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03)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03화(103/140)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 – (2)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명을 받고 투덜대며 이승으로 날아간 에로스.
그는 작고 하얀 날개를 퍼덕이며 프시케가 있다는 한 왕궁으로 향했다.
높은 곳에 있는 창문이 자연스럽게 열리며 사랑의 신이 지나갈 통로를 만들었고,
인간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모습을 숨긴 침입자가 슬쩍 프시케의 방으로 들어왔는데…
“와…”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매일같이 보는 입장인 에로스도 감탄이 나올 정도의 미모가 거기 있었다.
여신들이 다 무엇이냐. 자신의 눈앞에 있는 자가 진정 여신일지언데.
침대에 고이 잠든 프시케를 본 에로스는 한눈에 사랑에 빠지고 말았고…
어린 소년이였던 그의 몸이 순식간에 성장해 잘생긴 청년으로 변화했다.
신은 영원불멸, 웬만하면 태어난 그대로의 성격과 신체를 유지하는 항상성을 지닌다.
하지만 때때로 신격이 달라지거나 어떠한 계기를 통해 변화되기도 한다.
이제야 사랑을 깨달은 어린 신이 청년이 되는 것도 그런 연유.
‘어머니의 말씀대로 신벌을 내려야 하지만… 너무 아름다운데? 꼭 그래야만 할까.’
에로스는 고민했다. 자신이 한눈에 반한 이 인간 여성을 그냥 버려야 한다니.
어머니의 말씀이라 해도 무조건 지켜야 할까? 나는 다른 신들과 다르게 아직 혼인도 하지 못했는데…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생전 처음으로 사랑의 마력에 빠진 사랑의 신은 품에서 한 병을 꺼냈다.
바로 사랑의 힘을 빼앗는 쓴 물과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단물이였다.
‘내 부인이 될 여인이 다른 이와 결혼하면 안 되지.’
아프로디테 궁전의 뜰에서 샘솟는 쓴 물을 프시케의 입술에 뿌리는 에로스.
그렇게 마법의 쓴 물이 뿌려진 프시케에게 청혼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쓴 물은 조금 심했나. 그래도 미안하니까…’
에로스는 다시 품 안으로 손을 넣어 단물이 담긴 병을 꺼냈다.
이는 뿌려진 대상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효능이 있었고, 이것이 뿌려진 프시케는 인간들로부터 더한 찬사를 받을 것이다.
‘어머니께 뭐라고 변명한다.’
잠든 프시케의 이마에 슬쩍 입을 맞추고 다시 돌아가는 사랑의 신.
* * *
아프로디테의 궁전으로 돌아온 에로스는 이쪽을 째려보는 어머니의 눈을 피했다.
그야, 신벌을 내리라고 했더니 오히려 성장해서 돌아왔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에로스으…?! 내게 설명할 말이 아주 많은 것 같구나아…!”
“그게… 프시케를 납화살로 찌르려다가…”
“찌르려다가?”
“실수로 제가 금화살에 찔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라버렸고요.”
말도 안되는 소리. 아프로디테는 기함했다.
실수? 실수로 금화살에 찔렸다고? 인간도 아닌 신체를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신이?
심지어 실수라고 해도, 금화살과 납화살은 아프로디테도 다룰 수 없는 오로지 에로스만의 권능.
자신의 권능에 피해를 입는 신이 존재하는가? 설령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털어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에로스의 화살은 자기 자신도 피해갈 수 없는 권능을 지니고 있었지만, 흥분한 아프로디테의 머릿속에는 전혀 와닿지 않았다.
틀림없이 에로스가 인간에게 반해 눈이 돌아간 것이겠지.
사랑을 모르던 아이의 모습에서 성장해 청년이 된 것 자체가 그의 심경에 변화가 왔음을 증명했기에.
“차라리 타나토스 신이 한낱 인간에게 제압당했다는 헛소리를 믿겠구나!”
“…정말입니다.”
“후우… 아도니스(Adonis)! 거기 있니?”
“예! 아프로디테 님. 무슨 일이십니까?!”
머리를 감싸고 한숨을 내쉬던 아프로디테가 한 시종을 부르자 한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더없이 잘생기고 아름다운 20대 남성이였고, 그를 보자마자 에로스가 투덜거렸다.
“…어머니께서도 잘생긴 인간에게 사족을 못 쓰시지 않습니까… 저 정도는…”
“그거랑 이거랑 같니! 이 인간은 그냥 시종일 뿐이고, 너는 아예 인간에게 반한 게 아니니?! 아도니스. 밖에서 넥타르 한 잔 가져오너라.”
“알겠습니다. 아프로디테 님.”
명을 받은 아도니스가 다시 바깥으로 나갔다.
아프로디테의 말은 놀랍게도 사실.
그녀는 정말로 잘생긴 아도니스가 마음에 들어서 데리고 있었을 뿐. 인간에게 다른 마음은 품지 않았다.
아도니스는 그녀가 보아온 모든 인간들보다 잘생겼지만…
“인간치고는 제법 빼어난 미를 지녔지만, 내가 하룻밤을 원하는 남자는 저런 게 아니란다.”
“그럼 아레스 님인가요?”
“…아레스도 그렇지만, 지위도 그렇고. 성품도 나쁘지 않으며, 모두에게 신뢰를 받고 카리스마도 있는 그런 남신이라면 더욱 좋겠…”
어머니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남신은 거의 없지 않나? 아니지, 잠깐…
에로스의 머릿속에 그 모든 조건을 부합하는 단 하나의 남신이 떠올랐다.
3주신이니 지위도 높고, 인간들과 신들도 인정하는 자비의 신인데다가,
신들의 왕인 그 제우스 님도 신뢰하며 저승을 다스리는 주신으로서 위엄도 있는…
“마치 하데스 님처럼요?”
“그래, 바로 그렇… 떽! 원래 이런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였잖니! 지금 프시케 그 년과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였는데!”
화제를 돌리려던 에로스의 표정이 어색하게 변하고 어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다시 얼굴을 굳힌 아프로디테의 입에서 떨어지는 불호령.
“내 명예를 손상시킨 그 년에게 반한 것은 이해되지만… 절대 인정할 수 없다!”
“하지만… 조금만 더 지켜봐 주세요. 분명 프시케는 어머니의 마음에도 들 거에요.”
“흥. 누가 누구의 마음에 들어? 그럼 어디 한번 네가 시험해 보거라. 그년의 태도를 보고 허락해주마.”
예전 같았다면 당장에 신벌을 내렸겠지만,
최근에 헤파이스토스와 이혼한 덕분인지 제법 유해진 아프로디테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어쩌면 인간과 사랑에 빠진 에로스와… 억지로 결혼하게 되어 아레스를 찾아가던 자신을 겹쳐보는 게 아니였을까?
그렇게 프시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신들의 과업을 받게 되었다.
* * *
왕국의 셋째 공주, 프시케에 대한 칭송은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
에로스가 뿌린 단물의 힘 덕분인 것은 당연하다.
“프시케 공주님은 지상에서 제일 아름다우신 분이 틀림없네.”
“당연하지. 저 미모는 플루토 신이 데려간 페르세포네 여신이나,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님보다도 빼어난…”
“이를 말인가! 그런데 어쩐지 구혼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군.”
“자네도 그런 생각이 들었나? 미모는 아름답긴 하지만…”
그러나 쓴 물의 힘 때문에 그녀에게 구혼하는 이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공주를 칭송하는 소문은 나날이 커져가지만, 구혼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던 왕과 왕비는 결국 델포이 신전에 찾아간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이 내려준 신탁은 다음과 같았다.
그 아이는 인간과 결혼하지 못할 팔자이니 산에 내버려두어라.
“그,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 아이는 누구와 결혼하게 되는 겁니까?”
“내 딸 프시케야… 이럴 수는…”
독사와 맹수를 뛰어넘는 사악한 괴물이 프시케를 데려갈 것이다.
프시케의 부모님은 눈물을 흘렸다.
끔찍한 괴물과 프시케가 결혼할 팔자라니, 그것도 예언으로 정해진…
그러나 예언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오이디푸스 왕과 페르세우스의 이야기는 그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잠깐, 그런데… 그 유명한 대영웅인 페르세우스 왕은, 신탁을 피할 수 있었지 않았던가?
“여보… 혹시 그 페르세우스 왕의 일화를 기억하오?”
“자신의 외할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영웅 말인가요? 아… 설마!”
페르세우스 왕은 저승과 자비의 신, 플루토에게 신탁을 받고 자신의 외할아버지를 편히 보내드릴 수 있었다.
친족을 죽일 끔찍한 범죄자의 운명에서 벗어난 그 대영웅에 대한 이야기는 이곳에도 널리 퍼져있었기에.
“그렇소. 불행한 운명에 처한 필멸자를 안타까워 하던 플루토 신께서 예언을 비틀 방법을 알려주셨지 않았소?”
“그렇다면 저희 프시케 역시…”
정확히 말하면 예언을 우회한 것이였지만,
자식을 괴물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 그들은 플루토 신전으로 향했다.
그 이유가 바로… 테베의 신전에서 나, 하데스를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이 처한 사연이였다.
한 일주일 전부터 신전에 엎드려 저리 애원을 하니 어쩔 수 없이 들리게 되더라.
“플루토(Pluto)신이시여! 제발 저희 딸에게 자비를 내려 주소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 딸이 괴물에게 시집간다니… 제발 저희를 가엽게 여겨…”
한 나라의 왕과 왕비가 직접 신전에 찾아와 대성통곡을 한다는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어제는 저승에 속한 신들이 내게 찾아와 그 인간을 도와주는 것이 어떠냐고 했었다.
“하데스… 요즘 매일같이 신전에 엎드려 비는 인간들, 도와주는 게 어떨까요?”
“레테 여신님?”
“어제는 제 신상 앞에서도 기도하더라고요… 듣기로는 엄청나게 아름다운 딸이라는데…”
“그 인간들이 정말 끔찍이도 자신의 딸을 아끼긴 하나보군.”
“휘프노스. 왜 그러십니까?”
“어젯밤 그 인간들의 꿈에 다녀온 모르페우스가 말하길, 그 인간들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딸 걱정이 가득하다고…”
신탁은 절대 거역할 수 없는, 정해진 운명으로 생각하는 인간들이 많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오이디푸스와 오디세우스의 경우에는 정해진 운명이 맞았다.
신들의 왕인 제우스조차도 결코 바꿀 수 없으며… 약간 비트는 것만이 허락되는 절대성.
그러나 이번 신탁은… 뭐? 괴물과 결혼할 운명인 여인이라고?
저승의 주신인 내가 알기로, 이 시간대에서 괴물과 결혼할 운명을 지닌 여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자명하다.
프시케에게 내려진 신탁은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델포이의 주인인 아폴론의 의지인 것.
“모르페우스, 올림포스로 가서 아폴론에게 내가 찾는다고 일러라. 이게 무슨 일인지 직접 물어봐야겠다.”
“드디어 도와주시기로 결심하신 겁니까? 하기야 그 인간들, 제법 안타까웠죠.”
누가 또 지상에서 이상한 장난을 치는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