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17)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17화(117/140)
명계의 휴일 – (2)
세계를 아우르는 휴일을 새로 만드는 건에 대해 한참을 의논한 끝에…
나를 비롯한 신들의 의견이 좁혀졌다.
1. 휴일은 한달에 한번. 매 달의 첫째 날로 정한다.
2. 이승의 인간들에게 신탁을 내려 신들이 인정한 공식적인 휴무일로 삼는다.
3. 휴일에는 전쟁을 잠시 중단하고, 이날 전쟁을 일으킨 필멸자가 있다면 그를 벌한다.
“일단 전체적인 틀은 이 정도로 하면 되려나. 사형수들도 이때만큼은 피해서 집행하도록…”
“신탁을 내린다면 인간들도 따르겠죠. 저승에 가해지는 부담도 적어질 겁니다.”
신들이 그리 이야기하는 도중, 헤스티아가 갑자기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잠깐, 결국 휴일을 정하는 건 저승의 일이 너무 바빠서 그런 거 아니야? 올림포스에서 조금 도와주면 더 수월하지 않을까?”
“그런데 올림포스에 여력이 그리 많이 남나?”
헤스티아가 해준 말은 고맙지만, 지금의 신들도 그리 한가하지만은 않을 텐데.
내가 얼마 전에 우라노스 님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고 해서 몇몇 신들도 이 자리에 없고…
“우라노스 님을 찾는 건 헤르메스를 비롯한 몇몇 신들만으로도 충분해. 그러니 몇몇 아이들을 데려가도 상관없을거야.”
“…제우스.우라노스 님의 흔적을 찾는 신들이 너무 적지 않나…”
제우스를 돌아보자 그가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젓는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의 할아버지, 우라노스는 금방 찾을 수 있을거야.”
“단서라도 발견한 모양이네.”
“이미 오래전부터 암암리에 찾고 있었거든. 가이아와의 일전이 점점 다가오는데, 변수가 될 프로토게노이들의 소재는 파악해 둬야 하니까.”
조금 놀란 눈으로 제우스를 보았다. 아니 정말 이럴 때는 유능해지는데 왜 가끔씩…
“거기에 내 것이 아닌 천공의 신력이 남아있는 장소라면 찾기가 쉽지.친자녀인 아프로디테도 찾고 있고…”
“좋아. 그분을 찾으면 내게 말해라. 바로 설득하러 가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수색 범위가 좁혀지고 있으니 아마 한두달 정도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네.
그나마 닉스 님보다는 설득하기 쉬울 것 같지만,
프로토게노이를 설득하려면 다른 프로토게노이의 증표를 받아와야 한다니 이 무슨.
그래도 닉스 님의 깃털을 받은 내가 간다면 설득에 용이하지 않을까.
크로노스에 대한 적대감이라면 우리도 마찬가지, 거기에자식에게 낫을 주고 자신의 남성기를 자르도록 시킨 가이아에 대한 원망도 있을테니까.
“그럼 혹시 주기적으로 저승에 신들을 보내줄 수 없을까? 인간이 탄생한 뒤부터는 다들 항상 고생중이라서.”
“물론이지. 한가한 신들을 정기적으로 파견할게.”
제우스의 말을 마지막으로 올림포스의 회의가 끝났다.
그렇게 저승으로 돌아와 영혼들의 심판을 보려고 했는데,
아케론 강 앞에서 멘테가 기다리고 있더라. 뱃사공 카론 님도 노를 젓는 것을 잠시 멈추고 이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청록빛 머리칼을 가진 여신이 쪼르르 달려와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데스 님! 올림포스에 간 일은 어떻게 되었나요?”
“매월, 첫째 날마다 공식적인 휴무일로 삼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제는 올림포스에서 정기적으로 신들을 보내준다는구나.”
“만세! 하데스 님 최고예요!!!”
포옥.
말캉거리는 효과음이 몸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고, 잠시 날 껴안던 멘테가 급히 얼굴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닌데, 다른 신들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할게요!”
“…그래.”
달려나간 멘테의 뒤로, 뱃사공 카론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카론이 뱃사공 일을 맡을 때부터 이보다 더 밝은 얼굴을 한 적이 없었는데….
“하데스. 그럼 나도 매월 첫째 날은 쉴 수 있겠군. 이거 정말 고맙…”
“아, 그래도 죽는 인간은 나오기 때문에 일은 해주셔야 합니다. 평소보다는 망자의 수가 적겠지만요.”
“…빌어먹을.”
아케론 강을 통해 영혼들을 나르는 카론의 권능은 유일무이.
그 누구도 그를 대체할 수 없다. 올림포스에서 파견 온 신이나 나조차도.
* * *
올림포스의 신들이 합의한 휴일이 신탁을 통해 공표되었다.
이승의 인간들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손익을 따져보고 곧 적응해나갔다.
“매 달의 첫째 날은 휴무일이라… 사형도 금지된다고?”
“플루토 신전에서 내려온 신탁에 의하면 그날 범죄를 일으킨 자는 더욱 무겁게 죗값을 치른대.”
“다른 신전에서도 모두 같은 말씀을 하시던데, 그럼 신들께서도 쉬시는 것인가?”
“하지만 매월 첫째 날을 쉰다면 생계를 위한 일은 어떡하고?”
“그래서 의무가 아닌 권장이라고 하더군.”
새로운 휴일이 생겼거니… 하고 받아들인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신학자들과 사제들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헌데, 굳이 우리 인간들에게 휴일을 만들어주실 이유가 있나?”
“생각해보니 그렇군. 어느 신께서 탄생하신 날도 아니고, 기념일이라던가?”
“정말 신들께서도 쉬고 싶으셔서 만든 날은 아니겠지?”
“씁! 자네 그거 신성모독일세. 전능하신 신들께서는 그런 날이 아예 필요가 없으시지 않은가?”
“아니… 하지만 올림포스에서 내려다보시는 분들은 우리와 같은 인격을 지니셨으니…”
그렇다. 신들은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을 태연히 저지를 수 있지만,
필멸자와 가까우며 그 행동 양상도 변덕스러운 인격신들이라는 점.
“…그렇다면 정말로 쉬고 싶으셔서?”
“쉬는 날이라기 보다는 무언가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세상을 조율하시는 그분들도 하루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승을 둘러보시는 게 아닐까?”
“신빙성이 있는 말이군. 이승을 둘러보시는 날이라…”
그들이 내린 결론은 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휴일이라는 것.
하지만 정보가 부족해 더 이상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헌데 한 용감한 사제가 있었으니…
“지혜의 여신 아테나시여! 앎을 갈구하는 자로서 당신의 지혜를 청하나이다! 매월 첫째 날의 휴일은 어느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이승에 도는 소문처럼, 정말로 신들께서도 휴식이 필요하신 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저… 저 미친놈이!”
“신성 모독 아닌가? 신벌을 받을 것 같은데.”
“그래도 아테나 여신을 수십 년간 모신 사제가 아닌가. 조금 기다려보자고…”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한 아테나 여신의 사제가 그녀에게 지혜를 청했고,
이에 여신의 신탁이 내려왔다.
매월 첫째 날은 죽음을 멀리하는 날. 저승에 속한 신들을 위한 휴무일이기도 하다.
아테나 여신의 신탁을 들은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신학자들이 열심히 신탁을 기록하고, 여신의 사제들이 감사를 표하는 제물을 바쳤다.
“과연, 그런 것이였군. 죽음과 멀리하는 날이라!”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끝. 모든 생명이 기피하는 것이니 배려하신 걸까.”
“그런 해석도 있을 수 있겠지만 여신님의 말씀 그대로 저승에 속한 신들의 휴무일이라는 쪽이…”
“테베에 있는 저승의 신전에 타나토스 신이 있던데…”
“아! 그렇군. 영혼을 수확하는 타나토스께 바치는 날이라고 하면 앞뒤가 맞겠어!”
“하기야 그분은 매일같이 영혼을 수확하시니…”
그렇게 매월 첫째 날은… 필멸자들에게 타나토스의 날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망자를 인도하는 신에게 주어지는 휴식일이라는 의미는 그리스 전역으로 널리 퍼져나갔고,
결국 신들의 귀에도 들리기에 이른다.
* * *
오늘은 저승의 휴무일. 명목상으로는 모두를 위한 휴식의 날이다.
하지만 이런 날에도 쉬지 못하는 신들이 있었으니, 바로 주신 하데스와 뱃사공 카론 그리고…
“크.. 크흐흡! 타나토스! 오늘은 자네의 날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지금도 일하고 있지?”
“…닥쳐라 휘프노스. 네놈도 곧 일할 거면서…”
“나는 누구랑은 달리 밤에만 조금 바쁘다네! 낮에는 조금 한가한 면이 있지.”
자연사한 인간들을 명계로 데려오는 타나토스였다.
그런 그를 열심히 놀리는 휘프노스 신. 아니, 저러다가 또 타나토스가 도망치면 어쩌려고 그러나.
잠의 신을 바라보며 눈치를 주자 그가 어깨를 으쓱이더니 웃음을 터뜨리며 물러간다.
“필멸자들은 참 기특하게도 주로 밤에만 잠을 잔단 말이야. 으하하하!”
“후우… 하데스. 나는 그렇다치고, 올림포스에서 신들이 올 때가 되었지 않나?”
“예. 오늘이면 새로운 신들이 저승으로 올 차례입니다.”
저번에 제우스와 약속한대로 올림포스에서는 주기적으로 신들을 보내주고 있었다.
오늘이 누가 올 차례지. 히메로스? 안테로스? 아니면 여신으로 승격한 디오니소스의 어머니인 세멜레?
그런데 뜻밖의 신이 저승으로 왔다.
“설득의 여신, 페이토(Peitho)? 네가 저승에 왔다고? 그렇다면…”
“예. 제우스 님께서 우라노스의 흔적을 찾았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하데스 님을 따라가라고 명하셨고요.”
“벌써 우라노스 님을 발견했구나. 그분은 어디에 계시지?”
“저 하늘에 있는 독수리자리의 발 부근에 은거해 계십니다.”
하늘의 별자리에 은거하고 계시니 여태까지 찾지 못했구나.
그나저나 독수리자리라면… 제우스가 총애하는 가니메데스를 데려온 독수리의 공로를 기리는 것이었던가.
무슨 그런 이유로 별자리로 만들어 주는지 원.
“페이토. 너는 올림포스로 돌아가서 제우스에게 전해라. 우라노스 님이 설득의 권능을 껄끄러워 하시거나 불쾌하게 여기실 가능성이 있다고.”
“네에? 하지만…”
“그분을 설득하는 일은 나 혼자서 하겠다.”
이참에 우라노스 님의 비호도 받을 수 있다면 좋겠군.
그럼 전혀 가이아가 두렵지 않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