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68)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69화(168/179)
어딘가 이상한 트로이 전쟁 – (3)
“지금 나를 우롱하는 건가? 헥토르?”
메넬라오스 왕은 이것이 트로이의 함정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주변 동맹국을 침략할 때에는 보이지도 않던 트로이의 총사령관이 이제야 나서서 헬레네를 돌려준다?
그것도 저 쓰레기도 함께 나왔다고? 그는 아내를 빼앗긴 남편이기 이전에 스파르타의 왕.
당연하게도 뭔가 함정이나 속임수를 경계하고 있었다.
메넬라오스가 불타는 눈길로 파리스와 헥토르를 노려보았다.
“빼앗긴 아내와 저 쓰레기를 함께 보여주면 내가 이성을 잃고 달려들 것 같았나? 아니면 너희가 모시는 아폴론 신이 예언으로 알려줬나? 대체 무슨 수작질을 부리려는…”
“수작질이 아니오. 우리가 얼마 전부터 섬기는 플루토께선 정의를 중시하시지.”
“뭐라?”
“그 증거로 내 못난 동생놈이 데려간 여인은 돌려보내겠소.”
헥토르의 손짓에 병사들이 헬레네의 등을 떠밀었고.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천천히 메넬라오스 쪽으로 향했다.
터벅터벅.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메넬라오스 왕의 표정은 아주 묘했는데. 분노와 애증, 회한과 슬픔 등 온갖 감정이 휘몰아쳤다.
결국 스파르타의 왕은 헬레네가 곁에 설 때까지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이런다고 연합군을 물리고 돌아갈 듯 싶으냐?”
“물론 많은 예물과 배상 역시 준비했소. 파리스는… 이래뵈도 내 동생이고 트로이의 왕자라 당신들에게 넘겨드릴 수는 없긴 하지만,내가 조금 따끔히 혼냈소.”
“……?”
무장하지 않은 하인들이 트로이 군 사이에서 나오더니 많은 금은보화를 꺼내들었다.
황금빛 향연이 메넬라오스의 눈에 보였고, 옆에는 헬레네가 있다, 그리고 말 위에 앉은 헥토르의 옆에는 아예 이쪽을 바라보지도 못하는 파리스도 있었고.
얼마나 많이 얻어맞았는지, 입술까지 부어오른 파리스가 그의 눈에 똑똑히 들어온다.
하기야. 아무리 왕자여도 저 놈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으니.
“저 파리스 놈 때문에 우리 모두가 바다를 건너 이곳까지 왔다.”
“군을 물리고 돌아가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소.”
잠시 헥토르와 대화를 나누던 메넬라오스는 파리스를 사납게 노려보고 일단 그리스 군 진영으로 돌아갔다.
물론 그의 옆에는 헬레네와, 배상금이라는 이름의 각종 물건들을 나르는 시종들도 함께했다.
당연히 그리스 군 역시 아리송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저. 저건 헬레네 아니야? 트로이에서 보내준 건가?”
“이렇게 순순히 돌려준다니. 이럴 거였으면 진작에…”
“잠깐. 이러면 전쟁은 어떻게 되는 거지? 스파르타의 왕이 부인을 되찾았으니, 그리스로 돌아가는 건…”
“전쟁으로 명성을 떨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물 건너간 건가.”
“그럴 리가. 윗분들이 별 소득도 없이 순순히 물러가겠나?”
전쟁이 시작된 첫째 날.
트로이와 그리스 연합군은 서로 충돌하지 않았다.
* * *
다음 날, 그리스 군의 진영.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막사로 많은 장수들이 찾아와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놈들이 순순히 헬레네를 내어주다니. 우리 연합의 힘이 두려웠던 것이 아니오?”
“흥. 병사들을 눈 앞에 두니까 두려워서 마음이 변한 거겠지.”
“플루토? 그 헥토르가 왜 플루토의 이름을 언급했을까.”
“신의 이름을 들먹임으로서 위협이라도 가하려는 수작 아닙니까?”
“그런데 이러면 우리도 그리스도 돌아가야 하나?”
마지막 말을 꺼낸 이에게 시선이 쏠렸다.
그들은 헬레네를 돌려받았지만, 별 성과도 없이 그리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곳까지 오는 데 든 비용, 물자와 고생을 생각하면… 적어도 트로이를 멸망시키고 성을 약탈해서 전리품을 챙겨야만 했다.
“절대로 그건 안 되오!”
“이곳까지 그토록 고생하며 왔는데. 빈 손으로 돌아간다니!”
“적어도 파리스 놈의 목은 베어야 하지 않겠소?”
“음. 나 또한 아내를 돌려받았지만, 물러설 생각은 없소.”
메넬라오스 본인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짓다가, 곧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그도 다른 구혼자들이 자신의 도움 요청을 받아들인 까닭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파리스를 죽여버리고도 싶었고.
“별로 썩 내키지는 않군. 괴물도 없이 인간들의 전쟁으로 무슨 위업을 쌓는다고…”
“너도 그러냐, 네스트로.”
하지만 네스트로와 폴리데우케스는 전쟁에 조금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테베의 플루토 신전을 통해 저승으로 넘어가 훈련을 거친 자들. 그 저승의 신이 트로이 편이라는 사실도 그렇고.
괴물도 아닌, 고작 인간들과 싸우며 자신들의 무용을 뽐내고 싶지는 않았다.
“트로이에서 아폴론 신과 더불어 플루토도 모신다는데. 자네도 알고 있지? 예전에…”
“테베 훈련소? 으음. 뭐 그렇지. 전초전이기도 하고… 조금 상황을 지켜보자고.”
애초에 그리스에서 제일 뛰어난 젊은 세대의 영웅이라는 아킬레우스마저.
신화적인 괴물과 싸워온 진정한 영웅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가소로워 보였을 뿐.
스아아아-
그렇게 의견을 나누던 영웅들의 눈앞에 오색빛 안개가 피어올랐다.
명백한 불멸자의 개입에 그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느 신이지? 혹시 신탁이라도 내리시려는 것일까.
“너희는 왜 진격하지 않느냐?”
엄청난 압박감. 갑옷과 창, 방패. 인간의 미모를 뛰어넘은 여신의 아름다움.
이 모든 조건을 부합하는 신이라면 오직 하나, 전쟁의 여신 아테나뿐이다!
“전쟁의 영광이 머지 않은 곳에 있다. 그리스의 영웅들이 모두 겁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내게 보여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순식간에 사라진 아테나 여신.
눈앞에서 직접 신을 보았다는 것에 고양된 장수들이 칼을 뽑아들었고, 아가멤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테나 여신께서는 우리 그리스 편이시오! 내 기필코 트로이를 함락시켜 여신께 바치리라!”
전쟁의 여신이시여, 우리를 비호하소서.
한편, 트로이 성 내부.
그리스 진영에서 온 전령이 트로이에 연합의 의견을 전달했다.
“…순순히 파리스의 목을 내어준다면 돌아가겠다?”
트로이의 총사령관 헥토르는 한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역시나 헬레네를 돌려보내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군. 원래부터 호시탐탐 트로이를 노리던 자들이니…
엄청난 대군으로 보이는 그리스 연합군.
반면 근처의 동맹국들은 몇 군데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점령당했고, 뛰어난 무장의 수가 모자란 그의 조국.
제아무리 헥토르가 트로이 최고의 장수라고는 하나… 혼자서 가능할까?
그렇게 고민에 빠진 채 지도를 내려다보며 전략을 생각하던 헥토르의 방에 한 여인이 들어왔다.
트로이의 공주이자 아폴론의 사랑을 받는 그의 여동생, 카산드라.
“오라버니.”
“응? 뭐냐. 카산드라.”
“아폴론 님의 신탁이에요.”
화아악-
카산드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의 몸이 막대한 광량을 뿜어냈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열기와 위압감. 포이보스 아폴론이 자신의 무녀를 통해 하계에 강림했다!
“헥토르. 내가 사랑하는 카산드라의 혈육이여.”
“주 아폴론이시여!”
“용기를 내어라. 트로이의 총사령관이자 최고의 장수가 바로 너임을 기억해라.”
태양신에게서 뿜어지는 따스한 기운이 무릎 꿇은 그의 몸을 감싸고 힘을 불어넣었다.
신의 직접적인 축복. 그것도 12주신의 힘이 헥토르의 몸에 깃든다.
“감사합니다! 아폴론이시여!”
“이번 대전쟁은 필멸자의 몸으로 견디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서서히 카산드라의 몸에서 떠나가는 태양신의 마지막 말이 그의 귓가에 울려퍼진다.
고개 숙인 헥토르의 머리 위로, 신의 음성이 계시처럼 내려왔다.
“나를 비롯해 올림포스의… 아니 수많은 신들이 트로이를 비호하리니.”
신들이시여, 트로이를 지켜주소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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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성에서 조금 떨어진 평원.
성을 나온 트로이 군과 진영 바깥에서 대열을 갖춘 그리스 연합군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이 열기에서 한 발자국 물러난 이들도 있었으니, 바로 네스트로와 폴리데우케스였다.
“크흠. 젊구만. 젊어. 나도 저 나이대에는 괴물들을…”
“하하하! 젊은이들이 알아서 활약하게 우리는 조금 빠져있자고.”
“나도 그럴 생각이다. 펠레우스. 어차피 헬레네도 돌려받았고, 괴물들과 싸우는 것도 아니니.”
괴물들을 도살하고 다니던 그리스 연합군의 노장 둘이 빠지는 것은 모두가 바란 상황.
트로이 측은 영웅 전력의 이탈에. 그리스 측은 자신들이 전공을 세울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여겼다.
아무튼 전차를 타고 병사들을 독려하는각 진영의 쟁쟁한 장수들.
트로이를 돕겠다고 나선 아마존의 여왕이자 아레스의 딸인 펜테실레이아, 아프로디테 여신의 아들인 아이네이아스.
이번 세대의 영웅들 중 아킬레우스 다음 가는 맹장으로 꼽히는 디오메데스, 엄청난 장신의 아이아스 등이 기세를 올린다.
철컹철컹. 스르릉.
“창과 방패를 들어 올리고 경계하라!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적들이! 바로 올림포스 신들께 바치는 제물이다!”
“저자들을 몰아내고 우리의 평화를 되찾자, 트로이의 용자들이여!”
“파리스! 접대의 관습을 어기고 아내를 빼앗았던 추악한 자는 어디에 있는가!”
“헬레네를 돌려보내도 물러가지 않는 추악한 욕망을 지닌 놈들이 바로 저기에…”
사방에서 병사들을 독려하며 전투를 대비하는 장수들과 달리,
그리스의 연합을 이끄는 아가멤논과 트로이 총사령관 헥토르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 일촉즉발의 상황.
자신이 아끼고 비호하는 인간들을 돕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올림포스의 신들.
“아폴론. 너도 트로이에게 원한이 있을 텐데. 그 카산드라라는 아이의 미모가 그리도 뛰어났느냐?”
“…포세이돈 큰아버지. 죄송하지만 이번에는 저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
“뭐라? 트로이 편을 드는 하데스라도 믿는 게냐?”
“아테나!너 때문에 대홍수 때 죽어라 일한 원한을 이제서야 갚는구나!”
“흥. 그러니까 네가 맨날 내게 패하는 거다.”
그렇게 구름 위의 신들도 신경전을 벌였다.
제피로스가 만들어내는 따스한 훈풍이 불어오는 가운데, 두 진영의 총사령관은 명을 내렸다.
“전군. 돌격해라!”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전진한다!”
트로이 전쟁. 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