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11)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11화(111/140)
테베의 헤라클레스 – (2)
“헤라클레스가 의욕을 잃어버린 모양입니다. 무슨 수를 써도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없으니, 부디 도움을 주신다면…”
헤라클레스가 의욕을 잃어? 영웅이 될 꿈을 잃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훈련을 게을리 한다는 것인지.
케이론의 교육으로 해결되지 않는 의욕 저하라…
목표를 잃고 방황하거나 자만하는 영웅은 많이 보았지만 의욕이라면 문제가 조금 달라진다.
오이디푸스의 경우에는 크나큰 좌절감과 죄책감으로 살아갈 희망을 잃었지만 헤라클레스가 그럴 리는 없겠고.
헤라의 젖과 스틱스 강의 힘을 받아 강력한 그 자신이 괴물이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영웅 따위는 쉽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자만했을 수도 있다.
잠시 고민하고 있자니 내 표정을 살피던 스틱스 여신님께서 질문을 던져오신다.
“으음…”
“하데스? 양피지에 뭐라고 적혀있나요?”
“헤라클레스가 의욕을 잃었다는군요. 선천적으로 강한 힘을 타고났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아…”
필멸자가 영웅이 되는 조건은 간단하다.
강한 무력이나 재치, 신의 혈통을 가지고 있거나 운명의 선택을 받아 과업을 완수하면 영웅이 된다.
하지만 영웅이라고 다 같은 영웅이 아니다.
카드모스 같은 대영웅과 괴물 몇 마리를 겨우 잡은 영웅 사이에는 엄청난 무력 격차가 존재하고…
우리 신들이 육성해야 하는 것은 그 카드모스조차 뛰어넘는 필멸자의 한계를 넘어선 자.
아무리 헤라클레스에게 영웅이 될 운명이 존재한다지만 본인의 의욕이 꺾여서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그를 스틱스 강에 빠뜨린 것 때문에 무언가 달라진 것일까.
“…안되겠군요. 한번 헤라클레스를 봐야겠습니다.”
“직접 가보시게요?”
“예. 의욕이 꺾였다면 목표를 주고 동기를 부여하면 될 일. 헤라와 관련된 일도 말해줄 생각입니다.”
애초에 그가 태어났을 때, 헤라의 젖을 빨았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면 신벌에 휘말릴 테니까…
헤라의 분노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릴려면 헤라클레스가 직접 신전에서 사죄하는 편이 나을려나.
* * *
얼마 뒤, 나는 저승의 외곽에 있는 영웅 훈련장으로 향했다.
내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챈 케이론이 이쪽으로 조용히 오더니 고개를 숙인다.
“면목이 없습니다. 하데스 님. 나름 최고의 교육자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아니, 너는 지금까지 잘 해주고 있었다. 제우스의 아들이 의욕을 잃어버린 것은 오히려 내 책임에 가깝지. 내가 그를 스틱스 강에 빠뜨렸기 때문에.”
“원인은 아마도 본인의 무력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훈계를 하려 해도 강압적인 방법으로 영웅이 될 리도 없을 뿐더러, 어떤 무기에도 상처입지 않으니…”
헤라클레스가 누구인지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다른 모든 영웅들이 평원에서 땀을 흘리며 대련중인데…
전신이 근육질인 거한 하나만이 높은 절벽 위에서 대(大)자로 뻗어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철같은 육체,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느껴지는 힘, 신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인 반신의 신성.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의욕을 잃어버린 눈동자.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네가 헤라클레스냐?”
“…누구시죠? 또 케이론 선생님이 저를 설득하기 위해 보낸 과거의 영웅입니까? 더 이상 훈련할 생각은 없다고 말해도…”
인간들 앞에 나타나듯, 힘을 억누르고 다가갔더니 이런 반응이 돌아오는군.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것이 안타깝네.
“그 공허함과 허망한 감정이 얼마나 의미없는 것인지 아느냐?”
“뭐라고요?!”
“세상이 부드러운 양털 같으냐? 길거리에 있는 인간들이 연약한 동물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 아니면 강철의 육체를 가졌으니 수련에 의미가 없다고 여겨지느냐?”
“당신은 누군데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헤라클레스가 벌떡 일어나더니 목소리를 높인다.
이제야 이쪽을 보는군.
“어느 고명한 영웅인지는 몰라도 당신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조금만 힘을 주면 모든 것이 부서지고 뭉게지는데, 훈련이 무슨 필요가 있다는 겁니까? 사자는 태어날 때부터 사자입니다. 기술이나 단련은 나약한 자들이나 하는 잔재주죠!”
“너는 영웅이 되고 싶지 않은 건가?”
“영웅이요? 당연히 되고 싶죠! 그것이야말로 대단한 영광 아닙니까? 그래서 이곳을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고요. 하지만 내 말은 저들이 하는 훈련이 제겐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한때는 쓸모가 있었지만 이제는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영웅이 되기 위해 충분히 노력했고, 이제 과업을 달성하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헤라클레스가 절벽 아래의 영웅들을 슬쩍 내려다보며 말한다.
태생적으로 강력한 힘을 지닌 자에게 있어서 훈련이란 같잖은 것. 괴물을 죽이는 일은 너무나도 손쉬운 일.
태어날 때부터 상처를 입지 않고 헤라의 젖을 빤 반신에게 세상은 시시한 장소다.
하지만 그것도…
“고작 그런 힘으로?”
“뭐요?”
“너 정도의 힘을 가진 자는 세상에 널렸다. 네가 과업을 이루기 위해 상대할 괴물 중에서도 말이지.”
경험이 모자라서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
헤라클레스는 강하다. 필시 지금의 힘으로도 인간들 중에서는 적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괴물,신,티탄들의 영역으로 나아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예언의 영웅이라면 일반적인 필멸자와는 달리, 더욱 높은 수준이 요구되는 법.
저 증오스러운 기가스들을 찢어발길 정도의…
“너는 고작 영웅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냐? 더 높은 곳은 쳐다볼 엄두도 나지 않느냐?”
“더 높은 곳이라면…”
“필멸자의 육체를 벗고, 신이 되는 것이지.”
헤라클레스가 잠시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가 피식 웃는다.
“글쎄요. 신들이라 하신들. 과연 강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제 아버지가 사실 제우스 님이라는 것은 들었지만…”
“…내 눈을 보아라. 네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알려주마.”
헤라클레스가 내 정체를 깨달은 듯, 멍하니 이쪽을 바라본다.
심드렁함, 궁금증과 의문, 그리고 혹시나 하는 미약한 기대. 그가 마음을 고쳐먹을 희망이 보이는군.
지금 내 조카의 힘은 하급신에 버금갈 터. 이 정도로 죽지는 않겠지.
잠시… 저승을 보여줄까.
* * *
“…내 눈을 보아라. 네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알려주마.”
목표? 내게 신이 되라고 권유하던 이자의 정체가 신이였단 말인가?
하지만 그 카드모스라는 대영웅도 아레스 신의 아들이자 반신을 죽였는데… 신이라고 해도…
검은 머리칼과 싸늘한 인상을 가진 그자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헤라클레스가 알던 세상이 뒤집혔다.
스아아아-
검은 눈동자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살아있었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사방이 어둡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오싹한 기운이 그의 몸을 떨리게 만든다.
여기는. 어디.
그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저 밑으로.
끝을 알 수 없는 저 나락(Tartarus)의 어딘가로.
치솟는 구역질. 뒤집히는 시야. 움직이지 않는 몸.
헤라클레스는 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무력감을 느꼈다.
아.
이것이 죽음인가?
.
. .
. . .
* * *
쿠당탕!
“허억! 커… 후… 허으윽…”
“정신 차려라. 그냥 환상을 보여준 것 뿐이다.”
시선을 마주한 순간, 그대로 무너지는 헤라클레스.
죽음의 감각에 숨을 마구 몰아쉬는 반신. 눈동자는 사정없이 떨리고 다리는 힘이 풀린 듯 제대로 서지 못했다.
그래도 태어날 때부터 온갖 축복을 받은 영웅답게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도 죽지 않았네.
당연히 예상한 바이긴 하지만…
내 진심을 다한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고도 살아있는 필멸자는 헤라클레스가 최초이자 마지막이겠지.
과연 제우스의 아들이라고 해야 하나.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숨을 내쉬는 조카에게 말을 걸었다.
“네 아버지인 제우스는 나보다 훨씬 강하다. 그런데 그 제우스의 아들이 고작 필멸자들에게 떠받들어지는 영웅으로 만족한다니 실망스럽구나.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면 그대로 발을 돌려 이승으로 나가면 된다. 아무도 너를 붙잡지 않을 테니.”
“….헉.. 당신은 누구. 십니까?”
“네 아버지의 형제다.”
“무슨! 그렇다면 하데…! 쿨럭.. 후욱.”
땅바닥에 양 무릎을 대고 숨을 몰아쉬는 헤라클레스가 회복할 시간을 조금 주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가 내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신이 되는 위업을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멸자가 되고 싶어졌느냐?”
그 질문에 헤라클레스가 잠시 멈칫하더니 말을 이어나간다.
“그것이. 그리스의 남자라면 누구든 위업을 이루고 영웅이 되는 것을 꿈꾸겠죠. 카드모스 왕 같은 대영웅이 되는 것이라면 바랄 것도 없고요. 신이 되는 것이야말로 과업의 정점일지언데, 그 길이 떡하니 제 눈앞에 나타났으면 당연히 걸어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령…”
아까와는 달리 조금은 달라진 눈빛. 목표를 찾고 그에 도전하기 위한 영웅의 편린이 보인다.
웅대한 목표… 신이 되겠다는 야망… 그것이야말로 너를 대영웅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방금 그런 일을 겪고도 내 시선을 다시 마주하는 헤라클레스.
저승을 경험하고도, 지금도 두려움에 떨고 있으면서도, 내 정체를 알아챘음에도…
“…어느 높은 신격의 노여움을 사서 죽임을 당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다시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가.
“…훌륭하다.”
아주 마음에 든다. 이것이야말로 대영웅의 정신성.
이것이 수천, 수만년이 지나도 아직도 내 뇌리에 박힌 이름의 주인인가.
나는 흡족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지금부터 너에 대한 것과, 네가 이승으로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을 알려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