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44)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44화(144/179)
마지막 청혼
스틱스와 레테, 페르세포네에게 청혼을 마친 후… 나는 곧장 아케론 강의 뱃사공, 카론에게로 찾아갔다.
그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영혼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카론 님.”
“크흠흠! 이보게 하데스. 내가 일부러 아까 그 인간을 통과시켜 준 것이 아니라. 아니, 그 인간 놈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애원하는데 그 모습은 또 얼마나 간절했고, 리라 연주가 내 마음을…”
“카론 님.”
“내 그 연주를 듣자마자 여태까지 여기서 고생했던 아픈 기억이 주르륵 떠오르지 않나? 자네도 내 심정을 이해한다면…”
살아있는 인간을 내 허락 없이 통과시켜준 자신의 잘못을 아주 잘 아는 듯,
그를 추궁하기도 전에 줄줄이 변명을 늘어놓는 것을 잠시 들어주었다.
잠시 뒤, 변하지 않는 내 표정을 보던 카론이 입을 다물었다.
“…살아있는 인간이 아케론 강을 건너도록 해주셨으니, 앞으로 1년 동안 아케론 강에 배치되는 신은 없을 겁니다.”
“알겠네…”
어디 한번 1년 동안 혼자서 일해보시죠.
올림포스의 지원을 받기 전처럼, 난동부리는 인간 영혼들을 일일히 때려잡아가며 배를 몰아야 할 겁니다.
마음 같아서는 쇠사슬에 1년간 묶어버리고 싶으나… 그러면 배를 몰 신이 아무도 없으니.
잠시 내 눈치를 살피던 카론이 입을 열어 내게 말했다.
“크흠. 그래서 그 인간, 어떻게 되었나? 자네 성격이면 죽여버렸을 것 같기도 한데.”
“안 죽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냉혹한 신이 아닙니다…”
“…? 웬일인가?”
“페르세포네, 아니 코레에게 청혼하려는데 자비 없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저도 안주인에게 밉보이기는 싫어서요.”
내 말을 듣던 뱃사공의 눈이 동그래진다. 왜 그리 놀라시는 거지.
“뭐라고! 자네 드디어 결혼하나?”
“예. 제가 청혼했습니다. 코레뿐만 아니라 다른 여신들과도요.”
“먼저 청혼을 하다니? 신계에서 제일가는 철벽의 신이 무슨 변덕이 도졌나? 차라리 타나토스가 한가하다는 소리를 믿겠…”
“…2년으로 늘립니다?”
다시 입을 다문 카론이 고개를 돌렸다.
쓰읍… 종종 이러신다니까.
* * *
카론과의 대화를 끝내고,마지막으로 멘테에게로 향했다.
비록 멘테 본인은 필멸자 님프 출신의 하급신이라는 것 때문인지.
항상 첩으로라도 받아달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누구 하나만을 차별해 분란이 일어나는 것은 절대 하면 안 될 짓.
안 그래도 평생을 함께할 여신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멘테가 분명… 자신의 친구들을 만나러 이승에 갔다고 했었던가.
그렇다면 역시 티폰의 몸이 봉인된 에트나 산 근처에 있겠네.
덜컥.
“하데스 님! 큰일났어요! 에트나 산에서 티폰의 몸뚱이가 또 날뛰고 있어요…!”
“멘테?!”
멘테가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에트나 산 근처로 향하려는데, 급하게 그녀가 뛰어들어왔다.
얼마나 다급하게 뛰어온 것인지 머리는 산발에 숨을 헐떡이면서.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쉬고 있었는데 에트나 산의 정상에서 불기둥이 일어나고 지진도…!”
티폰이 날뛴다니. 한동안 잠잠했던 놈이 발악을 하는군.
자신의 패배가 머지 않은 것을 예언으로 알아챈 가이아의 속삭임이라도 있었나? 아니면 그냥 주기적인 발작일까?
분화구에서 용암이 분출될 정도라니.
“…지금 바로 가보겠다.”
“저. 저도 같이 가요! 친구들이 무사했는지 볼 겨를도 없어서…”
* * *
혹시 몰라 퀴네에도 챙겨 에트나 산으로 향하니, 역시나 멘테의 말대로 티폰 놈의 몸뚱이가 날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산 정상의 분화구에서는 불길이 마구 솟구치고 있었으며… 자욱한 검은 연기가 사방을 덮었다.
쿠르르릉…
재앙을 예감한 근처의 동물들은 사방으로 도주했고, 식물이나 샘에서 살아가는 님프들은 불안해하며 몸을 사린다.
티폰의 몸이 작정하고 난동을 피우는지 땅울림도 심상치 않는…
“하데스?”
대지에 손을 대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여신 하나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도 이곳에 있었나.
“데메테르. 너도 온 거냐.”
“님프들이 내게 애원하더군. 마침 이 근처에 있었기에 바로 달려왔다.”
“그래서, 알아낸 건? 누군가가 일부러 티폰을 건드렸다던가…”
“잘 모르겠다. 애초에 대지모신이 무언가를 속삭였다면 나는 알 도리가 없지. 기가스들은 평원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고, 티탄들은 전부 벌을 받고 있거나 네 영역인 저승의 아래에 있으니까…”
쿠구구구…
그럼 알아낸 건 없다는 거군. 그래도 데메테르가 빨리 발견해서 다행이다.
그녀의 힘에 의해 대지가 억지로 억눌리며 티폰을 압박하고 있군.
“멘테. 네 친구인 님프들을 보러가지 않아도 되겠나?”
“앗! 네에. 빠르게 다녀올게요!”
멘테가 전차에서 내려 후다닥 떠나고, 대지에 손을 대고 있던 데메테르가 입을 열었다.
어쩐지 싸늘한 목소리로.
“저 하급신은 뭐냐? 설마 내 딸을 놔두고 저런 여신에게 먼저 손대려는 것은 아니겠지?”
“코레에게는 이미 청혼했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잘 들어라, 그 아이는 봄마다 노란 꽃으로 이루어진 화관을 만들며 들판에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고…”
티폰의 난동으로 인해 아비규환이 된 에트나 산 인근에서…
당분간 데메테르가 알려주는 페르세포네의 취향과 좋아하는 것, 온갖 잡담을 들었다.
쿠구궁!
헤파이스토스가 분노한 것만 같은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네.
장모님… 아니 여동생에게 듣는 조카, 아니 아내의 취향 이야기라니.
“하데스? 제대로 듣고 있는 거 맞나? 만약 코레가 너 때문에 슬퍼한다면…”
“…알았으니 그만해라.”
정말이지 걱정도 많네.
하기야 딸의 결혼이니 그럴만도 하겠다만.
* * *
한동안 이어졌던 티폰의 난동이 잠잠해지고 다시 전차로 돌아온 멘테와 함께 다시 어딘가로 향했다.
내 옆에서 재잘재잘 떠드는 멘테. 오랜만에 님프였을 때의 친구들을 보아하니 즐거운 모양이네.
“…그래서요. 그때 제우스 님께 기도를 올렸다는데.”
“멘테. 네가 이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은 오랜만이구나.”
“아… 헤헤. 저승은 제 생각보다 바빠서요. 님프 친구들도 오랜만에 보고…”
하기야 그렇지. 그래도 님프는 자연에 깃든 존재들이니.
그들이 깃든 자연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은, 인간보다 월등히 긴 수명을 가진다.
“다들 제가 기억하던 그대로의 모습이더라고요. 비록 몇몇 친구들은 사라졌지만…”
“음.”
“드라이어드 친구들이라 나무가 망가진 탓에 죽어버렸거든요. 그래도 제가 저승에 속한 신이니, 원할 때 종종 보러갈 수는…”
만약 우연히 멘테와 만나지 못했다면 그녀도 수명이 다해 저승에 왔을지도.
그리고 나는 영원히 민트를 기억하지 못했겠지. 간간히 떠오르는 전생의 기억이지만, 민트… 박하 향기는 조금 더 특별했다.
“멘테. 그거 아느냐?”
“네?”
“네가 창조한 민트라는 식물. 어느 인간들의 나라에서는 매일같이 그 식물에서 추출한 물질로 입안의 청결을 유지한다.”
“정말인가요. 하데스 님? 인간들은 향기나는 나뭇가지나 깃털을 씹거나, 이상한 가루만을 이용하던데요.”
“하하하! 너무 먼 곳의 이야기라 내가 알려줘도 모를 것이다.”
전차의 속도 때문에 청록색 머리칼이 휘날리는 멘테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
당연히 모를 수밖에, 굉장히 먼 곳이거든. 저승의 신인 나의 힘으로도 갈 수 없을 정도의…
“그래도 그런 곳이 있다면 제 신앙도 많이 늘어나겠네요! 그곳에서는 하데스 님보다 저를 믿는 신도들이 더 많을지도요. 히힛!”
“당연하지. 그곳에서 너는 제우스보다 많은 신도가 있었을지도.”
“흐… 흐흣. 진짜요? 그럼 저도 그곳에서만큼은 하데스 님보다 더… 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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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 아니 전 세계의 사람들이 민트가 들어간 치약을 매일같이 이용했으니.
만약 지금의 멘테가 내 전생에 현신했다면 크게 칭송받았을지도 모른다.
철석같이 내 말을 믿으며 입을 벌리고 있는 멘테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아야!”
“입 안에 벌레 들어간다.”
“우으… 원래 안 그러셨는데, 장난기가 더 심해지셨어요.”
볼을 매만지며 뾰로통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멘테.
글쎄. 그런가? 장난기가 심해졌다라. 다른 여신들에게는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멘테가 굉장히 편하기는 하다.
전생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민트 향기 때문인지, 아니면 님프였던 때에도날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봐주던 님프여서 그런지.
여신이 되어 저승에 와서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도와주는…
편하고 착한. 아는 여동생 같은 느낌이랄까.
바로 그런 점이 매력적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르겠군.
다그닥.
“다 왔다. 내려라.”
“어라? 하데스 님. 저희 이제 저승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나요?”
“제대로 온 것이 맞다.”
휘이이잉-
내가 전차를 멈추고 멘테와 함께 내린 곳은, 잔잔한 산들바람이 계속해서 불어오는 한 평원.
한적한 곳이라 인간들도. 님프들도 없었다.
오직 내가… 민트의 여신 몰래 다른 자들을 시켜 재배한 민트 밭.
엄청나게 상쾌한 향기가 바람을 타고 우리를 감싼다.
전차에서 내린 멘테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감탄사를 내뱉으며 긴 머리를 넘긴다.
“와아… 여기는 온통 민트 천지네요?”
“그래서 이 장소를 골랐다.”
“네?”
“네게 청혼하기 위해서는 이곳이 제일 적당할 것 같았거든.”
…!
가슴팍에서 조용히 꺼낸 팔찌를 멘테에게 조심스럽게 끼워주었다.
살아있는 민트로 이루어진 팔찌가 여신의 손목을 타고 올라가 부드럽게 휘감았다.
“민트의 여신은 너지만, 그건 나를 상징하는 식물이기도 하지. 여기서 자라난 꽃은 항상 내가 있는 방향을 바라볼 것이다.”
“하데스 님…”
“사랑한다. 멘테. 나와 결혼해다오.”
“네… 훌쩍.”
입술이 닿을 정도로 바짝 붙어있는 멘테로부터 나오는 향기는,
이번만큼은 청량한 민트 느낌이 아닌… 너무나도 달콤한 체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