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33)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33화(133/140)
예언의 여신, 테티스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갔다.
저승이든, 이승이든. 세월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것.
신들의 왕인 제우스의 인내심 역시 마찬가지다.
“하데스, 테티스 여신이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그러네요.”
“테티스 여신님 말씀입니까?”
그녀가 낳은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능가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주인공이자.
아주 오래전, 올림포스에서 일어난 포세이돈의 반란 당시에 나를 만나러 저승으로 왔던 여신.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지… 카리브디스나 포세이돈의 자식들에 대한 문제도 해결되었겠다.
스틱스 여신님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쉬고 있었건만…
일단 침실에서 일어나 옥좌로 향했다.
바다나 올림포스에 있어야 할 여신이 저승까지 오다니,
설마 또 반란은 아닐 텐데. 무언가 부탁이라도 하려고 왔을까?
“저 좀 도와주세요! 요즘 자꾸 제우스가 저를 결혼시키려고 해요!”
“아.”
“한동안 조용하더니 최근 들어서 또…”
나는 잔뜩 울상이 된 물빛 머리의 여신을 바라보다가 손을 머리에 짚었다.
분명 저번에 제우스에게 그녀의 편의를 봐달라고 했었는데,
이제 슬슬 인내심이 다해서 불안 요소를 없애려고 하는 건가.
“아니, 뭘 얼마나 강요했기에 그럽니까?”
“절대로 제가 신의 부인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하면서 인간 따위와 결혼하라는데, 여신인 제가 왜 필멸자와… 으흐흑…”
“하아아…”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게 하소연하는 테티스.
제우스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절대로 신과 결혼하게 놔둘 수 없겠지. 신보다 위대한 자식은 3주신이 되려나?
무조건 인간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만 안심이 될 것이다.
강제로 결혼해야 하는 이 여신님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테티스 여신님.”
“흐윽… 흑… 네?”
“만약 여신님께서 신과 결혼하신다면, 제우스가 여신님의 아이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을까요?”
내가 만약 정에 휩쓸려서… 그녀가 원하는 대로 어느 신과 결혼하도록 도와준다면,
그 즉시 제우스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나나 포세이돈이 개입해도 제우스는 양보하지 않을 터.
그럼 신들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제우스의 압박에 한쪽이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면 곧장 파멸로 이어지겠지.
기가스라는 대적을 앞두고 우리끼리 싸워 공멸하는 결과만이 보인다.
권력이야말로 제우스의 역린,
내가 아무리 그의 형제이자 저승의 주신이라고 해도 선을 넘는 일은 내키지 않는다.
“…그. 그럼 어떡해요… 으흑… 아무도 절 도와주지 않아서 저승까지 왔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강제로 인간과 결혼시킨다? 그건 공정하지 않다.
테티스 여신님이 이리도 거부하시는데, 이건 흡사 정략결혼으로 팔려나가는 모습 아닌가?
생각나는 방법이 몇 없는데,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은 해봐야겠다.
“테티스 님. 제가 제우스를 설득해보겠습니다.”
“…!”
“하지만 여신님께서 신과 결혼하면 올림포스는 반으로 갈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신의 혈통이지만, 반신이 아닌 자들은 어떻습니까?”
3주신과 결혼하면 그 아이는 제우스를 뛰어넘는다.
신과 결혼하면 3주신이 4주신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반신과 결혼하면 그 아이는 신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과 결혼하기에는 테티스 여신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한다.
“저도 여신님을 도와드리고 싶지만, 역시 예언이 걸리는군요.”
* * *
테티스 여신이 크게 실망한 눈초리로 나를 애처롭게 바라본다.
“그래도 여신님의 마음에 차는 인간이라면 어떻습니까?”
“제 마음에 찰 인간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아예… 인간들이 참여하는 대회나 경기를 여는 것입니다. 테티스 여신님께서 직접 그 대회를 관람하시면서 마음에 드는 자라도 있다면 고르시는 건 어떨까요?”
무려 여신과 결혼하는 것을 거부하는 인간은 거의 없다.
대영웅 카드모스나 헤라클레스 정도의 굳건한 정신력을 갖추지 못한 자들은, 불멸자의 미모에서 헤어나올 수 없으니.
그러니까 우승자는 여신과 결혼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고, 그리스 전역에서 참가자를 모집.
용기와 담력, 지혜를 갖춘 뛰어난 인간만이 여신에게 구애할 기회를 얻는 것.
이러한 생각을 대충 테티스 여신님께 늘어놓았다.
“마음에 드는 자가 없으시면 우승 상품을 적당한 보물로 하셔도 좋습니다. 오직 여신님의 마음에 드는 자만이 기회를 가지는 것이죠.”
“그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핑계로 계속 거부한다면…”
“하지만 제우스는 여신님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예언에서 아예 여신님의 아이가 아버지를 능가할 것이라고 확언했으니까요.”
예언에서 ‘만약 아이를 가진다면’이라고 한 것이 아닌, ‘테티스가 낳은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한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테티스 여신이 아들을 낳을 것은 확정된 사실.
제우스의 입장에서는 어서 테티스 여신의 아들이 태어나야만 안심할 수 있겠지.
“후우. 뭘 어떻게 해도 결혼을 거부할 방법이 없군요.”
“혹시 따로 원하시는 게 더 있습니까? 제우스에게 무언가를 더 요구해도 될 듯하군요.”
“…그건 나중에 다시 생각해볼게요.”
“일단 제우스에게 여신님의 뜻을 전하겠습니다.”
이 정도가 최선인가? 일단 제우스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
갈등이 이걸로 봉합된다면 좋겠건만… 올림포스에 가서 말해볼까.
* * *
그렇게 테티스 여신님과 올림포스로 왔다.
나와 테티스 여신님이 함께 있는 걸 본 제우스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는 듯 했다가, 이내 펴졌다.
“하데스 형님이 테티스를 넘볼 성품은 아니고… 그녀의 처우와 관련된 일인가?”
“테티스 여신님께서 인간과 결혼하시겠다는군.”
“…드디어 결심한 거요? 테티스?”
반신반의하는 제우스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테티스 여신.
“그런데, 그렇다고 아무 인간이나 잡아다가 결혼시킬 수는 없지 않나? 아무리 아버지를 뛰어넘는다는 예언이 있어도 말이지… 적어도 어딘가의 왕이나 위업을 세운 영웅 정도는 되야 할 터.”
“흐음.”
“부모가 신이 아닌 인간들 중에서, 사냥 대회를 여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서 우승한 자들 중 여신의 마음에 드는 자만이 결혼하는 식으로.”
“영웅을 양성할 수도 있고… 나쁘지 않은 방법이네.”
제우스가 고민하더니 여러 신들을 불러모았다.
그렇게 테티스 여신과의 결혼식을 노려볼 수 있는 사냥 대회가 논의되었고.
2년에 한번씩, 전 그리스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회가 주기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물론 이는 신탁으로 인간들에게 전해졌으며…
“자네, 테티스 여신과 결혼할 수 있다는 사냥 대회에 대해 들어보았나?”
“나는 솔직히 믿기지 않는데, 여신을 취할 수 있는 기회지만 그것도 우승자가 여신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승 상품은 보물과 명예지만, 테티스 여신께서 대회를 지켜보신다니…”
“그분께서는 결혼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역시 신랑감을 인간 중에서 찾기 위함이군!”
“부모님 중 한 분이 신이라면 참여가 불가능하니 자네는 나갈 수 없네.”
그렇게 아름답다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눈에 들기 위한 인간들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물론 여신의 눈에 드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경험과 명예, 보물이 탐나는 영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대회에 참여했다.
* * *
이승이 테티스 여신이 주관한다는 사냥 대회로 북적이는 그때,
대영웅 헤라클레스는 묵묵히 과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다섯 번째 과업인 아우게이아스 왕의 우리 청소.
수백 마리의 가축이 수십 년동안 싸질러 놓은 우리를 청소하는 일은 대영웅도 막막했다.
그래서 강의 흐름을 통째로 비틀어 오물들을 모조리 쓸려보냈다.
물론 강의 신이 항의해 왔으나…
“이 놈! 누구 마음대로 강의 흐름을 바꾸느냐!”
“…헤라 님의 과업을 수행중인 헤라클레스라고 합니다. 죄송하지만…”
“예언의 영웅인가. 흥… 내 한번은 참아주지.”
그의 이름이 널리 퍼진 덕분에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여섯 번째 과업인 스팀팔로스의 새 사냥.
사람들에게 깃털을 쏘아내거나 부리로 쪼아 잡아먹는 식인 새 무리.
청동으로 된 부리와 발톱을 가진, 아레스가 기르는 새들이었지만…
까아악! 까아아악! 까아악! 깍!
“시끄럽군… 닥ㅡ쳐라!!!!”
대영웅은 역시 성대의 근육도 대단했다.
우렁찬 고함에 고막이 터지고 놀란 새들이 귀에서 피를 흘리며 땅으로 떨어졌고,
도망치는 새들은 화살을 쏘아 잡아냈으니까.
일곱 번째 과업
인 크레타의 황소, 미노타우로스의 아버지 격인 황소를 생포하는 일도 마치고…
여덟 번째 과업
인 디오메데스 왕의 식인 암말을 생포하는 일도 끝냈다.
그가 받은 다음 과업은…
“아홉 번째 과업은 게리온의 소를 데려오는 일입니다.”
“머리와 몸통이 셋 달린 그 괴물 왕 말입니까?”
게리온이 있는 곳은 서쪽 땅 끝에 있는 섬.
헤라클레스는 누구의 방해도 없이, 순조롭게 배를 타고 그 섬까지 도달했다.
퍼억. 퍽!
“끄아아악!”
섬에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비명소리.
쇠몽둥이를 꺼내 들고 이동한 헤라클레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트리톤 님?”
“오. 헤라클레스 아닌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시는…?”
“별거 아니네, 자네가 폴리페무스를 교육시킨 방법이 인상 깊어서 말이야. 나도 그 방법을 써볼까 해서.”
몽둥이를 어깨에 얹고 한 거인을 교육하고 있는 트리톤.
대체 얼마나 두들겨 맞은 것인지 눈두덩이가 시퍼렇고, 팔다리가 뒤틀린 채로 트리톤의 앞에 조아리는 거인.
헤라클레스보다 더욱 커보이는 거구의 눈빛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쪽은 나의 배다른 형제인 안타이오스(Antaeus)라고 하는데, 지나가는 행인들과 힘겨루기를 하고 나서 전부 죽여버리는 일을 반복해왔지.”
“아… 그렇군요.”
“아버지가 나더러 자식들을 단속하라고 하셨으니, 이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콰직! 퍼어억!
“끄… 끄으윽…”
“하하하! 안타이오스! 네 어머니는 가이아 여신님이 아니더냐? 근성을 더 보여라.”
“아… 아닙니다. 다시는 행인들을 괴롭히지 않을 터이니…”
상쾌하게 웃는 트리톤. 가이아와 포세이돈의 아들이지만 죽어가는 신음을 내는 안타이오스.
헤라클레스는 잠시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가 트리톤의 말에 의문을 품었다.
“트리톤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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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가이아 여신과 포세이돈 님의 자식인데… 어째서 여기 있는 안타이오스는 신이 아닙니까? 아니 애초에… 제 목표는 신이 되는 것이지만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벌써 수많은 위업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의 자리는 멀게만 느껴집니다. 부디 조언을 주십시오.”
트리톤이 그의 의문을 해소해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