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32)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32화(132/140)
바다 괴물 카리브디스 – (3)
카리브디스가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속도가 제법 빨라서 다급히 행동에 나섰다.
의지에 따라 손에 잡히는 바이던트.
상대는 포세이돈 다음가는 바다의 신격. 조금 더 힘을 써야겠지.
다른 신의 영역에서 행패를 부리는 건 옳지 못한 짓이지만, 포세이돈에게서 허락(?)도 받았으니.
■■■■■■!!!!!
하늘과 바다 사이에 죽음의 기운이 들어찬다. 정확히는 아래로 내리 꽂은 것이지만.
내가 만들어낸 검은 기둥에 닿은 바다 생물들이나 갈매기 같은 새들이 죽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ㅡ?! ■■!!!
카리브디스가 당황하며 입을 닫는다.
소용돌이가 입을 닫는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그것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이쪽을 경계하며 내 정체를 파악하려는 시선. 그녀에게서 흘러나온 황금빛 이코르가 바닷속으로 사라져간다…
일단 인간들부터 대피시켜야겠어.
배 위로 이동해 카리브디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전한 곳으로 보내주마.”
날 발견한 자들이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게 느껴진다. 등 뒤로 전해져오는 신앙.
내가 누구인지 아는자도, 모르는 자도 있었지만 느껴지는 감정은 모두 동일했다.
안도. 안심. 기쁨. 감사.
“너희는 아직 저승으로 올 때가 아니다.”
배를 감싸는 검은 막을 만들어 육지 방향으로 밀었고, 다시 해수면 위로 올라가 카리브디스를 보았다.
아까와 달리 바닷물을 빨아들이지 않고 천천히 몸을 드러내는 그녀.
그러나 마치 나를 경계하듯, 입 부분만을 보이고 전언을 보낸다.
머릿속으로 전해지는 목소리는… 거대한 소용돌이 괴물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미성(美聲).
[갑자기 제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하데스 님?]“포세이돈의 딸, 카리브디스. 이제 인간들을 괴롭히는 일은 그만해라.”
[무슨 소리를… 저승의 주신께서 고작 필멸자를 위해 여기까지 행차하셨다고요?]“죽고 나면 전부 내 백성이 될 필멸자들이기도 하지.”
카리브디스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내 말뜻에 대해 생각하는 걸까?
말한 그대로인데… 아무튼 그녀를 설득하기만 하면 되니.
“포세이돈 다음 가는 바다의 신격이 넌데, 언제까지 이러고 살 것이냐?”
[……]“지나가는 인간들을 괴롭히는 일은 이제 멈춰라. 네가 인간들을 잡아먹지 않아도 될 정도의 음식을 포세이돈과 데메테르가 공급해 주기로 약속하였다.”
[아버지께서… 말인가요?]“그래. 이곳에 오기 전, 데메테르도 불러 대화했었다.”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너무 많이 먹어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바다에 떨어졌지만,
포세이돈에게는 별 감정이 없나 보군. 다행이야.
왜 아버지는 자신을 제우스의 벼락으로부터 막아주지 않았냐… 이렇게 나온다면 골치 아프니까.
“인간들이 네 이름을 칭송하고 제물을 바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네가 트리톤이나 다른 바다신들에 비해 모자란 점도 없지 않느냐.”
“그래, 나도 네 사연은 알고 있다. 네가 바다에 떨어지지만 않았어도 이리 영락하지는 않았을 텐데.”
신격의 세계는 조금 복잡하다.
연회 도중, 그것도 신들의 왕에 의해 벼락을 맞고 쫒겨났다는 것 역시 의미를 갖는다.
신왕이 직접 내리는 추방의 뜻. 카리브디스 정도의 신격이 다시 올림포스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
분명 높은 여신임에도, 넥타르와 암브로시아 대신 인간들이나 잡아먹을 정도로 영락한 그녀.
카리브디스에게 신앙을 바치는 인간은 단 하나도 없는 상황.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그녀에게도 좋지 않다.
그냥 사람들을 잡아먹는 바다 괴물. 이 정도로 인식이 박혀버리면 돌이키는 일은 힘들겠지.
“진심 어린 신앙은 공포와 감사 사이에서 나오는 것.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이제 인간들은 그만 괴롭혀라.”
[그렇다면… 올림포스로 다시 돌아갈 수는…]“너도 알다시피 네 어머니인 가이아와 우리는 전쟁중이지만, 기가스를 몰아내고 그분의 인정을 받는다면 제우스도 설득이 가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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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디스도 아무 생각 없이 인간들을 잡아먹은 것은 아니다.
올림포스에 대한 미련과 제우스에 대한 분노와 원망, 여신인 자신이 이 정도로 영락한 것에 대한 슬픔.
온갖 감정이 뒤섞여서 결국 필멸자나 잡아먹는 신세로 변했겠지.
이렇게 내 설득을 가만히 듣고 있는 이유는 다시 돌아갈 길이 보여서가 아닐까?
포세이돈은 이미 그녀의 편이고, 내가 지지해주면 제우스라 해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테니.
* * *
[알겠습니다. 하데스 님의 뜻대로 하겠어요.]“잘 생각했다. 포세이돈이 신탁을 내려 이 근처로 항해할 때는 네게도 제물을 바치라고 할 것이다. 주기적으로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도 전해줄 것이고.”
[아버지…]“…?”
[아버지께 죄송하다고…]“전해주겠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로군. 서로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어.
설득이 끝났으니 이제 인간들은 괴롭히지 않겠지?
우리 신들은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몸.
제우스에게 밉보여 바다로 떨어져봤으니 적당히 자제할 것이고…
하. 됐다. 이 정도쯤 해줬으면 포세이돈이 알아서 교육하겠지.
예전이라면 몰라도 요즘에는 달라진 것 같기도 하니까.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다시 물 속으로 가라앉는 그녀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저승으로 돌아가려는데, 파도를 가르며 다가오는 누군가가 보였다.
타고 있는 것은 돌고래. 느껴지는 기운은 신의 힘.
“하데스 큰아버지!”
“트리톤이냐.”
포세이돈의 적장자, 트리톤이로군.
“네 아버지의 명대로 나와 카리브디스의 대화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러 왔겠구나.”
“아… 하하. 아버지께서는 자식들을 아끼시니까요.”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전해라. 한 대 쥐어박은 것만 빼면 건드리지도 않았다고.”
멋쩍은 웃음을 띠는 트리톤에게 계속 말했다.
“헤라클레스.”
“네? 그 인간 영웅이요?”
“그가 신이 될 수 있을 것 같으냐?”
프시케의 경우는 오히려 평범한 인간이었기에… 제우스가 적당한 하급신으로 만들 수 있었고,
메두사의 경우는 원래부터 반신인데다 목숨을 잃은 채 저승으로 왔기에 내가 신으로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최고의 대영웅, 헤라클레스가 신이 된다면 올림포스 12신이 13신으로 변할 정도.
신이 될 정도의 과업을 이루어야 하는데, 원래부터 강한 헤라클레스는 그 역치가 너무 높다.
그러므로 인간으로 태어나 올림포스 12신의 자리에 오른, 디오니소스와 비슷한 행보를 걸어야겠지.
디오니소스가 신의 자리에 오를 때와 비슷한. 신적인 사고방식과 정신, 신앙도 필요하다.
“이미 그의 힘은 신과도 겨룰 수 있을 정도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발목을 잡는 것 같습니다. 마음가짐도 그렇고…”
“그렇군. 아직 계기가 없었나.”
언젠가는 깨달을 수 있겠지.
* * *
한편, 바다 괴물에게 잡아먹힐 뻔 했다가 극적으로 하데스를 만나 목숨을 건진 선원들.
그들의 배는 자연스럽게 육지로 떠밀려갔으며, 모두 가족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흐윽… 윽. 이번 항해는 정말 위험했어. 소용돌이 괴물에게 배가 통째로 잡아먹힐 뻔…”
“아니, 하늘에서 바다까지 검은 기둥이 생겨났다니깐?!”
“그건 신이 분명해. 바다 괴물로부터 우릴 구해주신 거야.”
절체절명의 순간, 갑판에 홀연히 나타난 남신에 대한 기억은 뇌리에 단단히 박혀있었다.
오직 포세이돈만을 섬기는 뱃사람들도 두 개의 신앙을 가질까 고민할 정도.
“그런데… 그분이 어느 신이시지?”
“검은 머리에, 복장도 그렇고… 일단 포세이돈 님은 아니신데.”
“그렇다면 트리톤 님이 아닌가?!”
“트리톤 님은 물고기와 인간이 합쳐진 듯한 모습이라고 들었어, 그분도 아니야.”
“…그건 저승의 주인이오.”
그를 플루토 신이라고 생각한 이는 극소수.
소싯적 신학을 조금 공부한 중년의 선원이나, 경험이 풍부한 선장과 같은 자들이었다.
“흑발과 흑안. 날개는 보이지 않았고, 창은 두 갈래로 뻗은 이지창이었지. 플루토 신의 특징이야.”
“아니, 지하에 있어야 할 플루토께서 이승에는 무슨 일로 나오셨다는 말인가?”
“그 바다 괴물을 처리하기 위해 나오셨나? 아폴론 신께서도 과거 왕뱀 피톤을 죽이신 것처럼.”
“신들께서는 외형을 숨기실 수 있지만, 그분께서는 분명… 너희는 아직 저승으로 올 때가 아니라고 하셨어.”
저승으로 ‘올’ 때가 아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저승에 산다는 플루토 신에게 목숨을 구명받았나?
“자비와 공정의 신이라는 소리는 들었는데… 으음.”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정확히 어떤 분인지는 못 봤네.”
“글쎄. 난 아직도 잘 모르겠군. 포세이돈 님께서 모습을 바꾸시고 나타난 것일 수도.”
“어느 신이신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하지 않겠나? 올림포스에 제사를 올리는 것은 어떤가?”
“젠장. 그래. 어느 신이신지 고민하기보다 일단 제물부터 준비하자고.”
물론 바다 위에서 뜬금없이 플루토가 나온다는 일은 믿기 어려운 일.
사람들은 일단 이름 모를 신에게 기도하며 제물을 바쳤다.
그러나 몇몇 이들은 확실히 저승의 주인에게 기도했으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이 날 이후, 포세이돈의 신전과 데메테르 여신의 신전에서는 신탁이 내려왔으며…
인간들은 카리브디스라는 여신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포세이돈 님의 따님이신, 카리브디스 여신께 바칩니다.”
“저희가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뱃사람들은 바닷속에 사는 그녀를 위해 질 좋은 제물을 준비했으며,
특정한 지역을 항해할 때에는 카리브디스에게 바치는 제물로서 바다에 음식을 떨어뜨리는 풍습도 생겨났다.
그 이후부터, 바다 괴물의 목격담이나 갑자기 실종되는 배들은 사라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