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85)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85화(184/193)
외전 –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2)
밝고 활기찬 올림포스와는 다른 이곳이 신기한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아프로디테와 함께 저승으로 내려오자 수많은 시선이 몰렸다.
저승의 다섯 강을 건너는 망자들이나 카론과 같은 신격들까지 전부.
“하데스… 자네 옆에 있는 그 아름다운 여신은 대체 어디서 데려왔나?”
“이쪽은 아프로디테라고, 잠시 저승의 일을 도와줄 미의 여신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크흠. 나는 휘프노스라고 하는데, 잠시 이야기나 좀…”
“어머. 죄송하지만 저는 하데스 님이 좋아서요.”
“하. 하데스? 옆에 여신은 또 뭔가요?”
“스틱스 여신님. 이쪽은 미의 여신인데. 올림포스의 다툼을 멈추기 위해 잠시 저승으로 데려온…”
“까드득… 아무 사이도. 까득. 아닌 거죠?”
“…물론입니다.”
미와 사랑의 여신다운 엄청난 미모가 저승에 후광을 비추자,사소한 오해도 종종 일어났다.
그렇게 부러움과 질투, 온갖 감정이 담긴 시선들을 받아가며 알현실까지 도착했다.
“헤에. 저승에는 재밌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화려한 금발 머리를 넘기며 미소를 짓는 아프로디테를 보고 있자니 온갖 번뇌가 들었다.
정말 아름답기는 하네. 확실히 올림포스에 남겨 두었다가는 언젠가 싸움이 벌어지겠어.
그나마 남신들도 적고, 여색에 큰 관심이 없는 타나토스 같은 노신들만 있는 저승에 데려왔기는 하지만… 일은 잘할 수 있을까?
뭐. 몇백 년 동안 맡기면 알아서 익숙해지겠지만.
“네가 저승에서 해줘야 할 일은 서류 작업이다. 지금은 낯설겠지만, 하다 보면 익숙해질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아까 올림포스에서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저승의 음식은 먹지 말아라.”
“여기 음식은 먹으면 안 되나요?”
“저승의 음식을 입에 댄 자는 저승에 속해야 한다. 그것이 규칙이다. 미와 사랑의 여신이 저승에 속하는 건 필멸자들에게 이상한 오해를 불어넣을 수도 있다.”
“이상한 오해라니요? 왜 저는 여기 있으면 안 되나요?”
“자칫하면 죽음이야말로 아름답다는 관념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저승에 속한 신들은 하나같이 그에 어울리는 신격을 가지고 있다.
죽음, 잠, 꿈, 망각, 분노, 기아 등. 필멸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리 좋지 않은 신격들.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이해한다.
죽음은 친근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필멸자들이지만, 현재의 삶에 충실하지 않고 내세만을 바라보면 이승은 난장판이 될 것이다.
아름다운 미와 사랑의 여신을 밀어내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
“흥. 그래도 어떤 여신이 취향인지는 알려줄 수 있잖아요?”
“성실하게 일하고 오직 하나의 남신만을 바라보는 여신이라면 누구든지. 이제 알려줬으니 이 서류나 들고 나가서…”
나 하나만의 감정으로 그녀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 * *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지?
“하데스. 큰일났어요. 또 이승에서 전쟁이…!”
“뭐라? 아프로디테. 아케론 강으로 가서 망자들의 질서를 잡아라. 그리고 카론…”
아프로디테는 생각보다 저승에 잘 적응했다.
가끔은 투덜대며 올림포스에도 다녀오고, 남신들이 그녀에게 구애하려고 저승까지 오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했지만.
용케 그 친화력으로 저승에 눌러앉은 아프로디테였다.
미의 여신의 아름다움은 같은 여신들에게도 통하는가?
그녀의 미모를 아니꼽게 바라보던 질투의 여신 에리스 님과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위화감이 든다.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님은 저승에 속한 신이라는데.”
“설마 죽음이야말로 아름다움이고 사랑이라는 것은…”
“어허! 자네, 플루토께서 내리신 신탁을 듣지 못했는가? 미와 사랑의 여신께서 저승에 계신 까닭은, 이승에 남아있는 죽은 자의 가족들이 보내는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죽음을 맞이한 망자들에게 내려진 플루토의 자비라는 말도 있네. 들리는 소문으로는 카론의 나룻배를 타기 전에 여신의 미모를 보고…”
“음? 내가 듣기로는 자비의 신께서 필멸자에게 보내는 어버이의 사랑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던데?”
물론 아프로디테가 저승에 오래 머물면서 이승에 이상한 소문이 퍼져나가고는 있지만…
신탁을 내려 적당히 잘 진압했다. 다행히도 이승에서 플루토의 이미지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이 도움이 되었다.
대충 자비와 뭉뚱그려서 생각해버리니… 어쩌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희석시키기 위한 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한동안 서류 작업을 마치고 옥좌에 앉아서 쉬는데, 아프로디테가 가슴팍을 살짝 풀어헤친 채로 다가온다.
나도 그녀에게 물들었는지. 사뭇 고혹적으로 보이는 몸짓에 시선이 쏠린다.
“후훗. 아직도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하. 데. 스?”
“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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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입술에 닿았던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쓸어내리며 밀착해오는 미의 여신.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부드럽고 풍만한 여신의 가슴이 내게 닿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간 저승에서 함께 일하느라 정이라도 제법 들었던 것인지.
사실. 여태까지 그녀에게 구애하던 수많은 남신들을 뿌리치며, 오직 내게만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홀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미의 여신이 나만을 바라본다면. 그 누가 그녀를 거절할 수 있을까.
“흐응~ 흥~ 하데스? 갑자기 말이 없어졌는데요? 드디어 제 매력을 알아보기 시작한 건가요?”
“…일이나 하자.”
“흐으으응…”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고 부드럽게 밀어내니, 비음을 흘리며 입술을 삐죽거리는 여신.
복잡한 눈으로 아프로디테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번에 아레스가 네게 구혼했을 때에는 왜 거절했지? 아레스 정도면 제법 훌륭한 남편감 아니냐.”
“그야… 전쟁의 신도 잘생겼고 몸도 좋긴 하지만. 하데스보다는 아니여서요?”
“하룻밤만을 같이 보내자고 하던 남신들도 많은 걸로 아는데. 솔직히 조금 의외였다.”
내가 아프로디테와 혼인하지 않고, 그저 저승의 업무만을 도우게 했다는 이야기가 알려지자 수많은 남신들이 저승으로 방문했다.
온갖 금은보화와 신수, 심지어는 신의 권능이 담긴 물건까지 바치며 그녀와의 하룻밤을 원했었는데…
“왜요?”
“사랑의 여신이 사랑받는 것을 거절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거든.”
아프로디테는 단 한번도 남신들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일관적으로 오직 내게만 마음이 있다고 하며 그 많은 신들을 모조리 뿌리쳤다.
심지어는 내가 말한대로 저승의 음식을 먹지도 않아, 주기적으로 올림포스에서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가져와야만 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아프로디테는 불가능한 사랑에 목매다는 어리석은 여신이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요지부동.
“…대체 내가 무슨 가치가 있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너 정도면 어느 남신이라도 골라잡을 수 있을 터인데.”
“하지만 정작 제가 사랑받고 싶어하는 신은 넘어오지 않는걸요?”
그녀가 야속하다는 얼굴로 팔짱을 끼었다.
특정 부위가 부각되어 시선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리고. 이유는 하나 더 있어요.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 것이라서.”
“뭐?”
“성실하게 일하고 하나의 남신만을 바라보는 여신이 취향이라고 했잖아요?”
“뭐… 라고?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나?”
“당연하잖아요? 저 아프로디테는 미와 사랑의 여신이라고요. 제가 점찍은 사랑은 무조건 쟁취하고 말 거예요!”
가슴을 쭉 펴고 의기양양하게 웃는 아프로디테를 보니 말문이 막혔다.
아주 오래전, 처음으로 만났을 때부터 계속 지금까지 노력해온… 설마 저승에서 수천 년간을 성실하게 일해온 것 또한.
내 말대로 저승의 음식을 먹지 않은 것 또한. 전부 나를 향한 어필이었나?
“사랑을 포기하는 사랑의 여신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절대로.”
이쪽을 바라보고 생긋 웃음지은 아프로디테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포도에 손을 뻗었다.
똑. 하고 떨어진 포도알 하나를 입에 물고 다가오는 여신.
저 포도알은 올림포스의 것이 아닌, 저승의 음식. 한 걸음. 또 한 걸음.
포도알을 입에 물고 내게 가까이 다가온 미의 여신의 장난스러운 얼굴이 눈앞에 드리워졌다.
곧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깝게 온 여신이 내게 그대로 입을 맞췄다.
부드럽게 맞닿은 입술과 입술 사이로 포도알 하나가 데구르르. 서로의 입안을 번갈아 굴러가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후으읍…”
내가 이 포도알을 삼킬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먹게 둘 것인지.
지금 내게 빙 돌려서 말하는 건가. 오랜 세월에 걸쳐 나만을 바라본 아프로디테의 진심이 확연히 느껴졌다.
그래. 과연 사랑의 여신이라는 거구나.
입 안에서 느껴지는 이 달달함이 포도알 때문일까.
아니면 알현실의 공기마저도 바꿔버리는 이 달아오른 분위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프로디테 여신의 진심어린 사랑이 담긴 입맞춤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나도 나쁘지 않았다.
곧 짧지만 길었던 입맞춤이 끝나고, 미의 여신이 다시 자신의 입안으로 들어온 포도알을 꿀꺽 삼켰다.
붉게 상기되어 있는 아프로디테의 얼굴은 명백히 무언가를 바라고 있었다.
꿀꺽.
“앗. 이걸 어쩌나. 저승의 음식을 먹. 어. 버. 렸. 네. 요?”
잔뜩 기대하는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자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아레스가 아프로디테와 이어지고 싶다고 내게 조언도 구하고 했었는데, 미안하게 되었네.
“이제부터 평생 여기서 살아야 할 것 같은데에… 이 불쌍한 여신을 책임져 줄 남신이 어디 없을까나아?”
“…글쎄. 마침 여기에 홀로 외롭게 지내는 저승의 신이 있군.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얼마든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프로디테가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포옥.
“사랑해요! 하데스!”
“나도. 사랑한다. 아프로디테.”
결혼식 날을 잡아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