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5)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5화(15/82)
티폰의 이야기 – (4)
올림포스 산, 드높은 구름 위의 신궁(神宮).
비스듬히 누워 승리를 만끽하던 티폰은 카드모스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자신의 곁에서 리라를 좀 연주하는 대가로 여신을 하사한다고 했을 텐데.
설마 도망쳐버린 것일까.
인간 주제에 여신을 안을 수 있다는 보상을 거절할 놈은 없을 터.
제우스의 계략일지도 모른다.
잠시 고민하던 티폰은 부하 괴물인 델퓌네를 불러 건방진 인간을 찾아오라고 명령하려 했다.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수많은 신력만 아니였다면.
“잡졸들이 다시 도전하러 오는가?”
도망쳤던 신들이 아무리 모여봤자 소용없는..
“티폰! 내가 다시 돌아왔다!”
검은 구름 위에서 아스트라페를 들고 있는 제우스?
놈의 힘줄은 분명 끊어졌.. 빌어먹을 인간 놈이!
급하게 몸을 일으키는 티폰의 머리 위로 검은 구름이 모이더니 맹렬한 벼락을 쏟아낸다.
번쩍- 콰르르르릉!
“크아아아아!”
아파.
너무 아프다.
전신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구나.
따끔한 정도에서 끝나야 할 벼락이 이리도 아팠던가.
티폰은 제우스가 내리치는 벼락의 위력에 이를 갈았다.
분명 올림포스를 기습했을 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였는데.
모이라이, 그 빌어먹을 노괴들이 준 이상한 열매 때문에!
“이제는 방심하지 않는다. 누가 주신의 자리에 어울리는지 겨뤄보자!”
빼앗긴 힘줄을 되찾은 제우스의 손에서는 파괴적인 푸른 번개가 번쩍이며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나오며 다시 한번 아스트라페가 쏘아졌다.
“크아아아!”
티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폭풍의 신, 높은 산조차 무너뜨릴 것 같은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사방을 초토화시킨다.
제우스의 벼락은 아프지만, 약화된 티폰을 단번에 죽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돌풍을 휘감고 날아드는 거대한 손이 제우스를 향해 매섭게 뻗어진다.
그대로 신들의 왕을 쥐어 우그러뜨린다면..
‘제우스만 제압한다면 다른 놈들은 별 것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티폰의 귓가에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기, 잠시만 봐줄래?”
지상에서 들리는 작고 미약한 목소리.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매혹적인 목소리에 티폰의 신경이 잠시 분산되고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화려하게 치장한 미녀, 아프로디테가 활짝 웃으며 티폰과 눈을 마주친다.
미의 여신의 전력을 다한 매혹에 뻗어나가던 손이 그 기세를 잃어버렸다.
“제우스! 올림포스 산이 조금 망가져도 상관없겠지!”
“말할 시간에 움직여라, 포세이돈!”
“그럼 사양하지 않고!”
푸른 머리의 남신이 삼지창을 높게 치켜들고 대지를 향해 전력으로 내지른다.
퀴클롭스 삼형제의 걸작, 트리아이나의 힘이 발현되자 땅이 마구 흔들리며 산이 통째로 흔들린다.
“대지여, 흔들려라. 그 속살을 드러내 내게 보여라.”
데메테르가 싸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함께 대지에 손을 갖다댄다.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가 보조하는 지진.
땅이 제멋대로 갈라져 티폰의 움직임을 어렵게 하고 균형을 무너뜨린다.
이어서 헤스티아의 힘이 신들을 따뜻하게 감싸고, 불과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의 망치에서 거센 불길이 솟아올라 모든 것을 불태운다.
나무가 먼지처럼 날아다닐 정도의 폭풍이 몰아치고, 땅이 터져나가는 신들의 싸움.
올림포스 산은 그 형체를 점차 잃어가고 있었다.
* * *
올림포스 산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 인간들의 도시는 대재앙을 맞이했다.
번쩍- 콰르르릉!
하늘에서는 계속 우레소리가 터져나오고 땅이 마구 흔들리는 대지진.
건물이 붕괴하고 폭풍이 몰아치자 사람들은 신을 부르짖었다.
“으아아악! 제우스시여! 저희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입니까!”
“이 지진은 포세이돈 신의 징벌임에 틀림없어! 바다에 공물을 제때 바치긴 한거냐!”
“꺄아아! 살려주세요!”
드드드드-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도시에서 탈출했으나 올림포스 신들의 신전에서 기도하는 이도 있었다.
어느 신인지는 몰라도 자신들의 기도를 듣고 부디 노여움을 푸시길 바라며.
콰르르릉!
다시 한번 천둥과 폭풍이 마구 몰아치며 건물들을 붕괴시켰다.
“이건.. 이건 뭔가 이상하다. 신들께서 이렇게 우릴 벌하실 리가 없어!”
도시에 거주하는 데메테르의 신관은 명백하게 이상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일어난 재앙만 해도 천둥과 번개, 폭우와 지진, 강렬한 돌풍.
도저히 하나의 신이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도시를 망가뜨리는 데에는 신 하나만의 힘이면 충분할 터.
“설마, 신들께서 다투고 계신 것인가?”
필멸자들은 곧 깨닫는다.
이것은 고작 싸움의 여파, 빵을 먹다가 흘리는 부스러기나 금속을 채굴할 때 튀는 파편 정도.
진정한 재앙은 올림포스 산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 * *
“아하하하하! 전쟁! 전쟁이다!”
아레스의 온 몸에서 붉은 신력이 폭풍처럼 일어난다.
그가 자랑하는 전차의 신마(神馬)들이 세찬 콧김을 내뿜으며 허공을 달린다.
전쟁의 신이 광소하며 전차를 몰고 돌진한다.
목표는 괴물의 얼굴, 자신의 공격이 상처를 입히지 못해도 상관없다.
패배의 냄새만을 맡았던 저번과는 달리, 지금은 승리의 선율이 머지않은 것을 느꼈기 때문에.
“이.. 이 버러지가!”
신들의 합공에 사정없이 얻어맞던 티폰이 격노하며 손을 마구 휘젓고,
다시 한번 끔찍한 파괴흔이 세계에 새겨진다.
용맹하게 달려들던 아레스의 전차가 부숴지고 그는 사정없이 튕겨나가 산에 처박힌다.
“아레스!”
유유히 떠다니던 구름들마저 흐트러지고 하늘의 별들은 티폰을 두려워해 더욱 높이 올라간다.
헬리오스가 모는 태양 마차의 말들도 놀라 하늘 위로 도망친다.
점차 어두워지는 하늘에서 제우스의 벼락과 헤파이스토스의 불이 세상을 밝게 비추었다.
콰르르르릉!
“크아아아아!”
또다시 푸른 천둥이 티폰의 몸을 가격하자 연기가 피어오르며 끔찍한 통증을 선사하고,
그 고통에 울부짖던 티폰의 눈에 빛나는 화살들이 연달아 박힌다.
“내가 오른눈을 노리겠다. 너는 왼쪽 눈을 앗아가라!”
“다음 사냥감은 큰 놈이군요. 오라버니.”
태양의 신 아폴론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
주신 제우스의 두 자식들이 각각 태양과 달의 힘을 담은 화살을 쏘아낸다.
주신 제우스와 모성의 신 레토의 자식들인 이 쌍둥이 신들은 모두 궁술의 신격을 보유한 명사수.
그들의 화살은 절대로 빗나가지 않는다.
이어서 대장장이 신의 뜨거운 불길이 티폰의 몸을 휘감고, 중무장한 지혜의 여신이 괴물의 발목을 가격.
올림포스 신들의 합공이 차례대로 이어지지만…
“모이라이 놈들의 농간만 아니였어도 진작 쓰러질 것들이!”
괴물은 아직도 건재하다.
분명 승기는 올림포스 신들에게 있었으나 티폰은 가이아가 온 힘을 다해 만든 결전병기.
지치고 다칠지언정 쉽사리 쓰러지지 않는다.
계속되는 싸움에도 건재한 티폰의 모습에 질린 해신(海神)이 전력을 다하고자 한다.
바다 깊은 곳으로 수장(水葬)시켜버리면 제아무리 불사의 괴물이라도…
“크윽. 저 괴물놈이.. 몰아쳐라 파도..”
“포세이돈! 파도를 불러오면 육지의 인간들은 다 죽는다고!”
거대한 해일을 육지까지 불러와 티폰을 쓰러뜨리려는 포세이돈을 헤스티아가 황급히 말렸다.
승기는 분명 올림포스 신들에게 있으니 지상의 생명들까지 희생시키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
“아니, 그럼 언제까지 이대로..”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변수가 일어날겁니다!”
아테나가 티폰의 발길질을 피하며 소리치지만 포세이돈은 답답함에 침음을 흘린다.
티폰 역시도 신들과 같은 불멸. 몰아치는 바람을 다루는 능력을 보아 폭풍의 신격이 있겠지.
운명의 세 여신이 티폰을 속여 약화시켰지만 아직도 그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것은 제우스나 포세이돈뿐이였다.
3주신급의 위력적인 힘으로 입힌 상처가 아니면 순식간에 재생하고 회복해버리는 엄청난 생명력.
“크하하하! 두 놈만 제외하면 전부 버러지.. 큭!”
그때, 헤라의 공격을 가볍게 튕겨내며 비웃는 티폰에게 칠흑같이 검고 음산한 참격이 날아들었다.
급하게 팔을 들어올려 막은 티폰이였지만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신의 피, 이코르(Ichor).
황금빛의 액체가 대지에 뿌려지며 폭풍의 신의 상처를 나타낸다.
이 정도의 위력은.. 제우스보다는 훨씬 약하지만 포세이돈의 삼지창에 직격당했을 때와 흡사.
전장에 생겨난 변수에 티폰은 고개를 돌려 참격이 날아온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부터 싸늘한 살기를 품으며 걸어오는 자.
낡고 허름한 투구와 거대한 낫을 손에 들고 있는 검은 머리의 남신.
“….하데스!”
“큰아버지가 성공하셨군. 이제 저 괴물도 끝이다.”
저 낫은 티폰이 제우스에게서 빼앗아 몰래 숨겨두었던 낫, 스퀴테!
아다마스로 이루어진 최강의 무기는 티폰에게도 위협적.
“세계를 다스리는 3주신 중 하나, 저승의 왕 하데스가 내리는 판결이다. 귀를 씻고 들어라, 괴물.”
음울한 인상의 신이 말을 이어나가며 머리 위로 투구를 가져간다.
“너는 영겁토록 타르타로스에 처박힐 것이다.”
저승의 왕이 투구를 완전히 착용함과 동시에,
올림포스 최속을 자랑하던 헤르메스마저 포착할 수 있었던 티폰의 시야에서 그가 완벽하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