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52)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53화(152/179)
기간토마키아(Gigantomachia) – (1)
올림포스 신궁.
구름 위에 있는 신들의 궁전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어디론가 바삐 돌아다니는 무장한 신들과 이를 드러내는 신수들이 입구에서부터 보이네.
제우스의 상징이자 신수인 독수리가 소식을 전하러 구름 사이를 날아다닌다. 디오니소스의 신수인 표범도 구름 위에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어디론가 뛰어간다.
다른 하급신들이나 시종들은 말할 것도 없다. 모두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고, 내 눈을 마주보는 이 하나 없었다.
“어서 오십시오. 하데스 님. 제우스 님께서는 저 안쪽에서…”
“그래. 수고해라.”
시종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서자, 수많은 신들이 이번 기가스의 전쟁에 대해 의논하는 것이 보였다.
포세이돈을 비롯한 바다 신들도 그렇고… 아직 오지 않은 신들이 많네.
“플레스라 평원의 동태는 어떤가?”
“아까 서풍의 신인 제피로스(Zephyros)가 살피고 왔는데, 기가스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더군.”
“기습은 실패했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전면전이여도 우리가 질 이유는 없지 않겠나? 예언의 영웅도 올림포스 12주신에 버금갈 정도에, 저번에 저승의 주인께서도 닉스 님을 설득하셨고…”
“에로스는 아직 오지 않은 건가? 포세이돈 님도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네.”
“헤라클레스. 그래도 네가 있어서 든든하군.”
“아닙니다. 헤파이스토스 님.”
“어허. 예언의 열쇠가 넌데, 그리 겸손하지 않아도 된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까지 있을 자리를 찾으나 사방을 둘러보고 있는데, 따뜻한 기운을 풍기는 아름다운 여신이 다가온다.
기가스들과나와 함께최초로 싸웠던 형제자매 중 하나,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였다.
먼 예전, 티탄들과 싸울 때처럼 무장한 헤스티아.
그녀의 몸에서 은은한 기운이 퍼져나와 주변을 따스하게 달군다.
“헤스티아.”
“하데스. 드디어 기간테스와 싸울 때가 되었네! 그런데 몇몇 보이지 않는 신들도…”
“타나토스나 카론?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이 이틀 정도만 일을 쉬어도,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지니까.”
정확히는 저승의 균형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지는 거지만.
“그런데 네 갑옷과 무기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 준 건가?”
“응? 아. 응, 그렇지! 제우스가 헤파이스토스에게 명령해 미리 만들어 놓은 무장이야. 몇 개월 동안 열심히 만드느라 정말 고생했다고 들었어.”
허리춤에 걸린 검을 슬쩍 뽑다가 다시 집어넣으며 웃는 헤스티아.
그런데 헤파이스토스는 또 고생했구나, 하기야 능력이 있다면 혹사당하는 것이 당연하니…
거의 모든 것을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의 신을 제우스가 쉬게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신이 직접 만든 무구이니 아무리 대량으로 생산했다고 해도 기본적인 품질은 보장되니까.
웅성웅성.
그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올림포스 한쪽 구석이 소란스러워지며 강렬한 신력이 느껴졌다.
포세이돈을 비롯한 바다의 신격들이 도착했나 보네.
이제는 전투를 앞둔 회의를 시작할 시간이다.
헤스티아도. 나도. 고개를 돌려 저 안쪽에서 번개를 만지작거리며 아테나와 이야기하던 제우스를 보았다.
신들의 왕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묵직한 저음을 내뱉었다.
“포세이돈도 왔고, 그럼 이제부터 플레스라 평원을 쓸어버릴 계획을 의논해보도록 하지.”
* * *
“…사실 내가 바다를 불러모아 쓸어버리는 것이나 하데스가 저승을…”
“하지만 그럼 인간들이 문제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해도 폐허만이 남는다면…”
제우스의 강한 권위가 묻어나오는 올림포스답지 않게 제법 수평적인 회의가 이어졌다.
왜냐하면 신들의 왕은 잠시 회의를 이끌어가다가, 잠시 아테나에게 진행을 맡기고… 운명의 세 여신들인 모이라이(Moirai)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이번 전쟁의 흐름이나 결과에 대해 운명의 여신들에게 질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이곳에 있는 신들은 어린 신뿐만 아니라 전쟁에 능통한 노신들도 많았기에 순조롭게 흘러갔다.
전쟁의 신들인 아테나와 아레스도 있었고, 우리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헤카테(Hecate) 여신님 같은 분들도 많이 계셨으니까.
“그럼 신수나 권속, 인간 영웅들을 투입하는 것은 제하고… 오직 신들만으로 쳐들어가는 게 어떤가?”
“저도 동의합니다. 제일 약한 기가스가 강의 신 같은 하급신들과 비견될 정도이니까요.”
“아무리 인간 영웅들이 강해졌다지만, 이런 싸움에 끼어들기에는 많이 부족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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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신탁을 내려 위험을 알리는 부분은…”
“주변의 피해를 축소시켜야 해요. 플레스라 평원은 우리가 싸우기에는 너무 좁습니다.”
“그… 하데스. 저번에 네가 에트나 산에서 싸웠던 기가스의 지휘 개체들. 그것들은 얼마나 강했지?”
“우리나 제우스에게 미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올림포스 12신에 버금가는 것 같았다. 포세이돈.”
“헤카테 여신님. 혹시 평원 밖으로 빠져나오는 힘을 최대한 막아주실 수 있으십니까?”
“일정 이상의 힘은 막기가 힘든데. 그래도 최대한 막아볼게.”
“결계나 주술, 마법을 관장하는 신들이 도와드린다면 아마도…”
“아침에 시작해서, 밤이 되기 전에 끝내는 것은 어떨까요?”
“여차하면 태양 마차를 지상쪽으로 몰아서 쓸어버릴 생각인가?”
“하지만 그건 필멸자의 피해가. 아니지. 최악의 경우를 고려한 판단이라면…”
“밤의 여신, 닉스님께서 우리 편인데. 굳이 그러지는 않아도…”
회의는 제법 오랫동안 이어졌다.
내일 당장 전투가 시작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오늘은 휴식을 취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모두 피로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 신들이니까.
저승에서 죽어라 일하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하루 정도는 별 상관이 없었다.
“고위 신격들이 그에 맞는 상대를 맡아 다른 지역으로 유인해서 싸우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입니다.”
“잘 말했네. 아테나. 좋은 생각이야.”
“놈들에게도 왕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했었지? 에우리메돈… 이었나.”
예전에 오토스와 에피알테스라고 하는 거인들이 올림포스 신궁을 공격했던 시절.
낙소스 섬에서 매복했던 기가스의 지휘 개체가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에우리메돈
(Eurymedon)
왕 휘하의 아그리오스(
Agrios
)라고 한다!”
그 놈은 올림포스 12신급. 왕이란 놈은 당연히 그 위라고 봐야겠지.
나나 포세이돈. 혹은 제우스와 비슷할 수도 있다. 그래도 티폰 정도의 괴물은 아니겠지만.
“그 왕이라는 놈은 내가 맡도록 하지. 따끔한 벼락 맛을 보여줘야겠어.”
모이라이들과 이야기를 끝낸 제우스가 다가와 말했다.
그럼 나랑 포세이돈은 최대한 기가스의 지휘 개체를 줄이는 데에 집중할 수 있겠네.
“아버지께서 맡아주신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방심하지 말아라. 제우스.”
“스퀴테를 쓸 생각이군. 프로토게노이나 티폰 같은 놈만 아니라면 적수가 거의 없겠어.”
순서대로 아레스와 나, 포세이돈의 말.그리고 제우스가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티폰을 죽일 때 사용했던 최강의 무기, 스퀴테.
그것을 다시 꺼낼 생각이 확실하네.
“어느 정도 전투의 가닥은 잡힌 것 같군. 하데스 형님. 닉스 님은?”
“물론 이곳에 오기 전에 다시 한번 확답을 받았다.”
“좋아… 내 아들인 헤라클레스도 있고. 이승과 저승도 연결했었고.”
고개를 주억거리던 신들의 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정이 일어남에 따라, 그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몰아치는 힘의 격류.
벼락으로 가득 찬 푸른 눈이 올림포스의 신들을 흩어보았다.
“내일! 플레스라 평원에 있는 모든 것을 말살하겠소!”
그의 출정 선언과 함께. 수많은 신들에게서 내뿜어지는 막강한 신력이 올림포스를 뒤덮었다.
* * *
다음날, 올림포스에 모인 신들은 전원 무장을 갖추고 플레스라 평원으로 날아갔다.
구름을 밟은 채, 바람을 타고 향하는 신들의 얼굴에는 긴장과 전의가 가득했다.
후우우웅ㅡ
슬쩍 뒤를 돌아보니 내 바로 뒤에 있는 레테 여신의 얼굴이 보였다.
평소와 비슷하지만 묘한 싸늘함이 스치는 눈빛. 그 뒤에는 페르세포네도, 데메테르도 있었고…
“코레. 조심해라. 원래 너를 데려가기 싫었지만…”
“아. 저도 싸울 수 있다니까요. 아직도 이러시네.”
그들의 대화를 마저 듣지 않고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우스를 비롯하여, 내 앞에서 날아가고 있던 신들이 모두 멈췄기 때문에.
드드드…
플레스라 평원.
불타는 들판이라는 뜻을 가진 트라키아 지역의 이 평원은, 이쪽을 바라보는 수많은 기가스들로 바글바글했다.
하나하나가 신들과 비견되는 강력한 괴물들. 대지모신 가이아가 낳은 자식들.
그 수는 셀 수가 없었으며… 지상은 기가스들이 발산하는 흉흉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심지어 지금도 계속 땅 속에서 나오고 있었으니, 과연 신들의 대적이라 할 만했다.
올림포스 12신에 준하는 기가스의 지휘 개체도 수십 마리가 넘는군.
그리고 저기… 다른 기가스보다 십여 배는 더 큰 놈이 왕인가?
“제ㅡ우스! 드디어 왔군. 내가 바로 에우리메돈(Eurymedon) 왕이다.”
놈을 보자마자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다른 기가스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강력한 기운. 저승을 다스리는 나도 지상에서 놈과 싸운다면 패배할 것 같은 느낌.
기간테스들의 왕, 에우리메돈은 티폰의 열화판이다.
그를 노려보며 오른손에 든 스퀴테를 꽉 쥐는 신들의 왕.
제우스의 입가에서는 비웃음과 함께 도발의 어조가 흘러나왔다.
“그래… 그쪽이 바로 버러지들의 왕인가. 만나서 별로 반갑지는 않다만.”
“뭐라!”
“아. 그렇군. 왕이라는 표현은 너무 과했으니, 우두머리 버러지 정도가 딱 맞으려나?”
“이놈! 세계의 패권을 결정짓는 자리에서 일말의 존중도 없다는 말이…”
“가이아 님의 수족에 불과한 네놈은 나와 대화할 자격이 없다!!!”
번쩍- 쿠르르릉!!!
제우스의 노성이 울려퍼지고, 그의 상징인 천둥소리가 뒤를 이었다.
에우리메돈 역시 잔뜩 격앙되어… 자신의 무기로 보이는 거대한 떡갈나무 줄기로 만든 횃불을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좋다! 그토록 일찍 쓰러지기를 원한다면 들어주도록 하지!”
그리고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그들의 목소리.
“자신들을 신이라 칭하는 저것들을 모조리 때려눕히자! 형제들이여!”
“티탄들이나 티폰에 비하면 별것도 아닌 놈들! 오늘 안에 전부 쓸어버리고 올림포스에서 성대한 연회를 열겠소!”
화아악ㅡ 쿠르르릉. 콰쾅!!!
서로에게 달려드는 두 진영과 빛을 뿜어내는 신들의 권능, 하늘에서 내리꽂는 제우스의 벼락.
이 모든 것을 바라보며… 조용히 투명 투구, 퀴네에를 착용했다.
‘오늘은 낮이 참 길겠군.’
기간토마키아(Gigantomachia) 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