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07)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07화(107/140)
에로스의 결혼식 – 후일담 (2)
잠시 뒤, 셀레네가 달 마차를 몰고 방향을 바꿨다.
짧은 일식이 끝나고 다시 태양이 본모습을 드러낸 것.
“그런데 저러면 셀레네 여신이 고생하지 않나?”
“적당한 보상으로 무마시켰지.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장신구와…”
올림포스에서 여신에게 주는 ‘적당한 보상’ 이라면 대부분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물건을 뜻한다.
대장장이 신이 조금만 신경을 써서 만들면 헤카테 님이 만든 마법 무구와 비슷한 장신구가 마구 튀어나오니…
“아글라이아가 헤파이스토스의 아이를 임신했던데.”
“형님 말대로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둘의 사이뿐만 아니라, 아프로디테가 프시케를 쉽게 받아들여준 것은 역시 이혼한 덕분이 아닐까?”
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구나.
아프로디테가 이전에 비해 상당히 유해진 까닭은 자신이 그토록 바래왔던 헤파이스토스와의 이혼에 성공했기 때문이겠지.
자기 자신도 헤파이스토스에게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랑을 하고 싶어했으니…
결혼식의 주인공인 에로스와 프시케가 있는 곳을 슬쩍 보니,
아프로디테가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고 프시케를 부려먹는 중이였다.
“얘. 프시케, 이리 와서 넥타르 좀 따라보거라.”
“네에. 어머님…”
“어머님?! 나는 넥타르도 제대로 못 따르는 아이를 에로스와 결혼시킨 적은 없는데?”
“아니, 어머니 제발. 저 오늘 결혼했습니다…”
“흥!”
유해진 거… 맞겠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지금 당장 저주를 내리거나 쫒아내지 않는 걸로 보아하니 나름 인정하는 것 같기도.
그런데 언제부턴가 페르세포네가 보이지 않는다.
아까까진 내 곁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데 또 어디로 간 것이지.
“당신은 무척 아름답구려. 혹시 나와 함께 뜨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겠소? 내 이래봐도…”
“싫어요! 저리 가세요!”
필멸자 기준 20대 정도로 보이는 웬 근육질의 남신이 페르세포네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내가 처음 보는 신인 것으로 보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데메테르의 딸인 페르세포네의 힘이라면 별 문제는 없겠지만,
즐거워야 할 결혼식에서 소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지…
잠깐 저곳으로 가볼까.
* * *
그 남신이 짐짓 미소를 지으며 페르세포네의 손목을 슬쩍 잡으려했고,
페르세포네가 질색하는 표정과 함께 피했다. 저 혐오스러운 무언가를 보는 표정은 단 한번도 본적이 없는데.
“아니, 왜 거부하는 거요? 나는 이래봬도 디오니소스 님의 아들인 프리아포스(Priapus)라고 하는…”
“하데스 님!”
슬쩍 그의 뒤로 다가가자 날 발견한 페르세포네가 화색을 띤다.
그냥 네 신분을 말하면 알아서 물러났을 텐데, 왕자에게 구해지는 공주 놀이라도 하고 싶었던 건… 아니겠지?
당연하게도 그녀의 입에서 나온 내 이름에 당황한 디오니소스의 아들은 뒤를 돌아보았고,
어느새 자신의 뒤로 다가온 나와 눈을 마주쳤다.
“하데… 허억! 죄, 죄송합니다! 제가 올림포스의 행사는 처음이라 봄의 여신이신 페르세포네님의 얼굴을 몰라뵙고…”
“시끄럽다. 디오니소스의 아들이라고?”
“예. 맞습니닷!”
내 앞에서 쩔쩔매는 이 신의 이름을 들어 보았던 것 같은데.
관장하는 영역이 다산과 번식이였던가?
“너는 마음에 드는 이성을 대할 때 네 지위와 신분으로 구애를 하는 것이냐?”
“예?”
“같은 신에게도 이 모양인데 필멸자를 대할 때는 안 봐도 뻔하겠군… 들어라.”
“무…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만약 너 때문에 억울하게 피해를 본 필멸자가 하나라도 나온다면 너는 저승에서 그 죗값을 치를 것이다. 알아들었으면 이만 가봐라.”
황급히 내게 허리를 숙이고 물러나는 디오니소스의 자식을 보고 있자니 어째서인지 불쾌감이 올라왔다.
그간 페르세포네에게 정이 많이 들어서 그런 것일까… 생각보다 조금 더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헤헤… 하데스 님.”
“다음부터 이런 일이 있으면 그냥 네 이름을 말하면 되지 않느냐.”
“그 생각은 못했네요. 히힛.”
내게 달라붙어 팔짱을 끼는 페르세포네를 보자니 이상하게도 불쾌감이 사라졌다.
음. 확실히 올림포스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답긴 하네.
“왜 그리 빤히 보세요?”
자신의 아버지를 쏙 빼닿은 황금빛 눈동자와 머리카락.
데메테르의 미모가 그대로 드러나는 고운 자태는 온갖 남신들이 환장할 만 하다.
페르세포네의 얼굴을 모르는 어린 남신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추파를 던질 만한 미모.
이러니까 데메테르가 항상 걱정이겠지. 아, 마침 이곳을 발견하고 오고 있군.
인상을 한껏 구긴 채로 다가온 데메테르가 프리아포스가 있는 쪽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페르세포네야.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연회 때는 웬만하면 하데스 옆에서 떨어지지 말고…”
“아니, 엄마. 무슨 과보호를 이렇게 해요! 저도 곧 있으면 300살인데!”
“휴우… 걱정이 되니 그런 것이 아니겠니. 자신의 힘만 과시하다가 남신들에게 당한 여신이 한둘이 아니란다.”
데메테르의 걱정은 타당하다. 아무리 여신의 신격이 높아도 계략에 당한 사례도 있었으니.
저번에는 본인이 포세이돈에게 노려질 뻔했으니 딸을 걱정하는 어머니로서…
“하데스. 내 딸아이를 잘 부탁한다고 했을 텐데. 이런 자리에서는…”
“아, 엄마! 제발 그만 좀 해요!!!”
시끄럽다.
* * *
페르세포네의 외침도 잠시, 겨우 진정한 데메테르가 자리에 앉았다.
나와 페르세포네 역시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넥타르를 들이켰다.
그렇게 잠시 넥타르를 들이키던 데메테르가 황금 술잔을 내려놓고 나와 페르세포네를 번갈아 바라본다.
“내 딸을 저승에 보낸지가 제법 오래되었는데, 슬슬 혼인을 할 때가 되었지 않느냐?”
“어.. 엄마도 참…”
“당연히 페르세포네야말로 저승의 안주인이겠지?”
자기 딸을 건드렸다고 화낼때는 언제고, 이제는 빨리 결혼하라는 거냐.
저번에 아레스의 딸이 포세이돈의 아들에게 당할 뻔한 사건 이후로 불안감이 심해진 건가?
“…내겐 이미 마음에 둔 여신들도 있는데.”
“누가 뭐래냐. 너는 티타노마키아 때부터 그 스틱스 여신과 계속 붙어다녔으니. 그리고 신에게 있어 부인이 여럿인 것이 뭐가 흠이라고. 당장 제우스를 봐라.”
데메테르의 말에 제우스를 보았다.
“으하하! 가니메데스, 이리 와서 넥타르 한잔 더 따라보거라!”
“제우스 당신…!”
“…이만 가보거라.”
다시 고개를 돌려 데메테르를 보았다.
가니메데스를 보며 웃음짓던 제우스가 서슬퍼런 헤라의 눈초리에 그를 돌려보내는 광경.
그것을 본 데메테르의 얼굴에 작은 금이 갔다.
“…아무튼 내가 봤을 때, 너는 너무 고지식하다. 뭐, 그렇기 때문에 내가… 으흠.”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겠다. 그럼에도확실하게 말해줄 수가…”
페르세포네에 대해 확실하게 말해주기 힘들다는 대답을 하려다가.
그간 미루고 미루던 생각에 잠겼다. 나는 페르세포네를 좋아하는가?
내가, 이 저승의 주인이자 주신이 여신에게 반한 이로 보여지는 것은 상관없다.
그 미모가 너무나도 빼어난 나머지, 온갖 남신들로부터 노려지는 조카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는 것 정도야.
하지만… 정말로 마음이 있냐고 말한다면…
손을 모으고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페르세포네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설프게 웃어보이는 그녀. 그러나 눈동자에는 불안이 깃들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든 충동은 보기 싫다는 생각.
눈동자 안에 깃든 불안감이.
내가 그녀를 받아주지 않을수도 있다는 걱정으로 생긴 감정이.
재기발랄한 봄의 여신과 어울리지 않아서 이렇게 느낀 걸까?
“하데스 님…”
어서 대답하라고 재촉할 것만 같던 데메테르도 말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암브로시아를 먹으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그간 페르세포네를 보아왔을 때, 내 마음을 되짚어 보았다.
우선 저승에 처음 왔을 때… 날 위해 영웅들의 훈련장에 기운을 계속 불어넣겠다고 말해줬을 때…
그래, 페르세포네는 확실히 아름다웠다.
그녀가 하는 행동도 귀엽고, 그리 싫지 않았다.
그렇다면…
스윽-
나는 조용히 탁자 아래로 손을 뻗어 페르세포네의 부드러운 손을 잡았다.
조금 민망하지만. 내게 향하는 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은 못할 짓이니.
친족인 조카와 혼인하는 것은 아직 무리여도, 적어도…
“아…!”
“무언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데메테르.”
나도. 페르세포네에게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단 한번도 코레가 싫다고 한 적이 없다.”
“…? 하데스. 방금 뭐라고…”
데메테르가 암브로시아를 먹다 말고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수줍게 내 옆에 붙은 페르세포네의 온기는 따뜻했고, 붉게 달아오른 볼을 보아하니 무언가 동하는 마음이 들었다.
“에로스의 결혼식도 거의 끝났으니 나는 이만 돌아가겠다.”
“…그래.”
* * *
올림포스에서 내려와 저승으로 돌아가는 길.
거센 바람을 뚫고 전차를 몰고 내려가는데 뒤에 탄 페르세포네가 나를 불렀다.
“하데스 님.”
“왜?”
“아까 처음으로… 저를 코레라고 불러주셨어요.”
내가 그랬던가.
“그게 네 애칭 아니냐? 너와 친해진 이들은 모두 그렇게 부른다고 했으니.”
“…히힛.”
전차의 뒤에 탄 페르세포네, 아니 코레가 내 허리를 껴안았다.
나는 봄의 여신의 온기를 느끼며 조용히 전차를 저승으로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