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35)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35화(135/140)
아르고 호 원정대 – (2)
수많은 영웅들이 모인 아르고 호 원정대.
시민들은 이들의 행보에 주목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략 50여명 정도의 영웅을 통솔할 원정대의 대장은 과연 누구일까?
원정대를 모은 이아손? 아니면 멜레아그로스?
아니지, 역시… 위대한 대영웅 헤라클레스가 아닐까?
“원정대장을 정하는 데에 싸움이 일어날지도 몰라.”
“그럼 역시 헤라클레스가 아르고 호를 이끌 가능성이 높겠군.”
시민들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의 선장(대장)을 정하는 논의는 매우 간단하게 끝났다.
이들은 테베, 아니 저승에서 생사고락을 넘나든 동료들.
그 누구보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아손. 네가 선장을 맡아라.”
“나도 불만 없어. 이건 네가 왕의 자리에 오르는 원정길 아닌가?”
“의사의 입장에서도 네가 제격이다. 아픈 놈들이 있으면 알아서 내가 있는 곳으로 보내라고.”
“헤라클레스, 너는?”
“당연히 나도 이아손이 맞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난 애초에 잘 나서지도 않을 테니까.”
저승에서 받은 훈련은 괴물들과 싸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학식을 가꾸고, 각종 예의범절을 배우며, 훈련생들 간에 모의전을 하는 것 역시 포함되었다.
물론 무적의 영웅인 헤라클레스가 모두를 때려눕혔지만, 그가 모의전에 참여하지 않을 때에는…
“하하하! 좋아, 그럼 내 배에 타고 있을 때에는 모두 내 백성인거다!”
이아손이 지휘를 맡은 쪽이 늘 이겼기 때문에.
* * *
아르고 호가 이올코스를 떠난 지 이틀이 지났다.
바닷바람이 몰아치고, 차가운 공기가 영웅들의 옷을 파고드는 밤이 되었고,
영웅들은 저마다 아르고 호의 한쪽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할 준비를 마쳤다.
음악의 영웅 오르페우스가 뜯는 리라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는 와중, 헤라클레스는 이아손에게 다가갔다.
그는 신중한 얼굴로 지도를 보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헤라클레스? 휘프노스가 내려주는 안식에 빠지지 않고 여기서 뭐해? 벌써 신이 되어서 잠이 필요 없게 된 거라면…”
“신이 어디 그렇게 쉽게 될 수 있는 게 아니더군.”
“…당연한 거 아니냐?”
마치 신이 되는 것을 쉽게 생각했다는 듯한 대영웅의 말에 이아손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애초에 영웅은 고사하고 왕에 오르는 것도 이리 힘든데 말이지. 날 보라고, 숙부에게 빼앗긴 왕위를 되찾기 위해 이 고생이다.”
“황금 양털을 얻고 이올코스의 왕이 되면, 넌 뭘 할거냐?”
“뭘 할거냐니… 백성들을 다스려야지.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이냐, 신이 되고 싶은 네 목표 때문에?”
헤라클레스가 조금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덤덤한 눈이 이아손에게 향했다.
“그나마 네가 이런 쪽에서는 머리가 잘 돌아가니까.”
“흐흠! 그렇지. 선원의 고충을 듣는 것 역시 선장의 역할이니까. 그런데 조금 놀라운데? 그리스 전역에 이름 높은 대영웅의 고민이 신이 되는 방법을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는 거라니!”
“…놀리지 말고. 진지하게 말해봐라.”
잠시 헤라클레스의 등을 때리며 웃던 이아손이 웃음을 그쳤다.
“음… 네 고민을 내가 어떻게 해결해주냐?”
“뭐라고?!”
“아니, 그렇잖아. 아르고 호에서 제일 신의 자리에 가까운 게 너인데, 너 스스로가 몰라서 묻는 걸 내가 어떻게 아냐?”
실망감에 물드는 헤라클레스.
하지만 이아손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헤라클레스, 영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 당연히 괴물을 죽이거나 자신의 특기로 명성을 쌓아야지.”
“그럼 왕이 되려면 뭘 해야 하지?”
“너처럼 위업을 통해 백성들의 지지를 모으고 자격을 증명하거나, 혈통으로 물려받는…”
“그럼 신이 되려면,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과는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
이아손이 툭 내뱉은 말에, 헤라클레스는 불현듯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과업들은 전부… 영웅이 되는 길을 걷고 있었지 않은가?
신이 되려면 신의 길을 걸어야 하는데, 자신은 영웅의 길을 걷고 있었다.
물론 위업이나 그 자신의 힘도 도움이 되겠지만. 신이 되는 결정적인 방법은 신의 길을 걷는 것.
“신격은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존재. 단순히 그런 생각만을 가지고 있어서는 아무리 위업을 쌓아도… 절대로 신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너는 오히려 인간들과 어울려야 할 필요가 보이는군.”
대영웅의 머릿속에 저승의 주인과 파도를 부르는 자의 조언이 스쳐 지나갔다.
그저 적을 때려부수고, 놀라운 위업을 쌓는 것만으로는 절대 신이 될 수 없다.
“고맙다. 이아손. 많은 도움이 되었어.”
“음? 그럼 이제 신이 되는 건가? 오오 헤라클레스 신이시여! 저를 왕으로 만들어주소서!”
“…장난치지 마라.”
진지한 분위기는 바람처럼 사라지고, 실실 웃는 장난기 많은 청년으로 돌아온 이아손.
헤라클레스는 그와 잠시 담소를 나누다가 선실로 돌아갔다.
* * *
다음날,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을 보며 활쏘기 시합이 있었다.
아르고 호에 탄 유일한 여성 영웅인 아탈란테가 십여 발의 화살을 연속으로 발사하는 놀라운 기예를 보여주며 우승을 차지했고…
“아탈란테, 네 활 솜씨는 여전하네.”
“훗. 그리스 제일의 궁수가 바로 나다.”
“그런데 저기 섬이 하나 있군. 저 섬에서 물자를 보충하자고!”
그들은 곧 한 섬에 도착했다.
제법 커다랗고 사람들이 많이 사는 것 같아 보이는 섬.
그런데 아르고 호가 가까이 다가가도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큰 섬 같은데, 이곳에 사는 자들이 없는 것인가?”
“그럴 리가, 저쪽에 집도 있고…”
이에 이상하게 여긴 그들은 섬 안 깊숙히 들어갔다.
그곳에는 참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물빛 머리칼의 여인 앞에서, 잔뜩 두들겨 맞은 듯한 남성이 조아리는 모습이었다.
주변에는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 역시 두려움에 떨며 여인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또 지나가는 사람들을 때려 죽일 것이냐?”
“아. 아닙니다! 잘못했습니다! 로데(Rhode) 여신이시여!”
“한번만 더 네놈에 대한 소문이 바닷속까지 들린다면… 아버지가 뭐라 하시든 너를 저승으로 보내버리겠다.”
이아손과 아르고 호의 영웅들은 잠시 어리둥절했으나,
그 신비로운 여인에게서 들린 목소리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황금 양털을 구하려는 영웅들인가? 이자는 바다의 이름을 더럽혔기에 징벌했을 뿐이니 신경 쓸 것 없다.”
“자.. 잠깐! 혹시 신이십니까? 어느 분이신지…”
“나는 포세이돈 님의 적녀(嫡女), 로데라고 한다.”
물빛 머리칼의 여신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바닥에 조아리던 남성이 천천히 일어난다.
그가 풀린 눈동자로 원정대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필요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무엇이든지 말씀만 해주십쇼.”
“…당신은 왜 여신의 징벌을 받고 있던 것이오?”
이아손의 질문에 그 남자는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아뮈코스 왕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포세이돈을 아버지로 둔 반신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주먹질로 죽였기에 로데 여신이 찾아왔다는 사실까지 전부.
원정대는 꺼림칙한 눈으로 그 섬에서 물자를 얻고 다시 길을 나섰다.
* * *
다시 길을 나선 아르고 호 원정대는 한 섬에서 피네우스(Phineus)라는 왕을 만났다.
제우스의 분노를 사서 눈이 멀었으며, 음식을 먹으려고 하면 하피들이 날아와서 먹어치우는 바람에 굶어죽기 일보직전인 그.
“제티스! 칼라이스! 너희들은 하늘을 날 수 있으니 하피들을 쫒아내!”
“알겠다. 이아손!”
다행히도 북풍의 신, 보레아스의 쌍둥이 아들들인 제티스와 칼라이스들이 원정대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하피들을 몰아낼 수 있었고.
“하피들을 몰아내줬으니, 앞으로 당신들에게 닥칠 위험을 알려주겠네.”
왕에게서 받은 이런저런 조언을 토대로 서로 부딪히는 거대한 바위를 지나가는 방법도 알려주었고, 각종 이정표가 될 만한 정보들을 말해주었다.
그렇게 그리스 전역의 영웅들이 모인 원정은 계속되었다.
중간에 내린 섬에서 갑자기 헤라클레스의 시종인 힐라스가 실종되는 일이 있었긴 했지만…
“젠장. 일단 여정이 바쁘니 출발하고, 나중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힐라스를 찾아봐야겠어.”
“음? 그래도 되나, 헤라클레스?”
“어쩔 수 없지. 우리는 어서 황금 양털을 가지고 와야 하니까.”
“아니… 너랑 저 시종이 마음을 통하는 사이인 줄로만…”
원정대 중 하나였던 텔라몬의 질문에 헤라클레스는 황당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는 플루토를 주신으로 섬기는 테베 출신. 당연히 가치관도 그리스 인들과 조금 다르다.
“테베 사람들은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아.”
“아.. 아아. 그렇지. 크흠! 내가 실례했구만.”
아르고 호 원정대는 놀랍게도 순항했다.
중간에 나타난 괴물들은 저승에서 훈련받은 영웅들의 힘에 미치지 못했으며, 각종 신들의 축복 역시도 함께했기 때문에.
그러나 이 여정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자도 있었다.
영웅들이 경외하고, 또 두려워하는 신. 그 중에서도 신격의 정점에 있는 프로토게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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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는 생각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기가스라도 보내지 않는 이상, 저 헤라클레스를 죽일 수 있는 괴물은 없다.
신의 손을 빌려서 죽이는 방법도, 독에 의한 암살도, 크리사오르와 라미아에 의한 습격도 통하지 않았으니…
저 예언의 영웅은. 그녀와 기가스를 무너뜨릴 신들의 병기가 분명했다.
대영웅 헤라클레스를 죽이지 못한다면 패배한다.
벼랑 끝에 몰린 그녀는 다소의 희생을 감수하기로 했다.
아무리 생명을 보듬는 대지모신의 성질을 가진 그녀였지만… 올림포스에 대한 원한도 못지 않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