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14)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14화(114/140)
밤의 여신, 닉스 – (1)
이곳은 저승의 훈련장.
케이론은 어느 한 곳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하데스 덕분에 열의가 되살아난 헤라클레스와 복수의 세 여신 중 하나, 메가이라(Megaira)가 싸우는 곳을.
절벽 위에서 결투하는 영웅과 복수의 여신.
그들의 충돌에 바위가 박살나고 파편이 마구 튀어오른다.
콰아앙- 쿠궁!
“흡!”
“후훗…”
여신을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며 죽일듯이 달려드는 헤라클레스와 가만히 서서 그의 공격을 횃불로 받아내는 여신.
헤라클레스가 어떠한 영웅보다도 강하다는 것은 케이론 자신도 알고 있었지만…
“강의 신 같은 하급 신격도 아니고 복수의 여신과 저 정도로…”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말.
케이론은 잠시 부담을 느꼈다. 아직 어떠한 과업도 이루지 못한 영웅이 신과 맞설 정도라니.
비록 복수의 여신은 그의 공격을 받아주며 간간히 반격만을 할 정도였지만,
애초에 신과 합을 겨루는 인간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그런 괴물같은 인간이 자신의 제자이며, 하데스가 인성 교육을 부탁한 영웅.
오늘따라 어깨가 무거워지는 듯한 켄타우로스 현자였다.
케이론뿐만 아니라 다른 과거의 영웅들이나 영웅 지망생들 역시 그들의 싸움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건지.”
“헤라클레스가 강한 것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복수의 여신과도 비견되는 정도였나?”
“이게 말이 돼? 나는 이 광경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헛소리라고 생각했을 거야.”
“아직 이승으로 나가지도 않았는데 대영웅의 경지라니…”
“대영웅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이미 카드모스 님을 제외한 다른 자들을 모두 이겼지 않은가?”
“그것도 상처가 나지 않으니… 이승으로 나간다면 절대 헤라클레스와 적이 되지 말아야겠어.”
얼마 전까지 함께 훈련을 받던 영웅들의 눈에 질투와 선망, 부러움과 동경의 감정이 담겼다.
자신들이 꿈꾸던 무력의 결정체, 그 정수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에.
쿠구구… 콰쾅!
또다시 무너지는 절벽의 풍경에서 눈을 돌린 케이론이 영웅 지망생들에게 소리쳤다.
그는 교육자. 앞선 이의 질투와 선망에서 열의를 끌어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다들 저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겠지.”
“예… 정말 대단하군요.”
“저게 헤라클레스…”
“으음. 신들로부터 선택받은 영웅의 힘이 저 정도라니…”
슬며시 헤라클레스에 대한 운을 떼자마자 곳곳에서 나오는 침음성.
그들의 목소리에 섞인 의기소침함과 좌절을 알아차린 케이론이 주위를 환기한다.
“그래서, 영웅이 되는 것을 포기할 것이냐?”
“…그건.”
“하지만 헤라클레스에 비하면…”
“저 헤라클레스의 힘에 압도되어 너희는 패배자라고, 무슨 짓을 해도 그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에 대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케이론은 영웅 지망생들의 눈앞에 벽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도 항거할 수 없는 신이 아닌, 같은 필멸자가 저리도 활약하는 모습에.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 넘치던 영웅들에게 있어서,
헤라클레스의 존재는 마치 절대 뛰어넘을 수 없는 산.
“영웅과 범인을 가르는 것은 무력이나 지성, 뛰어난 혈통도 있겠지.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정신성에 있다.”
“……”
“앞으로 너희들이 이승으로 나가 과업을 수행할 때, 헤라클레스와 같은 강력한 괴물에게 노려지면 그대로 포기할 것이냐? 혈통과 재능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위안하면서… 망자가 되어 이 저승으로 다시 올 것이냐는 말이다!”
케이론의 외침에 고개 숙인 그들이 하나둘씩 눈을 마주한다.
마음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열망이 없는 이는 이곳에 단 하나도 없었다.
영웅의 길을 걷는 것에 각오가 소홀한 이들은…
애초에 저승으로 넘어오기도 전에 스틱스 강의 맹세에서부터 걸러졌다.
그간 이곳에서 견뎌낸 훈련들… 신화의 괴물이나 군신 아레스와 싸운 기억…
그리고 그들 개개인이 품고 있는 야망과 꿈이라는 장작에 불씨를 던진 것은 케이론의 말.
어느덧 고개를 들어올린 영웅들의 눈은 향상심와 투지로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이제야 좀 볼만한 눈빛을 하고 있군. 그럼 이렇게 놀고 있을 시간이 있나?”
“없습니다!”
“케이론 선생님께 잠시 추태를 보였군요.”
“영웅과 범속한 인간이 다른 점은 바로 정신성…”
영웅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사방으로 흩어져 대련을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치열하게.
* * *
나는 성채의 옥좌에서 전령들의 보고를 받아보고 있었다.
언제나와 같이 저승 전역에서 올라오는 보고들. 중요한 안건들이 종종 섞여있기에 대충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지금과 같이, 프로토게노이와 관련된 사안이면 더더욱.
“하데스. 저희 어머니께서 닉스 님의 설득에 성공하셨다는 전언이에요. 이제 남은 건 하데스한테 달렸어요.”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망각의 여신, 레테 님의 서신.
레테 님의 어머니는 불화의 여신 에리스, 그리고 그분의 어머니는 태초의 신격인 프로토게노이 닉스(Nyx)님.
우리가 헤라클레스를 육성해 기가스들을 때려잡는다고 해도…
분명 가이아는 우리를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련한 대비책.
바로 가이아와 같이 카오스 아래에서 태어난 남매이자 프로토게노이인 밤의 여신, 닉스를 설득하는 것.
하지만 닉스 님은 세상의 일에서 손을 떼고 방관하고 계신다.
가이아가 이기든, 우리가 이기든 자신에게는 알 거 없다는 태도로 수천년이 넘도록 일관하고 계시니…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닉스 님의 자식들에게 부탁드렸다.
단 한번만이라도 내가 직접 그분을 설득할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내 부탁을 받은 닉스 님의 자식들.
즉… 불화의 여신 에리스를 비롯한 타나토스와 휘프노스, 모로스와 케레스 님 등은 돌아가면서 그분의 거처로 찾아갔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는지는 몰라도.
드디어 엉덩이 무거운 프로토게노이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하셨다.
가이아와 대등한 태초신의 비호를 받을 수 있는 기회.
절대 놓치지 않으리.
* * *
밤의 여신인 닉스 님은 절대신 카오스로부터 태어난 어둠과 소멸 그 자체.
대지모신으로서 모든 것을 만들고 생산하는 가이아와는 정반대의 신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나마 가이아 여신과 동떨어진 생각을 가질 거라고 생각해 설득에 나선 것.
조금이라도 밤의 신격에 친숙한 내가 직접 그분을 만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터벅터벅.
닉스 님의 거처는 타르타로스, 그것도 그곳에서 제일 무서운 구역에 있다.
다만 타르타로스에 갇힌 것이 아니라… 밤이 된다면 낮의 여신이자 그녀의 딸인 헤메라(Hemera)와 자리를 바꿔서 나온다.
타르타로스로 향하는 내리막길.
저승에 거주하는 또다른 여신인 에리스 님과 마주쳤다.
“아. 하데스.”
“에리스 님. 저희를 위해 닉스 님을 설득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지만, 데메테르보다 싸늘하고 표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에리스 여신님.
그녀가 별 거 아니라는 태도로 내게 말했다.
“이 정도로 뭘. 사위가 부탁하는데 어머니께 몇 마디 올리는 것 정도야.”
“사위…”
“흐응? 레테랑 결혼하지 않을 생각이냐?”
찌푸려지려는 눈초리에 빠르게 말을 바꿨다.
“아뇨.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장모님.”
“오호호! 저승의 주인으로 오래 생활하더니 능청만 늘었구나. 타르타로스로 가는 길이니?”
“예. 장모님께서 닉스 님과의 자리를 주선해 주셨으니…”
“타르타로스에 들어가지 말고 입구에 기다리고 있으면 아마 나오시지 않을까 싶구나. 그럼 수고하렴.”
다른 이들이 기피하는 불화의 여신이지만 종종 찾아가서 인사드린 것이 효과를 보았구나.
연회에 가끔씩 초대해 드릴 때마다 수상하게 무슨 일이 터져서 연회가 중단되긴 하지만…
역시 연장자에게는 무조건 허리부터 굽혀야 한단 말이지.
“…살펴가십시오.”
불화의 여신 에리스 님. 아니 장모님과 헤어지고 나서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조금씩 더… 더… 슬슬 타르타로스에 가까워졌다는 증거인 안개가 흘러나오고, 싸늘한 한기가 감돈다.
타르타로스의 청동 문까지 대충 300여 보.
닉스 님이라면 내가 이곳까지 온 사실을 알고 계실 터.
머릿속에서 그분을 설득할 수많은 근거와 호소할 방법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아니, 아니다… 프로메테우스를 설득할 때보다 더욱 힘들 것이겠지.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우리 대신 가이아와 싸워달라는 의도를 피하기는 힘들어.
청동 문이 보이고, 그 앞에 나란히 앉은 세 거신들이 보인다.
50개의 머리와 100개의 손을 가진 헤카톤케이레스 3형제들이 이쪽을 향해 인사하는군.
“오! 하데스!”
“거 오랜만이군. 저번에 프로메테우스도 만났다면서?”
“요즘 크로노스는 조용해. 다른 티탄들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왔나?”
“아, 오늘은…”
사아아아ㅡ
그들에게 닉스 님에 대한 일을 대답하려던 와중, 공기가 갑작스럽게 무거워졌다.
몰려드는 압박감. 사라지는 불빛. 제우스를 아득히 뛰어넘어 크로노스의 위압감보다 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자는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헤카톤케이레스 3형제가 급히 일어서며 옷매무새를 정돈한다.
나 역시, 이 자리에 나타날 존재를 맞이할 준비를 마치고 기운이 모이는 곳으로 고개를 숙였다.
곧 주변이 어둠으로 뒤덮이고, 내 앞에서 느껴지는 막강한 존재감.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감미로운 미성(美声).
“어머, 그렇게 고개를 숙이면 불편하지 않니?”
밤의 여신이자 태초의 프로토게노이, 닉스(Nyx)가 강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