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6)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6화(16/82)
티폰의 이야기 – (5)
“너는 영겁토록 타르타로스에 처박힐 것이다.”
도발을 마치고 퀴네에를 쓰자 다시 느껴지는 익숙한 감각.
세계로부터 내가 일시적으로 사라지고 다른 공간에 발을 디딘 느낌이 든다.
“이.. 이놈이! 어디로 숨었느냐!”
콰아아앙!
티폰이 방금까지 내가 있던 곳을 주먹으로 가격하고 폭풍으로 휩쓸지만, 나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제우스, 아테나가 말한 작전대로 하자.] [좋아, 틈을 봐서 구름을 보내지]티폰에게 날린 참격으로 확실하게 깨달았다.
나는 스퀴테를 들고 티폰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있지만 놈의 머리를 일격에 날릴 수는 없다.
놈은 아무리 약화되었다지만 올림포스 전체를 이긴 괴물.
몸의 강도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세상을 찢어발기는 제우스의 벼락에도 그저 아파할 뿐.
콰르르릉!
“받아라! 티폰!”
“크아아아아!”
퀴네에를 쓴 채, 놈이 점거한 올림포스에 침투해 스퀴테를 가져왔을 때.
나는 내가 직접 티폰의 머리를 날리려고 했었다.
하지만 전장에 도착해 다른 신들에게 틈을 만들어달라 했을 때, 오직 아테나만이 다른 의견을 냈다.
[큰아버지, 저 괴물의 목을 칠 수 있는 것은 제우스 님만이 가능하실 겁니다] [내 손에는 아다마스로 만든 낫이 들려 있다. 이걸 감안해도 말이냐?] [예. 일부러 놈에게 잠시 모습을 드러내 주십시오. 티폰은 가진 힘만 강하지 전쟁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어린 괴물입니다]내 힘으로는 아다마스로 만든 스퀴테를 휘둘러도 놈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없다.
그렇다고 소모전으로 간다면 놈이 도망칠 가능성이 있다.
단번에 놈의 목을 칠 수 있는 제우스는 티폰이 최우선으로 경계하고 있다.
그러므로 티폰의 경계를 내 쪽으로 분산시키고 스퀴테를 제우스에게 몰래 넘긴다.
티폰이 보이지 않는 암살자인 나를 경계할 때, 이미 스퀴테는 제우스의 손에 들려있을 것이다.
그것이 전쟁과 지혜의 여신의 작전.
“하데스! 쥐새끼처럼 숨었구나! 크아아!”
콰콰콰콰!
그 어느 때보다도 사나운 폭풍이 올림포스 산에 몰아친다.
제일 위협적인 무기를 든 암살자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에 초초한 괴물의 몸부림.
필연적으로 제우스에게 향하는 경계의 강도는 약해진다.
“나 아레스랑 싸우고 있지 않았나! 한눈 팔지 마라, 티폰!”
격렬한 전투에서 제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전쟁의 신.
산에 날아가 처박혔던 아레스가 다시 전장으로 뛰어들어 티폰을 향해 달려든다.
“올림포스 용광로의 불길이 어떤 것인지, 똑똑히 봐라!”
대장장이와 불꽃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망치를 높게 치켜들자 근처의 대지가 모조리 불길에 휩싸인다.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묵인으로 더욱 거세진 화마는 구름까지 닿을 만큼 거대해졌다.
티폰 역시도 그에 대응해 다시 한번 거대한 돌풍을 불러오고,
이는 땅과 하늘을 잇는 거대한 불의 폭풍을 만들어냈다.
쿠콰콰콰콰-
[지금이다, 제우스. 스퀴테를 전달하겠다.] [오색 구름을 보낼테니 그곳에 놓아줘, 형님.]화염의 폭풍으로 티폰의 시야가 흐려진 지금이 기회.
오색빛으로 가득한 기이한 구름이 자욱하게 깔리고 나는 슬며시 손에 든 낫을 구름에 놓았다.
* * *
“크-아아아아!”
티폰의 머리카락을 이루고 있는 뱀들이 번개와 독액을 마구 내뿜으며 발광한다.
그 자신도 알고 있듯이, 점차 승기는 올림포스 신들에게 기울고 있었다.
증오스러운 모이라이들과 감히 자신을 속인 인간만 아니였어도!
“괴물아, 이 포세이돈이 여기 있다!”
쿠쿠쿵! 콰앙!
다시 한번 티폰의 얼굴로 푸른 신력을 담은 포세이돈의 삼지창이 직격한다.
하지만 진짜 경계해야 할 놈은 따로 있었다.
“하데스! 저승의 주인이라는 놈이 음침한 쥐새끼와 같구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암살자가 최강의 무기인 스퀴테를 들고 그를 암중에서 노리고 있다.
스퀴테는 함정에 빠지기 전의 티폰에게도 상처를 입혔던 최강의 무기.
빈틈이 보이면 아다마스로 만든 시퍼런 칼날이 그의 목으로 날아들으리라.
신들과 싸우면서도 계속 보이지 않는 암살자를 경계하던 티폰의 기감(氣感)에 무언가 느껴졌다.
뒤에서 날아오는 음산한 공격, 놈이다!
스각- 촤악!
음산한 참격에 등이 갈라져 황금빛 이코르를 쏟아내지만 티폰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암살자는 보이지 않을 때나 두려운 법, 놈의 위치가 방금 공격으로 드러났다.
콰아아아앙!
티폰의 발에 폭풍이 휘감기며 참격이 날아온 방향으로 내질러진다.
땅이 깊게 파이며 굉음을 내고 작은 지진을 일으킨다.
“흐.. 잡았구나, 이놈!”
“쿨럭..”
바닥에는 퀴네에가 벗겨진 하데스가 쓰러져 있었다.
그는 적잖은 부상을 입은 듯, 입에서 이코르를 쏟아내며 누워있었다.
티폰이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스퀴테를 찾았다.
하데스가 가지고 있던 낫만 다시 빼앗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
이번에는 모든 신들의 사지 힘줄을 끊고 땅에 묻어버릴 것이다!
그런데 그의 시야에 스퀴테가 보이지 않는다.
초월적인 신의 시력으로 하데스 주변을 모조리 살폈는데?
“크…”
이쪽을 비웃는 하데스의 싸늘한 미소가 당황한 티폰의 눈에 들어온다.
그와 함께 뒤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힘. 제우스!
“제법 고전했지만 여기서 끝이다! 티폰!”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놈의 번개가 날아오지 않았..
댕겅-
티폰의 시야가 거꾸로 뒤집히며 그대로 암전했다.
* * *
쿠우웅!
“후우…”
스퀴테를 든 제우스가 일격으로 티폰의 머리를 잘랐다.
그와 동시에 방금까지 맹렬하게 휘몰아치던 폭풍이 그대로 멈췄다.
티폰의 몸은 그대로 허물어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땅으로 떨어진 머리는 흙먼지를 묻히며 마구 뒹굴었다.
그래, 우리가 승리했다.
올림포스를 노리던 가이아의 결전병기는 신들의 협공에 결국 패배한 것이다.
아마도 티폰이 곧장 저승으로 쳐들어와 타르타로스의 티탄 신족들을 풀어주고 함께 싸웠다면 우리는 패배했을지도 모르지.
놈의 패착(敗着)은 단 하나, 자신의 힘만 믿고 오만한 모습을 보인것이다.
“쿨럭..!”
으음.. 놈의 공격을 일부러 맞아주느라 몸이 많이 아프군.
입에서 이코르 흐르는 것 좀 봐, 힘이 엄청나긴 하네.
일단 바닥에 티폰의 목과 함께 떨어진 스퀴테를 다시 집어들었다.
목이 너무 단단해서 제우스가 놓친 건가?
놈이 확실히 쓰러졌는지 머리를 툭 건드려보았다.
사납게 치켜뜨던 눈이 감기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일시적인 가사상태에 빠진 모양이다.
[확실한 빈틈을 만들기 위해 일격을 맞아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그 순간 퀴네에도 벗어주신다면 티폰을 분명히 속일..]아테나, 저번에 대홍수 때의 사적인 감정으로 보복한 것은 아니겠지?
그때 일을 너무 많이 시켰나.
“하데스! 괜찮은 거야?!”
나는 멀쩡하니 울먹이지 마라 헤스티아.
우리 신들은 불사의 존재, 너도 알고 있을 텐데?
티탄 신족과의 전쟁도 경험한 노련한 신이 마음은 약해가지고..
그래도 막상 싸울 때는 가차없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위험했군, 가이아 님께서 이런 놈을 만드셨을 줄이야.”
“올림포스 산이 무너졌는데 어떡하죠?”
“그야 다시 산을 복구해야지. 님프들과 하급신들이 고생하겠어.”
전투가 끝나고 부상을 치료하고 숨을 고르던 신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몸에서 황금빛 액체, 이코르를 흘리는 신들이 모이자 주변의 공기가 금빛 광채로 빛나기 시작한다. 특히 아레스는 크게 다친 것 같은데..
이제 티폰을 이겼으니 뒷정리를 할 시간이다.
“하데스 형님, 올림포스를 도우러 와준 보답은 꼭 하도록 하지.”
“흥, 제우스. 물론 나도 대가를 받고 싶은데.”
“….포세이돈, 그쪽도.”
“태양의 빛줄기와 같은 내 화살이 통하지 않다니..”
“사냥감에게 역으로 사냥당할 뻔했네요.”
“나의 자식과도 같은 대지가.. 완전히 망가졌구나. 미안하다. 어쩔 수 없었어.”
“데메테르 님, 자연을 복구하는 건 제가 노력해 보겠습니다요.”
“판, 자연을 되살리는 건 잠시 미루고 나를 따라와라. 놈의 잔당이 있는지 함께 살피자.”
“알겠습니다요. 하데스님.”
일단 염소 다리를 폴짝거리며 뛰어오는 판과 함께 근처의 잔당을 수색하러 이동했다.
티폰의 부하라던 델퓌네라는 괴물도 있었으니 이참에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목이 잘린 티폰은 어차피 전투불능이니 이대로 놔둬도 상관없다.
이곳에 있는 신들만 몇인데 무슨 일이 발생해도 잘 대처할 수 있겠지.
곧 판의 명령을 받은 작은 동물들이 사방으로 퍼져 괴물을 수색한다.
잠시 땅바닥에 귀를 갖다대고 숲과 들의 속삭임을 듣던 판이 나를 불렀다.
“그.. 어느 동굴에 못 보던 동물이 있다는굽쇼?”
찾았군.
* * *
판의 뒤를 따라 근처의 동굴로 향하자, 과연 괴물의 기운이 느껴졌다.
얼마 전에 본 델퓌네라는 괴물이 뿜어내던 힘보다는 약한 것을 보니 역시 잔당이 더 있었구나.
“이 동굴입니다요.”
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동굴로 들어서자 웬 개 한마리가 나를 반겼다.
바닥에 비스듬히 누워 하품을 늘어지게 하는 검은 개.
눈에서는 괴물 특유의 형형한 안광이 번뜩이고 티폰의 기운이 미약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아 그놈의 혈육이 분명했다.
동굴로 들어온 우리에게서 적의를 느꼈는지 곧장 일어나 으르렁대는 모습이 조금 귀여웠다.
그런데.. 개의 머리가 셋?
“음, 약한 괴물인 것 같으니 제가 처리하겠습니다요.”
판이 손을 뻗자 동굴 근처의 풀이 자연스럽게 얽히며 날카로운 창을 만들어낸다.
식물로 이루어진 창이 그 삼두견(三頭犬)을 금방이라도 꿰뚫을 것만 같았지만..
크르르륵! 아르르..
오, 판이 날린 창을 포착하고 이로 물어뜯어?
제아무리 작은 괴물을 얕보고 대충 날린 공격이라고 해도 제법이다.
“하.. 괴물놈이..”
판이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손에 녹색 신력을 집중시킨다.
아마도 내가 있는데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하는 모양.
“됐다. 그냥 내가 하지.”
“예? 하데스님께서 손을 쓰실 필요까지는..”
이런 약한 마물에게는 스퀴테를 쓸 필요도 없다.
스틱스 검을 뽑고 가까이 다가가자 풀로 이루어진 창을 씹던 개가 흠칫하며 날 바라본다.
세 개의 머리가 빠르게 나의 겉모습과 검을 살펴보더니..
끼이이잉! 낑! 깨갱!
그대로 뒤로 누웠다..?
“그게.. 항복.. 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요.”
판이 어이가 없다는 듯 괴물을 보더니 내게 말했다.
자연의 신이라 지성이 낮은 동물이나 괴물의 말 정도는 알아듣는 판의 통역이라면 믿을만 하지만..
티폰의 핏줄로 보이는 싹수가 노란 괴물이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에 벙쩌있자 슬금슬금 이쪽으로 다가온다.
조금 떨어진 곳까지 다가와 날 바라보며 혀를 내밀고 꼬리를 열심히 흔드는 괴물.
헥헥! 헤엑! 끼이잉!
“높으신 분을 뵙게 되어 영광이다.. 뭐든지 다 할 테니 살려달라…라고 하고 있습니다요..”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