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36)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36화(136/140)
아르고 호 원정대 – (3)
아르고 호의 영웅들은 너무나도 지루한 나날에 오히려 불안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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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 단련한 그들에게 원정 도중 나타나는 괴물들은 너무나도 약했기 때문에.
종종 괴물이 나오거나,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해결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헤라클레스가 팔짱만 끼고 나서지 않아도 그들 선에서 모두 처리되었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상. 이는 좋지 못한 징조.
원정이 이상하게 쉽사리 흘러간다면, 무언가 다른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너무 쉬우니까 불안한데?”
“저번에 서로 부딪히는 거대한 바위들도 사실 부수려고 마음먹었다면…”
“행운의 여신께서 우릴 비호하시는 걸지도 몰라.”
영웅들은 노를 저으며 원정의 난이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업도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하는 법.
♪
“쯧. 이러면 다치는 놈들도 없고… 아르고 호에 탄 보람이 없는데.”
“하아아. 아스클레피오스… 네놈은 우리가 다치길 비는 거냐.”
“냅둬라. 한두 번이어야지.”
“의술을 연구하던 말건, 일단 우리 몸부터 챙겨주면 안되는…”
그렇게 그들은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항해를 이어나갔다.
영웅 동료들과 함께 한가하게 떠드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 ♫
그래, 이렇게 주변에서 감미로운 소리도 들리고 말이야.
정말로 듣기 좋은 걸? 조금만 더 듣고 싶은데… 아, 저기 미녀들이 부르는 노래구만.
바위 위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잖아.
노래는 감미롭고, 외모는 아름답고, 기분은 좋아진다.
그런데 거리가 너무 멀어서 들리지 않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간다면 잘 들리지 않을까?
~♬ ♩ ♬ ♫
봐, 저렇게 나를 애태우고 유혹하는데.
그녀들에게 가까이 간다고 무슨 일이라도 생기겠어?
…
……
………
원정대를 휘감는 이상을 제일 먼저 눈치챈 것은 항상 음악과 함께하던 오르페우스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리라를 들어, 최선을 다해 연주하기 시작했다.
띠리링 ~ ♬ ♩
이내 두 음정이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모두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영웅들의 벌려진 입에서 침이 흐르고,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칼로 자신의 손등을 긋는 자도 생겨났다.
칼도, 창도 휘둘러지지 않는 치열한 전쟁은 곧 오르페우스의 승리로 끝났다.
바위 위에 있던 세 여인.
아니… 새의 몸을 하고 인간의 머리를 한 세 마리의 괴물들.
그들이 입을 닫고 오르페우스를 노려보았기 때문에.
그제서야 영웅들은 숨을 토해내며 말할 수 있었다.
“젠장! 저것들은 세이렌(Siren)들이잖아! 목소리로 뱃사람들을 홀려 죽인다는 괴물들!”
“허억… 오르페우스가 없었다면 정말 큰일날 뻔했군.”
“청각기관에는 이상이 없는데, 목소리에 담긴 특이한 힘이 뇌에 작용하는 건가?”
“넌 이 순간에도 의학 이야기냐. 아스클레피오스!”
방금의 노랫소리에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대영웅 헤라클레스 뿐.
그는 쇠몽둥이를 잡고 일어나려다가 어정쩡하게 다시 앉은 자세를 하고 있었다.
“헤라클레스! 이럴 때는 좀 구해달라고! 오르페우스의 업적을 빼앗는 걸 걱정하지 말고, 내 목숨을 좀!”
“아니… 그냥 오르페우스가 정신을 차리고 리라를 연주하길래 해결될 거라고 믿은 거다. 이아손.”
“헤라클레스는 정말 대단하군. 나도 아버지께서 신인데, 방금 노랫소리에는 전혀 저항하지 못했다고.”
“정말로 헤라클레스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신이 되어가는 건 아니야? 하하!”
“그럴 리가! 그럼 당장 헤라클레스 신을 믿어야지. 이번 원정을 잘 끝내달라고!”
영웅들의 농담에 분위기가 풀리고, 다들 쓴웃음을 지으며 노를 저었다.
오르페우스는 피곤한 얼굴로 아직도 리라를 붙잡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세이렌과의 노래 대결에서 승리했다는 성취감과, 깨달음이 묻어나왔다.
음악의 영웅이 이미 지나친 세이렌들을 향해 돌아보며 리라를 슬쩍 들어올리자,
멀리서 괴물들의 분노 섞인 괴성이 들려왔다.
“이제 이올코스가 멀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황금 양털을 얻을 수 있어.”
* * *
영웅. 그것도 예언의 영웅 헤라클레스가 포함된 50여명 가량의 정예들.
그들의 일대기는 당연하게도 많은 신들이 주목하고 있었다.
올림포스도, 저승도, 세계에 별 관심이 없는 프로토게노이들도.
하계를 주시하며 흥미롭게 바라보는 연극.
그런데 모두가 이 연극을 주시하는 것을 틈타, 한 나라에서 또다시 문제가 일어났으니…
“하데스 님. 지금 태양신 아폴론께서 인간 여성을 납치해 그녀의 약혼자와 대치중입니다.”
“…또냐?”
“에우에노스 왕의 딸인 마르펫사 공주가 아폴론 신에게 납치된 장본인입니다.”
저승의 옥좌에서 아르고 호 원정을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정의의 여신, 디케가 다가와 아폴론의 범죄를 고발했다.
제발. 아폴론은 이성의 신인데 대체 왜 종종 이러는 건지.
신들과 기가스의 결전이 점점 가까워져 이성이 흔들리는 건가? 또 여자 문제라니.
“다프네나 코로니스 때도 그렇고, 아폴론은 여자와 관련되면 이성을 잃어버리는군.”
“이다스라는 인간 남성과 전차를 타고 하늘에서 싸우고…”
“인간이 아폴론과 싸우고 있다고?”
위대한 태양신에게 감히 맞설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 헤라클레스도 아폴론과 싸운다면 온 몸이 새까맣게 타들어가 저승으로 오겠지.
약혼녀도 빼앗고, 목숨도 거두기에는 실날같은 양심이 찔린 걸까.
아니… 그런 양심이 있었다면 애초에 인간의 약혼녀를 빼앗으면 안되는 거 아닌가?
이승에 괜히 모습을 드러내면 또 소란스러워질 테니 모습을 감추고 조용히 나갔다.
최근에는 저승도 그리 바쁘지 않고 할 일도 없겠다. 조카를 끌고 오는 겸, 이승 나들이나 하러 갈까.
이왕 나가는 김에 티폰의 몸뚱이가 있는 에트나 산의 현황도 살펴봐야지.
* * *
이다스(Idas).
포세이돈의 반신반인 자식이자, 굉장히 담대하고 용맹한 자다.
아레스의 아들인 에우에노스 왕은 마르펫사 공주의 청혼자들을 상대로 마차 경주를 하여 진 자들을 처형시켰는데,
정의의 여신인 디케가 그의 꿈에 나타나 엄포를 놓은 이후로는 그 짓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이다스는 자신의 아버지인 포세이돈에게서 받은 날개 달린 전차를 몰아 에우에노스 왕을 이기고,
그의 딸인 마르펫사 공주의 약혼자가 되었지만…
“으아악! 하늘에서 열기가…! 위에서 마차가 내려온다!”
“뭐… 뭐야?!”
“네 미모가 아름답구나. 너는 이제 내 것이다.”
마르펫사 공주의 미모에 반한 아폴론이 자신의 마차를 몰고 그녀를 납치했다.
그리스에서 아름다운 여성이 신에게 납치당하는 것은 매우 빈번한 일.
“아무리 신이라도 그렇지, 남의 아내를 빼앗는 겁니까!”
이다스는 상대가 태양신임에도 굴하지 않고 전차를 몰고 아폴론을 추격했다.
그 자신이 반신반인이지만, 태양의 눈길 한 번이면 타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은 머릿속에 이미 없었다.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자신을 따라오는 이다스를 발견한 아폴론의 얼굴은 구겨지고,
곧 그를 죽여버리려고 했으나…
‘젠장. 저 놈은 포세이돈 님의 자식이군. 저번에 오리온 놈을 죽여서 벌을 받은 것도 그렇고… 칫.’
포세이돈의 자식인 오리온을 죽여버리고 벌을 받은 아폴론은 그를 향해 손을 쓰지 못했다.
여기서 문제를 키워버리면 태양이 또다시 달에게 가려질 수도 있으니까.
결국 태양신은 전차를 모는 기술만으로 그를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포세이돈이 이다스에게 선물한 날개 달린 전차 역시 신물이었기에 그들의 대결은 길어졌다.
“포기해라! 이 여인은 내 것이다!”
“정당한 제 아내입니다! 돌려주십시오!”
그들은 하늘을 누비며 사방을 소란스럽게 했고…
지속된 소음으로 짜증이 난 제우스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는 나, 하데스가 나타나 아폴론을 야단치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쪽을 바라보는 제우스를 잠시 올려다보다가 다시 아폴론에게 말했다.
“인간, 그것도 약혼자가 있는 여성을 납치하는 태양신이라니…”
“……;;”
“좋아. 이번 분기는 네가 저승에 오면 되겠구나.”
반으로 갈라진 아폴론의 전차와, 우물쭈물하며 고개를 숙인 태양신.
그리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조아리는 이다스와 마르펫사.
내 목소리를 들은 아폴론이 속도를 줄이고 지상으로 내려와 고개를 숙이자…
인간들도 다른 신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챈 모양.
“저 인간은 너랑 달리 불로불사가 아니다. 태양신인 너도 저 여인의 곁에 항상 붙어있을 수도 없고.”
“죄송합니다…”
마침 제우스가 이곳의 상황을 살펴보라고 헤르메스를 내려보냈기에, 잘 설명해 돌려보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이 터지는데… 정말 누군가 올림포스에 저주라도 한 것은 아니겠지?
* * *
하데스가 아폴론을 야단칠 무렵, 아르고 호 원정대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기나긴 원정 끝에 황금 양털이 있다는 콜키스(Colchis)에 도달한 것.
원정대원들은 모두 배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늦은 밤.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치맛자락이 세상을 뒤덮을 시간.
“이곳이 콜키스인가? 어두워서 그런지 사람이 보이지 않네.”
“그래도 아르고 호 정도의 배는 제법 커서 멀리서도 보일 텐데, 콜키스의 왕에게 전달이…”
“뭔가 이상해… 냄새가…”
“잠깐… 쉿! 저쪽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린다!”
“나도 들었어. 분명 비명 소리였는데?”
오랜 항해를 마친 원정대원들을 맞이한 것은 희미한 비명과…
무언가 쫒기고, 불타고, 부서지고, 도망치는 소리.
그렇게 황급히 해변을 지나고 울창한 숲을 넘어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향한 그들의 눈앞에는…
“꺄아아악! 살려주세요!”
“빨리 이쪽으로 와! 도시가 불타고 있다고!”
“엄마아! 으아앙!”
불바다가 된 도시에서 도망치는 사람들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