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9)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19화(19/82)
티포노마키아 이후의 이야기 – (3)
인간들이 경외하는 구름 위, 올림포스 신들의 연회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에 인간들이 내게 바람을 기원하길래 조금 자비를 베풀어..”
“아르테미스 님, 오늘도 아름다우십니다!”
“연회가 끝나면 님프들에게 할 말이 생기겠어.”
“티폰이라는 괴물이 그리도 강했던 것일까?”
신들의 음식인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고,
“흐응.. 나랑 같이 조용한 곳으로 가서 계속 얘기할래요?”
“그대만 원한다면 언제든지.”
남녀간에 눈이 맞으면 조용한 곳으로 떠나고,
“자네 휘하에 있는 님프 하나가 꽤 쓸만한 무기를 바쳤다던데..”
“음? 혹시 내 검을 말하는 건가.
“그걸 걸고 나랑 팡크라티온(Pankration)한 판 어떤가? 나는 요즘 기르고 있는 물소 한 마리를 걸지.”
“자네들 한판 붙을 건가? 그런 나는 이쪽에..”
격투 경기인 팡크라티온을 통해서 재미있는 내기를 하거나,
“하하하! 테르프시코레(Terpsichore)!역시 대단하구나.”
“과찬이십니다. 포세이돈 님.”
“학문과 예술을 관장하는 무사이(Mousai) 중 하나에 걸맞는 춤 솜씨였다!”
아폴론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거나춤을 추는 등 예술을 즐기기도 한다.
이런 신들의 연회에서 나 하데스는..
“흐응.. 정말로 저랑 놀아주시지 않을 건가요?”
“어, 그리고저 허리끈은 좀 풀어라, 머리 아프다.”
“하지만 이것도 없으면 시선조차 안 주시잖아요..?”
모두가 선망하는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유혹을 뿌리치고 있었다.
하필이면 저케스토스 히마스(유혹하는 마법의 허리끈)도 하고 왔네.
저것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떨어져라, 좀.
그래도 그녀가 전력으로 매혹하는 것이 아닌 반쯤 장난으로 이러고 있는 것을 안다.
“치.. 재미없게. 자꾸 그럴 건가요?”
“네 남편인 헤파이스토스한테나 가라.”
물론 반쯤은 진심인 것 같아서 좀 그렇지만.
아니, 너는 남편도 있으면서 왜 이러는 거냐.
“나한테서 저승과 올림포스의 거리만큼 떨어지도록…”
“하아? 미의 여신인 제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꼭 그래야겠나요?”
팔짱을 끼고 어딘가가 강조된 요염한 자세를 취하는 아프로디테.
그런 자태에 주변의 남신들이 눈을 돌리지 못하지만..
“그러다가 정말로 언젠가는 무슨 일이 터질거다.”
“걱정보다는 애정이 받고 싶은데요.. 오늘은 이만 물러가죠.”
강렬한 감정인 사랑을 관장하는 그녀의 입장에서 나를 본다면..
무려 3주신이나 되는 자가 자신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난 듯 싶어 찜찜한 느낌일 것이다.
미와 사랑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듯,
아프로디테가 인상을 잔뜩 구기며 자리를 떴다.
“와.. 내가 뭘 본 거람. 하데스 큰아버지, 방금 미의 여신을 거절하신 겁니까?”
카두케우스를 들고 있는 헤르메스가 입을 벌려 감탄하며 다가온다.
그의 지팡이에 있는 뱀들 역시 아프로디테가 떠난 방향으로 머리를 돌리고 있었다.
“저 같으면 거절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하룻밤을 신나게 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아…”
헤르메스가 음흉한 얼굴로 작게 속삭이지만 나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는 여신하고 왜 밀회를 즐기겠냐.
심지어 헤파이스토스는 내게 그리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래서 너는 왜 왔냐.”
“대장간에서 일하고 있던 헤파이스토스가 하데스 님을 뵙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또 전령 아닙니까.”
제우스가 헤파이스토스에게 내 무기를 만들라고 시켰다지.
무기를 만드는데 내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지금 가봐야겠군.”
넥타르가 담긴 황금 술잔을 내려놓고 걸어나갔다.
올림포스의 헤파이스토스 전용 대장간이 이쪽이던가?
* * *
이리스가 열심히 물을 길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간이 은하수를 지나고..
빽빽하게 깔린 흰 구름들 사이도 지나서 한참 걸어나가고…
“꺄하하하!”
“하하하! 거 좀 천천히 달리시오!”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보이는 하급 신들이 내 옆을 지나갈 때쯤,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이 보였다.
깡! 깡!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 신도 뜨거움을 느낄 정도의 열기, 하늘로 높게 치솟는 불길.
만약 인간의 손에 들어간다면 무기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날 법한 온갖 신병이기(神兵利器)들이 대장간 벽에 가득했다.
저건 휘두를 때마다 불길이 나오는 칼, 푸른 금속을 띤 이 갑옷은 충격이 가해지면 점점 단단해지는 물건인가?
“오셨습니까, 큰아버지.”
“음.”
헤파이스토스의 손길이 닿은 무기들을 감상하고 있자 그가 나와 나를 반겼다.
절름발이지만 대단한 근육질에 억세 보이는 남신의 손에는 망치가 들려있었다.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실패작이라 보여드리기 부끄럽습니다..”
아무리 봐도 하나라도 하계에 떨어지면 난리가 날만한 물건들이다만.
그래도 아프로디테의 마법의 허리끈과 헤르메스의 날개달린 신발을 만든 대장장이 신의 관점에서 본다면 당연한 일이겠지.
그래서 나를 왜 찾았는지 그에게 질문하자,
헤파이스토스가 순박해보이는 얼굴로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큰아버지께 드릴 바이던트(Bident)라는 창을 만드는 중이였는데 신력을 좀 불어넣어 주셨으면 해서..”
“바이던트..?”
티탄 신족과의 전쟁에서 내가 창을 많이 사용하긴 했다.
그걸 본 제우스가 창을 만들라고 했나?
“그럼 내 무기도 포세이돈의 것처럼 삼지창으로 만들거냐?”
“아뇨, 이건 끝이 두 갈래인 이지창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 스틱스 검이 있어서 무기는 괜찮다만..”
허리춤의 검집을 풀고 스틱스 검을 그에게 건네줬다.
대장장이의 신이 잠시 집중해서 칼날을 살피더니 내게 웃으며 말했다.
“이 검도 제법 뛰어나지만 트리아이나와 벼락에 비할 바는 아니군요. 하지만 이제 보여드릴 바이던트는 감히 그것들과 비교할 수 있을 겁니다.”
“호오..”
헤파이스토스가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말하더니 대장간 안에서 무쇠 장갑을 낀 채 이지창을 가지고 왔다.
나는 아직 열기가 남아있어 붉게 달아오른 창에 손을 뻗어보았다.
파스스스…
내게서 나온 검고 어두운 신력이 바이던트에 닿자 창의 겉표면이 미세하게 깎여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바이던트가 곧 신력을 받아들이며 검게 변했다.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을 정도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였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마무리 작업이 아직 남았습니다.”
창을 조심스레 받아간 헤파이스토스가 다시 대장간 안으로 들어가자..
곧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와 서로 다른 기운이 충돌하는 폭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카캉! 츠츠츠츳.. 깡! 까앙!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와 비견될 실력을 가진 자는 내 퀴네에를 만들어준 퀴클롭스 삼형제들 뿐.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헬리오스의 태양 마차가 세계의 끝에 도착했고 이제 달의 여신 셀레네의 차례가 돌아왔을 때,
작업에 열중하던 헤파이스토스가 나를 불렀다.
“다 만들었습니다! 한번 휘둘러보십시오!”
반짝거리는 검은 표면의 창날.
보기만 해도 싸늘한 기운이 발산되지만 내게는 친숙한 저승의 느낌.
마치 홀린듯이 오른손으로 바이던트를 집었다.
창이 주인을 알아보듯 은은한 공명음을 토해낸다.
손에 착 감기는 창에 약간의 힘을 불어넣자 족히 몇 곱절은 강해진 기세를 발산한다.
불길한 검은 신력이 바이던트를 감싸고 나는 잠시 창을 내려다보다가 하늘로 거세게 내질렀다.
콰아아아아-
올림포스 위의 구름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하늘 너머를 향해 곧게 날아가는 맹렬한 창격(槍擊).
정말, 최고다.
포세이돈의 트리아이나가 전혀 부럽지 않아.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드는 정도가.. 아닌데?”
“그리고 방금 신력이 각인되었으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언제든지 소환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아니, 그런 기능까지 있어?
이걸 잃어버릴 일은 절대로 없겠네.
진짜 포세이돈의 삼지창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데..
이건 내가 뭔가 상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흡족한 표정인 헤파이스토스에게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군요. 한가지 부탁이 있긴 합니다만..”
“한번 말해 봐라,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이면 웬만해선 들어주마.”
“그 바이던트를 자주 사용하시고 제가 만든 것을 널리 알려주십시오!”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
“그것이… 퀴클롭스 형제들이 만든 삼신기(三神器)에 비견되는 바이던트를 세계 최고의 대장장이인 이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었다는 사실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대장장이 신에게 그 정도는 당연히 들어주겠다고 확언했다.
뛰어난 무기를 만들었다는 명예를 바라는 것 같으니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근데 세계 최고라기에는 퀴클롭스 삼형제들이 좀 더 윗줄 아닌가..?
아! 아르게스가 만들어준 퀴네에랑 한번 겨루어보면 알겠구나!
* * *
캉! 카카캉!
저승으로 돌아온 나는 낡고 허름해 보이는 투구를 한 손에 들고 바이던트와 부딪혔다.
거의 동등한 강도를 지닌 두 무구가 서로 충돌하며 불꽃이 튄다.
“꺄아아악! 하데스으! 또, 또 그 귀한 투구로 무기 시험을!”
근처를 지나가던 스틱스 여신이 나를 보더니 기겁하며 말린다.
아니 그, 몇번만 더 해보면..
“제가 만들어준 검도 그렇고, 대체 누가 거기에다 무기를 시험하냐고요!”
“아, 참고로 이 바이던트는 올림포스 최고의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가..”
스틱스 여신이 내게 다가와 마구 역정을 낸다.
손은 파닥거리고 발은 그렇게 동동 구르시면 저승 밑바닥에 구멍이.. 아닙니다.
“바이던트고 뭐고, 퀴네에를 보물창고에서 소중히 보관해도 모자랄 판에 왜 자꾸 혹사(?)시키는 건데요! 저번에도 말했..”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고 싶었는데 안 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