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2화(2/82)
저승의 이야기 – (1)
훗날 티타노마키아라 이름 붙여질 티탄 신족과의 전쟁이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
이제 세계의 패권은 우리들에게 넘어왔다.
“헤카톤케이레스 형제들! 자네 셋이서 티탄 놈들을 얼마나 쓰러뜨린 건지!”
“이 삼지창은 또 어떻고, 지진을 일으키는 대단한 무기를 만들어준 퀴클롭스 덕분이야!”
“아니, 이건 모두 제우스 네가 우릴 꺼내준 것에 대한 작은 보답일 뿐이야.”
분위기는 아주 화기애애했다.
이제 힘든 전쟁은 끝났고 전리품을 챙길 시간이니 당연한 일.
우선 제일 중요한 바다와 저승, 하늘을 누가 다스릴건지 결정하기로 했다.
헤라와 데메테르, 헤스티아는 눈치를 보다 조용히 물러섰다.
“나는 관심없어.”
“나도.”
“남자들끼리 알아서 정해.”
우리 중에서 나와 포세이돈, 제우스의 힘이 제일 강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부담스러워서나 욕심이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럼.. 슬슬 우리가 어디를 관리할지 결정해야 하는데..”
“공평하게 제비뽑기로 하지. 사실 누구나 하늘을 원하지 않겠나?”
포세이돈의 말에 제우스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그냥 운빨에 맡기자고 하였다.
잠깐, 여기서 내가 바다나 하늘을 뽑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럼 내가 알던 신화 지식이 완전히 뒤틀리는..
“흐하하하! 역시 내가 하늘을 다스려야지, 암!”
“쳇. 나는 바다인가. 그래도 지하는 아니니..”
나는 조용히 내게 내밀어지는 마지막 제비를 보았다.
얘네는 언제 다 뽑은 거야. 이거 조작한거 아니지?
포세이돈과 제우스가 안도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하기야 누가 어두침침한 지하 세계에서 살고 싶을까?
신들의 왕이 되고 싶은 야망이 넘치는 두 동생들은 지하에서 살 바에는 반란이라도 일으키겠지.
그래, 차라리 내가 지하로 가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
* * *
인제 가면~ 언제 오나~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저승으로 내려갈 만한 적당한 장소로 가고 있었다.
뭐 일단 내가 저승의 왕이니 관리를 해야 하긴 하니까.
새들이 지저귀고 꽃이 피어난 평범한 초원.
터억.
의지를 담아 발을 한번 내리찍었다.
싸아아아-
검은 기운이 땅으로 퍼져나가며 내 앞에 내리막길을 만들어준다.
주변의 풀과 나무들이 시들고 주변의 생명들은 황급히 도망친다.
투명 투구, 퀴네에를 한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방금 만든 통로를 바라보았다.
딱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고 어둠으로 잔뜩 뒤덮인 끝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
아래로. 또 아래로 계속해서 내려갔다.
얼마나 지하로 내려갔을까.
이제는 간혹 보이던 벌레들도 보이지 않는다.
지하 동굴을 여러번 거쳐오자 드디어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분명 태양이 없는 곳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만 정상이지만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산과 검게 물든 하늘, 그리고드넓어 보이는 강이 눈에 띄었다.
이것이 저승을 둘러싼 첫번째 강, 비통의 강 아케론(Acheron)이다.
먼 훗날의 인간들에게 비통의 강이라고 불릴 강은 그저 맑고 평범한 강처럼 보였다.
그러나 강에는 어떠한 생물도 살고 있지 않았고 근처의 산 역시 마찬가지로 생명체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케론 강을 건너자 또다른 강이 나타났다.
수면 위로 드러난 내 얼굴에 과거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시름의 강, 코퀴토스(KoKytus).
신인 내가 느끼기에도 얼음물에 발을 담군 것처럼 차가웠고 티탄 신족과 전쟁을 하던 내 모습이 비쳐보였다.
제우스와 함께등을 맞대고싸우던 나, 퀴네에를 쓰고 키가 큰 티탄 신족의 배에 칼을 찔러넣는 나..
고개를 들어올리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다음 강은 불길로 가득한 퓌리플레게톤(Pyriphlegethon).
물로 가득할 강은 타오르는 불길로 가득했다.
영혼을 태워 정화하는 힘이 담겨있었지만 내게는 별 해를 끼치지 못했다.
인간의 영혼이 이곳을 지나오면 깨끗이 정화되리라.
다음으로 망각의 강 레테(Lethe).
인간의 영혼이 강물을 마시면 기억을 잃어버리겠지.
신인 나에게는 그냥 쓴 물일 뿐이다. 사실은 궁금해서 한번 먹어봤다.
이제 나의 새로운 집, 저승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슬슬 걷는 것이 귀찮아질 때, 드디어 저승으로 가기 전 마지막 강이 보였다.
발걸음을 옮겨 강 근처로 다가가자 물이 자연스레 형태를 이루어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을 만들었다.
“어서 오세요, 하데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그녀의 이름은 스틱스.
바다를 다스리는 티탄 신족 오케아노스와 테튀스 사이에서 태어난 여신.
명계를 아홉 번 휘감으며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가르는 강이 의인화한 그녀는 티탄과의 전쟁에서 우릴 제일 먼저 도운 대가로 한가지 특혜를 받았다.
정확히는 제우스가 강하게 주장했고 우리 모두는 그에 동의했다.
“스틱스 강에 맹세코 진실만을 말하건대 오늘도 아름다우시네요. 스틱스 씨.”
“흐읏..갑자기그런 칭찬을 하시면..”
그녀의 스틱스 강에 맹세를 하면 신이라고 해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만약 어길 시에는 첫 1년은 가사상태로 지내고 이후 9년간 신들의 회의에 참여할 수 없다.
사실상 신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스틱스 여신은 아름답기 때문에 나는 맹세를 어기지 않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에 나올 곳은 나온 몸매, 부끄러운 기색으로 배배 꼰 자태까지.
사실 별 감정 없이 저승에서 살면 오래 볼 여신이라 덕담을 한 거지만.
“하아.. 그리고 자꾸 저에게 대고 맹세를 하진 말아주세요. 특히나 방금처럼 사소한 일은 더더욱!”
허리에 한 손을 올리고 반대쪽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톡톡 건드리는 스틱스 씨.
나름 훈계라도 하듯 짐짓 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시지만 위엄보다는 귀여운 학생이 투덜대는 모습 같았다.
아, 못 참겠다. 스틱스 여신을 보다보면 어째선지 놀려주고 싶어져.
스틱스 강에 맹세하건..
“또! 또 그러신다, 그만! 그만해요!”
“그냥 해본 말입니다…”
“후.. 저승의 신이라면 역시 위엄을 갖추셔야..”
스틱스 여신과는 전쟁 때 제법 친해졌다.
발산하는 힘의 종류도 똑같이 어두침침하고 성질도 비슷해 함께 공격하면 나름 시너지 효과가 났었거든.
내가 제비뽑기에서 저승을 뽑았다는 소리를 듣자 친해진 남신이 이웃이 되었다고 좋아하더라.
“…아시겠어요? 이젠 세계의 패권을 거머쥔 위대한 세 주신 중 하나로서..”
특징으로는 잔소리가 엄청나다.
* * *
잔소리의 여신, 스틱스에게 한참을 붙잡혀 있다가 이제 내가 머물 저승으로 오게 되었다.
약간의 기대감을 품고 이제부터 머물 땅이 어떤지 확인해보는데..
황량하다.
아무것도 없다.
맨 땅에서부터 개척해야 한다니 이럴 수가..
수많은 티탄들을 쓰러뜨리고 저승의 지배자가 된 하데스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어찌하여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밤의 여신 닉스의 세 딸, 운명의 여신들이여.
인생.. 아니 신생(神生)… 신이나 되어서 황무지 개척을 해야 한다고?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일이니까 해야겠지.
일단 저승과 한참 떨어져 있는 타르타로스는 내가 건들 필요가 없다.
그곳은 전쟁에서 패배한 티탄들이 들어가는 감옥.
포세이돈이 직접 청동의 문을 만들었고 사방은 청동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무도 도망칠 수 없다.
중죄인을 수용하는 흉악범 수용소로 딱 알맞은 그곳에는 밤의 여신 닉스의 거처도 존재한다.
안개가 자욱한 타르타로스의 입구에는 헤카톤케이레스 3형제가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직접 타르타로스에서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막고 싶다며 자원했는데 아무래도 아버지 크로노스가 자신들을 풀어주지 않았던 원한이 뼈에 사무쳤나보다.
지금부터 만들어야 하는 것은 저승으로 올 영혼들이 거주할 공간이랑 내가 살 집.
저승은 나의 영역, 제비뽑기를 통해 내가 이곳을 관장하기로 한 다음부터 변화한 내 신력이 호응한다.
드드드드…
저승에서의 나, 하데스는 그야말로 절대자.
자연스럽게 의지가 일어나자 주위의 모든 풍경이 변화해 나간다.
아무래도 저승의 왕이라는 직책이 있으니 위엄은 있어야겠지? 광물이나 보석등은 지하에 널려있으니 재료는 충분해.
제우스는 올림포스 산 위의 하늘에 자기들이 살아갈 신궁(神宮)을 만든다고 하니까 나도 좀 크게..
* * *
저승을 둘러싼 가장 큰 강의 주인이자 강 자체, 스틱스는 저승에서의 맹렬한 진동을 느끼고 다시 강 밖으로 나왔다.
황량한 벌판뿐이던 어두침침한 세계가 저승의 왕의 의지에 따라 마음대로 모습을 변화한다.
드드드드…
끝을 알 수 없는 드넓은 저승 전체가 떨리며 자신의 새로운 주인에 환호한다.
삶과 죽음, 세상을 이루는 기초적인 순환이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지고 그 이치가 우주에 깊게 새겨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방금까지 자신의 이름을 딴 맹세로 장난치던 그 가벼운 남신(男神)의 권능이 명백히 주신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
‘역시, 세계의 패권을 쥔 주신급은 다르네요.’
천공에는 번개와 하늘의 신 제우스, 바다에는 지진과 물의 신 포세이돈.
그리고 이 저승에는 명계와 재물의 신 하데스.
하데스의 첫 만남은 티탄 신족과의 전쟁 때였다.
전쟁터에서 칠흑같은 검을 한 손에 돌리며 쏟아지는 피를 맞던 음침해보이는 그 남신이 이제는 저승을 다스리는 왕이라니.
강변에 걸터앉은 그녀는 턱을 괴고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명계를 관찰했다.
항상 지루하던 이 지하 세계에 왕국이 만들어지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