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26)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26화(126/140)
저승의 안주인을 노리는 자 – (2)
“이런 미친놈을 보았나!”
“아니, 자네 미쳤나? 왜 칼을 뽑고 그러나!”
테세우스는 도저히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은 이런 정신나간 놈과 여태까지 친우였던 것인가?
뭐? 플루토 신을 속인 다음에 페르세포네 여신을 데려와 강제로 관계를 맺겠다고?
디오니소스의 광기에 잠식되기라도 한 것인가. 대체 어떻게 이런 미친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아니, 애초에…
“내가 플루토 신 덕분에 아리아드네를 지킬 수 있었는데, 네놈의 헛소리를 두고 볼 것 같았더냐!”
“하아?! 그건 결국 정의의 여신 덕분이지. 저승의 신이 자네에게 신경이라도 쓸 것 같나?”
“이런 답답한 놈이! 디케 님이 어떻게 12주신을 내쫒을 수 있다는 말이냐! 당연히 저승의 신께서 뒷배가 되어주셨으니 가능한 일이지!”
테세우스는 억지로 화를 억누르며 다시 칼을 집어넣었다.
제아무리페이리토스가 그가 모시는 신들을 모독했다고 해도, 테살리아의 왕인 그를 죽일 수는 없었다.
“아무튼 나는 절대 도와줄 수 없으니까 네놈 알아서 해라! 이제 나한테 연락하지도 말고!”
“하. 그래, 너 같은 겁쟁이가 내 친우였다니. 에잉…”
“…이승에 강림한 디오니소스 같은 놈!”
이마에 힘줄이 가득 돋은 테세우스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도시, 아테네로 돌아갔다.
곧바로 플루토의 신상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지혜의 영웅.
‘저승의 주인이시여, 테살리아의 왕이 미친 짓을 꾸미고 있습니다!’
* * *
당연하게도 그 기도는 저승에 있는 내 귀에도 들려왔다.
신도가 적은 아테네에서, 그것도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영웅이자 왕이 올리는 기도.
디케에게서 보고를 받아 그가 디오니소스와 얽힌 일화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신상도 세워주고, 신앙심도 굳건했기에 부의 축복을 몇번 내려줬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승의 주인이시여, 테살리아의 왕이 미친 짓을 꾸미고 있습니다! 페이리토스라는 자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테세우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의 친우인, 아니 친우였던 페이리토스가 나를 속이고 내 아내인 페르세포네를 빼앗으려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를 빼앗으려 하는 것과 뭐가 다르지? 아… 생각해보니 그런 미친 인간이 있었군.
익시온이라고, 타르타로스에서 고통받는 놈이 하나 있었지.
그렇다면 정말로 페르세포네를 노리는 걸 수도 있겠군.
하지만… 인간의 왕이라는 직책을 믿고 그러는 거라고 해도, 도저히 말이 안 되는데?
수만의 군대가 나서도 봄의 여신의 손짓 몇 번이면 꽃가루로 변해 흩날리겠지.
테세우스의 말이 정말이라면 알아서 저승에 찾아올테니 조금 기다려 봐야하나.
기억의 여신님에게 부탁해 심문을 맡기면 되겠지.
그나저나 페르세포네가 내 총애를 받는다고 널리 알려졌는데도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만약 그녀가 저승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이를 세 명 정도 낳지 않았을…
“하데스 님! 뭐하고 계셨어요?!”
“…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잘 왔구나.”
마침 페르세포네가 알현실로 종종거리며 다가왔다. 저 찰랑거리는 금발은 언제나 윤기가 가득하네.
옆에는 멘테도 부스스한 눈으로 함께하고 있고…
일단 축 처지는 눈초리로 앵겨붙길래 안아줬는데, 멘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심상치가 않았다.
“너무 피곤해요. 저 좀 도와주세요오…”
“…?”
“하아아… 하데스님이 제 몸에 점점 스며들어요… 더… 더…”
멘테는 정말 독특한 성격이란 말이지. 님프 출신이라서 그런가?
그래도 아직 혼인도 하지 않았는데…
“스으읍…”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숨을 쉬는 것은 조금 부담스러운데.
아찔한 민트 향이 내 코끝을 찌른다.
몸에 닿는 감촉 때문일까. 무언가 야시시한 분위기가 감돌고,이를 지켜보던 페르세포네가 입을 내밀고 이쪽을 흘겨본다.
“우… 너무 멘테만 예뻐하지 마시고, 저도 봐주세요. 제 생각 하고 있으셨다면서요!”
“아아. 그랬지. 방금 테세우스라는 인간이 말하길…”
방금 들었던, 너무나도 허황된 소리를 들려주자 그녀의 표정이 점점 멍하니 변해간다.
하기야 여신을 납치해 아내로 삼는다는 발상을 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아드득… 감히 필멸자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그 인간은 제가 알아서 할께요.”
“아니 잠깐, 네 분노는 이해하지만 조금 진정해라.”
페르세포네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이대로 그녀를 놔두면 테살리아에 저주라도 내릴 것 같은 느낌.
“아니, 어떻게 진정해요! 하데스 님은 제가 그 인간에게 가도 괜찮으신… 흡!”
알현실을 나가려는 페르세포네.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페르세포네를 껴안았다.
“코레, 내가 너를 아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냐?”
“으… 헤… 아니 그게.. 아니라…”
다행히도 효과가 꽤 좋았는지 헤벌레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금발의 여신.
달아오른 얼굴로 내 옷자락을 잡는 그녀를 보며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먼저 내게 다가왔지 않았느냐, 이제는 도망치고 싶다고 해도 늦었다. 설령 제우스가 나와 전쟁하겠다고 해도 널 놓아주지는 않아.”
“아니… 하데스 님이 먼저 제 마음을 훔치신 게…”
“그 인간이 정말로 널 탐한다면 마땅히 신벌을 내릴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네.. 네에… 알았어요! 하지만 그 인간이 온다면 신벌은 저한테 맡겨주세요!”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내 가슴팍을 밀어내더니 후다닥 나가는 그녀.
어쩐지 익숙한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마치 실연이라도 당한 듯, 나를 애처롭게 올려다보는민트의 여신.
“하데스 님… 저… 저도…”
쓴웃음을 지으며 멘테의 허리를 부드럽게 잡았다.
몸이 세 개라도 모자라겠어.
* * *
역시나, 테세우스의 기도가 맞았던 것인지…
대략 일주일정도 기다리자 뱃사공 카론의 서신을 가지고 온 전령이 도착했다.
“하데스. 나 카론일세. 자기가 무슨 왕이니 뭐니 하는 인간이 아케론 강에서 들여보내달라고 난리를 피우더군. 일단…”
자기가 뭔 테살리아의 왕이라는 미친 인간이 나를 만나고 싶다고 난동을 부린다?
테세우스의 기도에서 들은 페이리토스라는 인간이 틀림없다.
저승의 입구는 용케도 찾았네. 이승에서의 신분이 왕이기도 하니, 수소문을 한 건가?
이곳 근처에 사는 님프들이라면 알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역시 그의 목적은 페르세포네일까.
“아케론 강을 소란스럽게 하는 인간을 데려와라.”
살아 있는 인간은 아케론 강을 통과할 수 없지만,
곧 죽을 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느긋하게 민트 차를 마시며 기다리자 널부러진 인간 하나를 망자들이 끌고 오는 것이 보였다.
인간 기준으로 30~40대 정도 되어보이는 외모의 기절한 남성.
망자들이 그의 뺨을 때려 강제로 깨웠다.
“으음… 헉!”
“네가 아케론 강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놈이냐?”
그는 잠시 상황을 파악하는 듯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다가 옥좌에 앉은 날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눈빛에 아쉬움이 스쳐가던데, 페르세포네를 찾은 건가?
“안녕하십니까, 하데스 님! 저는 테살리아의 왕인 페이리토스라고 합니다!”
“…저승에는 왜 왔지? 어차피 나중에 올 텐데, 미리 구경이라도 하고 싶었나?”
“그것이. 실은 테살리아에서 벌어지는 성대한 축제가 있습니다. 그곳에 아름다움으로 명성이 자자한 저승의 안주인을 초대하고…”
진짜 테세우스의 말이 맞았군. 단단히 미친놈이잖아.
이걸 어떻게 처리한다… 그냥 케르베로스의 먹이로 줘 버릴까.
그래도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확인해야지.
미리 불러놓은 기억의 여신님이 무릎 꿇은 페이리토스에게 다가간다.
“그래? 므네모시네 여신님, 이자의 말이 맞는지 확인해주십시오.”
“네에. 알겠어요.”
“…? 므네모시네라면 기억의…!”
페이리토스가 다급히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막았다.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기억의 여신.
“하아… 당신이 짐작했던 바가 맞네요. 하데스. 무슨 이런 인간이…”
“역시 그렇습니까.”
나는 점차 공포로 물들어가는 인간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디오니소스나 가이아의 광기도 아니고, 하나의 도시 국가를 다스리는 자가 이 모양이라니.
제우스 흉내를 내다가 타르타로스에서 고통받는 살모네우스랑 다를 바가 없군.
“네 친우였던 테세우스가 이미 모든 것을 내게 고했고, 방금 기억의 여신님께서 그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인하셨다.”
“……!”
“저승에 찾아와 나를 속이려 한 죄,여신을 강제로 범하려 한 죄,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소중한 친우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은 죄까지.”
친우였던 테세우스가 그렇게 말렸으나, 이자는 끝내 죽음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조금만 생각해도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을. 야망과 탐욕에 눈이 멀어버린 것이겠지.
“페르세포네, 이제 들어와도 좋다. 약속한 대로 이 인간의 처벌은 네가 알아서 해라.”
그렇게 페르세포네를 보고 싶다니 데려와 줘야겠지.
봄의 여신의 신벌로 끝나는 목숨이라…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황금빛 머리칼의 여신이 들어왔다.
오늘도 아름다운 봄의 여신이 눈앞의 페이리토스를 잠시 노려보다가 싸늘하게 웃었다.
“그.. 그것이…”
“내 미모에 반해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고? 그 과분한 꿈을 영원히 꾸게 해주마.”
파스스ㅡ
무릎 꿇은 인간, 페이리토스의 몸에서 분홍색 꽃잎이 돋아난다. 손으로 털어내고, 떼어보려고 했지만 헛수고.
이미 꽃은 그의 몸이었다. 아니, 그의 몸이 꽃인 것인가?
“으… 으아아!”
이미 움직이지 않는 다리는 아름다운 꽃으로 화했다. 배, 가슴, 팔… 사람의 형체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잠시 후, 그곳에는 아름답게 피어난 분홍색의 진달래꽃만이 존재했다.
“…이거 저승의 입구에 심어버려도 되나요?”
“네가 알아서 처분해도 좋다.”
페르세포네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꽃을 들고 나갔다.
봄에만 피는 진달래꽃이 되어 죽는 것이 너무 약한 처벌이지 않을까 싶지만, 내 눈에는 보였다.
지금 저 상태에서 꽃잎이 뜯긴다던가 하면 페이리토스 역시 고통받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대체 무슨 배짱으로 저승까지 온 것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군.
아닌가? 죽음의 신을 제압하려던 시시포스나, 자기 아들을 제우스에게 먹이려던 탄탈로스를 생각해보면 종종 그런 인간들이 나오는 것 같기도…
잠시 생각하며 책상 위에 잡히는 물건을 만지작거렸다.
“하데스. 그런데 그 반지는 무엇인가요?”
“예? 아…”
므네모시네 여신님이 내 손에서 굴러가는 반지를 보고 질문하셨다.
저번에 아레스와 포세이돈의 다툼에서 재판을 맡아주는 대가로, 제우스에게 받은 젊음의 반지.
하르모니아의 목걸이와 같은 효과를 지닌 신의 물건인데…
“제우스에게 받은 젊음의 반지입니다.”
“재판을 도와주고 받은 물건을 말하는 거군요. 마음에 품은 여신에게 주면서 청혼이라도 할 생각인가요?”
“…청혼용으로 적절하긴 하겠군요. 반지 자체의 아름다움도 뛰어나고, 권능도 담긴 뛰어난 물건이니.”
“그래요? 호호…”
내 말을 듣고 무언가 음흉하게 웃으시는 므네모시네 여신님.
어쩐지 불안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