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69)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70화(169/179)
어딘가 이상한 트로이 전쟁 – (4)
사방에서 울려퍼지는 함성 소리와 함께 양 군이 격돌한다.
살의를 품은 창날이 휘둘러지고, 화살이 쏘아져 적의 육체를 꿰뚫는 끔찍한 전장.
살을 찢는 피륙음과 금속끼리 부딪히는 살벌한 소리, 비릿한 혈향.
쐐애애액- 푸욱. 푸확! 카아앙!
“죽어라! 죽어. 죽어!”
“스파르타 군의 용맹을 똑똑히 보여주자!”
“천공의 주인, 제우스 님이시여! 저를 지켜봐 주소서!”
“군신 아레스께서 보고 계신다!”
각자 모시는 신의 이름을 외치며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는 병사들.
이런 치열한 전쟁터에서 돋보이는 것은, 역시 영웅의 경지에 올라선 이들이었다.
휘익- 푸우욱. 촤아악!
“트로이 군이 강군이라는데. 별 것도 아니군!”
“방심하지 마라, 아킬레우스! 아무리 너라 해도 조심해야 해!”
“하하하! 파트로클로스(Patroklos)! 너나 조심해라!”
젊은 세대의 영웅들 중 최고의 무용을 지녔다고 꼽히는 아킬레우스와,
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뛰어난 용력을 지닌 파트로클로스.
“지휘관… 지휘관을 잡아야 하는데. 잘 보이지가 않는군.”
“저기. 날뛰는 저놈을 노리시는 게 어떻습니까! 펜테실레이아 님!”
아마존의 여왕이자 트로이의 편에 선 펜테실레이아.
“헥토르! 나와 한판 붙자!”
“바라는 바다, 아이아스!”
모두가 인정하는 트로이 최고의 영웅인 헥토르, 살라미스의 왕자이자 거한 아이아스 등.
수많은 영웅들이 무용을 뽐내며 병사들을 도륙한다.
영웅의 경지에 올라선 이들은 어지간한 병력으로는 막을 수 없는 법.
비록 괴물들을 때려잡으며 성장했던 이전 세대의 영웅들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
“으. 으아아악!”
“괴물. 괴물이다!”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각 진영의 병사들.
그러나 전황은 어느 한 진영으로 기울지 않고 거의 대등한 모양새를 보였다.
전체적인 영웅들의 실력은 그리스 연합 측이 더 뛰어났지만… 올림포스 신들의 잦은 개입과 헥토르의 용병술, 하데스의 신전이 도시에 세워져 사기가 오른 트로이의 병사들 때문.
이곳저곳에서 구름과 안개가 일어나고, 우연처럼 보이는 신들의 개입이 전황을 뒤흔든다.
“아이네이아스! 너는 옆으로 우회해서 놈들의 옆을 쳐라! 펜테실레이아! 잠시만 아이아스를 맡아주시오!”
“알았다, 헥토르! 우군은 나를 따르라!”
“내게 맡겨라. 아마존의 전사들아! 우리의 실력을 보여주자!”
“저기. 빛나는 투구를 쓴 자가 헥토르라고 그랬지.”
“놈을 쓰러뜨리기만 한다면 전쟁은 끝나겠군. 한번 노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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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서 활을 쏘는 저 놈이 바로 트로이의 장군, 판다로스다! 방패를 치켜들고…!”
“우리 트로이는 태양신과 저승의 왕께서 비호하신다!”
“군신 아레스시여! 당신께 이 영광을 바치나이다!”
“공정과 자비의 신, 플루토께서는 트로이의 편이시다. 돌격!!”
바닥에 쓰러져 죽어가는 병사들이 늘어나고, 필멸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 타나토스의 분신 여럿이 나타나 망자들을 인도한다.
구름 위에서는 전쟁의 두 신격이 자신이 지지하는 군세에 축복을 내리고, 용기를 불어넣었다.
“젠장, 태양이 왜 우리 쪽으로만 비추는 거지? 눈이 너무 따가워…”
“트로이 놈들이 아폴론 신을 믿는다는데, 그것 때문이야!”
“컥… 이 놈. 분명 내 창이 먼저 닿았을 텐데…”
“허억. 감사합니다! 아테나 여신이시여!”
고함과 비명, 데메테르의 대지에 뿌려지는 필멸자의 피, 무서운 기세로 달리는 전차의 소리…
이 모든 것을 바라보던 아폴론의 눈길은 아킬레우스에게 향했다.
아버지 펠레우스보다 위대해질 것이라는 예언.
그리스 군에서 제일 빠른 움직임.
그의 어머니, 테티스 여신이 준 헤파이스토스의 갑주.
가벼운 경갑을 입고 빠르게 움직이는 아킬레우스의 활약은 그리스 군에서 제일.
전장의 중심에서 날뛰는 그를 아무도 막지 못했다.
‘저 아킬레우스 때문에 트로이 군이 조금 불리하군. 몸에 두른 것은 헤파이스토스의 갑옷에, 창 끝에는 아테나의 가호인가?’
태양신은 모습을 감추고 내려가 트로이 제일의 명궁인 판다로스에게 향했다.
“판다로스. 나는 아폴론이다. 고개를 돌리지 말고 내 말을 들어라.”
“…!”
“저기. 전장을 누비는 장수 하나가 보이느냐?”
“예. 아킬레우스 아닙니까? 하지만 저 갑옷 때문에…”
“그를 죽여라. 네 화살이 갑옷의 틈새를 노릴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겠다.”
“…알겠습니다!”
판다로스의 화살에 작은 빛이 맺혔고, 전차를 타고 날뛰는 아킬레우스에게 쏘아졌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무엇보다도 날카로워진 화살촉이 매섭게 날아간다.
* * *
쐐애애액- 티잉!
“으음!”
아킬레우스에게 날아간 화살은 그가 몰던 말의 머리를 꿰뚫고, 그의 갑옷을 스치고 지나가 땅에 떨어졌다.
그를 눈여겨보던 아테나 여신이 화살을 손으로 쳐냈기 때문. 하지만 전장을 질타하던 아킬레우스의 기세 역시 줄어들었다.
“아킬레우스.”
“아… 테나 여신님?”
“신들이 너를 노리는구나. 조심하도록 해라, 아킬레우스.”
여신에게 감사를 표한 아킬레우스는 잠시 물러나 정비에 나섰고, 다시 그리스 장수들을 도우러 사라지는 아테나 여신.
이미 인간들만의 전쟁이라고 할 수 없는 전장. 치열한 신들의 힘겨루기가 병사들의 기세에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하데스가 다스리는 저승에서도 지켜보고 있었다.
이승에서 전쟁이 터졌다.
그럼 전쟁으로 인해 죽은 영혼들이 오는 저승은? 당연히 일이 미어터진다.
저승의 다섯 강을 넘어 계속해서 쏟아져 들어오는 망자의 물결이 재판장을 가득 채우고, 판결을 내리는 미노스 3형제의 고개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이승에 큰 전쟁이 일어났다는데. 과연 그렇구만.”
“그리스 연합군이랑 트로이라고 했었나. 잠깐, 저 영혼들은 이리로 보내야지!”
“하데스 님. 이번에 온 영혼들은 악업이…”
음. 역시나 바쁘네.
트로이와 연합군의 전쟁 때문에 병사 복장을 하고 죽은 망자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 눈에 보인다.
매일같이 미노스 3형제들이 고생해주고, 타나토스의 얼굴에 점차 암운이 드리워지는 가운데…
“저승의 신, 하데스시여! 필멸자를 판결하는 분이시여! 당신께서 직접 판단해 주소서!!!”
플루토가 아닌, 저승을 운운하며 내게 기도를 올리는 이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간절한 외침으로.
* * *
트로이와 그리스 연합군이 몇 차례 격돌을 마치고.
그리스 진영에서는 온갖 부상자들이 바닥에 나뒹굴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으… 으으… 어머니.”
“타나토스 신이… 눈앞에 보이는구나.”
“이 먼 타국에서 죽다니, 부디 내 입에 동전과 민트를 물려…”
팔이 잘려나가고, 창에 의해 배가 꿰뚫린 자들. 돌진하는 전차에 치인 이들.
전쟁에 개입한 신격의 힘으로 죽은 자들. 수많은 목숨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죽어간다.
비명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와중, 그리스 연합군을 소집했던 메넬라오스 왕은 분노에 찬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스파르타 군의 진영을 가로질러… 자신의 막사를 향하는 그의 발걸음.
화악-
“…아.”
그가 장막을 거세게 들추자, 막사 안에서 풀죽어 있던 헬레네가 보였다.
순간 눈이 마주친 그 두 사람.
피와 상처로 뒤덮인 근육질의 몸, 코를 찌르는 비릿한 피냄새.
스파르타의 여왕이었던 헬레네가 그를 보고 눈물을 보인다.
“흐윽…”
“왜 우는 것이오?”
“…그게…”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는 메넬라오스.
“내가 파리스, 그놈을 죽였을까 봐서? 아니면 내가 죽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에요.”
“애초에 당신은 파리스 놈에게 반해 트로이로 떠난 것이 아니오? 이제 와서 내가 그리워졌느니 그런 말을 할 거요?”
메넬라오스의 추궁에 헬레네는 울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떨궜다.
여신에 비견되는 그 미모에서 이슬과도 같은 눈물이 바닥으로 점차 흘러내린다.
“바깥에 있는 우리 스파르타 군의 비명 소리가 이곳까지 들렸을 거요.”
“……”
“전부 당신이 날 버리고 트로이로 도망쳤기에 생긴 희생이지. 당신도 그 죗값을 모조리 치러야 할 것이오.”
막사 안은 이제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바깥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다시금 트로이로 진격하기 위한 재정비의 시간이었으니.
“나는 트로이에 있는 모든 생명을 죽여버리고 파리스 놈의 목을 베어 버릴 것이오. 그 다음으로…”
“…제발 그러지 마세요.”
“뭐라고?”
“다 제… 제 탓이에요. 저 때문에 스파르타 사람들이… 전부 제 잘못이니 저를 죽이세요.”
하! 메넬라오스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탄식성이 튀어나왔다.
국가를 다스리는 왕으로서의 책임감, 파리스에 대한 증오, 신들에 대한 원망.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헬레네에 대한 분노와 애정의 감정, 바깥에서 신을 울부짖으며 죽어가던 스파르타 병사들의 비명소리…
방금까지 수많은 트로이 군을 도륙하고 온 영웅의 기세가 사납게 휘몰아치다가 일순 잠잠해진다.
그는 파리스와 함께 떠난 헬레네를 미워했지만, 이렇게 그 얼굴을 마주하니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헬레네는 죄책감을 느낀 것일까? 스파르타 병사들의 죽음에?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이 자신이라?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갈 때는 언제고… 이제서야? 하. 하하하… 하하하!
화악-
천장을 바라보며 공허한 웃음을 터뜨리던 메넬라오스 왕이 헬레네를 확 끌어당겨 막사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옆에 놓인 창을 집어들고 하늘을 겨냥했다.
쏴아아아- 쿠르릉!
마침 하늘은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격렬한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천둥과 번개도 간간히 울려퍼졌다.
딱 좋다. 신들이 노한 것과 같은 날씨라. 그의 목소리가 신에게 잘 전달될 수 있지 않은가?
꼬옥.
메넬라오스는 담담한 눈빛으로 헬레네를 껴안았다.
하지만 그는 무언가를 각오한 듯, 슬픔과 결의가 가득 차 있었다.
“신께 당신의 판결을 맡기겠소. 물론, 나 역시 공평하게 그 판결대에 올라서겠소.”
“아. 아아…”
“정의의 여신 디케… 아니지. 공정의 신 플루…”
하늘을 향해 외치려던 메넬라오스의 말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이어진다.
“저승의 신, 하데스시여! 필멸자를 판결하는 분이시여! 당신께서 직접 판단해 주소서!!!”
사방에 울려퍼지는 그의 고함소리.
메넬라오스가 창을 쥔 팔을 들어 저 하늘을 겨냥했다.
목표는… 다시 이 자리로 창이 떨어지도록! 그리하여 그와 헬레네를 동시에 꿰뚫을 수 있도록!
쐐애애액-!
스파르타 제일의 전사는 창을 던지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창이 떨어지는 곳은 헬레네와 그의 머리 위일 것이라고.
꼬옥.
그는 눈을 감으며 헬레네를 꼭 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