 포세이돈도 약간의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 적어도 아폴론에게 분노해 심해에 처박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만약의 일을 대비해야 하니 제우스에게 아폴론을 처벌하라고 몇 마디 전해놓아야 하나…? 조금 생각해 봐야겠군.
* * *
하데스와 아르테미스가 저승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 올림포스 신궁의 한쪽 구석에서는…
자신의 아들을 야단치는 어머니와 무언가를 극도로 거부하는 아들의 대화가 벌어지는 와중이였다.
바로 날개달린 어린 신, 에로스와 그녀의 어머니인 아프로디테의 말다툼 때문.
“싫어요! 그리 말씀하셔도 안 할 거라고요. 어머니이!”
“에로스, 이런 일에 황금 화살을 쏘는 것은 하데스도 별 말을 하지 않을 거라니까! 왜 말을 안 듣니!”
어째서 이러한 일이 벌어졌는지 잠시 과거를 되짚어본다면…
이승의 한 왕국에 프시케(Psyche)라는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막내 공주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아름다워 인간들이 프시케를 현세에 강림한 여신으로 받들었을 정도.
심지어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보다 그녀가 더욱 아름답다는 소문까지 퍼졌으며…
그런 소문을 믿는 자들은 여신에게 올리는 제사를 게을리하기까지 했다.
“듣기로 프시케 공주는 아프로디테 여신의 딸이라며?”
“하기야, 그 정도가 아니고서야 그녀의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없지.”
“나는 살면서 여신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어, 프시케가 아프로디테 여신보다 훨씬 아름답지 않을까?”
아프로디테 여신의 딸이 프시케라는 소문이 퍼지는 것에서 끝이 아니였다.
급기야 프시케가 있는 왕국에서 미의 여신의 신전에 먼지가 묻어나오고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자,당연하게도 아프로디테의 심한 분노를 사게 되었다.
“대체 어느 건방진 년이길래 내 위광을 빼앗아가는 것이지?”
프시케가 들리는 소문을 정정하거나 겸손한 자세를 보이지도 않고 오히려 소문을 즐기자 그 분노는 더욱 심해졌다.
그리하여 미의 여신은그녀의 자식인 에로스를 통해신벌을 내리기로 결심했으나…
“저 건방진 년에게 금화살을 쏘아 제일 혐오스러운 인간 따위와 사랑에 빠지게 하렴.”
“…싫어요!”
“뭐라고?! 고작 인간에게 화살 좀 쏘는 것이 싫다니?”
“저번에 황금 화살을 함부러 쏘았다가 하데스 님에게 잡혀서 계속 활만 쏴야 했다니까요!”
그렇다. 저번에 활쏘기 연습을 하다가 우연히 페르세포네에게 맞춘 잘못으로 저승으로 끌려간 에로스.
그는 또다시 저승에서 끌려가 일하게 될까 봐 어머니의 말에도 고개를 저은 것.
그렇게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 열심히 자신의 아들을 달래는 아프로디테와 울상인 에로스가 있었다.
어떻게든 황금 화살을 프시케에게 쏘게 하기 위해 자식을 설득하는 미의 여신.
“에로스. 하데스는 활쏘기 연습을 하는 장소에 대해 지적했지, 네가 누군가를 쏜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잖니.”
“하지만…”
“잘 생각해보렴. 하데스가 화를 낸 이유는 결국 너도 통제할 수 없는 화살에 대한 무책임성이지, 네가 작정하고 인간에게 신벌을 내리려는 것은 뭐라 하지 않을 것이란다.”
“으으… 아니면 어떡해요! 또 저승으로 가서 그 이상한 필멸자들한테 활을 쏘는 건 싫단 말이에요!”
“그럼 이 어머니의 신전이 저리 망가질 정도인데도 화살 하나 쏘아줄 수 없단 말이니? 내 위광이 저 왕국에서는 땅에 떨어지고 있는데도?”
머리를 감싸쥐고 고민하는 에로스에게 다가가 살살 달래는 아프로디테.
만약 하데스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얼마 살지도 못할 인간 하나에게 그렇게까지 할 일이냐고 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 분노한 여신은 자신이 원하는 신벌을 내리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니 에로스야. 만약 하데스가 네게 추궁해도 내가 시켰다고 하면 되지 않겠니? 자아. 어서 저기로 향해 금화살을 쏘고 오너라.”
“…지. 진짜요? 그러면 어머니가 전부 책임지시는 거죠…?”
“그래, 내가 시켰다고 해도 좋으니 어서!”
결국 설득에 넘어가 마법의 화살을 들고 이승으로 향하는 에로스.
미의 여신과 비교될 정도로 아름답다는 프시케의 얼굴을 한번쯤 보려는 생각도 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