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34)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34화(134/140)
아르고 호 원정대 – (1)
“…부디 조언을 주십시오.”
여태까지 헤라클레스가 이룬 과업만 무려 여덟.
죽인 괴물은 셀 수도 없고, 그의 이름은 그리스 전역에 널리 퍼졌다.
이 정도면 신이 되기에 충분한 위업이 아닐까?
그런데 왜 나는 아직도 신이 될 수가 없지? 무엇이 모자라길래?
복잡한 생각을 품은 채, 고개를 슬쩍 숙인 헤라클레스를 보던 트리톤은.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다가 곧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 아하하하! 신이 되는 것이 어렵다며 조언을 구하는 인간이라니! 아하하하! 너는 정말 재미있구나, 헤라클레스!”
“……?”
“평범한 인간이라면, 신은 고사하고 영웅이나 왕이 되는 것도 힘들어할 텐테. 크흐흡!”
헤라클레스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오르자 트리톤의 웃음이 더욱 커졌다.
“…위를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하하하하! 그렇지, 너는 이미 통상적인 영웅의 범주를 넘어선 것 같으니.”
한참 동안 웃던 크리톤이 갑작스럽게 웃음을 그치더니 그를 바라보았다.
“신과 인간의 차이, 네가 신이 되지 못하는 까닭에 대해서 궁금하느냐?”
“그렇습니다.”
“여기 있는 안타이오스, 태양의 신에게 죽은 왕뱀 피톤, 군신의 아들인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파도를 다스리는 신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들.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느냐?”
“…모두 부모님이 신임에도, 신격이 아닌 자들입니까?”
“정답이다. 신이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야.”
헤라클레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하며 그의 말을 들었다.
어쩐지 현기가 느껴지는 말투. 신격에 대한 비밀이 풀려나는 순간. 단 한마디도 놓쳐서는 안 된다!
“세계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하급신 정도야 주신들께서 임명하시면 그만이다. 하지만… 너는 조금 다르지.”
“제가 다르다고요? 어째서입니까?”
신이 입을 열었다.
그의 눈에서 파도가 휘몰아치며 헤라클레스의 정신을 뒤흔든다.
목소리… 목소리가 맞나? 머릿속으로 내리꽂히고 울려퍼지는 음성.
귀를 통해 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전달하는 것과도 같다.
그야 너는 인간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신과도 겨룰 수 있으니까.
그야 너는 하나만 이뤄도 대영웅이라고 칭송받을 위업을 여러 개나 해냈으니까.
그야 너는 고행의 기준치가 다른 이들과는 다르니까.
그야 너는…
더. 더…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네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영원히 신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아…”
“너는 오히려 인간들과 어울려야 할 필요가 보이는군. 이아손이라는 인간이 원정대라는 것을 꾸리던데… 이번 과업이 끝나고 너도 한번 참여해보는 것이 어떠냐?”
이아손의 원정대라…
* * *
이아손(Jason).
이올코스의 왕이었던 아이손의 아들로 아이손이 의붓동생 펠리아스에 의해 왕좌에서 쫒겨났기 때문에,
세상을 떠돌다가 테베의 영웅 훈련소로 오게 된 사람이다.
헤라클레스, 아스클레피오스 등과 함께 현자 케이론에게 가르침을 받고 이승으로 나온 그는…
펠리아스가 지배하던 도시로 향해 왕위를 돌려달라고 말할 셈이었다.
그런데 그가 이올코스로 향하던 중…
누추한 노파 하나를 만나 업어서 강을 건너게 해주다가 한쪽 가죽 샌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 잠깐… 저 사람, 한쪽 샌들이 없잖아?”
“예언이 사실이라면 저 사람이 왕위를…”
“에이 설마, 펠리아스 왕이 왕위를 순순히 넘겨주겠어?”
때마침 이올코스에는 한쪽에만 샌들을 신은 젊은이가 왕위를 차지할 것이다.
라는 헤라의 신탁이 내려진 상태였기에, 그는 뭇 사람들의 수근거림을 받으며 왕성으로 나아갔다.
“으음. 그래 아이손 형님의 아들이라고?”
“예. 저는 이올코스의 왕자인 이아손입니다. 제가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를 요구하러 왔습니다!”
“으으으음…”
당연하게도 펠리아스는 이아손에게 왕위를 넘기기 싫었다.
하지만 헤라 여신의 신탁도 걸리고, 여기서 이아손을 죽여버린다면 저승에서 받을 심판도 두려웠다.
심지어 요즘 들어서는 자신과 같은 포세이돈의 자식들이 이상하게 착해지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헤라 여신의 신탁에, 저승에는 플루토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고, 아버지 포세이돈의 배다른 자식들의 근황도 이상하다…’
그냥 왕위를 넘겨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던 펠리아스였지만,
그래도 권력욕을 포기하기는 어려웠는지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자신이 직접 죽이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이아손. 왕위는 넘겨줄 수 있지만, 이 땅을 다스릴 네가 어떤 사람인지 그 자격을 증명해야 하지 않겠느냐?”
“자격이라면…”
“동방의 콜키스라는 곳에 황금 양털이라는 보물이 있다고 들었다. 그 황금 양털은 나라를 부흥시키는 힘이 있다는데… 그걸 가져온다면 기꺼이 왕위를 물려주마.”
이아손의 생각에, 자신이 곧바로 왕위에 오른다고 백성들이 따라줄 것 같지도 않았다.
펠리아스의 말대로 그는 어떠한 것도 증명하지 못한 젊은이였을 뿐이니까.
그는 흔쾌히 황금 양털을 가져오겠다고 말하고, 왕궁을 나서서 목을 가다듬었다.
이아손의 목소리가 공터에 울려퍼지며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나는! 이올코스의 정당한 후계자인 이아손이오! 나와 함께 콜키스의 황금 양털을 구하러 갈 영웅들이 필요한데, 다음 타나토스의 날까지 신청을 받겠소이다!”
“콜키스의 황금 양털? 그 귀한 보물을?”
“그걸 우리 나라에 가지고 온다면 왕이 될 수도 있겠네.”
“하지만 그건 강력한 용이 지키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
“그래서 저렇게 영웅들을 모아 원정대를 꾸리려는 것 아닌가? 예전의 오리온처럼.”
“아토스 산 원정대는 반쯤 실패했다는데,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
이아손의 황금 양털 원정대에 대한 소문은 그리스에 퍼져나갔다.
괴물을 물리치고, 보물을 가져온다는 위업을 달성하여 위명을 높이고 싶은 것은 영웅들의 본능.
곧 수많은 이들이 가지각색의 욕망을 품은 채 이올코스로 모여들었다.
* * *
이곳은 이올코스.
이아손이 원정대를 꾸린다는 소식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지만, 이 모든 자들이 원정에 참여할 수는 없었다.
“모두 주목하시오! 우리 모두가 저 아르고 호에 탈 수는 없소! 그러니 인원을 가려 뽑겠소이다!”
“아르고 호? 저 배의 이름이 아르고 호인가.”
“아테나 여신이 직접 설계했다는 소문이 돌던데, 장인 아르고스가 만들었다고…”
“그런데 여기 모인 자들만 수백이 넘는데 어떻게 원정대를 꾸리지.”
“이아손이라는 자가 알아서 선별하지 않을까? 테베 출신의 영웅들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널리 퍼졌으니 그 자들 위주로 뽑을 걸?”
이아손의 외침에 수많은 인파가 웅성거린다.
그리고 목을 가다듬은 이아손이 사람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원정대원을 뽑기 시작했다.
“나는 저기 스파르타에서 온 트리…”
“탈락이오. 당신은 사람을 죽이고 다닌다는 소문이…”
“이아손, 오랜만이다.”
“오. 펠레우스! 어서 오게나. 요새 사냥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오르페우스? 자네도 온 건가? 배에서 음악을 연주할 자도 있으면 좋긴 하다만…”
“바다에 세이렌의 울음소리가 그토록 감미롭다는데, 내 리라 소리보다 뛰어난지 궁금해서.”
“허, 네 리라 소리를 한번이라도 들어본 자는 당연히 너를 우위에 둘 거다.”
이아손의 원정대는 하나 둘씩 채워졌다.
여인의 몸이지만 그리스 최고의 신궁으로 이름 높은 아탈란테(Atalanta), 그리스에서 제일 창을 잘 던진다고 소문난 멜레아그로스(Meleager).
제우스의 자식들인 쌍둥이 형제 디오스쿠로이(Dioscuri)들을 비롯해 온갖 반신들과 쟁쟁한 영웅들이 뽑혔다.
“정말 오랜만이다. 테베에서 본 이후로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이아손, 네가 원정대를 만들줄은 상상도 못했어.”
“그러니까 말이야. 원래부터 인망은 있었지만 원정대라니…”
이아손의 기준대로 원정대원들을 뽑고 나니, 모두가 테베에서 훈련을 받은 자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테베 출신의 인맥인지, 저승에서 함께 구른 기억이 있어서인지, 누가 누구인지 서로 알고 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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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슬슬 신들에게 순조로운 항해를 기원하는 제물을 바치고 출항하려는데,
빽빽하게 운집된 인파가 반으로 갈라졌다. 누군가를 위한 길을 터주듯.
터벅터벅.
“잠깐… 저 사람은…”
“소문으로 들은 그대로잖아. 저 덩치를 보라고. 네메아의 사자도 맨손으로 때려잡는다는 말이…”
“이번 원정은 성공하겠는데?”
머리에 뒤집어 쓴 사자 가죽, 허리춤의 황금 검, 등에는 쇠몽둥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확실한 그 엄청난 근육질의 덩치.
그리스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헤라의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대영웅 헤라클레스.
“오, 헤라클레스! 네가 와준다면 정말 고맙지. 헤라 님의 과업을 수행하느라 바쁜 줄로 알았는데!”
“이아손. 오랜만이다.”
그리스에서 제일 유명한 대영웅의 등장에 누구는 반가움을, 누군가는 안도를,
자신의 위업을 빼앗길 것을 걱정하는 자는 질투를 드러냈다.
“원래 올 생각은 없었는데, 트리톤 님께서 조언하시더군.”
“파도를 부르는 트리톤? 해신의 아들을 만났구나.”
“이 원정에 참여하는 것이 내 목표를 이루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하시더군.”
헤라클레스의 목표가 저 하늘의 신이 되는 것이라는 걸 모르는 자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저승에서 함께 훈련받을 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으니.
“너는 괜찮은 거냐? 내가 여기 참여하면 네 위업이 폄훼될 수도 있는데.”
얼핏 들었을 때 도발로 착각할 정도의 말.
그러나 말하는 이가 헤라클레스라면 조금 달라진다. 순수하게 진실만을 말한 것이겠지.
헤라클레스의 명성에 가려져 원정대의 위업이 낮게 평가될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이아손은 오히려 활짝 웃으며 헤라클레스의 등을 두들겼다.
“하하하! 내 걱정을 해주는 건가? 어차피 우리는 다른 길을 걷고 있으니 상관없지!”
“다른 길?”
“그래, 너는 신이 되는 것이 목표지만. 나는 이올코스의 왕이 되는 게 목표니까.”
저승에서도… 이아손은 늘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의 목표는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닌, 이올코스의 왕위를 되찾는 것.
“그래? 참고로 나는 잘 나서지 않을 거다. 너희 위업을 전부 빼앗을 수는 없지.”
“오오, 그건 다른 영웅들이 기뻐할 소리로군? 하하!”
헤라클레스는 눈앞의 이 경박스럽기까지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원정이 어찌 끝날지는 모르겠으나, 친우를 만난 것은 즐거운 일.
“하하하! 헤라클레스, 나중에 다시 겨뤄보자고!”
“올림포스 신이 되기 전에 이승에서 한 방 먹여줄 테니 각오해라!”
“왔으면 무게 잡지 말고 빨리 타!”
“어이, 헤라클레스! 위업 몇 개 달성하더니 아주 위엄이 넘치군, 그래. 흐흐!”
뒤이어 다른 영웅들도 헤라클레스를 환영했고, 입꼬리를 올린 대영웅이 아르고 호에 올라탔다.
아르고노트(Argonaut)들.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