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19)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19화(119/140)
헤라클레스의 과업
올림포스에 상황을 알린 다음, 곧장 저승에 내려와 타르타로스로 향했다.
타르타로스 근처로 가까이 다가가자… 저번처럼 검은 어둠이 내려앉더니 닉스 님께서 나타나셨다.
“어서 오렴. 우라노스의 증표는 가져왔니?”
“예. 그분께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떼어주셨습니다.”
이전과 같이 아름다운 밤하늘과 같은 얼굴을 보며 품에서 은빛의 실을 꺼내들었다.
스윽
“짙은 하늘의 냄새가 나는 것을 보아하니 우라노스의 머리칼이 맞구나.”
“그럼 이제 저희를 도와주시는 겁니까?”
내 질문에 밤의 여신이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며 화답한다.
“후후… 그런데 용케 멀쩡하구나? 우라노스의 성격에 다짜고짜 주먹부터 휘두를 줄 알았는데…”
“하늘이 일순간 저를 적대하더군요. 그래도 저를 봐주셔서 무사히 시험에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닉스 님을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느끼게 해주는 광경.
별과 별 사이의 바람으로 폭풍을 만드는 것은 제우스도 할 수 있다. 그 정도 위력의 공격은 나나 포세이돈도 가능하다.
하지만 장난치듯이 가벼운 손짓으로 그런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오직 프로토게노이들 뿐.
아무리 인간들이 올림포스 신인 우리를 절대자라고 칭송해도, 이 세상에 진정한 절대자는 오직 태초신 카오스 님 뿐이다.
그분과 제일 가까운 혈통이 가이아와 같은 프로토게노이들이니 그 권능의 막강함이야 당연하겠지.
“흐응… 내가 말한대로 우라노스의 징표를 가져왔으니 약속을 지켜야겠지.”
“…!”
“만약 너희가 기가스라는 아이들을 이겨도 가이아가 나타난다면, 그때는 도와주겠다. 다만…”
잠시 말꼬리를 흐리는 밤의 여신.
주변에 드리운 어둠이 더욱 진해지는가 싶더니 사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기가스라는 것들에게 밀려 패배할 때 내 도움을 구한다면, 가이아가 아닌 내가 너희를 벌하겠다.”
“…명심하겠습니다.”
짙게 드리운 어둠이 닉스 님의 말을 마지막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밤의 여신 님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는 내 입가는 분명.
회심의 미소를 띠고 있겠지.
* * *
전 세계적인 휴일, 이승의 인간들이 일컬기로 ‘타나토스의 날’
매 달마다 한번. 죽음을 멀리하고 휴식을 즐기는 날이 저승에 미친 영향은 제법 막대했다.
세상 곳곳에 세워진 온갖 신전에서 그날을 정식 휴일로 지정한다는 신탁.
단 하루만큼은 사형이 금지되고, 분쟁도 권장되지 않는 날.
전쟁의 신들도 잠시 무기를 내려놓았고 평화의 여신이 힘을 발했다.
당연히 지하 세계로 오는 망자들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으며…
그에 따라 저승답지 않게 화목한 분위기가 널리 퍼져나갔다.
“…일이 이렇게 빨리 끝날 리가 있나?”
“제아무리 신탁을 내린지 첫번째 휴일이라고 해도 죽은 자들이 이렇게나 줄어들다니.”
“역시 타나토스의 날이라고 인간들이 죽음을 피하는 게 아닐까요?”
전체적으로 여가 시간이 훨씬 늘어나 평화로운 기분이 들 정도.
이날은 신들조차도 조금 자제하고 하루를 즐기기 때문에 신벌로 죽은 인간들도 거의 없었다.
헤르메스가 전해준 소식에 의하면,
평화의 여신 에이레네가 내게 무척 감사하고 있다고.
“다만 저도 조금 쉬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큰아버지…”
“…이리스와 너는 여전히 고생이구나.”
“카론 님이나 타나토스 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저도 나름 고생하고 있는데…”
물론여전히 쉬지 못하는 헤르메스나 카론, 타나토스 같은 몇몇 신들은 예외였다.
그나마 일이 조금 줄어들어서 편해졌다고 해야하나?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일이 조금 줄어들었지… 완전히 쉴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이게 어디냐. 예전 같았으면 한 달에 한 번은 고사하고 매일같이 대기 상태였다.
연회 도중에도 이승에 갑자기 전쟁이라도 터질까 봐 걱정하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전염병이라도 한번 돌면 모두가 질병과 의학의 신인 아폴론을 욕했지.
아무튼. 지금은 여유가 넘친다. 그 말인즉슨…
츄릅.. 우움..
“…조금 쉬시죠. 스틱스.”
나도 여신들과 나름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잔업도 다 끝났겠다. 옥좌에서 눈을 감고 있는 내게 넥타르를 들고 와 분위기를 잡으시던 스틱스 여신님이 냅다 입술 박치기를 해오셨을 때는 당황했지만, 다행히 신의 반응속도로 빠르게 호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달콤한 시간이 끝나고… 끝나야 했는데. 내 무릎 위에서 내려오시지를 않는다.
가슴팍에 살포시 닿은 손과 요염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 뒤이어 달라붙는 풍만하고 부드러운 감촉.
점점 달아오르는 분위기에 취기마저 느껴지던 그때… 내 귀에 들리는 여신의 말.
“하데스. 저…”
“…?”
“그 다음… 네? 계속… 해도 되죠? 오늘은 시간도…”
뭐요? 뭘… 계속한다고?
잠시 떨리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허락의 의미로 알아들은 것인지 아래로 뻗어오는 손이…
“하데스 님, 현자 케이론 님으로부터 정기 보고입니다. 헤라클레스가 이승으로… 어엇…!”
“아.”
* * *
“왜.. 왜 하필 그때! 이이익… 분위기 다 깨졌잖아요!”
“헤라클레스에 대한 소식은 정기 보고여서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한눈에 알현실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대로 머리를 박은 전령에게 신벌을 내리겠다고 씩씩대던 스틱스 강의 여신을 겨우 말렸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도 모자라 눈가에는 작게 눈물도 맺혀 있네.
그녀의 꽉 쥔 주먹이 부르르 떨린다. 입술을 그렇게 깨무시면 피 납니다…
스윽.
거친 손을 내밀어 조심스럽게 눈가에 맺힌 구슬을 닦아냈다.
그러자 잠시 입을 내밀고 한숨을 쉬던 여신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데… 또 키스인가?
아까 했던 입술 박치기가 다시 재현되는 줄 알고 움찔거렸지만, 그녀의 입술은 내 귓가로 향해 감미로운 미성을 속삭였다.
“다음에 계속 이어서 해요. 알겠죠?”
“…네. 그러시죠.”
차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작게 토라진 여신이 성채 밖으로 나가고, 방금 영겁토록 고통받을 뻔한 전령의 보고를 되짚어보았다.
헤라클레스가 이승으로 나갔다는 이야기는 메가이라 여신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말.
복수의 여신에게 이길 수는 없어도 나름 한 방을 먹인 것인가?
곧바로 케이론의 영웅 훈련소로 향하자, 깊게 파인 협곡의 구덩이가 보였다.
거인의 주먹이 내리꽂힌 것과 같은 크기. 도저히 인간의 힘이 일으킨 결과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파괴흔.
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메가이라 여신님.
오랜만에 보는 뱀 머리카락들이 쉭쉭거리며 내게 인사했다.
“과연, 저 구덩이는 헤라클레스가 만든 것입니까?”
“응…”
잠시 복수의 여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헤라클레스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무작정 힘으로 밀어붙이더니, 나랑 대련하지 않을 때에는 케이론하고 항상 붙어 있더라…”
“힘으로 여신님을 이길 수 없으니, 기술이라는 것을 배웠군요.”
“재능이 엄청났어. 왜 하데스가 스틱스 강에 그를 빠뜨렸는지 알겠…”
물론 최근까지도 복수의 여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그녀가 중간중간 던지는 공격에 버티는 시간이 늘어갔다고 한다.
스틱스 강의 힘에 의해 강화된 피부로 맞고 버티는 것이 아닌, 공격을 흘려내고 기술로 받아냈다고.
“일단 헤라의 신전에 찾아갈 그를 지켜볼 생각인데, 함께 보시겠습니까.”
“헤라가 신벌, 안 내리겠지?”
“…아마도요.”
그렇게 일렀으니, 설마 죽이지는 않겠지?
* * *
이승. 테베로 나온 헤라클레스는 맑은 공기를 들이켰다.
여태까지 저승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수많은 친우도 만났고, 현자 케이론을 스승으로 섬겼고,
그 대단한 저승의 주인과도 이야기를 나눠봤으며, 복수의 여신 중 하나와도 대련했었지.
“후우…”
그렇게 수많은 고난을 거쳐온 헤라클레스였지만, 앞으로 찾아올 헤라의 신벌은 조금 두려웠다.
하데스 님의 말대로 헤라 님의 신전에 가서 용서를 빌어야 하는데…
메가이라 여신과의 싸움에서 느낀 신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
강의 신이나 숲의 신도 아니라 복수의 세 여신 중 하나. 그럼 신들의 여왕이라 불리는 헤라 님의 힘은 얼마나 강할 것인가?
하지만 그분이 내려주실 과업은신이 되려는 그의 여정에 있어서큰 도움이 되겠지.
그렇게 단단히 각오를 마치고 헤라의 신전에 도착한 헤라클레스였다.
일단 신전 안으로 들어간 다음, 여신의 신상 앞에서 용서를 구하려는 그였는데…
“나는 헤라클레스라고 하고, 여신께 용서를 구하러 테베에서 왔습니다.”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그쪽은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아니. 나는 왜 못 들어간다는 말입니까?”
“당신을 절대로 들여보내지 말라는 헤라 님의 신탁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를 눈치챈 헤라의 신탁에 의해 신전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이 막혀버렸다.
그의 앞을 가로막은 완고한 저 사제의 눈빛을 보아하니 정말 신탁인가?
“그럼 내가 신전 밖에서 죄를 청하는 것도 막으라고 하셨습니까?”
“…그건 별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사제의 말을 들은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신전 앞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대로 엎드렸다.
마치 헤라의 신전에 용서를 구하는 모양새였기에 사제도 별 말을 하지 않았고…
그로부터 4주, 헤라클레스는 심각한 위기를 느꼈다.
신과 비견될 정도의 단련된 육체와 스틱스 강으로 담금질된 피부를 가진 그였지만…
후두둑. 투욱. 찍ㅡ
“크으…! 냄새! 저게 뭐야 대체?!”
“냅둬.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고 헤라 님께 참회하는 죄인이잖아. 벌써 4주째라고.”
“그럼 저건 뭔데? 주변의 새들이고 짐승들이고 죄다 저기에 배설물을 싸지르고 가잖아!”
“쉿! 쉿! 저게 아마 신벌인가 봐.”
“으으… 냄새. 신전 안에서까지 역겨운 냄새가 나는데 이거 맞아?!”
“헤라 님께 저 죄인이 죄를 뉘우친 것 같다고 기도를 올려야겠어. 냄새 때문에 도저히…”
“아니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후각은 전혀 단련하지 않았기에.
‘이런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