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70)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71화(170/179)
어딘가 이상한 트로이 전쟁 – (5)
“저승의 신, 하데스시여! 필멸자를 판결하는 분이시여! 당신께서 직접 판단해 주소서!!!”
이게 무슨 소리야.
내게 소리치는 저자는 그리스 연합군을 만든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 왕이 분명했다.
껴안고 있는 여인은 내 신탁을 받고 트로이에서 내보내진 헬레네.
그가 하늘을 향해 창을 겨냥하고, 쏘아냈다.
쐐애애액-
인간의 힘으로 날려진 창은 영원히 하늘로 쏘아질 수 없다.
어느 시점에서 그 창은 다시 땅으로 떨어질 것이다. 내 예측에 따르면…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를 꿰뚫으며.
내 이름을 부르며 판결을 운운하는 것을 보아하니, 헬레네와 함께 신의 심판대에 올라갈 생각인가?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간 헬레네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신의 뜻에 맡기는 인간.
메넬라오스는 내 신도가 아니다.
그는 군사강국 스파르타의 왕으로서, 군신 아레스를 믿는 자.
애초에 내가 저승에서 간섭할 만한 자는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아레스가 뭐라고 하는 것이 맞지만…
그가 내 이름을 부르며 자신과 헬레네의 운명을 맡겼기 때문에.
저 하늘에서 떨어지는 창은 내 영향력 안에 있다. 빗나가게 할 수도, 둘 중에 한 명만을 꿰뚫어버리는 것도 가능하지만.
쐐애애애액!
고민할 필요도 없이.손을 내저어 떨어지는 창에 간섭했다.
* * *
하늘 높은 곳에서 떨어지던 창이 빛처럼 내리꽂힌다.
둘의 운명을 결정지을 물건이 소름끼치는 파공성을 내며 떨어져 내리고…
촤악- 푸우욱!
“꺄아악!”
바닥으로 붉은 피가 튀며. 헬레네가 눈을 감으며 비명을 질렀다.
신이 인간을 벌한 걸까?
자신의 뺨에 흐르는 한 줄기 피를 만지던 메넬라오스가 말했다.
“…파리스만 죽이고 함께 스파르타로 돌아갑시다.”
그제서야 헬레네는 메넬라오스의 뺨에서 흐르는 피와 바닥에 꽂힌 창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방금 튄 붉은 피는… 창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 생긴 것이었다.
두려움과 죄책감에 떠는 그녀를 꼭 껴안으며 귀에 속삭이는 메넬라오스의 말.
“이것이 공정의 신의 대답이라면… 당신이 파리스를 따라간 것이 자의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군.”
“흑… 흐윽… 그게. 사실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알겠소. 이제 그만합시다. 전부.”
오, 공정하신 플루토시여.
다음날, 스파르타 제일의 전사는 창과 방패만을 들고 트로이 군 진영으로 걸어갔다.
트로이의 총사령관인 헥토르가 손을 내저어 병사들을 잠시 물렸다.
“메넬라오스 왕? 무슨 할 말이라도…”
이에 메넬라오스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목을 가다듬었다.
그의 날카로운 창이 태양빛을 받아 번뜩이고,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빛 역시 창날에 못지않게 형형했다.
“파리스! 당장 나와라! 나와 일대일 대결을 하자!”
“…!”
그가 목청을 높여 소리치자, 다가오던 그리스 연합군 역시 멈춰섰다.
스파르타의 왕이 일대일 대결이라니?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만약 일대일 결투를 받아준다면! 승패의 결과에 상관없이! 우리 스파르타의 군사들은 더 이상 트로이를 공격하지 않고 물러가겠다!”
“으음!”
“하지만 네가 계속 성벽과 군사들의 뒤에 숨는다면!”
메넬라오스의 마지막 고함은 마치 사자가 울부짖는 듯했다.
그 기백만큼은 전대 영웅들 못지 않은 스파르타의 왕이 창을 트로이 성 쪽으로 겨냥했다.
“스틱스 강에 맹세코!스파르타의 전 전력을 동원해 트로이를 불태워 버리겠다!”
메넬라오스의 고함에 모두가 술렁거렸다.
그리스 연합군의 수뇌부로 전령이 바삐 달려가며, 트로이 총사령관 헥토르는 이마를 짚었다.
‘미친…’
스틱스 강에 대고 맹세했으니 일대일 대결을 하면 물러가겠다는 말은 진실.
그리고… 만약 파리스가 대결에 응하지 않겠다면 기필코 트로이를 멸망시키겠다는 것 또한… 진실.
국가를 생각한다면, 파리스를 보내는 것이 옳은 이치다.
고작 한 명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대가로 저 강병인 스파르타 군이 물러간다니, 아주 간단한 셈이 아닌가.
하지만 동생을 아끼는 형으로서는…
“파리스으으!!! 당장 나와라!!!”
절대로 저만한 장수에게 파리스를 보낼 수 없었다.
물론 파리스도 뛰어난 무용을 가진 것은 맞다. 모두가 인정하는 활쏘기 실력도 그렇고.
하지만… 메넬라오스의 저 기세를 보아하니 헥토르 자신이 직접 상대해도 고전할 것 같은데.
아무리 파리스가 밉다지만 그래도 동생인데,죽게 놔둘 수는 없지 않겠나?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헥토르는 트로이 군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헥토르 형님.”
“아니. 파리스! 성 안에 있으라니까 왜 여기까지 나온 거냐!”
파리스가 무장을 갖추고 나왔다.
* * *
단단히 무장한 파리스가 헥토르에게 말했다.
어째서인지 파리스는, 거의 없는 용기를 모조리 쥐어짜낸 것처럼 보였다.
그 스스로가 결심했을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형님.”
“이런 아둔한 자식이! 너는 성 안에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거다! 빨리 돌아가지 못하겠느냐? 여기서…”
“메넬라오스와 결투하게 해주십시오.”
“이놈이 아직도!”
“저도 트로이의 왕자입니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로서 책임을 지겠습니다.”
헥토르는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파리스를 보았다.
자신이 직접 메넬라오스와 결투해도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데, 정말 정신이 나간 건가?
“그리도 죽고 싶은 거냐? 메넬라오스는 스파르타에서 제일가는 전사다. 네가 상대할…”
“헤라 여신님께서 나타나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뭐라고?”
“지금이라면 저 메넬라오스를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저를 믿고 내보내 주십시오.”
여신의 가호라. 그것이 진실이라면 메넬라오스를 상대할 만도 하겠지.
그의 못난 동생놈에게서 일정 이상의 기백도 느껴지는 것을 확인한 헥토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다고 여겨지면 즉시 우리 군 쪽으로 도망쳐라.”
“걱정하지 마십시오. 도망치는 것은 메넬라오스가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마치고, 앞으로 걸어나가는 파리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헥토르.
트로이 총사령관의 머릿속에서 동생에 대한 걱정이 소용돌이친다.
‘메넬라오스는 강하다. 위험하면 도망쳐야 할 텐데. 혹시 모르니 공격 준비 명령을… 아무리 여신의 가호를 받았다고 해도…”
그때,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생각.
‘잠깐. 파리스가 헤라 여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했지 않았나? 헤라 여신님은 가정을 수호하는 여신이신데 어찌 파리스에게 가호를 내려주신다는 말이지? 애초에 그분이 우리 트로이를 지지하시는 분은 맞나?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의 가정을 파탄냈는데, 그래도 트로이를 지지하신다고? 안 돼… 함정이다! 당장 대결을 멈춰야…!’
“메넬라오스! 그 약속. 네가 죽어도 지킬 것이라 믿는다!”
“더러운 쓰레기가 드디어 모습을 보였구나! 오냐, 네놈의 목을 베고 스파르타로 돌아가겠다!”
그러나 이미 결투는 시작되었다.
* * *
결투에 돌입하자, 파리스는 한껏 높이 창을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죽어라, 메넬라오스!”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매섭게 날아가는 창. 헤라 여신의 가호까지 받은 그의 창이 메넬라오스의 몸통을 겨누고 날아간다.
하지만, 상대는 스파르타 제일의 전사.
투웅!
방패를 들어 창을 막아낸 메넬라오스가 칼을 뽑아들고 그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리고 역시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든 파리스를 향해 강하게 내리쳤고. 그 순간, 파리스에게 내려진 헤라 여신의 가호가 사라졌다.
“히. 히익!”
파리스를 감싸던 기백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마음속을 가득 채우던 용기가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칼날이 가까이 다가온다… 손에 들렸던 칼은 어느새 떨어뜨린지 오래다…
쨍강!
투구에 부딪힌 메넬라오스의 칼이 그대로 박살났고, 파리스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지만… 대결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빠르게 달려온 스파르타의 왕이 파리스의 투구 장식을 움켜쥐고 거세게 당겼기 때문에.
“커어억!”
“오늘 기필코! 네놈을 플루토의 심판대에 올려놓고야 말겠다!”
투구 끈이 파리스의 목을 죄였고, 메넬라오스 왕은 괴력을 발휘해 한 손으로 파리스를 그리스 진영 방향으로 끌고 갔다.
이대로면 그리스 측에서 칼을 챙긴 그에 의해 파리스의 목이 떨어질 위기.
이때, 질질 끌려가는 그를 보다 못한 아프로디테 여신이 투구 끈을 잘라버리고 그를 구출하려고 했다.
조금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자신에게 황금 사과를 준 그가 이렇게 죽게 놔둘 수는 없었기에.
덥석.
“아프로디테. 저놈을 구해주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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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몸을 숨긴 아프로디테의 손목을 잡은 흑발의 남신만 없었다면 말이다.
싸늘한 기색으로 파리스를 내려다보는 저승의 신을 발견한 아프로디테의 눈이 커졌다.
“하. 하데스? 저승의 일이 바쁘지 않나요? 언제 여기까지.”
“잠깐 짬을 내서 왔다.”
“당신은 트로이를 지지하는 것으로 아는데, 파리스를 살려주면…”
“트로이는 지지하지만, 파리스를 지지하는 건 아니지. 필멸자의 명을 줄이는 것은 저승의 신으로서 지양해야 하나, 저 놈만큼은 지금 지하로 데려가야겠다.”
그렇게 아프로디테가 하데스에게 붙잡혀 있는 동안, 메넬라오스는 그리스 병사의 칼을 빌려 파리스의 목을 쳤다.
푸확- 하는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나뒹구는 트로이 왕자의 목.
스각-
“우와아아아! 파리스가 죽었다!”
“메넬라오스 왕이 이겼다!”
여인에 눈이 멀어 전쟁을 일으킨 자.
죽어서도 편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