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66)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67화(166/179)
어딘가 이상한 트로이 전쟁 – (1)
트로이를 멸망시키기 위해 출범된 그리스 연합군.
대부분 모인 이들은 아르고 호 원정이나 칼라돈의 멧돼지 사냥을 겪지 않은, 다음 세대의 영웅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부모에게서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란 것은, 위대한 영웅들의 일대기.
카드모스. 페르세우스. 벨레로폰. 아스클레피오스나 오르페우스… 끝내는 최강의 대영웅인 헤라클레스의 이야기까지.
신화 속 쟁쟁한 영웅들처럼 이름을 떨치고 명성을 드높이려는 꿈을 키워오며 훈련한 용자들.
그들은 이번 트로이 침략을 통해 위대한 영웅들처럼 자신들의 무명을 널리 떨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저 간악한 트로이의 왕자에게 납치당한 헬레네를 위하여!”
“어떤 간교한 속셈으로 헬레네를 데려갔을지는 몰라도 당연히 그 대가를…”
“이번 전쟁에 대해서 신탁을 받아야겠다. 신들께서 전쟁에 대한 것을 점지해주신다면 분명…”
파리스에게 아내를 빼앗긴 당사자인 메넬라오스부터, 그의 형이자 미케네의 왕인 아가멤논.
살라미스의 왕자 아이아스나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무용을 지녔다는 디오메데스 등. 온갖 영웅들이 여기에 참여했다.
테세우스나 이아손 등. 이미 뛰어난 업적을 세운 영웅들은 연합군에서 빠졌는데.
헬레네의 구혼자가 아니었기도 하고,이미 충분히 명성을 드높였기에 굳이 참여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쟁을 한다고? 무슨 괴물과 싸우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과? 허. 참. 세상이 많이 좋아졌군.”
“그러게나 말이야. 우리 때에는 괴물놈들이 사방에 깔려서 도시만 나가면 습격받았는데.”
“이게 다 니놈들이 위업을 쌓는답시고 괴물을 너무 많이 잡아대서 그런 것이 아닌가?”
“너도 좋다고 창 들고 따라왔으면서 무슨 소리냐. 이다스.”
저승의 훈련소에도 참여했던 이전 세대의 영웅들은 위업을 쌓을 전쟁임에도 심드렁했다.
이 전쟁에 참여한 노장은 단 둘.
“젊은 놈들이나 참여하는 전쟁인 줄 알았는데. 반가운 얼굴이 있군.”
필로스의 왕인 네스토르와.
“전쟁에는 별 관심이 없는데, 그냥 여동생이나 설득해서 데려가려고. 너도 그냥 심심풀이로 나온 것 아니냐?”
헬레네의 두 오빠 중 하나, 팡크라티온의 대가인 폴리데우케스(폴룩스)였다.
여동생의 남편인 메넬라오스의 요청에 참전한 그는 몸을 이리저리 풀며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게도 그리스의 수많은 국가들이 움직이는 전쟁이었기에 신들의 신탁도 내려왔는데.
모두가 함께 들은 신탁의 내용은 조금 많이 이상했다.
전쟁의 승패는 이미 인간의 손을 떠났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신들께서 결정하신다는 건가?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에게 승산이 있지 않겠소?”
“암. 저 간악한 파리스 놈을 신들께서 그냥 두고 보실 이유가 없겠지.”
“트로이는 아폴론 신을 모시지 않소? 태양신께서…”
정말 이상한 신탁이었기에 그들은 그리스에서 제일 지혜롭다는 이타카의 왕인 오디세우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는 헬레네의 구혼자들에게 맹세를 제안한 자였기 때문에, 당연히 이 자리에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디세우스 왕은 어디로 갔지?”
“애초에 이 자리에 오지 않았는데?”
“…?”
오디세우스 왕은 보이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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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나라 이타카(Ithaca)의 왕, 오디세우스(Odysseus).
그는 자신의 주제를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오디세우스의 꾀를 잘 보여주는 예로는 몇 가지가 있는데.
오디세우스는 본디 헬레네의 구혼자로서 스파르타로 향했으나, 쟁쟁한 세력을 갖춘 다른 구혼자들의 면면을 보고.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고 여겨… 헬레네의 사촌인 페넬로페를 아내로 맞이하게 해 준다는 조건으로.
“따님을 노리는 자들이 많아서 고생 많으시겠습니다.”
“…?”
“페넬로페를 주신다면 제가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을 알려드리지요. 누군가 결혼을 방해하면 힘을 합쳐 싸운다는…”
헬레네의 양아버지인 튄다레오스에게 구혼자의 맹세를 요구하라는 조언을 건넨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끝이 아니었는데.
그의 국가는 매우 작은 소국이었기에. 국교로 모실 신도 잘 선택해야만 했다.
트로이는 아폴론 신을. 테베는 플루토 신을. 아테네는 아테나 신을 모신 것처럼, 모시는 신에 따라 국가의 흥망성쇠도 결정되기 때문에.
‘적당히 권위가 높으면서도 자비로운 신을 모셔야 한다. 이런 소국에도 신경을 써줄 정도면서, 다른 신에 크게 밀리지 않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오디세우스.
‘예전에 아르카디아의 공주와 칼리돈의 왕자가 테베에서 결혼식을 올렸지. 그들의 유대감은 예전에 테베에 있었다는 영웅들의 훈련소다. 플루토 신을 모신다는 동질감으로 테베와 아르카디아, 칼리돈이 삼국 동맹을 맺은 것이나 마찬가지. 세리포스 섬도 그렇고… 그렇다면 우리도 플루토 신을 모시는 것은 어떨까?’
무려 지혜의 여신 아테나도 눈여겨보던… 그리스 제일의 지략가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저승이라는 매우 꺼림칙한 요소가 있었으나.
부와 자비, 그리고 공정을 주관하는 플루토 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엄벌을 내리지는 않겠지.
백성들이 조금 싫어할 수도 있지만, 삼국 동맹에 우리 이타카가 슬쩍 끼어들 수만 있다면…!
“여봐라!”
“예. 폐하!”
“우리 이타카는 부와 자비의 신, 플루토를 모신다. 당장 신전을 짓고 사제를…”
그렇게 저승의 신을 모시게 된 이타카.
오디세우스는 그 꾀를 적절하게 활용해, 결국은 삼국 동맹에 한 발 걸치는 것에 성공했다.
테베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개척한 그는 현명한 왕으로 백성들에게 칭송받았다.
그리고 지금, 전쟁에 참여해달라는 메넬라오스의 서신이 도착하자.
오디세우스는 하데스 신전에서 전쟁에 대한 신탁을 받았다. 당연히 저승의 왕은 전쟁에 굉장히 부정적이었고.
주신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고 판단한오디세우스 왕은.
“오디세우스 님. 메넬라오스 님께서 저를 보내셨습니다. 트로이를 공격하는 일에 도와주시죠.”
“미안하지만 이타카의 주신인 플루토께서는 내가 전쟁에 참여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시네.”
“네? 하지만 오디세우스 님께서 구혼자의 맹세도 제안하셨으니…”
“아무튼 나는 못 가네. 모시는 주신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할 수가 있겠나?”
메넬라오스가 보낸 전령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했다.
“나 말고 그 아킬레우스였나? 영웅 펠레우스와 테티스 여신의 아들이라는 그 친구나 데려가시게.”
“그 쪽은 이미 설득했습니다. 비록 여장을 하고 숨어있었지만… 대영웅 헤라클레스 이야기를 늘어놓았을 때, 제일 관심을 보이는 자를 찾았죠.”
“그럼 그 친구도 있겠다. 굳이 내가 필요하나? 내가 있어야 전쟁에서 이긴다는 예언이 내려온 것도 아니고…”
“으음…”
물론 전령이 끈질기게 권유했으나, 삼국 동맹에 발을 걸친 오디세우스는 연합의 보복이 그리 두렵지 않았다.
그렇게 끝까지 플루토 신의 핑계를 대며 거절하는 그.
“치잇. 이 일은 메넬라오스 님께 전하겠습니다!”
“뭐 그러시던가.”
오디세우스. 불참.
아킬레우스. 여장이 들켜 참전.
* * *
한편, 트로이.
그리스 연합군이 결성되어 트로이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프라마다스 왕.
그는 나날히 더해지는 압박감에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젯밤 플루토께서 또 모르페우스 신을 보내셨소. 저승은 정의의 여신이 속한 곳이라는데, 이는 대체 무슨 뜻이오?”
“플루토께서는 공정과 자비의 신이십니다. 아무래도 더욱 정의로운 쪽에 힘을 실어주시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플루토 신전도 세웠고, 트로이를 도와주신다고 하셨는데…”
“공정과 자비의 신격에게서 도움을 받으려면 일단 우리가 정의로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또다시 신하들이 나서서 이에 대한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의견은 쉽게 모아졌는데, 지금의 트로이는 절대로 정의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폐하. 이번 전쟁의 빌미는 저희 쪽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플루토께서 이 점을 지적하신 것이 아닌지…”
“파리스 놈이 데려온 여인 때문이겠지. 그래서 내가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의 땅을 밟는다면, 왕자님이 데려온 여인을 돌려보내야 합니다!”
“…하지만 그건 결국 놈들의 군대에 굴복하겠다는 뜻이지.”
사실 문제의 원인인 헬레네를 돌려주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왕자의 지위. 트로이의 체면. 국가 간의 알력다툼에서 한 발자국 물러난다는 제스쳐.
타국의 군대에 겁먹어 왕자가 점찍은 여인을 내어준다?
아무리 정당하지 않은 사랑이라 하더라도, 이는 트로이의 약함을 나타내는 일.
심지어 파리스의 말에 따르면 아프로디테 여신이 내려준 상이나 다름없는데…
“폐하. 플루토께서 벌써 2번이나 신탁을 내리셨나이다. 공정의 신께서는 이번 일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이 분명합니다.”
“폐하! 아프로디테 여신과 플루토 신을 저울질한다면 당연히 주신이 우위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필멸자의 끝은 공정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를 부디 기억해 주소서.”
노년의 왕은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분명 저승에 간다면 자신의 아들, 파리스도 죗값을 치르겠지. 그럼 지금이라도 헬레네를 돌려보내는 것이 그 죗값을 덜어낼 방법이 아닐까?
플루토 신이 이승에 관여할 정도의 전쟁이라는 것은… 아폴론 신께서는 아직 아무 말씀도… 허어…
한참을 고심하던 프라마다스 왕은 입을 열었다.
“…트로이에 재앙을 불러온 그 여자를. 당장 내보내라.”
그래, 일단 왕자가 잘못한 건 맞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