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80)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80화(179/193)
후일담 – 21세기 올림포스
신은 불멸의 존재.
필멸자들과 다르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죽지 않는다.
인간들에게서 신앙을 잃어버리거나, 타르타로스에 갇히거나, 목이 잘려도 말이다.
기원전. 기원후.
인간들이 제멋대로 나눈 개념에 따르면 기원후 21세기.
올림포스 신들은 아직까지도 존재한다.
그것은 나. 저승의 신인 하데스도 마찬가지.
자식들도 많이 낳았고, 저승도 자동화가 많이 진행되어 상당히 한가하다.
물론 중요한 판결을 내려야 할 때도 가끔 있었지만 예전에 비한다면 엘리시온이 따로 없다.
당연하게도 카론이나 타나토스, 휘프노스 등 온갖 신들의 얼굴에 여유로움이 묻어나왔다.
반면 나는 조금 골치 아픈 일로 고생하고 있으니. 바로 자식 문제였다.
“아버지. 접니다.”
알현실에 비스듬히 기대어 눈을 감고 있는데 바깥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페르세포네와 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자그레우스(Zagreus)의 목소리.
“자그레우스냐? 들어와라.”
“예.”
알현실 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자그레우스의 모습.
말끔해보이는 검은 양복과 피곤한 얼굴, 눈두덩이를 문지르는 저 행동까지… 또 어제 야근을 했구나.
내 아들이 옥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추더니 나를 향해 한탄을 쏟아냈다.
짐짓 억울한 눈빛과 몸짓. 누가 또 사고라도 친 건가.
“아버지. 멜리노에 좀 어떻게 해주십시오.”
“…?”
“또 모르페우스 신이랑 눈이 맞아서 어딘가로 사라졌습니다. 당연히 하던 일은 내팽겨치고요. 덕분에 어젯밤 악몽을 꾸는 인간들이 단 하나도 없…”
멜리노에(Melinoe).
악몽과 유령, 광기의 여신이자 내 딸.
스틱스 여신과의 사이에서 낳아서 그런지. 아름다운 긴 흑발을 빼닮은 멜리노에는 다소 방만하거나 태만한 모습을 보였다.
디오니소스가 주관하는 광기의 영역을 일부 나눠받은 탓일까. 가끔은 예기치 못한 행동도 했는데…
“저승에서는 보이지 않더냐?”
“예. 레테 여신님과 함께 저승을 모조리 뒤졌는데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 올림포스로 도망쳤겠죠.”
“올림포스? 이승으로 놀러간 것이 아닐까? 설마 올림포스는…”
“아니요. 올림포스가 틀림없습니다! 평소부터 그리 올림포스 올림포스 노래를 부르고 다녔는지 아십니까? 제가 걔한테서 칙칙한 지하 세계보다 화사한 올림포스가 더 마음에 든다느니 하는 소리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요.”
바로 지금처럼 사랑을 추구하며 저승에서 도피를 한다던지 하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꿈의 신인 모르페우스랑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나는데… 아니다. 페르세포네랑 결혼한 내가 할 소리는 아니군.
“덕분에 저랑 마카리아만 고생입니다! 아니 대체 걔는 지하세계가 뭘 어떻다고 이리 싫어하는지 알 수가…!”
“아. 아. 그래. 알았다. 내가 한번 올림포스에 올라가서 찾아보마.”
“예? 아버지께서 직접이요?”
“그래. 몇백 년 만에 제우스도 보는 김에 데려오마. 이 자리는 네가 잠시 맡고 있어라.”
“또 저입니까…”
잠시 자그레우스에게 저승의 대행을 맡기고 올림포스로 가야겠다.
그런데 이런 부탁을 너무 자주 했나. 어깨를 늘어뜨리며 투덜대는 자그레우스.
“그냥 마카리아나 다른 자식들에게 시키시면 안 됩니까?”
“으흠. 네가 아니면 내가 누굴 믿고 맡기겠느냐? 그리고 저승의 신 업무 대행도 자꾸 해봐야만 익숙해진다.”
“예에… 알겠습니다.”
자그레우스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고 자리를 나섰다.
이제는 내게도 수많은 자식들이 있지만, 제일 믿음직한 아이는 자그레우스.
레테 여신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또다른 딸인 마카리아(Makaria)는 평온한 죽음을 나타내는 신격.
항상 타나토스 신의 업무를 도와주느라 정말 바쁘다.
그래서 일부러 종종 자리를 비우고 자그레우스에게 저승의 신 업무를 맡기곤 했다.
자그레우스가 더 성장하면… 혹시나 내게 무슨 일이 생겨도 저승에 큰 혼란은 일어나지 않겠지.
굳이 말하자면 포세이돈의 자식인 트리톤과 비슷한 위치를 가지는 후계자라고 할 수 있겠네.
* * *
후우우웅-
카론 영감님의 보트를 타고 아케론 강을 건너 지상으로 올라온 내 눈에 보이는 것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
저게 처음 만들어졌을 때, 올림포스 신들의 반응이 엄청났다.
나는 전생의 지식이 있었기에 그리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호들갑을 떨었다.
이 정도면 우주를 지배하는 우라노스 님의 영역에도 금방 도달하는 것이 아니냐, 영웅들이 없어도 인간들이 잘 자라는 것 같다, 신들은 다 은퇴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등.
최초로 저걸 만든 사람을 별자리로 만들어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
물론 인간 세상에 큰 관여를 하지 않는다는 제우스의 방침에 따라 묵살되었지만.
“어라? 하데스 큰아버지? 안 그래도 저승에 찾아뵈려고 했었습니다.”
“헤르메스. 오랜만에 봤는데 복장이 많이 달라졌구나.”
“아. 하하. 복장이요? 이거야 뭐… 헤파이스토스 형님께서 조금 고생해 주셨죠.”
저승의 입구에서 마주친 헤르메스의 복장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와이셔츠와 반바지, 평범한 지팡이로 위장한 카두케우스, 운동화로 위장한 날개 달린 신발, 등에 있는 가방까지.
저게 요새 여행자들의 패션인가?
“혹시 올림포스에 멜리노에가 있더냐?”
“아. 악몽으로 장난치던 귀여운 조카요? 으음… 봤던 것 같기도 하고. 아마 연회장에서 찾아보시면 되지 않을까요?”
“연회장?”
“예. 이번에 우라노스 님께서 올림포스에 방문하셨습니다. 인간들의 우주 진출에 대해 말씀하시던데…”
헤르메스로부터 몇가지 소식을 더 전해듣고 올림포스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인간들이 쏘아올린 인공위성이나 각종 감지 기구에 잡히지 않도록 모습을 감추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예전에 아폴론이 태양 근처에서 열기의 상태를 살펴보다가 인공위성에 잡힌 적이 있었지.
그때 이승에서는 신이니 외계인이니 뭐니 하면서 난리가 한번 났었고, 신들은 조금 더 주의하게 되었다.
* * *
오랜만에 올라간 올림포스 신궁의 풍경은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일단 구름 위에 세워진 웅장한 건축물은 그대로였으나…
위잉- 슈우우웅…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기둥으로 보이지만 사실은정교하게 만들어진 기계장치, 은하수가 흐르는 강 옆에서 떠다니는 무인 장치 등.
인간과 흡사하게 만들어졌지만 영혼이 없는 유사인간, 아니 사이보그라고 해야 할까. 아름다운 인간의 외형을 띤 기계들이 이쪽으로 고개를 숙인다.
– 어서 오십시오. 하데스 님. 올림포스에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웅장하게 세워진 강철 문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헤파이스토스의 신력과 함께 음성이 흘러나온다.
오호. 내 신력을 감지하는군. 헤파이스토스가 또 올림포스를 바꿔놓았어.
자그마한 구멍에서 붉은 빛이 한번 번뜩이더니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인간들이 만든 현대 문명의 자동문과도 같지만. 구름 위에 만들어진 문이여서 그런가, 무언가 위화감이 들었다.
아무리 헤파이스토스라도 하루아침에 이걸 다 만들 수는 없을 터인데. 얼마나 고생을 한 거야?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자 보이는 것은 정말… 정말 놀라웠다.
내가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눈이 잘못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올림포스가 이리 변했을 줄이야.
아무리 수백 년 동안은 신궁에 올라오지 않았다고 해도 이리 변할 수가 있나?
띠리리링~♪ ♫♪ ♫♪ ♫
“아하하하! 부어라!”
“아폴론니임! 음악을 조금만 더 키워주세요오!”
“물론이다. 에우테르페(Euterpe)!”
“하하! 헤라. 이쪽으로 오시오! 오랜만에 당신이 정말 아름다워 보이는군.”
“어머. 그래요? 그럼 잠시…”
어두운 올림포스 신궁의 천장에는 신력으로 내리쬐는 형형색색의 빛이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선글라스와 양복을 빼입은 DJ 아폴론이 기기를 조작해 노래를 틀고 있었고, 제우스와 헤라가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입을 맞춘다.
제일 신난 것은 역시 님프들과 춤을 추는 디오니소스. 또다른 한쪽 구석에서는 여신들이 고혹적인 자태로 춤을 추고 있었고…
“흐응. 제법 재롱들을 잘 부리는구나. 나름 즐길 만도 해.”
흰 백발. 작은 소녀의 체구. 하얀 원피스를 입은 채,넥타르를 마시며 의자에 걸터앉은 프로토게노이.
광대들의 재롱을 바라보는 눈길로 사방을 둘러보던 우라노스 님이 이쪽을 바라보신다.
“하데스인가?”
그래. 일단 인사부터 하고 보자.
“안녕하십니까, 우라노스 님. 헌데 올림포스에는 어인 일로 왕림하셨습니까.”
“제우스 놈이 기특하게도 날 초대했다. 마침 별자리를 바라보고 있기에도 무료하던 참이여서 말이지.”
“아… 그런데 대접이 소흘한 것은 아닌지…”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너희가 만들어낸 인간들이 이렇게 놀지 않더냐? 분명 그치들의 말로는 클럽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 클럽. 어쩐지.
음악도, 분위기도, 돌아다니며 음료를 따라주는 헤파이스토스의 기계까지. 인간들의 클럽이 이런 모양이었지.
예전에는 신이 문화를 이승에 전파했는데. 요즘에는 그들의 문화를 신이 받아들이는 지경까지 왔군.
신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의 힘으로 번성하고, 발전해 뛰어넘는다… 좋구나.
우라노스 님과 대화하던 중, 저쪽에서 검은 원피스를 입은 님프 하나가 날 부른다.
은은하게 빛나는 술병을 쌓아놓은 선반이 눈에 들어온다. 저게 전부 넥타르는 아닌 것 같은데.
“저… 하데스 님. 혹시 칵테일(cocktail) 한 잔 따라드릴까요?”
“칵테일? 넥타르가 아니고? 일단 따라봐라.”
“예!”
쪼르륵-
술잔 하나를 꺼내어 앞에 놓고 현란한 손길로 여러 술병을 차례로 기울이는 님프. 이게 그 플로팅 기법인가.
능숙하고도 빠른 손놀림이 끝나자, 내 앞에는 온갖 형형색색의 칵테일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게 다 뭐냐?”
“아! 제일 아래에는 넥타르를 담았고, 그 위층은 헤라 님께서 모두에게 개방하신 나무에서 따온 황금 사과의 과즙, 그 위층은 디오니소스 님께서 직접 빚으신 브랜디, 그리고 아리스타이오스 님이 직접 양봉하신 벌들이 생산한 꿀이 들어간 허니 시럽,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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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별걸 다 넣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