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71)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72화(171/179)
어딘가 이상한 트로이 전쟁 – (6)
나는 저승으로 돌아와 타나토스의 분신에 의해 파리스가 끌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곧 죄인이 알현실로 도착하고…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숙이려던 그가 내 얼굴을 보더니 크게 놀랐다.
“허… 헉! 프… 플루…”
“이제야 내가 누구인지 알겠나?”
“무. 물론입니다! 저승의 주인이시여!”
내 눈동자를 마주하지 못하고 다시 황급히 고개를 처박는 죄인.
과거, 황금 사과의 주인을 선택하는 자리에서 만났던 내 이름을 이제야 깨달은 모양.
레테 강을 건너서 사라졌지만, 다시 므네모시네 여신님의 샘물로 복원시킨 그의 기억은 나를 똑똑히 알아보았다.
“네가 트로이의 왕자라는 점을 명심해라.”
“…당신께서는 어느 분이십니까?”
“그건 알 거 없고,보상에 현혹되지 말고 신중하게 결정하라는 말이다.”
잠시 목을 가다듬은 다음, 죄인에 대한 판결을 내린다.
파리스의 죄목은 너무나도 커서 미노스 3형제를 거치지 않고 곧장 내게로 왔을 정도.
“네 죄는 아프로디테 여신의 축복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아내를 빼앗고, 결국에는 전쟁의 불씨를 만들어낸 것이다.”
“…!”
“이번 전쟁으로 수만 명이 넘는 필멸자가 죽어나가리라. 너는 그 죗값을 모조리 치러야만 한다.”
“그것이… 저. 저는…!”
“그 입 다물어라. 네게는 변명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목소리를 잃어버려 입만을 뻐끔거리는 파리스에게 선고했다.
끔찍한 형벌을 상상한 파리스가 내게 손을 모으고 빌며 자비를 바라지만… 나는 저승의 왕이자, 공정의 신이기도 하다.
“저지른 행동은 다른 이의 아내를 빼앗는 것. 하지만 이로 인해 벌어진 대전쟁으로 네게는 많은 죄업이 쌓였다.”
“…!!!”
“그러므로 기억이 지워진 채, 100여 년간 저승에서 돌을 나르는 형벌을 명한다.”
“여봐라! 이 죄인을 끌고 가라!”
이미 남편이 있는 여인을 탐하고, 전쟁까지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비탄에 빠뜨린 죄.
그는 아주 오래도록 죗값을 치뤄야 할 것이다.
* * *
한편, 파리스의 목을 베고 그리스 진영으로 돌아온 메넬라오스 왕은 헬레네와 함께 스파르타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아내를 빼앗긴 원한을 갚은 그의 얼굴은, 어딘가 후련해 보이기도, 허탈해 보이기도 했다.
“메넬라오스. 나와 상의라도 하지. 이참에 트로이까지 멸망시켜야 하지 않겠나?”
“아가멤논 형님. 죄송합니다. 병사들이 많이 죽고 다쳤습니다. 물론 파리스 놈을 길러낸 트로이에 대한 원한도 있지만, 이제는 그만두고 헬레네와 함께 돌아가고 싶군요.”
“아니… 그게 무슨.”
“트로이에게 받은 배상도 충분하고, 후계자인 헥토르의 사과도 받아냈으며, 파리스 놈의 목도 쳤으니. 이만 만족하고 물러갈까 합니다.”
곧장 여러 장수들이 그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아내를 빼앗긴 ‘피해자’인 메넬라오스가 그리스 군에 있다는 것만으로 명분을 얻을 수 있는데…
그가 트로이를 용서하고 돌아간다면, 지금 이곳에 모인 그리스 군은 약탈자가 아닌가? 신들께서도 좋게 보시지 않을 터.
그리고 트로이에서 헬레네를 빼앗아 간 것에 대한 보상은 온전히 메넬라오스가 가져가서 그런 것도 있었다.
“메넬라오스 왕! 정말 이럴 것이오? 당신은 배상도 충분히 받았겠다. 파리스도 죽이고, 헬레네까지 돌려받았으니 발을 빼는 거요?”
“우리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는데, 여기까지 우릴 끌고 온 것에 대한…”
“어째서 우리와 상의도 하지 않고 스틱스 강에 맹세를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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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트로이 쪽에 선 신들이 두려워서 맹세한 것이 아니오?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정말 겁쟁이로군!”
“…그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메넬라오스는 그를 겁쟁이라고 모욕하는 말을 꺼낸 마지막 사람을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의 눈에는 되돌릴 수 없는 굳은 결심이 묻어나왔다.
“애초에 무언가 잘못된 전쟁이었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막사를 나간 메넬라오스.
이에 헬레네의 오빠인폴리데우케스와 노장 네스토르 역시 총사령관 아가멤논에게 말했다.
“아가멤논. 메넬라오스와 헬레네가 돌아간다면 나 역시 돌아갈 생각이오.”
“나도 마찬가지요. 괴물이 나타난 것도 아닌 인간들의 전쟁이니까. 그리고 우린 플루토 신전에서 훈련을 받았다는 걸 알고 있지 않소? 트로이를 지지하시는 그분의 뜻을 계속 거스르기도 뭐하오.”
…!!!
“난 애초에 여동생이나 데려오려고 참여한 것이니 이해를…”
“잠깐. 폴리데우케스. 메넬라오스가 돌아간다고 해도 마지막 전투만 참전해주면 안 되겠소? 네스트로, 당신도.”
“으음.”
“당신들이 온갖 모험을 한 역전의 영웅들이기 때문에 이런 전쟁에 흥미가 없는 것은 알고 있소. 분명 트로이 사람들을 학살하고 싶지 않아 전쟁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겠지.”
아가멤논의 말이 맞다.
신화적인 괴물들과 싸워온 네스토르나 폴리데우케스(폴룩스)의 눈에 어디 인간들끼리의 전쟁이 눈에 들어오겠는가?
그들이 전쟁에 본격적으로 끼어든다면 트로이 군은 말 그대로 학살당한다.
“하지만 딱 한번만. 내 얼굴을 봐서라도 딱 한번만 전투에 참전해주면 안 되겠소? 이 먼 곳까지 와서 어떠한 성과도 없이 돌아갈 수는 없소.내 이리 부탁하리다.”
간절한 표정의 아가멤논이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그는 물론 메넬라오스의 사정이 안타까워서 참전했지만…트로이 전쟁을 통해 명성과 명예, 부를 얻고 싶었다.
불륜을 저지른 타국의 왕자를 응징하는 것을 넘어, 트로이를 멸망시킨다는 그 업적.
이에 그들이 눈빛을 교환하다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딱 한번만 전투에 나서고 돌아갈 것이오.”
“그럼 나도 그렇게 하겠소. 우리의 힘으로도 성을 함락시킬 수 없다면, 신들께서 트로이의 멸망을 바라지 않으시는 거겠지.”
네스토르, 폴리데우케스 참전.
* * *
메넬라오스 왕이 헬레네를 데리고 스파르타로 돌아갔지만, 그리스 연합의 사기는 생각보다 높았다.
먼저 메넬라오스 왕의 형인 아가멤논이 포세이돈의 신탁을 받은 채, 아직 남아 있었고…
하데스가 트로이를 편든다고? 걱정하지 말고 성을 함락시켜라.
“내 동생, 메넬라오스는 자비롭게 트로이를 용서해줬으나! 나는 무도한 트로이 놈들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다! 포세이돈 님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하리라!”
트로이를 멸망시키고 싶은 아테나의 축복과 격려.
“디오메데스. 나 아테나의 힘이 너와 함께하리라. 트로이의 장수들을 모조리 죽여라.”
“전장의 영광을 여신께! 알겠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터벅터벅.
“제우스의 자손, 폴리데우케스!”
“아르고 호의 영웅들이 앞으로 나서다니. 트로이는 오늘로 끝이군.”
“네스토르 님의 무용을 드디어 볼 수 있겠어.”
“아이네이아스나 헥토르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저분들에 비하면…!”
어떠한 무장도 갖추지 않고 맨손으로 걸어나오는 남자 하나와 중장년으로 보이는 노장 하나 때문이었다.
그들의 행색은 일견 초라해 보였으나, 둘의 얼굴을 아는 자들은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강력한 영웅을 만들어내기로 유명한 플루토 신전에서 훈련을 받고.
수많은 괴물들과 악당들을 처리했으며.
그 유명한 아르고 호 원정에서 활약을 펼치고, 용과도 싸워 살아남았으며.
끝끝내… 신과도 비견된다는 기가스를 토벌한 영웅 중의 영웅들.
여태까지 뒤에서 바라보고만 있던 그들이 전투에 나설 기미가 보이자 그리스 군의 사기는 극도로 올라갔다.
그들이 토벌해온 괴물들에 비하면 트로이의 장수들은 모조리 잔챙이에 불과했다.
스르릉!
그리스 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칼을 뽑아들고 크게 외쳤다.
“그리스의 용사들이여! 오늘 안에 트로이를 끝장내고, 고국으로 돌아가자!!!”
“우와아아아!!!”
“아가멤논 왕 만세!”
“트로이를 멸망시키고 모든 것을 빼앗자!”
“전쟁의 여신이 우리를 가호한다!”
선봉에는 역전의 영웅들이 서고,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진 군대가 트로이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리스 편에 선 올림포스 신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괴물들을 죽이며 위업을 쌓았던 이전 세대의 영웅들은 단 둘이지만, 그들이 나서면 트로이는 이미 함락된 것이나 다름없기에.
“…끝이네요. 그리스 연합군이 이기겠어요.”
“폴리데우케스는 팡크타리온 솜씨가 대단하다는 제우스 님의 아들이 아니던가?”
“헥토르는 여기서 죽기 아까운 인간인데…”
전쟁을 조금 더 이어가려는 목적을 가진 제우스만이 턱을 쓰다듬으며 고심하고 있었다.
저 정도의 인간들이 수십이 모이자, 기가스마저 때려잡지 않았던가? 트로이의 제일가는 영웅인 헥토르라 해도 단번에 제압당할 터.
트로이 측 신들이 어떻게든 도와줘도 그리스를 지지하는 신들이 가만있지는 않을텐데.
폴리데우케스에게 말을 전해 물러나라고 이를까? 아니면 아테나를 부른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중립을 표방한 제우스가 끼어들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전쟁을 이어나갈 방법을 찾던 그가 무언가를 발견했고.
“…흠.”
다시 평온한 기색으로 옥좌에 몸을 기댔다.
이 순간, 지하 세계.
밀려드는 영혼들로 인해 바쁜 와중에도 간간히 영혼들을 살피던 내 눈에 그리스 군이 보였다.
정확히는 그리스 군의 앞에 나선 폴리데우케스와 네스트로가.
아니. 괴물들 때려잡으라고 저승으로 데려와 훈련을 시켜줬더니 트로이를 함락시키려고 해?
얼마 전에 아프로디테를 말리러 전쟁터에 나가봤을 때에는, 인간들 간의 전쟁에 끼어들지 않고 자중하는 기색이 있어서 놔뒀더니.
어디 보자, 트로이 군 측에 이승으로 강림할 만한 몸을 빌려줄 만한 신도가… 있군.
전쟁으로 인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니 내 신도도 늘어난 건가?
“네 몸을 조금 빌려야겠다.”
“어… 어느 신이십니까? 설마!”
스아아아-
눈을 감은 하데스의 몸에 싸늘한 기류가 감돌고,
죽음이 만연한 전쟁터에 저승의 신이 강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