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29)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29화(129/140)
네번째 과업 – 트리톤의 소라 (2)
헤라클레스는 거센 물보라와 함께 등장한 자를 살펴보았다.
그자는 비늘로 온 몸이 덮여있었고, 발 대신 돌고래의 꼬리와 비슷한 무언가가 존재했고…
이쪽을 쳐다보는 파란 눈동자에서 강렬한 힘이 느껴졌기에 신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트리톤 님! 저 거한은 헤라클레스를 사칭하는 사냥꾼 같아요!”
“무사해서 다행이군. 저 인간은 내가 알아서 벌할 터이니 이만 가보거라.”
방금 저 님프가 트리톤이라고 했었지. 그렇다면 해신의 적장자가 바로 저 기괴한 자인가?
‘일단 님프를 납치하려 했다는 오해부터 풀어야겠어.’
“정말로 포세이돈 님의 아들이신 트리톤 님이십니까?”
“파도를 부르는 트리톤이라면 내가 맞다. 너는 무슨 배짱으로 네레이스를 납치하려 했느냐?”
“저는 스틱스 강에 맹세코 님프를 납치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 사람들 간에 벌어진 심각한 오해는 생각보다 쉽게 풀린다.
스틱스 강에 맹세하는 건 모두가 꺼려하는 일.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남에게 강요하는 것 역시 엄청난 무례.
하지만 정말 자신이 떳떳하다면 스틱스 강의 맹세로 결백함을 증명할 수 있었다.
“…정말인가? 그럼 네가 헤라클레스라는 것도…”
“예, 맞습니다. 저는 그저 트리톤 님의 소라를 가져오라는 헤라 님의 과업 때문에…”
헤라클레스의 입에서 스틱스 강의 맹세가 튀어나오자 트리톤이 기세를 누그러뜨렸고,
이 틈을 타서 헤라클레스가 과업에 대해 설명했다.
“…음. 헤라 님께서 그런 과업을 내리셨다는 말이지. 이 트리톤에게 있어서 소라가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지는 알고 계실 테니까… 잠깐 빌려주라는 소리인가?”
“헤라 님의 신전에서 확인만 받고 나면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트리톤이 헤라클레스를 호기심 어린 눈길로 보았다.
“아무튼 오해였군. 내가 잘못한 듯 하니 사과하도록 하지.”
“……”
“그런데 네가 정말로 그 헤라클레스라… 흐음.”
“제게 물어보실 거라도 있으십니까?”
“네가 복수의 세 여신 중 하나인 메가이라 여신님과 겨뤘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 비록 그분이 많이 봐주셨겠지만, 네 능력이 뛰어난 덕에 신과도 합을 겨룰 수 있었겠지.”
트리톤이 바다를 향해 손을 뻗자, 파도가 크게 철썩이며 호응한다.
헤라클레스의 눈앞에 있는 남신은 포세이돈의 적자이자 대양을 통솔하는 자.
“인간 영웅들 중에서 최고라는 그 능력을 보고 싶군. 몇 수만 겨뤄보지.”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
이 역시 도전이며, 과업이고, 고행이리라!
“…영광입니다! 힐라스, 너는 멀리 떨어져 있어라!”
“훗. 전력을 다해보아라.”
헤라클레스는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쇠몽둥이를 들고 덤벼들었다.
* * *
대영웅은 눈앞의 신에게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먼저 그의 든든한 친구인… 충격과 공포, 즉 쇠몽둥이가 휘둘러졌다.
“…오호!”
머리를 노리는 일격.
트리톤은 가볍게 몸을 비틀어 피해냈지만, 영웅은 계속해서 그를 몰아붙였다.
히드라와의 전투에서 괴물의 재생력을 무너뜨린 힘. 수백, 수천번의 일격을 쏟아붓는다면…!
후우웅ㅡ 콰아앙!
VnJ3dTNyRXdaNE9POGIxQ2ZRWWZwUDJoNnU0U202VW5aNXY3VkgrRHNKTEFJYmN1c2hsRWxUOWZqbXlobnNsNg
이 모든 공격에 트리톤은 피하고, 물로 이루어진 방벽을 만들고, 그의 몸으로 받아내는 것으로 대응했다.
신의 단단한 육체가 쇠몽둥이를 부수며 파편을 흩뿌리는 순간… 헤라클레스는 주먹을 내질렀다.
투웅ㅡ
영웅과 신의 주먹이 허공에서 충돌하며 충격파가 일어났다.
주변의 모래가 비산하고, 그들을 향해 다가오던 파도가 터져나간다.
그들은 주변을 신경쓰지 않고 계속해서 싸웠다. 트리톤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린다.
어느새 헤라클레스의 허리춤에 있던 황금검이 그의 손을 통해 종횡무진 날뛰며 사방을 휩쓸었고, 트리톤의 손톱이 그 공격을 일일히 받아냈다.
“오호. 제법이군. 그저 힘만 믿고 날뛰는 영웅도 아니고…”
트리톤의 감탄사.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가 진정으로 듣고 싶은 것은 감탄사가 아닌, 경악과 인정.
아직도 트리톤은 그 신력이라는 것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것 같은데, 적어도 한 번 정도는!
“헉… 허억. 메가이라 여신님은 어떻게 그리 빠르십니까? 마지막에 제 공격을 피한…”
“이건 신력… 너도 아마 신이 된다면… 알 수 있을 거야…”
더. 더 빨리 움직인다. 바람을 가르고 목표를 향해서.
그 신력이란 게 뭔지는 몰라도, 권능이란 것이 나에게 없어도…!
후우웅ㅡ!!
“하아압!”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맹렬해지는 헤라클레스의 공격에 트리톤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순간, 그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얼굴로 날아드는 헤라클레스의 주먹.
이거라면 분명, 저 신에게 닿을 수 있겠지.
헤라클레스의 주먹질이 트리톤의 코에 닿으려는 그때, 신의 입가에 드리운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와 함께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짙푸른 기운.
– 파아아앗!
순간적으로 튕겨져 날아가 모래밭을 굴렀다.
스틱스 강으로 강화된 몸뚱이에서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얼굴에 한 방 먹이려는 순간, 강렬한 기운에 휘말려 날아갔다는 걸 알아챈 헤라클레스가 입 안에 들어온 모래를 뱉는다.
역시 포세이돈의 적자. 올림포스 12신은 아니지만…
짝. 짝. 짝.
다시 일어나는 헤라클레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박수를 치며 그를 바라보는 트리톤.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쏟아내는 신.
“역시 예언의 영웅이다! 필멸자 중에서 네 적수는 없겠지. 이 정도라면 그 녀석에게도 죽지 않을 테고…”
“…그 녀석이라뇨?”
“네가 한 가지 귀찮은 일을 맡아준다면 내 소라를 빌려주겠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의 배다른 형제이자 키클롭스인 폴리페무스를 조금 교육하는 것!”
배다른 형제라고 했으니까 해신의 아들이겠고, 그런데 키클롭스?
괴력으로 유명한 외눈박이 거인들을 말하는 건가.
* * *
폴리페무스(Polyphemus).
그는 해신 포세이돈과 님프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
폴리페무스는 원래 갈라테아(Galatea)라는 바다의 님프를 좋아해서 그녀를 쫒아다녔다.
그런데 그녀는 폴리페무스를 싫어했고… 자연과 목축의 신, 판의 아들인 아키스(Acis)와 사랑에 빠졌다.
“으.. 으아아아! 다 죽어!”
쿠우웅!
“크허억!”
“꺄아아악! 폴리페무스! 미친거야?!”
당연하게도 화가 난 폴리페무스는 거대한 바위를 뽑아서 그들에게 던져버렸고…
갈라테아는 재빨리 바닷속으로 피해서 살았지만, 그 바위에 아키스가 맞아 죽어버렸다.
그 이후부터 지나가는 배들에게 바위를 던지고,
식인을 즐겨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
이 일화를 헤라클레스에게 설명해주는 트리톤의 눈에는 씁쓸함이 감돌았다.
“내 아버지, 포세이돈께선 자식들에게 큰 신경을 쓰진 않으시지. 하지만 저번에 웬 망나니 놈이 죽은 뒤부터 조금 변하셨어.”
“…?”
“할리로티오스라고 망나니 놈 하나가 있었지. 모르면 됐네. 아무튼 그때쯤부터 아버지가 내게 기강을 조금 잡으라고 하시더군.”
할리로티오스라는 자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지만, 아무튼 포세이돈 신이 자식의 만행을 두고 보지 못한 것인가?
그래서 자신의 적자인 트리톤에게 동생들 관리를 하라고 한 거고…
“그 폴리페무스라는 키클롭스가 더 이상 식인을 하지 못하게 막으면 됩니까?”
“그렇지, 주변에 지나다니는 배에 돌덩이를 던지는 것도 그만하라고 해. 해신의 아들에게 해를 끼침으로서 돌아오는 보복은 신경 쓰지 말고.”
“포세이돈 님은 자식을 매우 아끼신다고 들었습니다.”
“정말로 아버지의 분노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아예 죽인다던가, 눈을 멀게 한다던가 그런 것만 아니라면 넘어가실걸?”
헤라클레스는 숨을 고르며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포세이돈의 자식이자 반신인 폴리페무스가 더 이상 패악질을 부리지 못하도록 교육해준다면 트리톤의 소라를 받아낼 수 있다.
그나저나 교육이라. 교육이라면…
잠시 헤라클레스의 기억이 과거로 향했다.
“아아악! 케이론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아직도 말할 기운이 남았다니, 전혀 반성을 하고 있지 않구나.”
“아아아악! 제발 그만 때리십쇼!”
쩌어억! 쩍!
“흠… 이곳에 오기 전, 이승에서 패악질을 부렸다고? 좋아, 엎드려라.”
“예? 꼴보기 싫은 놈 패주는 것이 뭐가 문제였… 크아악!”
“엎드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스승인 케이론이 회초리를 들고 교육하는 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데?
물론 스틱스 강에 빠진 그의 몸뚱이에는 어떠한 타격도 들어오지 않았기에 말로 잘 타일렀지만,
다른 영웅 지망생들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회초리와 각종 체벌이 난무하는, 인성에 대한 엄격한 교육이 함께했던 케이론의 가르침.
가만, 생각해보니 그 정도라면 자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말을 듣지 않으면 때려서 교육하는 것 정도야… 뭐.
생각에 빠진 헤라클레스에게 트리톤이 말했다.
“고민은 끝났나? 폴리페무스에게 향하는 것이 싫다면…”
“하겠습니다.”
“오. 키클롭스 거인 정도는 상대할 자신이 있다는 거군. 아주 좋아. 그가 살고 있는 장소를 알려주겠다.”
헤라클레스는 흡족한 미소를 짓는 트리톤에게 폴리페무스가 살고 있다는 섬의 위치를 전해들었다.
그가 동굴에서 양을 치며 살아간다는 것과, 다른 키클롭스들과 달리 조금 떨어져서 산다는 것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