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28)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28화(128/140)
네번째 과업 – 트리톤의 소라 (1)
헤라클레스는 방금 들어온 왕자가 님프의 자식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훤칠한 얼굴과 고운 피부는 신이나 요정의 핏줄이 섞이지 않으면 거의 나타나기 힘든 것이었기에.
연회장에 부르지 않았다는 왕의 이야기도 신빙성을 더했다.
왕의 후계자는 저기 한쪽에서 술을 마시고 있으니, 분명 첩인 님프의 자식이겠지.
“안녕하십니까 헤라클레스 님! 저는 힐라스라고 합니다!”
“힐라스…?”
“예. 제 나이가 한참 어리니 부디 편하게 불러주십시오!”
왕이 그를 왜 부르지 않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동경하는 눈빛. 호기심 어린 질문들. 서슴없이 걸어오는 말.
세상물정을 모르고 영웅을 동경하는 젊은이가 분명했기에
혹시라도 영웅에게 실례가 될까 봐 부르지 않았던 것이겠지.
“라미아? 듣던대로 손톱이 제법 날카로웠긴 했지.”
“오오… 과연.”
테이오다마스 왕은 힐라스를 내치려다가, 그와 대화하는 헤라클레스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헤라클레스가 힐라스와 친분을 쌓으면 왕국에 영입하기도 수월할테니.
그렇게 헤라클레스는 본인이 주인공인 연회에서 적당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대영웅의 육체는 술을 아무리 마셔도 잘 취하지 않았지만, 분위기에 취한다는 말도 있었기에.
“이제 연회가 끝난 것 같으니, 메노디케를 소개해주겠소. 힐라스! 이 영웅을 네 어머니께 모셔라.”
“어머니를 뵙고 싶으시다고요?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그렇게 힐라스의 어머니인 님프, 메노디케를 만난 헤라클레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트리톤에 대해 물어보았다.
“제 과업 때문에 트리톤 님을 꼭 만나뵈어야 합니다. 당신은 님프이시니 혹시 아시는 것이…”
“음… 안타깝게도 저는 트리톤 님과는 인연이 없는, 샘물에서 사는 나이아데스라서요.”
물의 님프라고 해도 다 같은 곳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대양에서 거주하는 오케아니스, 샘의 요정인 페가이아이 등 각자 사는 곳에 따라 부르는 명칭도 달라졌다.
힐라스의 어머니인 메노디케는 연못이나 호수 등에서 사는 나이아데스.
깊은 바다 궁전에 사는 트리톤과는 모르는 사이겠지.
실망으로 물들어가는 헤라클레스의 얼굴을 보던 메노디케가 잠시 고민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바다의 요정, 네레이스들이 밤에 놀러나오는 해변의 위치는 알고 있죠. 그들에게 물어본다면 혹시 모르겠네요.”
바다의 님프(요정), 네레이스들은 바다의 티탄 네레우스(Nereus)와 여신 도리스의 딸들.
50명이 넘어가는 그 요정 자매들은 바다속에서 살아가니 분명 트리톤과도 알고 있겠지.
“그 위치를 알려주십시오. 꼭 보답하겠습니다.”
“보답은 되었어요. 그보다 제 아들, 힐라스를 시종으로 받아주세요.”
이에 놀란 것은 헤라클레스가 아닌 힐라스였다.
미리 사전에 이야기가 된 것은 아닌 모양.
“어머니?!”
“후훗. 너는 항상 답답한 왕궁 생활을 싫어했었지, 마침 네가 동경하던 영웅이 나타났으니 이분을 따라가 세상을 경험하고 오렴.”
“…! 감사합니다…”
헤라클레스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종 하나 정도, 있어도 별 상관없겠지.
왕의 후계자가 아니라 첩의 자식이니 왕이 허락할 가능성도 있고…
다음날, 헤라클레스는테이오다마스 왕에게 허락을 받고 힐라스를 시종으로 삼았다.
전날 밤에 메노디케가 입김을 불어넣은 모양인지 의외로 흔쾌히 허락하는 왕.
그렇게 힐라스와 헤라클레스는 메노디케가 알려준,네레이스들이 종종 나온다는 해변으로 향했다.
* * *
고요한 바닷가의 해변.
적당한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님프들이 나오길 기다리는 헤라클레스와 힐라스.
하지만 셀레네 여신이 달 마차를 몰 시간이 되었는데도 님프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근처의 마을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이곳에 잠복하기를 며칠째인데…
“힐라스. 네 어머니께서 잘못 알려주신 건 아니겠지?”
“으음. 제가 한번 주변을 살펴보고 올까요?”
기다림에 지친 그들이 동요하는데 바닷가에서 은은한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운 밤이라 인간들은 보이지 않았고, 노래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은 아무것도 없는 바다.
그렇다면… 님프들이다!
“얘들아. 오늘은 뭐하고 놀까?”
“아넬노이, 우리는 조개라도 찾아보자! 인간들의 발길이 뜸하니, 분명 많이 남아있을 거야!”
“오늘도 인간들은 다 자고 있겠지?”
“아~ 해초 요리는 너무 질려. 인간들 음식 먹고 싶다!”
“인간들 음식? 근처 마을에 몰래 가서 가져올래?”
바닷속에서 물에 젖은 여인, 아니 님프들 7~8명이 걸어나왔다.
인간이 아닌, 신비로운 바다의 님프. 젊고 아름다운 미녀들의 모습에 힐라스가 넋을 잃었다.
그리고 헤라클레스는 그들이 조금 더 다가오기를 기다린 다음,
천천히 바위틈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최대한 적의가 없음을 알리기 위해 두 손을 들고 차분하게…!
“이보시오. 당신들이 바다의 님프, 네레이스들이 맞소? 혹시 나와 잠깐 이야기를…”
“꺄아아악!!!”
“괴물이다! 인간이다! 살려줘!”
“아버지 네레우스시여! 도와주세요오!”
그러나 헤라클레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네레이스들은 기겁을 하며 사방으로 도망쳤다.
그들의 부모인 네레우스와 도리스의 이름을 외치며 바다로 뛰어드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아니…”
대체 어째서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일까?
사실 네레이스들은 인간들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의 부모는 티탄과 여신인데다, 그들 스스로도 어느 정도 신비한 힘을 다룰 줄 알았으니.
어촌의 잘생긴 젊은이들을 종종 골려주거나 물에 빠져 죽어가는 인간을 구해주기도 하는 이들.
하지만… 지금 헤라클레스는 네메아의 사자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거기에 허리춤의 황금 검, 등에는 히드라와의 전투가 끝나고 새로 주문한 쇠몽둥이.
딱 보아도 단단히 무장한 사냥꾼이나 영웅이다.
심지어 저 우람한 덩치와 근육질 팔뚝을 보아라. 그리스 남성들의 우악스러움은 그들도 잘 알고 있는 바.
만약 붙잡히면 정조와 목숨을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어두운 밤이라 헤라클레스가 들어올리는 두 손은 마치 그들을 붙잡으려는 듯 했고,
바위틈에서 나오는 모습은 그들을 기습하는 불한당과도 같았다.
“꺄아아아!!!”
“살려줘어어!”
“히이익! 사냥꾼, 사냥꾼이야!”
그래서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것.
* * *
영웅의 고민은 깊지 않았고, 상황 판단은 빨랐다.
헤라클레스의 몸이 번개같이 움직여 제일 가까이에 있는 네레이스의 팔을 붙잡았다.
덥석!
“꺄아아아아ㅡ!! 으. 으읍!!”
“시끄러우니까 일단 조용히.”
“아. 안돼! 풀어줘! 이 나쁜 놈아!”
“아넬노이!!!”
“트… 트리톤 님께 말씀드리자! 어서!”
헤라클레스는 순식간에 아넬노이라고 불리던 님프 하나를 제압했다.
비명 소리가 울려퍼지다가 바닷속으로 점차 사라지고, 공포에 떠는 님프가 그를 올려다본다.
‘젠장, 케이론 선생님이 약자들을 해치지 말라고 하셨는데. 쓸데없이 위협을 준 꼴이 되어버렸군.’
헤라클레스는 조금 곤란한 눈으로 자신에게 단단히 붙잡힌 님프를 풀어주었다.
이 상태에서 도망쳐봐야 다시 잡힐 것임을 안 듯, 님프는 팔을 문지르며 그를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나는 헤라 님의 과업을 수행중인 인간, 헤라클레스다. 질문에만 답해준다면 해치지 않아.”
“거짓말!”
“뭐?”
“대영웅 헤라클레스를 사칭하는 놈이 얼마나 많은데! 너도 그런 놈이지?”
아니, 이 사자 가죽과 허리춤의 황금 검을 보고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것도 그럴 것이. 지금의 헤라클레스는 그리스에서 꽤나 유명했다.
헤라 여신의 과업을 수행하는 대영웅의 이야기는 제법 널리 퍼져나간지 오래.
세상에서 제일 강한 대영웅 헤라클레스!
그의 쇠몽둥이만 보아도 모든 괴물들이 두려움에 떤다네!
크리사오르를 찢어 죽이고 얻은 허리춤의 황금 검!
네메아의 사자를 때려 죽이고 얻은 사자 가죽!
히드라에게선 아무것도 얻지 못할 정도로 박살을 내놓았지!
고작해야 3가지 과업만을 완수했지만, 그의 여정은 그 누구보다도 대단했다.
오락거리가 거의 없는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대영웅의 일대기는 그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일.
그렇기 때문에 사자 가죽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쇠몽둥이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대장간에 쇄도했으며,
검을 황금색으로 도금해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니, 나는 진짜 헤라클레스…”
“거짓말! 헤라클레스는 여자를 건드리지 않는 대영웅이라고! 처녀의 팔을 강제로 잡는 이 불한당 놈아!”
“너희가 갑자기 도망치니까 잡았다는 생각은 안 하나?!”
졸지에 가짜 취급을 당한 진짜 헤라클레스만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어떻게든 설득해서 트리톤과의 연결점을 만들어야 하는데, 자신이 진짜라는 걸 믿지 않으니…
그들의 논쟁을 보고 가까이 다가오는 힐라스.
“헤라클레스 님!”
“아, 힐라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이 님프가 내가 진짜 헤라클레스라는 걸 믿지 않는군.”
“흥! 헤라클레스는 항상 혼자서 다닌다고 들었어! 이 불한당 놈들아!”
힐라스를 보고도 당돌하게 대꾸하는 님프의 말에 그들은 어이를 상실했다.
헤라클레스의 생각에, 이 오해는 스틱스 강에 맹세라도 하지 않고서는 풀리지 않을 듯 싶었다.
그래서 천천히 입을 열어 맹세하려는 그때…!
촤아아악!!!
“어느 인간 놈이 감히… 내가 비호하는 네레이스들을 납치하려 하느냐!”
“아, 트리톤 님!”
엄청난 물보라가 일어나 그들을 님프에게서 떼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