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37)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37화(137/140)
아르고 호 원정대 – (4)
아르고 호의 영웅들은 이 예상 밖의 사태에 당황했다.
콜키스의 황금 양털은 도시의 보물. 당연히 치열한 전투나 계략을 각오하고 있었지만…
도시가 불타고, 사람들은 도망친다니?
이러면 황금 양털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 일단 영웅으로서 사람들을 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눈살을 찌푸리던 이아손은 얼굴에 검댕을 잔뜩 뭍히고 도망치는 한 여성의 팔을 붙잡았다.
황망한 얼굴로 달려가던 그녀는, 자신의 팔을 붙잡은 이아손과 뒤의 영웅들을 보고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히익…!”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니오. 우리는 배를 타고 방금 콜키스로 왔는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오?”
“그.. 그게… 일단 빨리 도망치세요! 괴물, 괴물이…”
“괴물이라니, 우리는 괴물을 죽이는 영웅들이오. 당신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저. 저쪽에 왕녀님께서 계세요! 저는 놔주세요!”
“…왕녀?”
이아손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여인은 놔주고 그녀의 마지막 말을 읍조렸다.
저쪽에 콜키스의 왕녀가 있고, 그녀를 도와달라는 말인가?
“괴물이라니, 대체 어떤 놈이길래!”
“방금 도망친 여인이 말한 곳으로 가보자.”
“그래. 설명을 들어야 하니 그곳으로…”
“도. 도와주세요! 아빠가 집 밑에 깔려서…”
“이아손. 먼저 가라!”
“금방 따라와야 해, 헤라클레스!”
일단 무기를 꺼내들고 이동하려는 영웅들의 주변에 박살난 집에서 신음하는 이들이 눈에 보였다.
불바다가 된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기침하는 노인, 통째로 무너진 건물 앞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몇몇 영웅들이 대열에서 빠져나와 사람들을 구출한다. 아스클레피오스가 늘 들고 다니던 베낭에서 약초를 꺼내고,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놓고 부상자들을 옮겼다.
크라라라ㅡ!!!!
“으아아악!”
“허억… 사람. 사람 살려어어!”
검은 연기와 잿가루가 날아다니는 이곳은, 도저히 번영했던 도시인 콜키스라고 볼 수 없었다.
어디선가 끔찍한 비명 소리와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 병사들의 함성과 괴성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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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탁탁탁.
아르고 호의 영웅들을 다급히 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자 왕녀가 있다는 곳으로 향했고,
곧 그 원인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었다.
창칼을 겨눈 수많은 군대를 압도적으로 짓밟아버리며 화염을 토해내는 괴물.
감히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몸체. 플루토의 재보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붉은 비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센 불길.
용. 용이다!
테베의 시초.
티폰을 속여넘기고 제우스의 힘줄을 되찾은 자.
최초이자 최고의 영웅.
이를 비롯해 수많은 업적을 달성한 카드모스 왕이…
전력을 다해 겨우 죽였다는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저런 모습이었을까?
화르르르륵!!!
“크아악!”
“물러나지 마라! 뒤에는 콜키스의 시민들이 있다!”
“모두 방패를 들어올려라! 왕녀님, 지금입니다!”
용의 입에서 뜨거운 업화가 뿜어졌다.
앞에 놓인 모든 것을 불태우는 입김이 단숨에 모두를 집어삼킬 듯 했으나.
“하아… 하… Ένας τοίχος από νερό που τους περιβάλλει όλους!!!”
최후방에서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호위를 받는… 화려한 복장의 여성.
그녀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주문이 튀어나오자, 거대한 물줄기가 땅에서 튀어나오며 화염을 막아선다.
치이이익ㅡ!!
화염과 물의 벽이 맞닿아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생성되어 앞을 가리고, 용의 입에서 뿜어지던 불길이 잠시 멈췄다.
이아손을 비롯한 영웅들이 그녀에게 달려간 것 역시 그때쯤이었다.
“저희는 그리스 전역에서 콜키스로 온 영웅들입니다! 뛰어난 마법사로 보이시는데, 혹시 상황 설명을…”
“무례하다! 이분은 콜키스의 왕녀, 메데이아 님이시다!”
콜키스의 왕녀, 메데이아라고 불린 여성은 빠르게 영웅들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동공에서 얼핏 푸른빛이 스쳐 지나가는가 싶더니, 그들을 막아세운 병사에게 일렀다.
“잠깐! 그분들을 이쪽으로 모셔라!”
이아손 등이 가까이서 본 콜키스의 왕녀는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매우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영웅들 중 그 누구도 흑심을 품을 수 없었다.
크라라라라!!!
“전열을 유지해라! 우리가 무너지면… 컥!”
“빌어먹을 놈이!”
“놈의 발톱을 조심해! 강철 갑옷을 가볍게 뚫어버린다!”
신화적인 괴물이 날뛰는 전장에서, 여인에 눈이 돌아가는 멍청이는 영웅이 될 수 없었기에.
다급한 표정의 메데이아 왕녀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
가까이서 본 그녀의 얼굴은 온통 땀 범벅이였고, 코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여러분은 콜키스 사람이 아니시지요? 저희를 도와주신다면 헤카테 여신님께 맹세코 보답하겠어요!”
“물론 돕겠습니다! 네스토르, 일단 지휘는 자네가 맡게! 나는 왕녀 전하께 설명을 들어야겠으니!”
“멜레아그로스! 투창으로 놈의 눈이나 입을 노려! 아탈란테도!”
“제티스, 우리는 하늘로 올라가 놈을 견제하자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더 없나?!”
“누가 가서 헤라클레스를 데려와!”
이아손에게서 임시로 지휘권을 넘겨받은 네스트로와 영웅들이 용과 맞서는 동안,
아르고 호의 선장은 메데이아 왕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왕녀님, 상황이 급하지만 저 용이 어째서 이곳을 파괴하는지 경위를 자세히 알려주십시오. 신벌이나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린 것이라면…!”
“그런 것이 아니에요. 저 용은 본래 콜키스의 보물, 황금 양털을 지키던 잠들지 않는 용입니다.”
황금 양털을 지키는… 잠들지 않는 용?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저 용이 도시를 파괴하고 있지?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용이 황금 양털을 먹어치웠어요. 제 마법으로 확인해 본 결과, 용의 뱃속에 그것이 있으니까요.”
“아니… 그게 무슨…!”
“그리고 저 용은 온전한 정신이 아니에요. 광기에 휩싸여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죠.”
“광기… 말입니까? 용의 정신력은 인간보다 월등할 텐데…”
화르르륵!!!
“…προστατεύω!”
“흡!”
그들의 대화 도중… 영웅들에게 가로막힌 용이 또다시 화염을 내뿜었고…
메데이아 왕녀의 몸에서 빛이 번뜩인다 싶더니, 병사들을 감싸는 반투명한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비록 왕녀는 무척 지쳐보였지만 그녀의 마법은 이아손이 보아왔던 그 어느 마법사보다 뛰어났다.
그리스 최고의 대마녀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능력.
저 끔찍한 괴물이 콜키스를 단번에 쓸어버리지 못한 까닭은 바로 이 왕녀의 마법 덕분이리라.
다시 한번, 마법을 이용해 용의 공격을 막은 메데이아가 비틀거렸다.
지나친 마법의 사용으로 어지럼증을 느끼는지 머리를 짚은 그녀를 이아손이 부축하며 말했다.
“일단 무슨 소리인지 알겠습니다! 저희들도 저 용을 죽이는 걸 돕도록 하죠!”
* * *
잔해에 깔린 사람들을 구출하고 달려온 헤라클레스.
그가 처음으로 본 광경은 아탈란테의 화살을 용이 비늘로 튕겨내는 장면이었다.
피유우웅ㅡ 티잉!
“말도 안돼! 비늘이 저렇게 단단할 리가 없어!”
“크으… 뭐가 저리 강한 거야?”
“상처가 나질 않아! 빌어먹을! 무슨 축복인가?”
영웅들이 돌아가며 공격을 퍼붓고 있었지만, 붉은 용은 굉장히 강했다.
입에서 뿜어지는 화염은 헤파이스토스의 불길에 못지 않았고 거대한 육신은 가벼운 동작만으로도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으니까.
반면 이쪽은 오히려 병사들을 비롯한 일반인들이 걸림돌이가 되었다. 피할 수 있는 공격도 방패로 흘려야만 했고, 흘릴 수 있는 공격도 뒤를 생각해 버텨야 했으니까.
멜레아그로스의 투창과 아탈란테의 화살이 매섭게 날아갔지만 용은 그르렁대는 울음소리와 함께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이아손! 잔해에 깔린 사람들이 많아 조금 늦었다! 저 용을 죽이면 되겠지?!”
“그래! 헤라클레스! 여기 있는 왕녀 전하의 말대로면, 저놈이 황금 양털을 먹어치웠다는군!”
헤라클레스는 쇠몽둥이를 잡으며 용을 바라보았고,
흉폭한 괴물과 대영웅의 눈이 서로 마주했다.
Kraaaaaㅡ!!!
그 순간, 용이 거센 울음소리와 함께 발을 굴렀다. 대지가 흔들리고, 주변의 건물들이 무너진다.
단순한 발구르기가 아니야. 이건 대체…
이어지는 용의 돌진에 영웅들이 공처럼 튕겨나간다. 방패를 든 병사들은 순식간에 육편으로 변하고, 불씨와 함께 선혈이 허공에 흩날린다.
메데이아가 만들어낸 방어벽이 산산조각나고, 왕녀가 코에서 피를 흘리며 주저앉았다.
“크으으윽! 갑자기 이런 힘을…”
“방패… 방패를 들어어어! 왕녀 전하께 접근하도록 놔두면 안 된다!”
“암피온! 에르기노스! 피해라!”
“젠장… 부테스가 당했어! 저 놈, 설마 힘을 아껴두고 있었던…!”
이쪽으로 무섭게 다가오는 붉은 눈동자. 그리고 날아드는 발톱.
카캉!
쇠몽둥이와 용의 발톱이 부딪히며 거센 불똥이 튀었다. 그제서야 헤라클레스는 용의 눈동자를 가까이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증오로 가득찬 붉은 동공, 열기가 아닌 광기가 느껴지는 감정.
‘나를 노리는 건가?’
후우웅- 카아앙!
다시 한번. 거세게 휘둘러지는 발톱을 쇠몽둥이로 받아낸 헤라클레스.
묵직한 감각이 손끝을 타고 온 몸에 전달되었다. 일반적인 영웅이었다면 단번에 몸이 갈라졌겠지.
이 잠들지 않는 용은 다른 무엇에도 신경 쓰지 않고 그를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메데이아 왕녀의 마법에도, 영웅들이 던지는 창이나 칼날도… 그에게 집중하는 괴물의 신경을 돌리지 못했다.
어째서 이럴 수가 있지? 놈이 아무리 강해도 괴물일 뿐인데.
카카카캉!! 화르륵ㅡ!
다시 한번, 용의 발톱을 막아내고 몸을 굴려 화염을 피한 헤라클레스는 기시감을 느꼈다.
히드라나 네메아의 사자들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마치 트리톤이나 메가이라 여신님과 싸웠을 때와 비슷한 감각.
군신의 아들인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로 이 붉은 용보다 강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애초에 그는 진작 카드모스 왕을 뛰어넘었으니까.
쿠우우웅!
“무… 무슨! 저걸 막아내다니!”
“…저자는 대체 누구지?”
대영웅은 어째서인지 주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도시를 불태운 용의 공격을 단신으로, 그것도 정면에서 받아내고 있는 그에 대한 동경.
안도감. 기대감. 소망. 애원. 간절함. 그리고 희망.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헤라클레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
“…단순히 그런 생각만을 가지고 있어서는 아무리 위업을 쌓아도… 절대로 신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너는 오히려 인간들과 어울려야 할 필요가 보이는군.”
“그럼 신이 되려면,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과는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용과 싸우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는 병사가 있었다. 눈빛을 빛내며 주문을 외우는 콜키스의 왕녀가 있었다.
자신에게 질투와 동경의 감정을 보이던 영웅들이 그를 향해 간절하게 소리치는 게 보였다. 도망치던 피난민들이 놀란 기색으로 이쪽을 가리킨다…
아까 잔해 속에서 사람들을 구할 때, 그들이 내게 뭐라고 했더라.
분명… 양 손을 모아 말했었지.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인간은 신을 찾는다. 신은 소망을 들어준다.
사람들의 진심 어린 기도를 들을 때마다, 그는 기이한 느낌을 받았었다.
* * *
여태까지 제 힘을 다 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용의 돌진에, 전열이 완전히 무너진 직후.
용과 대영웅의 충돌 때문에 바닥에 나뒹군 이아손은 죽음을 각오했다.
그 충돌에 끼어들 수 있는 자는 없었고, 싸움의 여파만으로 엄청난 폭풍이 휘몰아치는 듯 했으니.
그런 이아손의 귀에 들리는 음성.
“이아손.”
“헤라클레스, 네 목소리냐? 거기서 말하는 게 어떻게 여기까지…”
“헛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한테 기도. 올려줄 수 있냐?”
마치 일상적인 담소를 나누듯, 조곤조곤한 목소리에 귀에 꽂히는 것은 둘째치고.
기도? 신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더니. 참나, 자기가 신이라고 착각하는 건…
“…당연하지!”
하지만 이아손은 기꺼이 헤라클레스의 요청에 응하기로 했다.
왕의 자리를 노리는 야심가의 직감일까. 아니면 친우에 대한 믿음 때문일까.
그의 양 손이 모아졌고, 간절한 바램이 기도를 타고 전달되었다.
인간은 신을 찾는다. 신은 소망을 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