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12)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12화(112/140)
테베의 헤라클레스 – (3)
헤라클레스가 내게 반문한다.
“저에 대한 것이라니요?”
“일단 네 아버지가 제우스라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예. 제 양아버지도 그렇셨고… 어머니나 케이론 님께서도…”
하긴 어렸을 때부터 비범했으니 숨길 수가 없었겠지.
“너는 태어나면서부터 헤라의 분노를 샀다.”
“그야 제가 사생아니…”
“아니, 그것도 있지만 너는 제우스의 손에 들려 헤라의 젖을 마셨다. 그녀의 분노가 언제 너를 덮칠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내가 널 스틱스 강에 담그라고 했었다.”
“예?! 하데스 님께서 말입니까? 그리고 제가 신들의 여왕의…”
당황하는 헤라클레스. 그에게 진실을 알려주었다.
“그래. 물론 스틱스 강에 널 담근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라, 네가 영웅이 될 운명이기에 그런 것도 있었다.”
“……”
“네가 스틱스 강의 힘을 받으면 쉽사리 죽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지.”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충격적이군요. 설마하니…”
주춤거리며 당황하는 헤라클레스.
자신의 탄생에 관한 사실은 지금 처음 알았을 것이다.
“그럼 네가 이곳을 나가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나?”
“저를 향한 헤라 님의 분노 때문입니까?”
“그래. 헤라의 신전으로 가서 엎드려 용서를 빌어라. 네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그렇게 해야만 한다.”
“…알겠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저주가 내릴수도 있다. 그래도 절대 용서를 비는 것을 멈추지 말아라.”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헤라클레스.
분명 헤라가 과업을 내려줄 것이고, 그 과업은 헤라의 분풀이임과 동시에 헤라클레스의 경험을 쌓게 해줄 것이다.
“스틱스 강에 대한 소문은 너도 이승에서 들어봤을 것이다.”
“예… 그곳에 들어간 필멸자를 무적으로 만들어준다고…”
“무적이 아니다. 그저 몸을 조금 단단하게 만들어 줄 뿐. 네 몸의 강도를 과시하지 말아라.”
푸슉!
손가락을 움직여 그의 어깨에 작은 상처를 냈다.
이에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는 헤라클레스. 태어났을 때부터 단 한번도 상처가 나지 않았을 테니, 당연한 일이겠지.
하지만 딱 그뿐이다. 필멸자들 사이에서는 무적의 힘이겠지만…
일정 이상의 신격을 갖춘 자라면 스틱스 강의 강화를 뚫는 것은 손쉽다.
기가스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 독이나 화염, 물을 이용한 공격이라면 더욱 그렇겠고.
“인간의 수준에서야 절대로 상처입힐 수 없는 무적의 몸이겠지만, 신의 영역이라면 조금 다르지. 네 목표는 신이 되는 것. 아니냐?”
“몸에서 피가…”
“그에 맞는 대련 상대도 구해주마. 우선 상처가 나는 것을 익숙하게 여길 수 있도록…”
뒤로 고개를 돌리자 복수의 세 여신 중 하나, 메가이라(Megaira)가 걸어왔다.
전언을 보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오신 것을 보아하니… 동굴 안에서 지내시는 것이 많이 심심하셨구나.
“뱀 머리카락에 청동 날개…! 보… 복수의 여신?!”
“…하데스.”
“일단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메가이라 님.”
“여기로 누가 올 것인지를 정하느라… 우리끼리 제비뽑기… 알렉토가 또 삐졌어.”
“크흠.제가 말씀드린 대로 여기 있는 헤라클레스와 대련을 해주시면 됩니다.”
피 흘리는 눈이 헤라클레스를 바라보았다.
죄를 지은 자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복수의 여신의 눈길이라.
평범한 인간이라면 까무러쳐도 이상하지는 않겠지만, 헤라클레스는 오히려 호승심을 불태우며 미소를 지었다.
“제가 만약 여신님을 이긴다면 저도 신이 될 수 있을까요?”
“…풋.”
필멸자의 무례에도 가소롭다는 듯이 살짝 웃는 복수의 여신.
신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것은 모든 필멸자들이 마찬가지, 그 벨레로폰이나 멘테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의 수준으로는 절대 메가이라 여신을 이길 수 없었으며, 그녀를 이긴다고 해서 신이 되는 것도 아니였다.
“신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저 강하고 불사의 몸을 지닌 완벽한 존재라고 생각하느냐?”
“…? 아닙니까?”
“신격은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존재. 단순히 그런 생각만을 가지고 있어서는 아무리 위업을 쌓아도… 절대로 신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올림포스 신이란 것이 어떤 존재인지. 무슨 짐을 짊어지고 있는지.
그가 과업을 진행하다 보면 깨닫는 바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케이론에게 인성교육을 더 제대로 하라고 전해야겠어.
그래도 메가이라 님이 함께하시니 저 오만함과 자만심은 제법 꺾이지 않을까?
아리송한 얼굴을 하고 있는 헤라클레스에게 슬슬 작별 인사를 고했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다. 다시 만날 때는… 신으로서 나와 마주하길 기대하지.”
“…!”
검은 바람과 함께 모습을 천천히 감추는 내 귀로,
이쪽을 향해 허리를 숙인 헤라클레스의 마지막 인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큰아버지.”
* * *
성채의 옥좌로 돌아온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헤라클레스에 대한 일과 앞으로의 계획을 다시 한번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기에.
제우스의 혈통, 헤라의 젖, 스틱스 강의 강화, 케이론의 교육, 여신과의 대련이라는 경험, 신이 되겠다는 목표.
이 정도면 헤라클레스가 성인이 되어서 과업을 완수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필멸자로서 이뤄내기 힘든 과업을 전부 완수하고 기가스로부터 우리를 도와준다면 신이 되지 못할 것도 없겠지.
물론 그 이전에 신이 될 수도 있는 법이고.
저번에 내가 이리스를 통해 헤라에게 말한 것이 있으니 힘든 과업이 그를 덮칠 것이다.
그래도 헤라클레스의 눈을 돌아가게 만들 정도의 직접적인 신벌만 아니라면 감당할 수 있을 터.
이왕이면 행운의 여신인 티케(Tyche)의 축복도 내려주고 싶으나 그건 너무 과할 가능성이 크다.
적당히 이겨낼 수 있는 과업이여야만 과업의 의미가 있는 법.
“하데스 님. 올림포스에서 분쟁이 발생해 중재를 요청하는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냐.”
전령이 가져온 서신을 살펴보자 온갖 분쟁거리가 눈에 보였다.
내가 공정의 신격을 얻은 뒤로는 종종 높은 신격들의 분쟁을 내가 중재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가끔 서신이 오곤 한다.
이번에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와 아프로디테, 아레스가 엮인 일인가.
아프로디테가 엮였다면 그냥 치정극 같은데 굳이 내가 갈 필요는 없을 거 같고 무시할까… 제우스?
신들의 왕이자 나의 형제, 제우스가 잠시 올림포스에 와달라는 서신이 있었다.
그런데 제우스는 왜 나를 찾지?
요즘 물 만난 고기처럼 신들에게 훈계하는 디케와 관련해서 대화를 나눌 일이 있을지도…
* * *
공정의 신격을 얻은 뒤로 제일 달라진 것.
바로 내게 도움을 구하는 신들이 종종 생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의의 여신 디케가 저승으로 오면서 업무가 제법 줄었으나, 공정의 신으로서 나의 중재가 필요한 상황이 있었다.
물론 모든 분쟁을 중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우스가 개입하기 애매하면서도 적당히 큰 사건들이 넘어오더라.
바로 지금처럼 올림포스 12신이나 그에 버금가는 신격이 크게 다툰다던가…
“에오스! 새벽의 여신이라고 인간들이 추앙해주니 내 연인마저 탐내는 건가요?”
“당신처럼 표독한 여신과 교제중이던 아레스의 콩깍지가 벗겨진 것이지요! 아름다움 빼고는 이성에게 어필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아니… 아프로디테… 그게…”
“시끄러워요! 아레스!”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아레스가 에오스와 바람을 피는 사건이 일어난 건가.
그래서 그들이 이리 싸우는 거고. 그런데 바람이 맞나? 둘이 헤어진 다음에 이리 된 것이 아니고?
“일단 다 조용히 하고 한 명씩 이야기하시죠. 에오스 여신님. 우선 당신부터.”
헬리오스 신의 누이, 마치 밤하늘을 연상케 하는 진한 남갈색 머리의 여신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에게 태양과 달의 신격을 양도하다시피 한 헬리오스와 셀레네와는 달리,
새벽의 여신 에오스는 그 신격을 온존히 가지고 있었다.
“흠. 흠. 하데스, 당신이 공정의 신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저도 들었지만 이렇게 싸움을 중재하기 위해 올림포스까지 와주신 걸 보니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겠네요.”
“항상 작은 다툼이 큰 싸움으로 이어지는 법이니까요. 아폴론과 에로스의 다툼처럼…”
사실 작은 다툼이 아니다. 새벽의 여신과 미의 여신이 전쟁의 신을 두고 다투는 것이 뭐가 작은 다툼이냐.
신에게도 통하는 저주가 난무하고, 자신의 업무를 놓아버릴 정도로 화가 나는 신이 생긴다면 또 골치 아픈 일이 터지겠지.
무엇보다도 제일 피해를 보는 것은 그 사이에 낀 필멸자들.
영문도 모르고 휘말리는 자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이런 다툼은 사전에 봉합하는 편이 났다.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는 이제 더 이상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에요. 사전에 아레스가 아프로디테에게 얘기했기도 했으니까요.”
“그럼 아프로디테가 순응하지 못해서 저러는 것이라는 겁니까?”
“물론이죠. 둘 사이에서 아이도 많이 낳았다고는 하나, 끝난 관계가 아닌가요.”
저쪽에서 분을 억누르는 아프로디테를 힐끗 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아레스까지.
“아프로디테. 에오스 여신의 말대로면 너와 아레스는 끝난 관계가 아니냐?”
“이이익! 여기 있는 아레스가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 뭐가 끝난 관계라는 건가요! 그리고 저 에오스는 분명 저와 아레스가 교제할 때도 종종 꼬리를 친…”
“잠깐. 너무 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말해라.”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프로디테의 말을 전부 듣고, 아레스를 보았다.
그는 눈을 질끈 감다가 복잡한 심경이 드러나는 얼굴로 내게 입을 열었다.
“아레스. 너는 뭔가 할 말이 없느냐?”
“…큰아버지. 그것이 아프로디테와의 사이가 요즘 소홀해졌을 때, 에오스 여신이…”
셋의 말을 전부 들어보니 단순한 사랑 싸움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1. 에오스는 원래 아레스에게 마음이 있어서 지속적으로 그에게 구애했다. 물론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사이가 좋을 때도.
2. 아프로디테는 이를 굉장히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여태까지는 그녀가 아레스의 사랑을 온전히 받고 있었기에 큰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3.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관계가 소홀해지자, 에오스가 아레스에게 접근해 연인이 되었다…
무슨 별것도 아닌 사랑싸움으로 내게 중재를 요청하니, 그리도 믿을 만한 신이 없었나?
그냥 에로스나 제우스, 다른 12신에게 말한다면…
아니다. 제대로 된 조언을 하는 놈이 없으려나?
생각을 마치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런 사랑싸움으로 저를 부르지 말아줬으면 하는군요. 에오스 여신님. 저도 제법 바쁜 몸이니 디케라던가…”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튀어나오는 반발.
“하지만 디케가 이런 일을 어떻게 중재하나요!”
“그… 큰아버지. 디케는 처녀성을 맹세한 여신인데다, 이건 정의의 관점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해서…”
“그야, 사랑과 관련된 일이니 제일 순수한 사랑을 많이 받는 하데스에게 맡긴 거에요.”
내가 여러 여신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긴 하지만…
나는 연애 상담의 신이 아니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