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48)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49화(148/179)
아스클레피오스의 이야기 – (3)
이곳은 칼라돈.
얼마 전까지 괴물 멧돼지가 나타나 농사를 망쳤지만, 영웅들의 활약으로 토벌한 곳이다.
멧돼지 사냥이 너무 허무하게 끝났기 때문인지,
이곳에 모였던 영웅들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며칠 동안 연회를 벌이고 있었는데…
“크으…! 이거 어디서 잡은 사슴 고기야?”
“이다스. 자네 그 이야기나 해보게. 아폴론 신과 겨룬…”
“겨뤘다니. 내가 어찌 감히 태양신과 맞상대를 할 수 있겠나? 플루토께서 나타나시지 않았다면.”
“저승의 주인께서는 생자들에게 자비로우시다더니 과연 그렇군.”
근처 숲에서 사냥도 하고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은 영웅들은 고기를 뜯으며 담소를 나눴다.
주로 얼마 전에 죽엿던 멧돼지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활발했다.
“얼마 전에 잡았던 조금 큰 멧돼지 말이야… 어미가 있는 거 아닌가?”
“나도 그리 생각해. 그래서 아직도 여기 남아있는 거 아니였어?”
“그나저나 새끼(?) 놈을 잡았을 때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시체가 사라졌잖나. 그건 어찌 된 일인지…”
“뭐. 근처의 님프들이 장난이라도 쳤겠지. 고작 그런 놈을 가져가서 뭐한다고…”
“님프들이야 장난의 종족이니까.”
그들은 오랜만에 과거를 회상하며 즐거운 자리를 가졌다.
투창의 명수인 멜레아그로스는 아탈란테에게 웃으며 고기를 잘라주고 있었고, 활쏘기의 명수인 그 여성 영웅 역시 나쁘지 않다는 듯 받아주고 있었다.
“흠. 흠. 아탈란테. 헌데 너는 아르고 호에서 떨친 명성도 그렇고, 아르카디아의 공주 아니냐?”
“그렇지?”
“그런데 왜 혼인은 하지 않는 건가? 무슨 예언이라도 엮여 있는 건?”
“내 혼인과 관련된 예언은 받은 적이 없다. 다만 내 눈에 차지 않을 뿐이고… 내가 모시는 신은 순결의 여신님이시고…”
“으흠! 그래도 순결의 맹세만 하지 않았다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창을 잘 던지는 칼라돈의 왕자라던가.”
“어렸을 때부터 저승에 있어서 순결 서약까지는 하지 않았긴 하지만… 흐응.”
아탈란테와 멜레아그로스가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동안,
한쪽에서는 이아손이 황금 양털 원정대에 참여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때 그래서, 용을 헤라클레스가 맨손으로 때려죽이고…!”
“역시 헤라클레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에 대한 소식이 들리지 않던데?”
“설마 신이 된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아손, 너는 왕인데 국정은 돌보지 않고 여기서 왜 이러는 거냐?”
“지금은 잠시 메데이아가 통치를 하고 있어! 아주 현명하고 지혜로운 여인이지! 그러는 태세우스도 왕인데 여기로 온…”
“크흠! 나도 왕비인 아리아드네가 대신…”
그렇게 밤이 깊어가는데… 그들에게 한 병사가 달려와 일렀다.
복장을 보아 칼라돈에 소속된 자. 그가 달려와 멜레아그로스 앞에서 멈춰섰다.
“왕자님! 며칠 전 나타났던 멧돼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뭐라고?”
“이전의 놈보다 세 배는 더 거대하고, 발굽에서는 불을 뿜고, 눈을 마주하면 사람의 정신을 건드리는 무시무시한 놈이 나타나…!”
전령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영웅들은 먹던 식사를 내팽겨치고 벌떡 일어났다.
어느새 그들의 손에는 날카로운 무기가 들려있었다.
“그것 봐라! 내가 어미가 있을 것 같다고 했지!”
“크흐흣! 여기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던 보람이 있구먼!”
“위어업! 위업이다!”
끔찍한 괴물이 나타났다는 소식에도 흉흉한 눈빛으로 살의를 끌어올리는 영웅들.
이에 왕의 명령대로 소식을 전하러 온 병사는 뒷걸음질 쳤다.
“이봐 전령! 그 놈이 어디에 나타났나!”
“예? 아켈로스(Acheloos) 강의 상류 언저리 부근에서…”
“다들 가자고! 이번이야말로 대 군신(軍神) 진형을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겠구만!”
보통 괴물이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런 반응을 보여주던가?
이것들이 영웅인지… 아니면 괴물 잡는 광인들인지…
* * *
한달음에 괴물이 나타났다는 아켈로스 강 인근으로 향한 영웅들.
그들은 곧 한눈에 보아도 강력한 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꿰에에에엑!!!!
집채만한 크기였던 그 멧돼지의 3배는 되어보이는 거대한 몸집.
끊임없이 주변을 불태우는 불길이 샘솟는 발굽.
눈을 마주친 인간의 정신을 흔드는 광기의 힘.
아르테미스 여신이 작정하고 힘을 불어넣은 괴물은 굉장히 강해보였다.
도저히 영웅들의 협공에 허무하게 죽었던 괴물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아마도 티폰의 자식인 키마이라나 케르베로스 정도는 아니여도,
그 아랫 단계의 괴물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실로 무시무시한 모습이었지만 영웅들은 희열에 찬 미소를 지으며 전의를 불태웠다.
“그래, 이래야지! 드디어 싸워볼 만한 놈이 나왔군!”
“태세우스, 이아손! 너희는 귀한 몸이니 빠져라!”
“어림없는 소리! 겁이 난다면 너나 물러서라, 카스트로!”
그렇게 강력한 괴물과, 위업에 눈이 돌아간 영웅들이 충돌하기 직전.
인간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모습을 감춘 타나토스의 분신이 하품을 하며 조용히 손을 내저었다.
스아아아ㅡ
그리고 잠시 오싹한 기운이 퍼져나간다 싶더니, 무시무시한 괴물이 그대로 숨을 거뒀다.
어떠한 징조도 없이. 마치 수명이 다한 필멸자가 끝을 맞이하듯.
쿠우웅!
“음? 뭐지?”
“죽었나?”
방금까지 엄청난 기세를 내뿜던 괴물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자,
당연하게도 영웅들은 몹시 당황했다.
“정말로 죽은 거 같은데?”
“어떠한 외상도 없어. 혹시 누가 특별한 능력이라도 썼나?”
“이런 일은 단 하나밖에 설명되지 않는데… 신인가?”
“으음. 신의 일에 끼어들면 끝이 좋지 않아. 여기까지만 하고 돌아가세.”
“신들의 다툼이 맞을 수도 있겠어. 설마 타나토스 신은 아니시겠지?”
위업을 쌓을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던 영웅들은 결국 찜찜한 표정으로 해산했다.
그들이 아무리 강해져도 헤라클레스가 아닌 이상, 신들과 감히 맞설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기에.
* * *
나는 내 서신을 받고 저승으로 달려온 아르테미스를 보았다.
그녀는 별로 잘못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르테미스.”
“네.”
“왜 죽은 멧돼지 신수를 살려서 다시 인간들에게 내려보냈지? 이는 네게 주어진 권한을 벗어난 일이다.”
“…그 아폴론 오라버니의 아들이 정말로 신수를 살릴 수 있을 거라고는 미처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반만 진실인 것 같다.
“변명하지 마라. 애초에 왜 인간에게 협박을 해서 죽은 자를 살리라고 했는지, 나는 그것을 묻고 있다.”
“하지만 제가 신벌로서 보낸 신수가 너무 허무하게 죽으면 위신이…”
“그럼 적당히 다른 신수를 보내던가. 대체 왜 죽은 자를 살리라고 필멸자에게 협박을 했냐 이 말이다. 기억을 살펴보니 스틱스 강의 맹세까지 입에 올렸던데.”
아르테미스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당연히 저승의 신인 내 관할을 침범했으니 할 말이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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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변명을 계속 구구절절 늘어놓았다면 크게 화를 냈을 것이지만.
“내 관할을 침범한 대가로 당분간은 저승에서 일해라. 제우스에게도 당연히 이 일을 알릴 것이고. 불만은 없겠지?”
“예. 넘어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부터는 절대로…”
“넘어갔다? 나는 이런 일에 있어서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
잘못을 저지르고 저승에 처음 온 신들이 종종 하는 착각이 있다.
아무리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악명이 자자하고 들리는 소문이 흉흉해도…
신격이 깎이거나 인간 밑에서 종살이를 하는 것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닐 거라는 생각.
아폴론도, 헤르메스도, 아레스도… 다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
달과 사냥의 여신이 알현실을 나선 직후, 곧장 전령을 불렀다.
“방금 나간 아르테미스는 이번에 지하 광맥의 대공사를 감독하는 자리에 앉히도록.”
“그. 하데스 님. 하지만 그곳은 레테 여신님도 힘들어하시던…”
“당연히 고생하겠지. 만약 못하겠다고 뻗대면 스틱스나 히프노스에게 알려라. 그럼 알아서 잘 처리해줄 것이니.”
납득이 간다는 표정을 짓는 전령에게 몇 가지를 더 말했다.
올림포스에 가서 아르테미스의 잘못을 알리고 저승에 당분간 머물게 한다는 것과… 의술의 하위 신격으로 죽은 자를 되살린 아스클레피오스를 추천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기가스와의 결전에 대한 회의를 언제쯤 열 것인지에 대해서.
기가스가 모인 플레스라 평원으로 쳐들어 가는 날이 정해지면, 닉스 님에게도 다시 찾아가 확답을 얻어야 한다.
사실 티폰을 만들고, 기가스를 탄생시키고, 콜키스의 용을 비롯한 온갖 괴물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 대지모신의 힘을 많이 소모시켰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보다는 강할 테니까.
* * *
한편, 저승에서 당분간만 일하면 될 일이라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일터로 향한 아르테미스 여신.
그녀는 자신에게 배정된 책상에 한가득 쌓인 서류에 넋을 잃었다.
잠시 서류를 들여다보던 여신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싸늘한 눈빛으로 시종을 쏘아보며 말했다.
당장이라도 신벌을 내릴 듯한 태도였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겨우 참는 모양새.
“비켜라. 하데스 님께서 착오가 있으신 듯 하니, 다시 만나뵙고 말씀드려야겠다.”
“아… 그 문제라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르테미스 여신의 눈빛을 받은 시종이 황급히 나가고… 곧 누군가를 데려왔다.
검은 장발에. 12주신급의 신력. 잠깐, 저 얼굴은…?
“…아르테미스가 스틱스 여신님을 뵙습니다.”
“흐으응. 저는 일하지 않고 애꿎은 시종에게만 화풀이하는 여신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데… 설마 아니겠죠?”
“……”
“아폴론 신도 그렇고, 아레스 신도 그렇고. 어린 신들이 참… 쯧쯧. 저 때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이마에 핏줄 한 가닥이 돋아난 스틱스 여신이 들어오자,
방금까지 난동이라도 부릴 기색이었던 달의 여신은 다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스틱스 여신은 무려 티탄과의 전쟁에서 제일 먼저 올림포스를 도운 자.
그 위업과 공로는 이루 말할 것이 없는 강력한 노신(老神).
“알아서 잘 할 수 있죠…? 다시 한번 제가 올 일은 없으리라 믿을게요.”
“…물론입니다.”
“아. 그리고 그건 고작 하루치에요.”
“…?!”
왜 그녀의 오라버니인 아폴론이 저승 이야기만 들리면 몸을 부르르 떠는지 깨달은 달의 여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