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75)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76화(175/179)
어딘가 이상한 트로이 전쟁 – (10)
타나토스의 날에 맞춰 트로이와 평화 협정을 맺고 철수한 그리스 연합군.
하지만 그들의 앞날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이번 전쟁을 통해 만족할 정도로 영웅들이 죽지 않자, 제우스가 올림포스 신들을 움직였기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가던 그리스 군은 바다 괴물들에게 인도되거나 어딘가의 섬으로 표류되는 등. 온갖 고초를 당해야만 했다.
그 중에서 제일은 역시 아킬레우스였으니.
이상한 괴물들이 가득한 섬에 표류하게 된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는 갖가지 고생을 해야만 했는데…
첫째 날
,그들은 습격해오는 하피 무리와 싸워야만 했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활약. 그리고 아직은 많은 병사들이 그들을 쫒아냈다.
“최대한 빨리 배를 만들어서 이 망할 곳에서 떠나자고.”
“저. 저기! 하늘을 날아다니는 괴물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젠장. 모두 칼을 뽑아라! 궁수대는…”
섬에 표류한지
사흘.
갑작스럽게 괴물 늑대가 달려와 병사들을 물어죽이며 날뛰었다.
수십의 병사들이 죽거나 다쳤으나, 아킬레우스가 옆구리에 창을 맞추자 피를 흘리며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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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르르릉!
“괴물 늑대잖아! 화살이 튕겨져 나온다!”
“아킬레우스! 자네 무구는 대장장이 신이 만든 신병이라고 했지! 그걸…!”
“알고 있다. 파트로클로스! 하아압!”
일주일
이 지났다.
나무를 베어내 배를 수리하려던 병사들을 몇몇 님프가 막아세웠다.
아킬레우스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님프들을 달래보았으나, 이미 몇몇 병사들은 님프의 장난에 당해 죽어버렸고.
병사들의 사기는 점점 더 떨어지고 영웅들도 지쳐가고 있었다.
“인간들아! 여기부터는 나무들 건드리지 마! 우리 친구라고!”
“맞아! 저리 가버려! 데메테르 여신님의 분노를 감당하고 싶은거야?”
“잠깐. 나의 어머니는 테티스 여신님이시다.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부디 나무들을 좀…”
섬에서 생활한지
1년
이 지났다.
그리스 최고의 재능을 지닌 아킬레우스는 괴물들과 싸우며 많은 성장을 이뤄냈다.
섬에 살아가던 괴물들의 피가 그의 몸에 흥건하게 묻었으며, 지금까지 살아남은 병사들 역시 어느 정도 괴물들에게 적응하고 있었다.
방금까지 거대한 뱀 괴물과 싸운 파트로클로스가 사냥한 짐승 고기를 뜯어가며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이 섬에 내린 뒤부터 지금까지, 매일 무언가를 적던 그에게 아킬레우스가 질문했다.
“파트로클로스. 뭘 적고 있나?”
“우리가 겪은 일들 전부.”
“…그래. 적던가 말던가 알아서 해라.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참.”
아킬레우스는 창에 묻은 검붉은 액체를 휙 털어내며 말했다.
“왜 네스토르랑 폴리데우케스 영감이 전쟁에 별 관심도 보이지 않았는지 이제야 알겠어.”
“음?”
“우리가 지금 마주하는 이런 놈들보다 수십 배는 더 강한 놈들이랑 죽어라 싸워봤을 거 아닌가?”
“그건 그렇지. 아르고 호 원정에서는 용도 만났다고 들었으니.”
“인간들의 전쟁이 시시해질 만도 하겠어. 하아아… 트로이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고 아버지께 자랑스럽게 말할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러기도 힘들겠군.”
트로이 전쟁에 참여할 때만 하더라도 패기가 넘치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하지만 아킬레우스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그리스 병사들은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전멸했으리라.
“하하하! 왜. 펠레우스 님이 굉장히 대단해 보이나?”
“맞아.”
“호오… 아킬레우스. 여태까지 괴물들과 싸우면서 많은 생각이 드나본데. 얼마 전의 너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모습인데?”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파트로클로스?”
영웅들은 정말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겨우 배를 고치고 자신들의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끔찍한 괴물섬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들은 얼마 되지 않았으며, 돌아온 자들의 몸 이곳저곳에는 부상이 가득했다.
“…아버지.”
“아킬레우스! 내 아들아…! 도대체 전쟁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전쟁은 싱겁게 끝났습니다. 다만 그 이후에…”
“일단.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계속 이야기하자꾸나.”
육지를 밟은 그들은 가족들과 회포를 풀고 자신들의 경험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아킬레우스의 절친, 파트로클로스가 섬에서의 여정을 기록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모든 일을 경험한 파트로클로스는 학자들이나 작가들을 모아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격렬했던 트로이 전쟁, 영웅들과 신들의 이야기, 아킬레우스와 함께 표류하게 된 괴물섬에 대한 것까지 전부.
“간신히 배를 고치고 바다로 나가도 온갖 바다 괴물들 때문에 다시 섬으로 돌아온 것만 수십 번이…”
“그것이 정말이란 말이오?”
“당연하지. 결국은 아킬레우스가 전부 썰어 버렸지만.”
그리하여 만들어진 한 편의 일대기.
아킬레우스를 주인공으로 하여 트로이 전쟁과 신,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영웅담.
“예술의 신인 아폴론께서도 분명 이 영웅담을 본다면 감탄하실 거요!”
“정말 흥미진진하군! 이건 분명히 가객들이나 음유시인들이 부르고 다닐만한…”
“내 이럴 때가 아니지. 방금 말한 영웅담을 모조리 기억하고…”
티폰이나 히드라 등 신화 속 괴물들의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었으나,
파트로클로스가 말하는 영웅담은 그가 직접 작성한 기록이 함께했다. 말하자면 신빙성과 현장감이랄까.
영웅 아킬레우스의 경험을 다룬 이야기,아킬레이아(Axilleia)가 그리스 전역에 널리 퍼져나가는 순간이었다.
* * *
가이아의 요청과 제우스의 계획에 따라 일어난 다툼.
올림포스 신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던 트로이 전쟁이 끝이 났다.
“드디어. 드디어 전쟁이 끝났군. 하마터면 내 날개의 깃털이 모조리 빠질 뻔 했어.”
“…수고하셨습니다. 타나토스.”
“죽음의 신 자리도 그냥 하데스 자네가 맡으면 안 되나?”
“……”
타나토스는 정말 여전하시군. 그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변하지 않았어.
하기야 정신의 불멸성은 신들의 특징이긴 하지만 말이야.
이제는 정말로 한동안 쉴 수 있겠지?
영웅들을 줄이려던 제우스의 전쟁도 끝났고, 신들은 내 눈치를 보느라 패악질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던 보람이 느껴지는군. 내 관할도 아닌 이승에 몇 번을 나갔다 왔는지 원…
덜컥.
타나토스와 나만 있던 알현실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아름다운 금발머리와 이 부드럽고 상큼한 신력은… 내 부인인 페르세포네?
“하데스 님!”
“코레. 이번엔 또 왜…”
“저 아이 가졌어요!”
뭐라고? 내 앞에서 방실방실 웃는 봄과 씨앗의 여신이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아이라니. 정말로? 내 아이를…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녀의 배에 손을 올렸다.
스윽.
미약하고 작은 생명의 느낌. 그녀는 정말로 내 아이를 임신한 것이 맞았다.
생명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저승의 주인인 내가, 이제는 한 아이의 부모가 된다니.
그녀를 끌어안고 미소를 지었다.
이것 참.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게 되는군. 정말 기쁘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헤. 에헤헤… 이 안에 저와 하데스 님의 아이가…”
“코레. 고맙다. 오늘부터 아이를 낳을 때까지 일은 편히 쉬어라.”
“아 맞다! 저 말고도 다른 여신님들도…”
덜컥.
또 알현실 문이 열렸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레테와 스틱스, 멘테까지?
“후훗…”
“하데스니임!”
페르세포네와 마찬가지로 무언가 즐거운 일이 있다는 듯 실실거리며 다가오는 그녀들.
“설마…”
“어머. 미리 페르세포네가 말해줬나요? 맞아요. 다들 당신의 아이를 가졌어요.”
나는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눈을 마주하지 못하는 멘테나 짐짓 가슴을 펴고 으스대는 레테 여신.
마지막으로 달아오른 볼을 슬쩍 감싸며 우아하게 웃는 스틱스 여신까지.
모두가 내 아이를 가졌다니.
이것이야말로 저승의 경사, 아니 축복인가?
그런데 아이를 낳으면 이름은 뭘로 지어야 할까. 내 피를 이어받은 아이들은 어떤 신격을 가지고 태어나게 될까?
든든한 아들일까. 아니면 귀여운 딸일까. 생각이 복잡하다. 하지만 결코 나쁜 기분은 절대 아니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겼고. 내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
오랜 세월, 신으로서 살아가며 감흥이 제법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몇 세기 동안 들었던 것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소식이네.”
“어머. 뭐라고요…?”
“우리들의 아이 이름은…”
그녀들과 담소를 시작하자, 타나토스가 눈치껏 슬쩍 나가 자리를 비켜준다.
어서 이 소식을 다른 신들에게도 전해야겠지. 올림포스 신궁에 있을 제우스나 그간 친분이 있었던 자들에게 전부…
“페르세포네에게도 말했지만, 다들 아이를 낳을 때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도 돼.”
“앗. 정말요?”
“그래. 멘테. 제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아이를 가졌을 때에는 쉬어야지.”
“어머. 후훗.”
“…와아아… 사랑해요…”
어? 잠깐만. 여신 4명이 1년 동안 쉰다면…저승의 일은 내가 전부 해야 하는 건가?
아니. 이게 무슨 생각이지? 아내들이 아이를 가졌는데 일을 맡길 수는 없는 법.
그래도 바쁜 나날은 이제 다 지나가서 혼자서도 할 만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놓았으니, 올림포스 신들도 사고를 치고 다니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바로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알현실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는 전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또?
“하데스 님! 큰일났습니다! 제우스 님께서 트로이의 영웅들이 너무 많다고, 조금 줄이는 것에 대해…”
“…허튼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전해라!”
저승의 왕은 오늘도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