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16)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16화(116/140)
저승의 안식일 – (1)
닉스 님에게 확답을 받고 성채의 옥좌에 앉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에서 손을 떼신 분들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설마 우라노스 님의 증표를 받아오라고 하실 줄은.
품 안에 있는 깃털이 묵직하게 느껴진다.
닉스 님을 설득하는 것이 정말로 필요한 일이냐고 하는 신들도 있겠지만…
티탄 신족을 모조리 타르타로스에 가두었고,
티폰도 머리와 몸을 분리시켜 가두었고,
가이아가 낳은 기가스들도 수도 없이 죽였고,
저번에는 헤파이스토스가 가이아를 임신시키지를 않나.
음. 가이아의 분노가 아주 하늘을 찌르겠군.
확실히 닉스 님을 설득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데스 님. 올림포스에서 헤르메스 님과 호라이 여신들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저승으로 이동한 디케를 보러 온 건가? 모두 들어오라 해라.”
호라이 여신은 3명의 자매로 구성된 제우스와 테미스 님의 딸들.
디케를 제외하면 분명… 질서의 여신인 에우노미아(Eunomia)와 평화의 여신 에이레네(Eirene)였던가.
다들 디케의 자매가 아니랄까봐 성향도 비슷했지.
에우노미아는 이승의 무질서에 한탄하고… 에이레네는 아레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가.
“하데스 큰아버지. 안녕하십니까. 제가 이번에는 호라이 누님들을 전부 데려왔습니다!”
“안녕하세요. 하데스 님…”
“오랜만에 뵙는군요. 저승의 군주시여.”
적당히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었더니 바로 본론이 나왔다.
“디케는 어디 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무슨 고생을 하고 있을지…”
“그리도 말렸건만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지하 세계로…”
“여봐라. 이들을 디케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거라.”
“감사합니다! 하데스 님!”
“디케가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는 걸까?”
전령에게 안내를 맡겨 디케를 만나도록 해주었다.
그들은 자매간에 우애가 깊은 것을 증명하듯 곧장 디케를 보러 떠났다.
이제 나는 가만히 서 있던 전령신을 보았다.
“헤르메스. 올림포스에 전달해라. 가이아에게 맞서 닉스 님의 도움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우라노스 님의 증표를 받아야 한다고.”
“네?! 밤의 여신 닉스 님 말입니까? 우라노스 님은 또 무슨…!”
크게 당황한 헤르메스의 동공이 커지고,
내 설명을 들을수록 그의 표정이 점점 경악으로 물든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분을 계속 설득해 독대를 이끌어냈고, 그 자리에서 확답을 받았지.”
“그 조건이 우라노스 님의 증표를 받아오는 것…”
“그래, 제우스에게 지금은 잠적한 우라노스 님을 찾아야 한다고 알려라.”
“알겠습니다! 어서 아버지께 이 소식을 전달하겠습니다.”
헤르메스도 보냈고, 호라이 여신들이 디케를 보러 온 김에,
나도 그녀가 저승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확인이나 해볼까.
이승에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던 디케이니 알아서 잘하고 있겠지만…
* * *
“하데스 님. 이렇게 일이 많은 것은 정의롭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공정의 신께 요청드리니 저승에도 올림포스와 같은 공정한 휴식이 필요함을 아뢰옵니다.”
나는 저승의 집무실에서 그새 초췌해진 몰골의 디케를 만날 수 있었다.
저승에 오고 싶다고 할 때는 언제고… 하긴 그때는 이곳의 실상을 몰랐으니 이해가 되지만.
“흐윽… 훌쩍. 디케. 네 얼굴이 반쪽이 되었구나…”
“그러니까 왜 저승에 간다고 했니.”
그런 디케의 옆에는에우노미아와 에이레네가 슬피 울고 있었다.
간간히 이쪽을 바라보며 원망 섞인 눈초리를 던지는 것은 덤이였다.
“하데스 님… 아니 큰아버지. 제발 저희 디케 좀 살려주세요.”
“흐끅… 마치 타르타로스에 다녀온 얼굴을 하고 있으면…”
마지막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뭐가 문제냐는 듯한 얼굴인 저승에 거주하는 여러 신격들.
스틱스 여신님을 비롯해 메두사와 페르세포네… 특히 타나토스의 얼굴 표정이 아주 가관이였다.
“흐응. 우린 항상 이러고 있었는데? 올림포스에서는 얼마나 놀고 먹었던 걸까.”
“…? 저는 올림포스에 가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그곳은 얼마나 편한 곳인가요?”
“여기는 올림포스가 아니에요…”
“지금도 이 정도인데, 매일 영혼을 수확하는 일을 한 달만 경험한다면 아주 까무러치겠군. 쯧. 요즘 젊은 것들이란…”
다른 곳에서 일하던 신이 저승에 온다면 항상 같은 반응을 보여준다.
정의를 위해 저승에 온 디케는 다를까 싶었지만, 그녀 역시 별다를 건 없구나.
“에우노미아, 에이레네. 그렇게 디케가 걱정되면 너희도 저승에 오면 되지 않느냐? 질서와 평화이니 나름 저승에 어울릴 것 같은데.”
“아. 아. 아니에요! 이곳이 얼마나 평화롭지 않은… 아니 이게 아니라!”
“집무실에서 질서를 찾아보기가 힘들… 아닙니다.”
뭐라? 저승이 평화롭지 않고 질서를 찾아보기도 힘들어?
나도 모르게 눈에 힘이 들어갔는지 그녀들이 내 눈치를 보며 움찔거린다.
후우. 아무튼 올림포스에 있던 신들이 보았을 때는 저승이 많이 힘든 곳이기는 하다.
타나토스의 권능이 통할 것만 같은 디케의 몰골도 그렇고, 여태까지 꾸준하게 제기되어 왔던 문제가 바로 업무량이니.
“…휴일을 만들어야겠군.”
“휴일? 하데스. 일을 하루라도 쉬면 심각한 문제가…”
“휴식도 필요하긴 하지만, 그럼 그 하루 동안에는 영혼의 관리가 엉망이 되는데요?”
혼잣말을 내뱉자마자 곧바로 내게 반문하는 신들.
저승에 속한 신들이 매일 투덜거리면서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영혼, 죽음, 환생, 심판을 담당하는 이곳에서 하루동안 일을 쉰다?
당장 세계의 순환이 엉망이 되며, 올림포스에서 항의가 들어오고.
태어난 아기에 영혼이 깃들지 않고, 죽은 자들은 아케론 강 앞에서 계속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타나토스, 죽어가는 인간들만 줄어들면 조금 편해지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올림포스와도 의논해서 전 세계적으로 쉬는 날을 정합시다. 전쟁의 신들이 전쟁을 잠시 멈추고, 그날 살인을 저지르면 저승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신탁을 내리면 어떻습니까?”
“으음… 올림포스에서 받아들일까?”
“에이레네, 평화의 여신인 너도 좀 도와줘야겠다.”
완전히 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매월 1번 정도는 가벼운 업무만 감당한다면 숨통이 트이겠지?
아케론 강의 뱃사공, 카론 영감님께서도 정말 좋아하시겠군.
“일단 올림포스에 연락을 취해보죠. 그날만큼은 거센 파도에 휘말리는 이도 적도록 포세이돈에게도 말을 전달하면…”
곧 휴식일을 만들기 위한 서신이 여기저기로 보내졌고 곧 답변이 돌아왔다.
이건 세상과 관련된 일이니 올림포스에서 만나자는 제우스의 대답이.
그렇게 올림포스로 향하는 날 응원하는 수많은 목소리들.
“하데스만 믿고 있을게요. 꼭 제우스로부터 휴식일을 받아내요!”
“자비와 공정의 신이시여…!”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에는 최악의 선택도 각오하고 있겠습니다.”
“…저승의 운명이 하데스에게 달렸군.”
그야말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절로 나올 듯한 간절한 진심이 느껴졌다.
“…협박을 해서라도 반드시 모두를 설득하겠습니다.”
여차하면 타르타로스를 열어버리겠다고 해야지.
* * *
잠시 뒤, 올림포스 신궁.
하데스가 보낸 서신에 의해 소집된 올림포스 신들.
죽은 자를 줄이는 휴일을 만들자는 안건에 대해 회의하러 온 그들은 오자마자 갑갑한 공기에 숨을 들이켰다.
“크흠…”
“어…”
이 서신을 보낸 저승의 왕, 하데스가 반드시 휴일을 만들겠다고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넓디넓은 회의장의 탁자에서 양 손으로 깍지를 낀 채 얼굴을 기댄 하데스의 눈빛은 음험하게 번뜩였다.
신력으로 압박도 하지 않았는데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저 음침함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고,
헤라의 눈총을 받은 제우스가 회의를 시작했다.
“으흠! 그럼 지금부터 저승에서 제안한 휴식일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겠소.”
“바다는 상관없다. 제우스. 그냥 큰 파도만 일으키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저승의 일이 얼마나 힘든지는 알고 있습니다. 저도 찬성입니다. 대장장이들도 그날은 쉬게 하는게…”
포세이돈과 헤파이스토스는 흔쾌히 찬성했다.
하지만 전쟁의 신은 조금 난처한 기색…
“그. 하데스 큰아버지. 하지만 전쟁을 하는 도중에 멈추는 것은 조금…”
“그럼 네가 저승에 와서 일을 도와줄테냐? 타나토스 신이 기뻐하겠군.”
“헉…! 아닙니다.”
…을표하려다가 진압되었다.
“휴식일이라면 혹시 제 축제도 그만둬야 하는지요?”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네 광기의 축제 때마다 죽은 사람들이 저승으로 온다. 카론 영감님이 이를 갈던데…”
“…신탁을 내려 휴일을 피해 조금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광기의 신, 디오니소스가 슬쩍 의견을 꺼냈다가 다시 바닥으로 눈을 깔았고.
신들의 왕인 제우스는 옆에 앉은 헤라와 의견을 나누다가 주변을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그럼. 휴일을 어느 정도나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1년에 한두 번?”
“1년에 한두 번은 절대 안된다. 신들이 저승에서 얼마나 혹사당하는지 알고 있지 않나, 제우스? 적어도 한달에 한번은 쉬어야 해.”
“하데스 큰아버지의 말씀이 맞습니다. 저번에 제가 저승에 다녀와보니 주기적인 휴식이 필요하긴 하겠더군요.”
“아테나. 그러면 너는 어느 때에 휴일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하지만 기가스를 감시하는 신들은 계속 있어야 합니다. 돌아가면서…”
“그러면 그 날은 저도 쉴 수 있는 겁니까?”
“헤르메스. 너는 전령의 본분을 다해라.”
올림포스 신궁에 모인 신들은 의견을 좁히기 위해 한참을 논의했다.
드디어 저승에 있는 신들에게 광명이 비추는 것일까?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