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21)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21화(121/140)
첫 번째 과업 – 네메아의 사자 무리 (2)
네메아의 사자.
티폰과 에키드나 사이의 자식이며, 형제인 오르토스나 히드라와 같은 반신의 격을 갖추었다.
네메아의 골짜기에 살며 사람들과 동물들을 닥치는대로 물어죽인다는 괴물.
“네메아의 사자 무리라니요? 조금만 더 설명해주시죠.저는 테베의 영웅 훈련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지라 세상 물정에 능통하지 않습니다.”
“아… 네메아의 사자는 원래 티폰의 자식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대지모신 가이아가 조용했던 이유 중 하나.
기가스들의 본거지가 있는 플레스라 들판. 그곳이 신들의 삼엄한 감시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면…
원래부터 강력했던 괴물들을 양산하거나 강하게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올림포스를 혼자서 이길 뻔한 티폰의 자식이라면 더더욱.
그리하여 네메아의 사자는 가이아의 조력을 받아 번식에 성공했다.
“얼마 전에 그 괴물을 따르는 수십 마리의 사자들이 나타나 마을 하나를 초토화시켰습니다.”
“…수십 마리?”
“자세한 사정은 저보단 그곳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더 자세하게 알겠지요.”
헤라클레스는 몸을 풀며 신전에서 나왔다.
첫 과업부터 수십 마리라니,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너무 많은 것이 아닌가?
그는 네메아로 향하기 전에 우선 준비를 단단히 하였다.
대장간에서 수십의 사자 무리를 상대할 창과 화살을 챙기고. 올리브 나무로 만든 묵직한 몽둥이 하나를 들어보다가…
“혹시 강철로 만든 몽둥이도 있소?”
“…? 그런 걸 만들어준다고 그쪽이 들고 다닐 수야 있나?”
“돈은 넉넉히 줄테니 만들어주시오. 오늘부터 시작하면 언제쯤 완성되오?”
“나는 헤파이스토스 님의 가호를 받았으니 금방 만들 수 있네.”
결국 대장장이에게 주문한 쇠몽둥이 하나를 어깨에 들쳐매고 네메아 지방으로 떠났다.
네메아 지방에서도 그리 쓸만한 정보는 없었다.
기껏해야 한 청년으로부터 들리는 소문을 주워들었을 뿐.
“다른 사자들에 비해 몇 배는 커다란 덩치를 하고 있고, 붉은 눈동자가 돋보이는 놈이 바로…”
“그렇다니까? 그놈이 바로 네메아의 사자지. 사자가 아니라 무슨 늑대 무리를 보는 것처럼 놈을 따라다니는…”
“그래서 그 놈들이 어디에 있는데?”
“걸어서 나흘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소름끼치는 협곡에서 살고 있어, 들리는 말로는 사람의 시체와 비로 뒤섞인 공간이라는데. 으으…! 그 끔찍한 놈들에 대해서는 왜 물어보는 거야?”
헤라클레스는 그 남성에게서 더 얻을 정보가 없자 곧장 협곡으로 움직였다.
* * *
“…음.”
입구부터 짙은 피비린내가 감돌고, 주변에 생명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불길한 분위기.
협곡은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도 거의 없어서 황량한 사막과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각종 무기를 짊어지고 협곡 안으로 들어가던 헤라클레스의 앞에 괴물 사자들이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냄새라도 맡은 듯, 점점 더 모여드는 식인 사자 무리.
보통의 괴물들이 아니다. 그들은 반신이자 티폰의 자식인 네메아의 사자의 피를 이어받은 것들.
발톱은 명검보다도 날카로웠고, 가죽은 통상적인 괴물들보다 훨씬 두터웠다.
스윽.
영웅은 조용히 등에서 창과 몽둥이를 꺼내들었다. 왼손에는 장창, 오른손에는 쇠몽둥이.
켄타우로스 현자 케이론에게 배운 무기술은 절세의 기술이자 뛰어난 기교. 하지만 이런 것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푸욱. 크헝-
그저 휘두르고, 찌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제일 먼저 입맛을 다시며 다가온 사자 하나의 머리가 창에 꿰였다.
내지른 창을 회수할 시간을 주지 않고 달려드는 괴물들이었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그의 쇠몽둥이 찜질에 당해야만 했다.
두 마리, 세 마리… 다섯 마리째…
점차 모여드는 사자 괴물들이 하나하나 그의 손에 쓰러져나갔다.
헤라클레스의 가죽 튜닉이 점차 붉은 물감으로 물들고, 괴물들은 마치 야차같은 그의 모습에도 전혀 두려움 없이 달려들었다.
크허어엉- 커엉! 촤악-
허나 두툼한 가죽은 헤라클레스의 힘 앞에서 닥치는 대로 찢겨나갔으며,
자랑하던 발톱과 이빨은 스틱스 강의 힘을 받은 피부에 생채기도 내지 못했다.
“후… 제법 귀찮네.”
수십의 괴물들과 인간 하나의 싸움은 일방적인 학살로 끝이 났다.
창을 크게 휘둘러 묻은 피를 털어내는 헤라클레스의 눈에 보이는 건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들의 시체.
크르르…
그리고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엄청나게 비대한 덩치를 지닌 사자 하나.
흉흉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 다른 사자들과 달리 윤기가 흐르는 황금의 갈기, 창날보다 날카로운 발톱…
“네가 우두머리 괴물… 아니지, 네메아의 사자냐?”
크허엉!!!
헤라클레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달려든 티폰의 자식.
그러나 영웅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달려오는 사자의 입 안에 쇠몽둥이를 처박았다.
커허ㅡ!!!
여태까지 이 수많은 사자들을 일일이 죽이느라 얼마나 귀찮았던가.
우두머리 놈이 알아서 나와줘서 다행이었지, 만약 도망갔으면 한참을 찾아다닐 뻔 했다.
“하ㅡ아압!!!”
번쩍-
쇠몽둥이를 씹지 못해 허우적대는 사자를 냅다 들어 올리는 헤라클레스.
수십 마리의 괴물들을 죽여가며 느낀 점은… 다들 가죽이 상당히 단단하다는 것.
헤라클레스 자신의 힘이었기에 일격에 뚫어버렸지, 저승에서 함께 훈련하던 영웅 대부분은 제법 고전할 만한 강도였다.
괴물의 피는 윗 세대로 올라갈수록 짙어지고 강해지는 특성을 지녔다.
이 괴물들의 원본이 되는 네메아의 사자는 또 얼마나 견고한 가죽을 가지고 있을까?
설마 내 힘으로도 뚫어버리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겠지?
아니, 말도 안되는 소리.
이 헤라클레스의 힘이 통하지 않는 자들은 신뿐이다!
그렇게 들어올린 괴물을 머리부터 땅에 힘껏 내리꽂는 힘의 영웅.
네메아의 사자는 졸지에 거센 충격을 받고 울부짖었다.
커흐어엉!!!!
* * *
영웅과 괴물은 그로부터 몇 시간을 더 싸웠다.
네메아의 사자는 영웅의 피부에 상처를 낼 수 없었지만, 역으로 헤라클레스 역시 괴물의 가죽을 뚫고 충격을 주기 힘들었기에.
쿠구궁! 콰앙!
미칠듯이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그들의 싸움에 협곡의 지형이 붕괴한다.
거대한 바위가 부서지고 파편이 마구 흩날리는 와중, 헤라클레스는 생각했다.
‘이놈은 가죽만 단단한 것 같은데, 그냥 목을 졸라 질식시킬까? 아니면 물에 빠뜨려? 창에 달군 납덩이를 매달아 아가리에 박아넣어도…’
네메아의 사자를 쉽게 죽일 방법이 수도 없이 떠올랐다.
복수의 여신인 메가이라와 싸웠던 경험, 카드모스를 비롯한 수많은 영웅들과 대련하며 배운 전투술.
저승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영웅은 유연한 태도야말로 전투에서 승리하는 법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승의 주인에게서 들은 말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
인간의 수준에서야 절대로 상처입힐 수 없는 무적의 몸이겠지만,
신의 영역이라면 조금 다르지. 네 목표는 신이 되는 것. 아니냐?”
스틱스 강으로 강화된 피부도 신의 영역에서는 아무것도 아닌데, 그가 놈의 목을 졸라 죽인다면…
저 사자 가죽의 단단함을 인정하고 정면으로 맞서는 것을 포기하는 것 같았기에.
‘…절대 그럴 수는 없어! 나는 신이 될 몸인데, 저따위 놈의 가죽도 뚫어버리지 못해 편법 따위를 쓸 수는 없다!’
그는 두터운 사자 가죽을 두들기고 또 두들겼다.
제아무리 단단한 가죽이라도 스틱스 강에 빠진 그의 피부보다 단단하지는 않겠지.
뚫어내기 어렵다면… 뚫릴 때까지 두들길 뿐이다.
내 신체와 이 괴물 놈의 몸뚱아리 중 어느 쪽이 더 견고할지 겨뤄보자고!
“뒈ㅡ 져라아아!!!”
크허어엉! 크허엉!!!
헤라클레스는 어느새 무기도 모두 내려놓고 맨주먹으로 괴물과 치고박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 역시 괴물에 못지않은 흉흉함이 묻어났고, 전투 방식은 점점 더 원초적으로 변해갔다.
이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발악이였으며, 신이 되기 위한 고행이자 도전.
영웅, 아니 신에 도전하는 자는 냅다 사자의 멱살을 잡고 머리를 마구 부딪혔다. 한번, 두번, 세번.
그 다음은 주먹질. 단련된 근육이 거칠게 꿈틀거리며 콧잔등을 사정없이 가격하고…
퍼억. 퍽. 크ㅡ허어엉!!!
고통에 발버둥치는 사자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내며 쉴새없이 이어지는 연격.
힘이 빠지기는커녕 점차 강해지는 주먹질에 결국 사자 가죽이 항복을 선언했다.
퍼억. 퍽. 으직.
영웅의 힘을 견디지 못한 콧잔등이 뭉게지는 소리.
네메아의 사자는 두려움에 떨며 울부짖고, 헤라클레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곳을 집중적으로 가격했다.
결국…
크ㅡ커흐어어- 엉!!!
쿠웅!
식인 괴물의 거구가 땅바닥에 힘을 잃고 쓰러지며 영웅의 승리를 알렸다.
네메아의 사자는 콧잔등을 비롯한 얼굴이 모조리 뭉게진 채로 죽음을 맞이했지만…
헤라클레스는 조금 지쳤을 뿐, 몸에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캬악. 퉤!”
어지간한 영웅이라면 이 위업 하나만으로도 칭송받으며 대영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주먹에 묻은 붉은 피를 털어내며 사자 시체를 어깨에 둘러매는 그는, 분명 대영웅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신의 자리에 도전하는 이.
< 머리가 모자라면 몸이 고생한다. >
이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퍼뜨린 세상의 이치 중 하나.
“흠. 며칠 더 싸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싱거운 놈이었군.”
하지만 몸이 헤라클레스면, 머리가 고생할 필요가 없다.
수많은 악명을 떨친 네메아의 사자 무리.
헤라클레스에게 단 하루 만에 소탕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