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72)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73화(172/179)
어딘가 이상한 트로이 전쟁 – (7)
다시금 이어진 그리스 군과 트로이의 격돌.
전장의 한복판에서, 트로이 군의 총사령관 헥토르는 이상함을 느꼈다.
“저자가 바로 트로이의 총사령관, 빛나는 투구의 헥토르다!”
“오늘 안에 트로이를 함락하자!!!”
먼저 그리스 군의 사기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아무리 자신의 동생인 파리스를 죽였다고는 해도,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 왕이 고국으로 돌아갔을 텐데?
그리고…
“크아아악! 저. 저 괴물은 뭐야!”
“화살을 맨손으로 잡았어. 시. 신인가…?”
“갑옷도 없는 놈이잖아, 왜 죽이지를 못하는… 컥!”
그리스 군의 중앙에서 날뛰는 아킬레우스는 적어도 이해가 가능한 범주에 들었다.
헥토르 자신보다 조금 더 뛰어난 무용을 지닌 정도니까.
하지만 저기 중장년으로 보이는 두 장수는 조금 달랐다.
갑주도 갖추지 않은 채, 맨손으로 트로이 군을 쓰러뜨려가며 돌격하는 자가 하나.
“끄윽… 이 무슨.”
“미친. 저거 팡크라티온 아니야?”
“여긴 전쟁터라고! 전쟁터! 고작 맨손인 놈 하나…”
퍼어억. 콰득.
“어허. 이런 건 위험하니 내밀지 말라고.”
트로이 군의 좌익이 어떠한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주먹질하는 자 하나에게 밀린다.
그에게 날아드는 화살은 빗나가고, 창칼은 잡히거나 부러진다. 저게 필멸자가 보여줄 수 있는 무용이 맞을까?
그렇다고 다른 곳의 상황도 좋지만은 않았다. 트로이의 우익은… 귀신처럼 검을 휘둘러대는 노장에게 밀리고 있었기에.
아킬레우스의 갑옷과 같은 신의 무구도 아닌, 낡고 오래된 검만으로 전장을 가로지르는 영웅.
휘익. 스각-
“크아아악!”
“이것도 못 막나? 요즘 것들은 제대로 훈련하긴 하는 건지. 원.”
헥토르는 곧 그들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괴물들과 맞서 싸우던 전대의 영웅들이 아니고서야 저런 무용을 보여줄 수 없기에.
똑똑히 보아라, 트로이의 쟁쟁한 장수들이 마구 죽어나가고 있다.
“아레스 신의 딸이자, 아마존의 여왕인 펜테실레이아가 맞나?”
“크윽…”
“군신께는 받은 은혜가 있으니 목숨을 거두지는 않으마.”
빠악!
트로이 제일의 장수인 그가 직접 나선다고 해도…
괴물들을 잡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린 저 영웅들을 막을 수는 없다.
좌익도. 우익도. 영웅들에게 무너졌다. 심지어 중앙에서는 아킬레우스가 날뛰는 상황.
헥토르는 이를 악물고 목청을 높여 크게 소리쳤다.
“전군! 퇴각하라! 저들과 맞서 싸우지 말고, 트로이 성 안으로 후퇴한다!”
전면전에서는 저들이 포함된 그리스 군을 막을 수가 없다.
* * *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부탁을 받고 전쟁터에 나선 네스토르.
그는 지루한 표정을 지으며 대충대충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네스토르는 아르고 호 원정에 참여했던 영웅들 중에서 중위권에 속하던 자.
심지어 나이를 먹어서 기량이 저하되었고.신화적인 괴물들과 싸울 때처럼 전의를 끌어올리지도, 기세를 한껏 드러내 위압하지도 않았으며.
대충 입고 온 갑주와 검은 저승의 훈련소에 들어갈 때부터 쓰던 낡은 물건에, 그 자신도 별 의욕이 없었다.
스가가각-
“헉… 허억. 으으.”
“휘두르는 칼이 보이지 않았어. 신의 힘인가?”
“무슨 축복을 받았기에 공격이 모조리 빗나가는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검을 받아내는 트로이의 장군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전장을 돌파하는 네스토르를 막기 위해 신의 축복을 받은 자가 화살을 날리고, 안개로 눈이 가려지는 등 온갖 방해도 들어왔으나…
휘우우웅- 스윽.
‘이 힘은 아레스 님이신가? 쩝. 그래도 저승에서의 인연이 있는데, 역시 봐주시지는 않는군.’
그에게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신과 비견되는 기가스와도 싸워봤었고, 콜키스를 불태우던 용에게서도 살아남은 영웅은 가볍게 신의 방해를 이겨냈다.
물론 대놓고 죽여버리기 위해 신벌을 내린다면 조금 다르겠지만. 한낱 인간들의 전쟁터에서 그러기에는 체면도, 명분도 없었고 눈치도 보인 까닭.
“전군! 퇴각하라! 저들과 맞서 싸우지 말고, 트로이 성 안으로 후퇴한다!”
“우와아아! 트로이 놈들이 성 안으로 도망친다!”
“이대로 성을 함락시키자. 사다리를 가져와라.”
“우리에게는 영웅들이 함께한다! 모두 돌격! 트로이 군의 뒤를 쳐라!”
헥토르의 퇴각 명령과 함께 전장에서 퇴각하는 트로이 군. 그들을 쫒아 그리스 군은 추격을 시작했다.
네스토르는 성 안으로 허겁지겁 도망치는 병사들을 쫒으며 창을 찌르는 연합군을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스토르. 저거 보이나?”
어느새 그의 옆으로 다가와 말하는 남자. 양 주먹에 붉은 피를 가득 묻힌 폴리데우케스.
과거, 콜키스의 용에게는 주먹이 통하지 않아 오직 시선을 교란하는 역할만을 맡았던 팡크라티온의 대가는… 인간들의 전쟁터에서 그 무용을 제대로 발휘한 모양.
네스토르와 마찬가지로 그의 몸에는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으로 눈앞의 적을 쓰러뜨려가며 돌파했음이 분명한 모습.
“트로이 성? 당연히 잘 보이지.”
“내가 듣기로 저건 아폴론 신과 포세이돈께서 함께 쌓아올린 성이라는군. 우리가 직접 나선다 하더라도 성벽을 부술 수는 없을거야.”
“허… 신들께서 직접?”
성 가까이에 도달한 그리스 연합군은 사다리를 준비해 하나둘씩 성벽으로 기어오르기 시작.
본격적으로 공성전을 개시했다. 물론 성벽에서 저항하는 트로이 군에 의해 단 한 명의 병사들도 넘어가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끼어든다면…
“그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나? 어디까지 해줘야 하는지. 원.”
“그래도 아가멤논과 약속한 게 있으니 성을 함락시키자고. 만약 우리가 너무 과하다 싶으면 신들께서 막지 않으시겠나?”
“하기야. 그도 그렇군.”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사다리에 올라타 성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무용을 떨친 그들이 사다리에 올라타자, 당연하게도 트로이 병사들은 기겁했다.
“히. 히이익. 저 놈들이!”
“뜨거운 물을 있는 대로 쏟아부어라! 궁병! 화살을…”
“아래로 돌을 던져라!”
-촤아아아악!
“끄아아악!”
“뜨. 뜨거워! 아악!”
트로이 군이 뜨겁게 끓는 물을 퍼붓자, 성벽을 오르던 수많은 그리스 군은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떨어졌다.
물론, 용의 화염도 견딘 영웅들에게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못했고. 그렇게 폴리데우케스가 먼저 성벽으로 올라서려던 찰나, 한 트로이 병사가 위에서 나타났다.
미약한 짜증이 섞인 눈동자가 싸늘하게 그들을 내려다본다.
그런데 그 병사는 손에 든 창을 찌르려고도, 그들이 성벽에 오르지 못하게 저항하지도 않고.
그저 가볍게 투덜거리듯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다시 내려가라.”
“…?”
뭐지, 이놈은?
* * *
폴리데우케스는 눈앞의 트로이 병사를 쓰러뜨리기 위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리스 제일의 팡크라티온 대가의 주먹질이 소름끼치는 파공성을 흘리며 병사의 얼굴로 날아가다가…
터억.
“뭣!”
너무나도 가볍게 붙잡혔다.
그제서야 병사의 눈동자를 볼 수 있게 된 폴리데우케스.
그곳에는 인간이라면 있어야 할 눈동자 대신, 새까만 어둠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필멸자와 비교할 수도 없는 아득한 존재감. 높은 신격. 인간에게 잠시 강림한 신이다. 그리고 이 싸늘하고 두려운 기운은…
그 끔찍했던 영웅 훈련소에서 항상 느껴왔던 저승의 힘.
케이론 선생의 설명으로는 봄의 여신이 저승의 힘을 중화시켰다고 했지만, 훈련을 받는 동안 그들은 원초적인 두려움에 항상 시달려야만 했다.
아무리 그 협곡에 봄의 여신의 기운이 섞였다고는 해도, 그곳은 저승이었기에. 모든 필멸자의 종착점이기에.
그렇다면 눈앞에 보이는 신의 정체는 설마.
“감히 어디다 대고 주먹질을 하느냐?”
“혹시… 플루토… 신이십니까?!”
“맞다. 제우스의 아들아. 그리고 바로 밑에서 올라오는 네스토르였나? 아무튼 둘 다 잘 들어라.”
“네. 네! 말씀하십시오!”
네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는 황망한 얼굴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3주신이 왜 여기서. 그것도 트로이 편으로 나와?
다른 신도 아니고, 하필 저승의 신이 왜 이승의 전쟁터에 강림한다는 말인가?
이번 전쟁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필멸자들을 모조리 저승으로 끌고 가려고?
우리가 무언가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아무리 트로이 놈들이 플루토를 모신다지만 직접 강림할…
“괴물들이랑 싸울 힘을 주기 위해 저승에 데려와 훈련을 시켜줬더니, 같은 인간들에게 그 힘을 휘둘러?”
“그게. 그것이 전쟁이라…”
“내가 같은 인간들을 학살하라고 케이론을 붙여줬는지 아느냐? 위업에 미쳐 대학살이라도 벌일 생각이냐?”
“아. 아닙니다! 저희가 어찌…!”
굉장히 심기가 불편해보이는 저승의 신 앞에서, 역전의 영웅들은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사다리 아래쪽에 있는 병사들이 의아해하건, 이상함을 느낀 트로이 군이 이쪽으로 접근하지 않든 간에… 그들의 눈에는 오직 저승의 신만이 보였다.
잠시 인상을 찌푸리며 그들을 내려다보던 신이 손가락으로 저 아래쪽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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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내려가라. 지금이라도 전쟁에서 물러나면 어느 정도 사정을 봐주겠다.”
“하. 하하… 물론입니다! 빨리 내려가자고! 네스토르!”
“크흠! 직접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플루토시여!”
휘익-
그들은 신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사다리에서 손을 떼고 그대로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