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74)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75화(174/179)
어딘가 이상한 트로이 전쟁 – (9)
저승으로 포세이돈의 신수, 거대 거북이가 알현실로 천천히 들어왔다.
서류를 잠시 치워버리고 내 앞까지 도달한 신수의 인사를 받는데 옆의 시선이 따갑다.
찌릿.
방금 스틱스 여신이 내려놓았던 서류 뭉치를 레테 여신이 슬쩍 다시 챙기며… 이쪽을 향해 보내는 원망의 눈빛.
흠. 흠. 미안하지만 조금 더 수고해줬으면 좋겠다. 다른 주신의 전령이 왔는데 서류나 보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거북이 신수가 아주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하데스 님.”
“그래, 저번에 포세이돈과 만났을 때 보았던 자로구나.”
“저를 기억해주신다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포세이돈께서 저를 통하여 직접 하데스 님께 전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셔서…”
파스스슷!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저승과는 어울리지 않는 맑고 청량한 기운이 그의 몸에서 퍼져나왔다.
포세이돈이 직접 신수의 몸에 빙의해 나와 대화하려는 건가.
곧 기운이 사그라들자, 거북이의 몸에 빙의한 포세이돈이 푸른 빛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데스.”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나를 찾았지? 포세이돈.”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고. 요즘 트로이 군이랑 그리스 연합군의 전쟁 말이야.”
어제 내가 이승에 강림한 것 때문에 한 소리 하려고 온 건가?
근데 그러면 포세이돈이 아니라, 신들의 왕인 제우스가 전령을 보냈을 텐데?
“인간들의 전쟁에 저승을 다스리는 네가 끼어들면 모양새가 조금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아무래도 필멸자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크지 않…”
인간들의 전쟁에서 빠지는 것이 좋겠다고? 포세이돈 너도 끼어들면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난 어차피 저승의 일도 바빠서 더 이상 이승의 전쟁에 개입하기도 힘들지만, 조금만 떠볼까.
“너도 그리스 편에 서면서 무슨 소리냐. 제우스가 말하면 들어는 보겠다만, 네가 할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
“으음. 나도 인간들에게 받은 것이 있어서 말이야. 내 체면을 좀 생각해주면 안 되나?”
“인간들이 제물이라도 바친 건가.”
그것 때문이었나.
폴리데우케스와 네스토르는 내가 이승에 강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본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그리스 군에게 이야기라도 했나 보군.
어차피 바빠서 더 이상 끼어들기도 힘든 전쟁 정도야.
포세이돈이 그리 말한다면 체면을 봐서 물러날 수도 있긴 한데… 아, 이러면 되겠군.
“좋다. 그렇게 하지. 다만 한가지 조건이 있는데.”
“무슨 조건?”
“너도 같이 전쟁에서 빠져라. 트로이 편에 선 아폴론이고 아프로디테고, 네 위엄에는 거스르지 못할 테니까.”
“으음… 하지만 트로이. 그 놈들은 감히 나를 능멸한 괘씸한 것들인데…”
“그래도 그건 선대 왕 아니었나? 지금의 트로이 왕에게는 죄가 없다.”
포세이돈이 빙의한 거북이의 푸른 눈동자가 데구르르 굴러간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자고. 우리 둘다 이번 전쟁에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잘 생각했다. 포세이돈.”
내가 빠져도 트로이가 알아서 잘 막아내겠지.
* * *
포세이돈에게 제물을 바치고 기세등등해진 그리스 연합군.
그들은 다시 한번 트로이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나섰다.
아가멤논, 아킬레우스, 디오메데스, 아이아스 등 쟁쟁한 장수들이 이를 갈며 군사들을 이끈다.
플루토 신이 개입하는 것만 아니라면 분명 트로이를 함락시킬 수 있다!
그렇게 그들은 이번이야말로 트로이를 함락시키기 위해 나섰고…
“…아가멤논. 이만 돌아갑시다.”
“신들께서는 트로이가 아직 멸망할 때가 아니라고 하시는 것 같소.”
“우리 중에 신의 노여움을 산 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또 실패했다.
트로이의 총사령관 헥토르는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항전했으며, 신이 직접 쌓은 성벽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직 수성에만 전념하는 트로이 군의 사기는 높았으며, 명분도 부족해진 그리스 군의 사기는 많이 떨어져 있었다.
트로이의 장수인 아이네이아스, 판다로스, 헥토르 등의 장수들이 성을 굳게 지키자…
사다리를 타고 성벽으로 올라가는 그리스 병사들은 족족 떨어져 내렸다.
그나마 아킬레우스의 활약으로 조금 밀어붙이는가 싶었지만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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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우스다! 아킬레우스가 성벽 위로 올라왔다!”
“궁수대! 저곳으로 화살을 퍼부어라! 헥토르 님! 이곳에…”
“아킬레우스! 덤벼라!”
“큭! 이놈들이!”
아킬레우스는 네스토르나 폴리데우케스가 아니었다.
필멸자들에게는 초인으로 보이는 영웅들 사이에서도 명백한 격차가 존재하는 법.
화살비, 끓는 물 세례와 투석, 트로이 장수들의 합공까지 당한 그는 결국어깨에 화살이 꽂힌 채 후퇴해야만 했다.
아킬레우스의 절친한 친우인 파트로클로스(Patroklos)가 그를 부축하지 않았다면 죽었을지도…
“이런 젠장! 이게 뭐냐. 분명 어머니께서 내겐 아버지를 뛰어넘는 명성이 주어진다고 하셨는데.”
“어머니라면 테티스 여신님을 말하는 건가? 아킬레우스?”
“맞아. 파트로클로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 정도면 그래도 뛰어난 무용을 가진…”
그들의 대화와는 별개로, 그리스 연합군은 며칠 동안 트로이를 공격하다가 물러난 상황이었다.
아가멤논을 비롯한 지휘부의 속은 타들어가고… 트로이를 없애버리고 싶었던 신들의 기분이 좋지 못한 상황.
‘…생각보다 영웅들이 많이 줄지 않았군. 이러면 내 계획에서 완전히 벗어나는데.’
물론 이를 관망하던 제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많은 영웅들이 하데스의 백성이 되었으나, 제우스의 목표보다는 한참 멀었기에.
지금 구름 위에서 바라보는 제우스에게는 그리스 연합군이 철수하는 장면이 보이고 있었다.
트로이와 협정을 맺고 돌아갈 준비를 서두르는 군사들… 난감한 기색인 아테나와 헤라.
“정말로 신들께서는… 하아…”
“이거 참. 트로이 원정이 실패하다니.”
“고국으로 빨리 돌아가서 쉬자고. 괜히 여기까지 온…”
이를 가만히 바라보던 제우스가 턱수염을 쓰다듬다가 소리쳤다.
“헤르메스!”
“예, 아버지!”
“제피로스, 노토스 등 바람의 신들을 모조리 불러라. 그리고 포세이돈한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전달…”
그가 전령의 신에게 무언가를 속삭이기 시작했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헤르메스가 바삐 움직인다.
* * *
트로이와 적당한 협정을 맺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
아킬레우스와 그의 절친 파트로클로스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 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파트로클로스. 분명 나는 어머니께 그런 말씀을 들었다니까?”
“테티스 여신님께서 분명 허언을 하실 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 전쟁에서 떨친 명성의 정도가…”
“알아. 안다니까? 나도 아버지에 비하면 큰 활약은 하지 못했지. 그럼 지금이 아니라 훗날 이름을 날린다는 예언이…”
아킬레우스는 현재 그리스에서 제일가는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영웅.
비록 괴물을 때려잡던 이전 세대만큼은 못하지만, 성장한다면 분명 그들에게 비견될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리고 그에게 있는 예언은 그의 아버지, 펠레우스보다 위대해진다는 것.
예언을 그에게 알려준 이는 무려 테티스 여신이었으며… 그의 아버지 펠레우스는 온갖 괴물들을 때려잡고 여신과 결혼한 위대한 영웅.
그런데 왜 아킬레우스는 이번 전쟁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할 수 없었을까?
그 자신도 의문이 가득했다.
“아니, 그런 내가 전쟁에 참여했으면! 이게 바로 아버지보다 위대해진다는…”
“하하. 잠깐 진정하라고 아킬레우스. 나는 네 활약을 똑똑히 지켜보았지 않았나. 고국으로 돌아가면 네 활약을 책으로라도 써주지.”
“책? 하아… 무슨 책이냐, 파트로클로스. 이상한 소리는 그만해라.”
“뭐가 어때서? 글깨나 쓴다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트로이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자신에게 닥칠 미래도 모르고 배 위에서 떠드는 필멸자들을 한 구름 위의 존재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제우스의 명을 받은북풍의 신, 보레아스.
휘우우우웅-
“어어. 뭐야! 아니 바람이…”
“노를 저어도 이상한 곳으로 배가 떠밀려갑니다! 해류의 흐름도 뭔가…”
“정해진 항로에서 한참은 이탈한 것 같은데?”
아킬레우스가 탄 배가 정해진 목적지에서 한참 벗어나 어딘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북풍의 신, 보레아스는 다시 다른 그리스 영웅들의 배로 향했고…
* * *
바다 위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폭풍우를 만나 배가 부서지고. 간신히 어느 섬에 상륙한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그리고 병사들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을 보았다.
울창한 숲과 절벽.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무인도는 그렇다 쳐도…
쐐애애액-
저 멀리서 하늘을 날아가는 거대한 새.
하지만 그 새는 분명히 사람 여인의 얼굴을 띠고 있었다.
“하피(Harpy)?”
“아킬레우스. 저 괴물들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어. 사람의 손이 타지 않는 곳으로 떠났다고 하던데.”
“대체 배가 어디까지 떠밀려 온 것이지?”
그들은 잠시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괴물들은 거의 다 죽어나간 것이 아니였나? 저쪽에는 사람보다 거대한 늑대가 잠을 자고 있었고, 깔깔대며 웃다가 사라지는 님프도 보였다.
인간 영웅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무인도에서 살아가는 온갖 인외의 존재들.
“신의 저주라도 받아 괴물들의 섬으로 표류하게 된 것인가?”
“배를 고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목재들도 제법 있어야 하고요.”
“우리가 배를 고치는 동안, 저 괴물들이 우릴 내버려 둘까?”
과연 무사히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파트로클로스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트로이 전쟁 시기와 신화 속 괴물들을 가장 생생하고 재미있게 나타낸 소설.
먼 훗날, 아킬레우스에게 헤라클레스와 비견되는 인지도를 얻게 해줄 괴물섬 표류기.
21세기 세계 문학 소설 100선 중 수위권으로 꼽히는 이야기.
아킬세이아(Achilssey),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