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09)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09화(109/140)
공정의 신, 하데스 – (2)
자신을 향해 준엄히 내려다보는 시선.
저승의 주인이자 죽은 자들의 왕에게서 나오는 위엄.
명계의 왕, 하데스 앞에 무릎 꿇은 디케는 생각했다.
공정의 신격으로 적격인 분은 오직 눈앞의 신 뿐이라고.
그도 그럴 것이, 선과 악을 판별할 수 있는 그녀의 눈으로 보기에 자격이 주어진 신은 많지 않았다.
직위가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신들은 자기중심적이고 제멋대로인 사고를 가졌다.
어제는 자비를 내려줬지만, 오늘은 신성이 모독당했다고 분노하는 경우도 심상찮게 있었다.
신들은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태어났을 때의 그 성격이 유지되므로… 필멸자들은 끊임없이 고통받아야만 했다.
같은 신들에게도 힘의 논리에 따라 불공정함이 만연한 것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나마 헤스티아 여신을 비롯한 몇몇 신들만이 일관성 있게 자비를 베풀었을 뿐.
반면…
변덕스럽고 자연재해와 마찬가지인 수많은 신격들 중에서도 돋보이는 인품, 아니 신품.
필멸자에게 패악질을 부리긴커녕, 신들을 훈계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주신으로서의 면모.
죽은 자들뿐만 아니라 이승의 인간들에게도 닿는 그의 손길에 필멸자들은 자비를 노래한다.
지상에 그 자비로움이 널리 알려져 제우스 님과 버금가는 신앙을 받는 이가 바로 하데스 님 아니시던가.
분명 하데스 님께서 그녀를 받아주신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세상에 정의를 퍼뜨릴 수 있을 것이다.
* * *
“저, 정의의 여신 디케는 저승의 주인이시자 공정의 신의 뒤를 따르길 청하옵니다.”
나는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우선 디케의 발언에 담긴 무게와 책임이 느껴졌기 때문.
정의의 여신으로서 질서를 바로 세울 방법으로 내 힘을 빌리는 것을 택한 것.
분명 내 디케가 내 하위 신격이 된다면 올림포스의 고위 신격들도 나를 보아 자중하겠지.
그녀는 정의의 여신이기에 공정이라는 개념 역시도 관장하고 있었다.
허나 내게 그 개념을 양도하고 자신은 하위 신격으로 들어가고 싶다…라.
필멸자를 신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이미 3주신인 내게 하위 개념 하나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분에 맞지 않는 힘도 아니고, 감당할 수 없는 지위를 받은 것도 아니다.
명분도 그녀에게 있다. 나 역시 동의하는 바.
정의의 여신의 뒷배가 되어주는 것은 나쁘지 않은 판단이다.
하지만…
“내가 공정의 신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예? 당연하신 말씀을…”
“언젠가부터 인간들이 나를 자비의 신이라 불렀을 때, 나는 침묵했다. 그만큼 신들이 인간에게 가혹하다는 뜻이였기에.”
그만큼 내가 보여준 약간의 자비가 그들에게 크게 와닿았다는 것이겠지.
그러나 공정의 신격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공정이라는 개념을 관장할 정도로 완벽하지 않다. 내가 영혼들의 판결을 맡으면서 얼마나 많은 실수와 잘못된 판단을 내렸는지 알고 있느냐? 늘 후회하고, 항상 고민하곤 한다. 네가 생각하는 공정의 신이란, 분명 이렇지 않을 터.”
“하지만, 하데스 님께선 항상 공정한 판결을 내리시기 위해 노력하시지 않습니까?”
“……”
“완벽하게 공정한 신은 있을 수 없지만, 필멸자들에게 완벽하게 공정한 심판을 내리시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이 바로 하데스 님 아니십니까?”
분명. 레테 여신님과도 이런 얘기를 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 알현실에는 나와 디케밖에 없지만, 레테 여신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환청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최대한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던 나에게 말씀하신…
하데스가 태초의 신, 카오스도 아니고 당연한 거 아닌가요?
마음이 조금 무겁다. 물론 내 비호를 받으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정의의 여신으로서 판단했을 때, 내가 공정이라는 책무를 다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러는 것이겠지.
신격은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고 자신이 맡은 업무를 다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저승이나 부, 자비라는 측면이 아닌… 공정이라는 면모도 잘 다스릴 수 있을까?
나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어느 곳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생각에 빠지자 자연스럽게 이승의 신도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신도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냥 가만히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제일 많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역시 테베.
그 다음으로 아르고스와 에티오피아, 프시케가 있던 왕국인가…
“위대하신 플루토 신이시여! 당신의 자비를 바라나이다!”
“전쟁터에서 죽은 저희 아들이 지하 세계에서는 부디 행복하길…”
“당신의 은혜 덕분에 이 재산을 쌓아올릴 수 있었으니 소 20마리를 제물로 바치겠습니다!”
“자비의 신께서 이승에 보내주신 민트 덕분에…”
“플루토시여, 저를 비호해 주소서…”
“신이시여… 억울합니다. 제발 제 원한을 풀어 주십시오.”
“플루토께 맹세코, 저는 정말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온갖 상황에서 내게 기도를 올리는 인간들.
부의 신으로서 날 부르는 이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자비의 측면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신화적인 괴물들과 절대적인 왕권, 인간의 마음을 갖춘 신들이 있는 세상.
아무 힘도 없는 인간이 기댈 곳은 신, 그것도 그나마 인간에게 호의적인 신뿐이다.
가엽고. 딱하다.
* * *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나는 다시 눈을 떠 정의의 여신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직도 내가 공정의 신격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
실망과 슬픔이 섞인 감정으로 어깨를 늘어뜨리는 정의의 여신.
하지만 아직 내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
“이런 세상에서 끝까지 정의를 관철하려고 하는 네 판단을 믿겠다.”
“그… 말씀은?!”
“네가 제안한 공정의 신격. 받아들이도록 하지.”
그녀의 얼굴이 다시 밝아진다. 음. 그렇게 기뻐해도 말이다.
저승에서 며칠만 일해보면 후회하지 않을까.
내가 공정의 신격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여러 권능과 힘이 생기는 것이 느껴졌다.
인간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불려지던 자비의 신격과는 달리, 이건 신격의 양도와도 비슷한 형태였으니.
“감사합니다! 하데스 님! 역시 공정의 신격다운 판단…! 앞으로 무엇이든지 시켜만 주신다면…”
“그럼 일단 이것부터 받아라. 저승에 속한 신들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
쿠웅.
바로 옆에 쌓여있던 양피지 더미를 넘겼다.
유능한 정의의 여신에게는 너무 적은 양인가? 조금 더 추가해도 될지도…
“하데스… 님? 이게 다 무엇인가요?”
“음? 보면 알지 않나? 맨 위의 양피지는 저승의 재정 상태와 신도들이 보낸 제물을 검토한 보고서고…”
“아니, 그것이… 제 생각보다 업무가 많은…”
“업무가 많다니? 그건 오후 분량이다. 그것도 내게 보고되기 전, 하급신들에게 처리된 것들을 포함하면 훨씬 많은데?”
“……”
탱강-
정의를 관장하는 여신의 손에서 힘없이 검과 천칭이 떨어졌다.
내가 준 양피지를 가득 들어올리느라 받을 손이 없는 모양. 그냥 공중에 띄워서 다닐 것이지…
“참고로 그거 다 끝내면 스틱스 여신님께 들러 새로운 일을 받아가도록.”
“……”
그 어떤 불의를 보아도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디케의 얼굴에 짙은 암운이 생겼다.
* * *
테베에 있는 하데스의 신전.
아침부터 갑자기 분주해진 고위 사제들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대사제님께 하데스 님의 신탁이 내려왔다고?!”
“이번에는 또 어떤 말씀을 하셨기에…!”
“설마 저번처럼 민트같은 식물을 내려주시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대사제의 방으로 달려가 신탁의 내용을 전해듣고, 급히 신전을 나서 사방으로 움직였다.
그 이유는…
“주 하데스께서 말씀하시길, 정의의 여신 디케 님도 저승에 속한 신이라고 하셨습니다!”
“뭐라고?! 정의의 여신이 왜 저승에…!”
“아무튼 그렇게 되었으니 어서 여신의 신상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조각가를 부르고 질 좋은 대리석을…”
어느 사제들은 신학자들과 왕궁으로 찾아가 변화를 설명했다.
소문은 순식간에 테베 전역으로 퍼졌고…
하데스의 신전 앞에서 벌어지던 저승의 안주인에 대한 토론은 신격에 대한 논의로 변질되었다.
“정의의 여신이 저승에…?! 이게 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겠소?”
“신탁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플루토 신이 주관하시는 영역에 정의가 속한다는 말이오?”
“플루토께서는 자비의 신이시니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정의가 자비 밑에 있을 수는 없는데? 무언가 이상하다. 우리가 알던 플루토 신의 신격이…”
“그렇다면 설마 심판과 공정… 이 아닐까요?”
“정의의 신격을 포함한다면 법을 주관하시는 것이 아닌지?”
한참을 토론하던 그들은 새로운 결론에 도달했다.
바로 괴물이 죽어서 여신으로 승격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가만, 메두사 여신의 일화를 다들 알고 있지 않나?”
“억울하게 괴물이 되어 죽은 메두사를 플루토께서 여신으로 만들어 주신 일화?”
“저승에 가면 살아있을 때 지은 죄의 처벌을 받고, 선한 일을 했거나 억울하게 죽었다면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닌가?”
이 자리에 모인 테베의 시민들은 생각했다.
죽은 인간을 공정하고 정의롭게 심판하고, 알맞은 처벌과 보상을 내려주고, 자비롭게 필멸자를 돌보는…
“그럼 플루토 신은 정의와 공정과 심판의 신이신가…?”
“…사실 저승이라는 개념에 이 모든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는 가정은 어떨까요?”
“필멸자의 종착점에서 공정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라… 맞는 말 같군.”
“죄를 지은 자는 타르타로스에 떨어지니 이것이 심판이고, 메두사 여신의 예가 공정과 자비인가?”
“어쩐지…복수의 세 여신들께서도 저승에 속하시지 않나!”
“심판은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하니 정의와 공정의 신격도…”
그리하여 다시 테베로부터…
플루토 신이 정의,심판,공정을 주관하는 신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반발이나 이견을 표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는데,
이 새롭게 알아낸 사실이… 여태까지 그들이 보아온 플루토 신의 행적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