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82)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82화(181/193)
후일담 – 21세기 올림포스 完
지하 세계.
물론 인간들이 석유니 광석이니 채굴한답시고 땅에 구멍을 뚫은 곳이 아닌, 이승과 동떨어진 의미의 지하 세계.
이곳에서는 한 여신과 남신이 공손한 자세로 누군가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서 있었다.
당연히 그들의 정체는 악몽의 여신인 멜리노에와 꿈의 신인 모르페우스.
조금 앞에서 옥좌에 턱을 기대고 있는 자는 저승의 신, 하데스였다.
“그래서.내가 보았던 쓰러진 인간은 네게 자꾸 들이대서 기절시킨 것이고…저승의 일이 너무나도 지루하고 따분한 나머지 이승으로 놀러갔다?”
“네에… 딱 하루만 쉬다가 다시 돌아오려고 했어요!”
어떻게 된 게 타나토스가 하던 변명이랑 똑같을 수가 있지?
아주 오래전, 타나토스가 인간 시시포스에게 당했다는 핑계로 이승에서 쉬고 왔을 때 하던 말이랑 똑같구나.
“어차피 예전이랑 다르게 이젠 인간들도 많이 발전해서 괜찮지 않을까요… 괴물들도 거의 없는 수준이고…”
“흠. 흠. 하데스 님. 멜리노에도 이렇게 말하는데, 한번쯤은 용서…”
아니. 모르페우스 저놈이…!
멜리노에가 업무를 수행하지 않고 태만한 모습을 보이면… 노신으로서 옆에서 잡아줘야 하는 게 도리 아닌가?
감히 순진한 내 딸을 유혹한 것도 모자라 태업을 옹호해?
“타나토스! 밖에 있습니까!”
덜컥.
알현실 문을 열고 검은 날개를 가진 타나토스가 들어왔다.
요새는 인간들이 노화로 인한 죽음을 제외하면 잘 죽지 않는다. 기껏해야 사고나 전쟁 등의 원인.
하지만 그만큼 필멸자의 수도 늘어났기에. 저승으로 망자들을 데려오는 업무는 꽤 바쁘다.
“불렀나?”
“예. 여기 있는 모르페우스 좀 데려가십시오. 앞으로 1년 동안, 죽음을 수확하는 업무를 맡기셔도 좋습니다!”
“오호! 자네 딸자식이 도와주는 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했는데… 크흐흐. 당분간 올림포스로 휴가를 다녀올 수 있겠군!”
터억.
“아. 아니. 하데스 님! 제가 잘못…”
타나토스에게 잡혀서 질질 끌려가는 모르페우스.
아무리 저항해 봐야 소용없다. 의인화된 죽음, 타나토스의 손아귀 힘은 저승 제일이니까.
그렇게 모르페우스가 끌려나가고 나는 몸을 떨고 있는 멜리노에에게 최대한 자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흠. 흠. 너무 화를 냈나?
“멜리노에야.”
“…네. 네엣!”
“아무리 인간들이 뛰어난 문명을 만들어서 신들의 도움이 거의 필요가 없다고는 해도, 우리 신들은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이들이다.”
“네에…”
“특히나, 너나 나처럼 인간의 과학으로 완벽하게 규명되지 않은 부분을 주관한다면 더더욱 그렇지.”
신나게 연회를 즐기는 올림포스의 신들.
포도주나 대장장이, 화로나 전령… 그 외에 여러 개념들은 인간들의 논리와 과학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산이나 강에 존재하던 하급신들이 모습이 뜸한 이유도 그것 때문.
하지만 저승은 다르다.
어떠한 인간도 감히 사후 세계를 관측하지는 못하며, 죽음 이후 벌어질 환생과 재판에 대해 확신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인간들의 과학이 발전해도 여전히 일이 생기는 것이겠지.
“예전과는 달리 필멸자들로부터 신앙도 받지 못하니… 네가 여신이라는 자각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조금은 책임감을 가지도록 하여라.”
“알았어요. 아버지…”
“그래. 그리고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다.”
아까 만났던 그 괘씸한 인간은 약간 벌을 주긴 해야겠지.
물론 그에 대한 대책도 조금 생각해 놓았다. 아무리 인간들이 신을 믿지 않아도, 신의 이름을 이용해 이승에서 패악질을 부린다는 건 두고 보기가 힘드니까.
* * *
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반쯤 기계화된 올림포스.
나는 아까 이승에서 보았던 광경 때문에 제우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인간들이 우리 이름을 팔고 다닌다는 말이지?”
“그래. 아무리 지금은 신의 개입이 적은 시대라고는 해도, 어느 정도는 간접적으로 제재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헤르메스가 전해주는 소식도 있고, 나도 이승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대충 알고 있었어.”
그래. 네가 모를 리가 없지.
오랜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제우스의 성질도 많이 유해진 모양이군.
예전에 살모네우스 왕인지 뭔지가 네 흉내를 내었을 때에는 대노하여 벼락을 던졌지 않았나.
“으음…! 옛날이였다면 당장이라도 벼락을 날렸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시대이니 넘어가고 있었지만…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아까 멜리노에를 시켜 그 인간들에게 끔찍한 악몽을 선사하라고 얘기했다. 거기에 행운의 여신의 힘을 좀 빌리고 싶은데.”
“티케(Tyche)를 이승으로 파견하라고?”
“간단한 불운 정도면 경고가 되지 않을까? 인간들이 사후에 있을 심판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정의의 여신이 통탄할 노릇이다.”
내가 아무리 자비의 신격도 겸하고 있기는 하나. 분명히 저승과 공정의 신격도 있다.
제멋대로 신의 이름을 팔아먹고, 거짓된 신앙을 강요하며 방종하는 이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경고가 필요하겠지.
“음. 좋아. 하지만 너무 큰 영향을 미치는 저주나 불운까지는 내릴 필요가 없겠어.”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구제할 방법이 없다.
모조리 사후에 심판하는 수밖에.
* * *
다음날, 이승.
대한민국에서 악명 높은 사이비 종교 단체 [엘리시온교]의 신도들이 길거리 포교를 나섰다가 일제히 머리 위에 새똥을 맞는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그들의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으니, 교주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병원에 입원하는 등. 온갖 수난이 시작되었다.
– 서울의 엘리시온교 신도들이 기도회 도중, 원인 불명의 집단 배탈로 30여 명이 병원으로 이송되는…
– 최근 악몽을 꾼다며 정신과에 방문한 사이비 교인들의 인터뷰를…
– 거대 종교 집단에서 일어난 연이은 사고에 경찰이 수사에 나섰으나 어떠한 테러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
– 지속되는 사이비 종교의 불운, 하데스 신의 천벌인가?
– 신의 이름을 팔아 사람들을 끌어들이던 엘리시온교에게 내려진 심판.
교주가 쓰러지고, 신도들은 악몽과 불운에 시달리다가 교를 탈퇴하고, 이들의 불행을 언론에서는 대서특필하여 다루었다.
교주의 수완과 내세에 대한 두려움을 미끼로 세를 불려 나가던 사이비 종교는 큰 타격을 받고 그대로 잠적.
물론 행운의 여신을 비롯한 신들의 개입이 그 뒤에 있었음은 당연한 것이리라.
“아이고오! 영험하신 하데스 님! 평생 동안 어미 뒷바라지나 해준 못난 아들놈이 제발 그짝 세상에서는 복 좀 받게 해주시구랴!”
“지금부터라도 착하게 살면 죽어서 엘리시온에…”
“지금부터라도 신전을 다녀야 하나? 혹시 모르니 민트라도 하나 사다놓으면 좋겠네.”
다만, 내 신도들이 잠시 폭증하는 사소한 사건이 있었기는 했지만…
어차피 필멸자의 시간은 짧다. 세월이 지나면 잊어버리겠지.
이승에 오랜만에 간섭했으니 다시 잠잠해질 때까지는 신경 쓰지 말까.
저번처럼 갑작스러운 세계 대전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저승도 그리 바쁘지는 않다. 올림포스 신들처럼 이승에서 손을 떼어도 될 정도는 아니긴 하지만…
아. 그렇다고 완전히 간섭하지 않는 것은 또 아닌 모양이다.
헤라클레스가 운동하는 인간들에게 약간의 축복을 내려주거나, 신의 자리에 오른 오르페우스가 이승의 음악가에게 천재성을 부여하기도 한다는 모양이니.
정의의 여신 디케는 언제부턴가 우울한 기색을 보였었지. 분명 인간들이 신의 존재를 진실로 믿지 않을 때부터 악해졌다고.
하지만 나는 이 정도가 딱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과하게 이승에 간섭하면 인간들의 자립성을 키우지 못할 뿐이니까.
덜컥.
알현실의 문이 다시 열리고, 망각의 여신이자 내 부인들 중 하나인 레테가 들어왔다.
오늘도 아름다운 그녀를 마주하니 미소가 절로 지어지지만, 왜 저리 시무룩한 얼굴이지?
“…하데스으…”
“레테?”
종종걸음으로 다가온 여신이 옥좌에 걸터앉은 내 무릎 위에 털썩 주저앉는다.
내게 등을 기대오는 레테를 슬며시 안으며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이 은발 머리칼은 언제나 아름다워서 좋다니까.
“인간들이 자꾸 제 조각상에다 대고 기도해요. 제발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는데… 불쌍하기도 하고… 조금 도와줄까요?”
“아.”
오래전부터 신들에게 기도하고 제물을 바치는 장소로 쓰여진 신전은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웅장한 건물에 최신식 설비로 지어지거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친답시고 화폐를 태우는 경우도 있었긴 하지만.
그리고 내 신전에는 당연히 아내들이나 저승에 속한 신들의 조각상도 존재했으니,망각의 여신으로 알려진 레테의 은혜를 바라는 인간들이 그녀의 조각상에서 기도하는 모양이네.
이런 일은 레테 뿐만이 아니다. 스틱스 여신의 조각상 앞에서 맹세하는 인간들도 수두룩했다.
물론, 스틱스 강에 대고 맹세하고 어기는 인간들은…
신앙이 희박한 시대인 점을 고려하여 타르타로스가 아닌, 저승에서 약간의 노역만을 시키고 있었다.
“크흠. 간혹 아폴론과 아스클레피오스가 질병을 연구하는 인간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있으니. 그들이 스스로 치료법을 발명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가요… 하긴 헤파이스토스도 아직도 인간들이 금속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후유.”
“그것보다 당신. 오늘따라 정말 아름다워 보이네. 오늘은 업무도 없는데…”
레테 여신이 내게 등을 기댄 채로 고개를 돌리고, 나는 그대로 입을 맞췄다.
사랑하는 아내들과 자식들이 존재하는 한.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행복도 영원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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