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50)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51화(150/179)
기간토마키아(Gigantomachia) – 전조
오늘도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바쁜 하루.저승의 일상은 쳇바퀴처럼 반복된다.
그런 평화로운 저승을 다스리는 내게 누군가 찾아왔으니…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게 잠을 퍼뜨리고 다니는 잠의 신, 휘프노스였다.
“하데스. 그 소식 들었나?”
“무슨 소식 말입니까?”
“요즘 테티스 여신이 한 인간과 만나고 있다는 소문.”
간만에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며 킬킬대고 웃는 휘프노스를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인간계에서 열리는 대회를 통해 여신의 남편감을 찾고 있었지만, 여태까지는 그녀의 눈에 차는 이가 없지 않았습니까?”
그녀 스스로도 결혼하기를 원하고 있었으나. 아름다운 바다의 여신에게 있어서 신도, 반신도 아닌 자는 기준을 넘기 힘들겠지.
권력에 민감한 제우스의 강압에 의한 것도 있었으니 더더욱.
“당연하지! 신도, 반신도 아닌 자들인데. 그런데 누가 알았을까. 까다로운 여신의 기준에 간신히 들어맞은 자가 있으리라고는!”
“…?”
“얼마 전에 열린 사냥 대회에서 한 인간 영웅이 풀어놓은 사냥감 절반 이상을 잡으며 우승을 차지했다더군.”
“그것만으로는 여신의 흥미를 끌 수가 없을 텐데요?”
테티스 여신은 네레이데스 자매들 중 제일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여신.
그 미모가 포세이돈의 정실부인인 암피트리테보다도 뛰어나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이니, 눈도 굉장히 높다.
애초에 미남미녀가 넘쳐나는 신들의 기준이라면 그 어느 남성을 데려와도 성에 차지 않을 터인데?
“대회에서 우승했으니 당연히 여신에게 청혼할 기회는 주어졌겠지만…”
“여신과 독대하는 자리에서 그 인간이 뭐라고 했는지 아나? 혹시 위업을 더 내려주실 수 없겠냐고 그랬다는군! 크하하하!”
“…?!”
“당연하게도 자신의 미모에 흔들리지 않는 그 인간에게 테티스가 가만히 있었겠나? 온갖 바다 괴수들을 잡아오라고 시켰는데… 놀랍게도 모조리 때려잡고 위업을 더 쌓고 싶다고 했다나. 크흐흐!”
잠깐만. 얼마 전에 칼라돈의 멧돼지를 때려잡던 영웅들이 떠오른다.
시련과 위업에 미친 인간들이라면… 설마 저승에서 훈련하던 영웅 중 하나인가?
“그런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자, 내려줄 과업이 없어서 테티스 여신이 인간에게 뭐라고 했는지 알겠나?”
“왜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습니까? 혹시 일은 하지 않고, 이승 구경이나 다니신 것은…”
“크흠! 내가 타나토스도 아니고 그럴 리가 있겠나? 그냥 다른 신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네. 아무튼, 그들이 이렇게 대화했다는군.”
잠시 휘프노스가 떠드는 말을 귀담아 들었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여신의 마음을 산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에.
“말씀하셨던 케토의 자손 중 하나인 괴물을 잡고 왔습니다. 다음 과업도 내려 주십시오!”
“…더 이상 네게 내려줄 시련이 없다.”
“네?”
“단 한 가지. 대영웅들도 쉽게 이루지 못하였던 위업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으음…! 무엇이든지 좋습니다. 말씀해주십시오! 설마 용이라도 잡는 일인…”
“바다의 여신, 나 테티스와 결혼하는 것이지. 여신을 아내로 맞는 것은 위대한 대영웅들이나 달성할 수 있었던 위업이니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
그렇게 된 것이구만…
자신의 미모에도 흔들리지 않고, 용맹하게 과업을 완수하던 인간 영웅에게 테티스 여신이 먼저 반한 건가?
저승에서 뭔가 잘못된 것을 배워간 것 같지만… 음. 아무튼 좋은 일이니 되었나.
“그래서 그 영웅의 이름이 뭐랍니까?”
“펠레우스(Peleus)라고 들었네. 결혼식은 기가스들을 쓸어버리고 나서 한다는데.”
어디선가 들어봤던 이름이군.
* * *
얼마 전, 제우스가 저승에 소식을 전해온 것이 있었다.
슬슬 기가스와의 전쟁을 일으켜야겠으니 그들이나 가이아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주의해달라는 이야기.
아마도 그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플레스라 평원을 습격할 생각이 아닐까?
물론 가이아의 예언 능력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에… 전면전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은 들었다.
“헤라클레스에게는 안됐지만, 짧은 신혼이 되겠군요.”
“힘의 신이 있어야만 필승이니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청춘의 여신과는 좋은 부부가 될 것 같아.”
“음. 일단 하시던 대로 플레스라 평원을 계속 살펴주시죠. 기가스들이 먼저 움직인다면 저희도 대응해야 하니까.”
고개를 끄덕이고 나가는 휘프노스를 바라보는데 무언가가 내 감각에 잡혔다.
이승에서 내 이름을 환호하는 수많은 이들. 느껴지는 신앙. 신의 이름에 바치는 수많은 제물들.
테베에서 민트 축제가 열린 것인가? 눈을 감고 이승을 살피니 신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테베가 맞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지.
그런데 오늘은 많은 시민들이 길거리에 나선 모습이 보였다.
축제라도 열린 듯한 분위기는 맞지만, 주기적으로 열리던 민트 축제는 아니네.
“오늘이 그… 아르카디아의 공주와 칼리돈의 왕자가 결혼하는 날이 맞나?”
“그런데 왜 테베에서 결혼식을 여는 건가? 자기들 나라에서 하지 않고.”
“딱 봐도 우리 테베랑 동맹을 맺고 싶어서 적당한 핑계를 댄 거죠. 폐하께서는 삼국이 서로 동맹을 맺는 것을 좋게 생각하셨지만 저는…”
“으음.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그들이 플루토의 신전에서 함께 훈련받았다는 소문이 있어. 그 때문이 아닐까?”
“아르카디아의 아탈란테 공주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모실 텐데?”
“하하하! 아무튼 우리에게는 좋은 일 아닌가! 다른 도시에서 온 관광객들이 넘쳐난다고!”
“이참에 한몪 챙기지 못한다면 상인 자격도 없는 놈이 맞아.”
“다들 들어본 이름이네. 유명한 영웅들이 아닌가. 저 아테네와 이올코스의 왕과도 친분이…”
“이보게들. 나는 아르카디아 사람인데… 혹시 그 민트 차라는 것…”
“난 칼리돈에서 왔는데. 테베의 경치도 그리 나쁘지는 않군.”
두 영웅이 테베에 있는 내 신전을 통해 넘어온 저승에서 함께 훈련받아 친해졌다는 점을 감안했으려나.
아르카디아, 칼리돈, 테베. 이 삼국 간에 동맹을 추진하고, 그 개회식으로 테베에서 혼인하는 걸지도.
그런데 그 먼 곳에서 테베까지… 아니다. 괴물이 나온다면 오히려 위업이라고 좋아하겠어.
결혼식 예물로 괴물 가죽을 가져오지나 않으면 다행이겠…
“어어…! 저기 칼리돈의 왕자, 멜레아그로스다! 칼리돈 병사들과 함께 이쪽으로 오고 있잖아!”
“이야. 저 차려입은 거한이 왕자인가? 그런데 병사들의 어깨에 뭔가 있는데?”
“괴물 시체를 가지고 오고 있잖아! 하피인가? 이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네.”
…정말로 오다가 괴물을 만나서 때려잡았군.
* * *
이번에 테베에서 열리는 결혼식은 평범한 정략결혼이 아니였다.
무려 삼국간의 결합을 뜻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기에, 몇몇 신들이나 많은 주변 국가들도 주시하는 일.
그 이름도 두려워 이명으로 부른다는 저승의 왕.
플루토의 신전에서 오랜 기간 동안 훈련받고 나온 자들의 능력이 어지간한 영웅들을 훨씬 상회한다는 소문은 이미 그리스 전역에 퍼진 지 오래다.
언제부턴가 행적이 묘연한 영웅 중의 영웅, 제일 강력하다고 소문난 헤라클레스마저 테베 훈련소에 있었지 않았던가?
“오오… 저기 아탈란테 공주다! 드센 여걸이라더니, 엄청나게 아름다운데?”
“아프로디테 여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천상의 여신들에 밀리지 않는…”
테베 출신 영웅들 중 명사수로 이름을 드높인 아탈란테 공주와 투창의 명수, 멜레아그로스 왕자가 서로 혼인한다는 것.
이는 많은 국가의 왕족들이나 영웅들에게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심지어는 테베의 왕이 그들에게 먼저 테베에서 혼인하는 것이 어떻냐고 말했다는 소문까지 도는 마당.
분명 영웅들의 결혼식을 빌미로 양국 간의 동맹에 한 발 걸치겠다는 속셈이 아니었을까?
안 그래도 민트 생산지로 국가 간의 교역에서 큰 이점을 보고 있는 테베인데,
삼국 동맹을 통해 든든한 우방까지 얻게 되었다면…
삐리리리~
“저쪽에서 멜레아그로스 왕자가 들어온다!”
“투창의 명수! 칼리돈의 왕자 전하!”
“우와아아아아!!!”
결혼식이 끝나고, 긴 턱수염을 쓰다듬는 맹인 예언자인 테이레시아스가 새롭게 탄생한 부부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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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와 헤라의 말다툼에서 제우스를 편든 대가로 눈이 먼 대신, 예언 능력과 긴 수명을 받은 그는 영웅들의 결혼식을 예측하듯 미리 테베로 와 있었다.
너무나도 유명한 그를 알아본 멜레아그로스와 아탈란테가 그에게 질문했다.
“테이레시아스 님. 저와 아탈란테의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흐음…”
모두가 그리스에서 제일 유명한 인간 예언자의 입을 바라보았다.
과연, 이 예언자는 무슨 말을 할까?
테이레시아스는 잠시 목을 가다듬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아이를 낳아 잘 기르는 모습이 보이는군. 여러분의 미래는 아주 밝을 것이오.”
“휴우… 감사합니다! 테이레시아스 님!”
“정말 감사드려요.”
부부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다시 먼 방랑길에 오르는 맹인 예언자.
하지만 예언자의 직감일까. 그는 그들의 앞날이 원래 순탄치 않을 것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삼촌들을 죽인 것이 원인이 되어 어머니에 의해서 죽은 멜레아그로스, 결혼 이후 여신의 노여움을 산 대가로 사자로 변해 죽은 아탈란테…
그는 먼 과거에 겪었던, 찰나의 꿈과 같은 환상의 기억을 흘려 넘기고는 웃음을 지었다.
지금 다시 보이는 미래에는 아이를 안고 행복하게 안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기에.
무언가 잘못 본 것이라도 있었겠지. 예언이란 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도 아니라면 역시 신격의 개입이…
‘허어… 어느 자비로운 신이 영웅들을 보살펴주기라도 한 것인가?’
세상은 영웅들에 의해 돌아간다.
지금은 바야흐로 영웅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