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38)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38화(138/140)
아르고 호 원정대 – (5)
한밤중에 왕궁과 마을을 불태우고, 갑작스럽게 날뛰는 붉은 용.
어째서 황금 양털을 지키던 용이 사람들을 공격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괴물을 막기 위해 소집된 병사들은 이를 악물고 창칼을 들어 올려야만 했다.
뛰어난 마법사로 유명한 메데이아 왕녀님이 없었다면 진작 타나토스가 눈앞에 보였겠지.
그런 그들에게 나타난 뜻밖의 지원군들.
“멜레아그로스! 투창으로 놈의 눈이나 입을 노려! 아탈란테도!”
“제티스, 우리는 하늘로 올라가 놈을 견제하자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더 없나?!”
한눈에 보아도 일당백인 영웅들은 조를 짜 용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이와 비슷한 일을 많이 경험한 듯, 이아손이라는 남자의 지휘 아래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그들.
하지만 용의 몸에는 어떠한 상처도 나지 않았다.
뛰어난 영웅들의 매서운 공격에도 불구하고 철벽 같은 외피는 그대로였다.
도저히 일반적인 괴물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아무리 용이라 해도, 이 많은 영웅들이 공격을 퍼붓고 있는데…
마치 신격에게 달려드는 부나방이 된 느낌.
그런데 그가 나타나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이아손! 잔해에 깔린 사람들이 많아 조금 늦었다! 저 용을 죽이면 되겠지?!”
머리에 뒤집어 쓴 사자 가죽, 쇠몽둥이와 황금 검, 성인 남성을 아이처럼 보이게 만들 정도의 거구.
대영웅 헤라클레스를 따라하는 이들은 콜키스에도 있었지만… 그 남자는 달랐다.
여태까지는 그냥 장난을 치고 있었던 것처럼 광폭하게 날뛰며 달려드는 용.
겨우 유지하던 진형이 무너지며 병사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쿠우우웅!
“무… 무슨! 저걸 막아내다니!”
“…저자는 대체 누구지?”
그자는 조금 달랐다. 여태까지 어떠한 영웅도 정면에서 받아내지 못한 용의 발톱을 쇠몽둥이로 막아내고,
화염을 피하며 반격하는 모습. 그는 버티는 것이 아니라 괴물과 합을 주고받고 있었다!
대영웅을 따라한 얼간이가 아닌, 진짜 헤라클레스가 눈앞에 나타난 게 틀림없었다.
안도감과 희망이라는 감정이 되살아나고 눈앞이 흘러나오는 눈물로 가려진다.
숨을 헐떡이는 병사들의 시야에 이아손이라는 남자가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게 보였다.
대영웅 헤라클레스는 신이 아니라 필멸자.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느 신보다도 그들에게 가까이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하나둘씩 손을 모아 기도하는 병사들.
“저 끔찍한 용으로부터. 콜키스를 구해주소서…”
신이시여.
* * *
Kraaaaaㅡ!!!
입에서 화염을 내뿜는 용과의 싸움. 대영웅 헤라클레스의 얼굴에는 고양감이 가득했다.
다른 인간들은 너무나도 연약했다. 영웅들과의 싸움 역시 마찬가지다. 괴물들은 까다로웠지만 결국 그에게 미치지는 못했다.
메가이라 여신님과의 싸움은 지도 대련에 가까웠고, 트리톤 님과의 겨룸은 너무 짧았다.
반면, 이 용은 달랐다.
스틱스 강물로 강화된 몸에 못지않은 붉은 비늘.
그의 몸에도 상처를 낼 수 있는 뜨거운 화염과 날카로운 발톱.
마치 신과 싸우는 듯한 느낌.
그의 호적수로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흐아아압!!!”
헤라클레스는 결국 용의 발톱에 잘려나가고만 쇠몽둥이를 던져버리고, 용의 날개에 매달려 올라갔다.
날벌레를 떨어뜨리려고 하는 거센 날개짓이 이어졌지만 오히려 대영웅은 거슬리는 날개를 통째로 찢어발겼다.
ㅡ푸화아악!
Kraaaaaa!!!
한쪽 날개가 뜯겨진 용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토해낸다. 거대한 아가리에서 화염이 뿜어져 그에게 직격한다.
가까이에서 뿜어지는 화염에 정면으로 직격당한 헤라클레스의 몸에서 뜨거운 작열통이 느껴졌다.
“하하하하! 더. 더 해봐라아!”
하지만 그 타오르는 고통에도 사그러들지 않는 광소(狂笑).
이게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호적수인가? 테세우스가 말한 싸울 맛 나는 괴물이라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벨레로폰과 싸웠다는 키마이라, 카드모스가 죽였다는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처럼… 그에게도 시련으로 다가온 괴물.
그는 이제 너덜너덜한 용의 왼쪽 날개를 맨손으로 뜯어내고 용에게 주먹질하기 시작했다.
네메아의 사자의 멱살을 잡고 마구 휘둘렀던 주먹질처럼. 가장 원초적인 폭력이 용을 덮쳤다.
퍼어억! 콰지직!
용에게 맨손으로 달려들어 주먹질하는 인간이라니, 눈을 의심하는 광경이 펼쳐졌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용이 고통을 느끼며 그를 떼어놓으려고 안간힘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미친.”
“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제우스시여…”
이 신화적인 싸움에 모두가 경악하며 멍하니 헤라클레스를 바라보았다.
그리스 최고의 마법사도, 대영웅과 오랫동안 함께한 영웅들도, 아르고노트의 리더도.
“하하하하하!”
Kraaaaaaㅡ!!!!
괴물들의 정점인 용과 맨주먹으로 싸우는 인간.
그 이름, 헤라클레스(Hercules).
넘치는 고양감. 어째서인지 솟아오르는 힘. 어째서인지 느껴지지 않는 작열통.
그는 계속해서 뚫리지 않는 비늘을 두드렸다. 반대쪽 날개도 찢고 날아드는 발톱을 맨주먹으로 부수고…
몸에서 흐르는 이 피가 누구의 것인지 모를 정도로 격렬하게.
푸우욱ㅡ
그리고 마침내 날카로운 뿔을 뽑아 놈의 목에 박아넣자,
천천히 숨을 거두는 만물의 정점.
쿠우우웅!
“맙소사… 용을 맨주먹으로 죽여버렸어.”
“…신이시여.”
“대영웅 헤라클레스는, 신이었나?”
“헤라클레스! 괜찮은 거냐! 아스클레피오스 저 놈 상태를 좀…”
“온통 피범벅이잖아! 아니 잠깐만. 네 몸에 왜 상처가.”
쓰러진 용의 머리 위에 올라선 헤라클레스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영웅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신에게 벌어진 현상을 깨달았다.
이렇게나 치열하게 싸웠고, 또 움직였는데 전혀 지치지 않았다.
마치 힘이라는 것이 끝없이 넘쳐흐르는 것만 같았다.
보이는 시야가 변화했다.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헤라클레스. 너 뭔가 달라진…”
“이아손.”
“어. 어?”
“고맙다. 네 덕분이다.”
그는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우에게 웃어보인 다음,
크리사오르에게서 얻은 황금 검으로 용의 목을 잘라 높게 치켜들었다.
“와아아아!!! 우리가 이겼다!”
“감사합니다! 올림포스 신들이시여!”
“콜키스에 영광을! 우리가 시민들을 지켜냈어!”
도시를 불태우던 용은, 새롭게 탄생한 신에 의해 쓰러졌다.
* * *
전장은 빠르게 수습되었다.
용의 뱃속에서 나온 황금 양털은 아르고 호 원정대에게로 넘어갔다.
영웅들에게 큰 도움을 받은 콜키스의 사람들이 소유권을 포기한 것도 있었지만…
“애초에 제 아버지는 용의 불길에 휩싸여 전사하셨어요. 왕위 계승권은 동생이 가지고 있지만, 저랑 이야기가 끝났고요…”
“으음… 아이에테스 폐하의 소식에는 애도를 표합니다.”
“아니에요. 이번 일은 재앙과도 같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죠…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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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의 싸움을 통해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콜키스의 왕녀와 이올코스의 후계자 간의 결합은 양국 모두에게도 이득.
미쳐 날뛰던 용에 의해 입지가 불안정해진 콜키스의 왕족들과, 안 그래도 펠리아스가 순순히 왕위를 물려줄지 모르는 이아손의 사정에도 맞아 떨어졌다.
그렇게 사랑의 힘과 동맹의 필요성이 더해지자 그들의 결합은 일사천리로 이어졌다.
“이아손. 거 왕녀님이 아름다우신 건 알겠다만 조금 떨어지지?”
“젠장. 나는 약혼자도 없는데, 왜 저런 놈만…”
“흠. 흠. 왕녀님. 정말로 저희를 따라 이올코스로 오실 겁니까?”
“사랑이라는 감정도 병이라고 봐야 하나?”
“아무튼 황금 양털을 얻었으니 원정은 성공이네!”
그렇게 콜키스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왕녀, 메데이아는 아르고 호에 올라탓다.
콜키스의 왕녀가 합류한 아르고 호는 더욱 빠르게 이올코스로 돌아갔다.
중간에 나오는 바다 괴물들은 헤라클레스가 노려보자 모두 도망쳤으며…
“아니. 헤라클레스…”
“나는 괴물이 저렇게 도망치는 건 처음 본다.”
“…설마.”
크레타 섬에서 만난 청동 거인, 탈로스.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었다는 이 거인은 주변의 배들을 침몰시키고 다가오는 자들을 죽였으나…
“주먹질 한방에… 하기야 헤라클레스니.”
“원래 제가 마법으로 잠재우려고 했는데…”
“하긴, 힘이 모자란 자들이나 머리를 쓰는 것이지. 암.”
헤라클레스에게 일격에 박살나는 등. 원정대를 가로막을 만한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중간에 사라진 헤라클레스의 시종, 힐라스가 실종된 섬에도 들렀고.
“님프? 혹시 이 섬에서 잘생긴 젊은 남성을 보지 못했나? 이름이 힐라스라고 하는데.”
“그… 그것이…!”
“똑바로 말하지 않는다면 섬을 통째로 가라앉히겠다.”
“히이익…! 죄송합니다! 사실은 언니들이 잘생긴 남성을 납치했다고…”
“님프들이 저렇게 벌벌 떠는 것은 처음 보는군.”
“역시나… 으음.”
어째서인지 헤라클레스와 눈을 마주치지도 못할 정도로 두려워하는 님프들에게서 힐라스도 구출했다.
사정을 알고 보니… 그에게 반한 섬의 님프들이 힐라스를 납치했다는 것.
“…감사합니다. 정말 죽는 줄로만 알았어요.”
“아니, 대체 무슨 일을 당했길래 얼굴이 이리 초췌하냐?”
“볼이 홀쭉해졌는데? 혹사라도 당한 건가?”
“다리는 왜 저리 후들거려…?”
이렇게 많은 경험을 하고 돌아온 원정대는 드디어 육지에 발을 디뎠다.
처음 출발했던 곳, 이올코스로 돌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