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0)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20화(20/82)
포세이돈의 이야기 – (1)
오늘도 몹시 바쁠 것이라고 생각되는 저승.. 이지만
하데스의 집무실은 의외로 한가했다.
인간들의 국가가 곳곳에 세워지고 이승이 안정되어 죽는 이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각종 괴물이나 사고, 난폭한 동물들에 의해 짧은 수명을 누리고 죽는 이들은 많았지만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다.
다만 나에게는 아직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는데..
“기간테스 놈들의 위치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예, 말씀하신 괴물들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인간 영웅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예언의 주인공인 기가스들이였다.
미리 놈들의 위치를 수색해 섬멸하거나 수를 줄여놓는 방법을 사용하려 했으나..
‘가이아 님이 그들의 세력이 강해질 때까지 은신처를 제공해 주시는 것인가?’
올림포스의 제우스도 모르고, 지하를 모조리 뒤져봐도 나오지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간테스가 신들에게 다시 도전하는 날은 먼 훗날일 가능성이 크다.
놈들이 가이아의 힘을 받고 세를 불리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가이아는 티폰조차 이긴 신들의 힘을 알고 있기 때문에 확실한 승산이 있을 때만 그들을 보내겠지.
‘그 이전까지 인간 영웅이 나와야 하는데.. 카드모스가 가능성이 높지만 그는 자기 누이를 찾아다닌다고 분주하니..’
고민에 빠진 내게 바깥의 영혼병이 들어와 손님이 왔다고 전했다.
저승의 입구에 있는 반은 물고기고 반은 신처럼 보이는 누군가가 자신이 포세이돈의사자(使者)라며 찾아왔다고.
나는 포세이돈이 저번에 말한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분명 바닷속 연회에서 할 말이 있다고 했었지.
무슨 말을 할지는 짐작이 되지만 가서 들어나 봐야겠다.
영혼 병사에게 손님을 데려오라 한 다음,
두루마기 양피지를 펼쳐 기가스들이 숨어있을 만한 이승의 위치를 살펴보았다.
어디에 숨어있든 걸리기만 해라.. 모조리 저승의 백성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흉험한 상상을 하며 양피지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곧 포세이돈의 사자가 집무실로 도착했다.
그는 문이 열리자마자 허리를 굽혀 내게 인사했다.
“저승의 주인이시여!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포세이돈 님의 유일한 적자(嫡子), 트리톤이라고 합니다!”
“그래, 내가 하데스다.”
트리톤(Triton)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신.
그의 생김새는 비늘로 온 몸이 덮여있었고 아가미와 돌고래의 꼬리처럼 보이는 것이 달려있었다.
겉보기에는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 같지만 바닷속이라는 출생지를 감안해야겠지.
그리고 적자라.. 포세이돈의 정실 부인 암피트리테의 자식이라는 소리네.
“포세이돈의 연회가 준비되었나? 그럼 안내해라.”
“옙! 아버님의 궁전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거 빠릿빠릿하네. 포세이돈이 좋아하겠어.
* * *
이곳은 지상의 한 해변.
저번에 암피트리테와 포세이돈의 결혼식에 초대받았을 때,
포세이돈의 권속인 거대한 고래가 나를 태워 바닷속에 있는 황금 궁전으로 안내해주었다.
이번에도 고래를 불러 바닷속으로 가는 것인가싶었지만..
트리톤이 허리춤에서 한 소라를 꺼내들더니 그대로 불었다.
뿌우우-
검은색과 흰색이 공존하는 소라에서 웅장한 소리가 퍼져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해마 두 마리가 바닷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제가 부리는 해마들입니다. 아버님의 가호도 깃들어 있어 바닷속에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신수(神獸)의 일종인가, 포세이돈이 힘을 부여했구나.”
누군가가 타기 쉽게 만들어놓은 것처럼 안장과 고삐가 있는 해마들.
오랜만에 다리에 닿는 바닷물의 감촉을 느끼면서 해마에 올라탔다.
“그럼 궁전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가자!”
트리톤의 말과 함께 해마들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스르륵-
그와 동시에 공기방울 같은 것이 내 주변에 생기면서 주변의 물을 밀어낸다.
바닷속에서도 몸에 물이 젖지 않게 해주고 숨을 쉴 수 있도록 배려하는 포세이돈의 권능.
해신의 결혼식에 초대받았을 때는 그냥 내 힘을 이용해 물을 밀어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서 편하군.
부그르르르-
바닷속으로 들어오자 푸른 세계 사이로 수많은 물고기들이 돌아다녔다.
짙푸른 고등어, 재롱을 부리는 돌고래, 바다거북들..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자 바닥에 널린 해초들이 빽빽하게 자라있었고 그 사이로 작은 물고기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포세이돈의 부하로 보이는 반인반어(半人半魚) 하나가 돌아다니며 해초를 채집하는 모습도 보였다.
나를 태운 해마가 조금 더 깊게 내려간다.
마치 물길이 자연스럽게 열리며 우리를 어디론가 안내하는 느낌.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바다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자 주변은 온통 어둠뿐.
그러나 신의 시력에는 모든 것이 보였다.
인간들이 심해라고 부르는 곳의 풍경은 나름 봐줄만했다.
그들은 바닷속을 두려워하며 늘 포세이돈에게 제물을 바치곤 하지만..
지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맑고 투명한 해파리들이 촉수로 장난을 치고 있었고,
인간과 물고기가 섞인 포세이돈의 부하들이 점점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 좀 봐, 아하하!”
“이 거북이 귀엽네. 데려다가 키울까?”
“어? 그런데 저기..!”
아름다운 님프, 바다의 요정 네레이스(Nereis)들 몇몇이 바다거북을 보며 깔깔대다가 이쪽을 바라보고 화들짝 놀란다.
곧 포세이돈의 가호인 공기방울과 내 인상착의를 파악한 듯 급하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트리톤이 씨익 웃으며 해마의 고삐를 잡지 않은 손을 흔들자 그들은 얼굴을 붉히며 멀어져갔다.
바닷속에서는 저게 잘생긴 외모인가. 지하 감성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부르르르르-
더욱 아래로 내려갔다.
아마 인간들이 심해라고 부르는 곳보다 더 깊숙한 곳으로.
이 정도 깊이의 수압이면 육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반신반인도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포세이돈의 자식들이라면 문제없겠지.
느긋하게 주변을 구경하는 내게 한 상어 인간이 다가왔다.
하반신만 가린 인간의 형체지만 발바닥 대신 물갈퀴에, 상어 지느러미, 날카로운 이빨.
그의 손에 쥔 작살은 깊은 수중에서도 적을 충분히 꿰뚫을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워 보였다.
대충 힘을 가늠해 보았을 때, 궁전 근처를 지키는 수비대장 정도쯤 되어보였다.
“저승의 군주를 뵙습니다. 저는 과분하게도 포세이돈 님의 은혜를 받은 안드리아노스라고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을 들어올리자 그가 트리톤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트리톤 님.”
“그래, 연회 준비는 다 끝난거 맞지?”
“예, 준비는 완벽합니다.”
그들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해마가 출발했다.
무언가의 힘에 끌려가듯, 바닷속 해류(海流)가 자연스럽게 우리를 저 밑바닥으로 데려간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드디어 포세이돈의 궁전이 보였다.
찬란하게 빛나는 바닷속의 황금 궁전.
분명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야 할 깊은 바닷속인데도 불구하고 그곳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웅장하게 세워진 궁전의 건물과 하얀 기둥들.
형형색색의 산호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고 궁전 전체에 반투명한 막이 쳐진 것이 보였다.
저 막은 내가 타고 있는 해마에게 부여된 포세이돈의 권능와 비슷한 종류인 것 같다.
“하데스! 나의 궁전에 잘 와주었네!”
마지막으로 궁전의 화려한 문 앞에 양 팔을 벌리는 푸른 머리의 해신, 포세이돈이 있었다.
* * *
포세이돈이 준비한 연회는 올림포스의 연회에 못지않았다.
뿌우우-
바닷속이라 해초 요리가 조금 많이 나왔고,
하반신이 물고기인 어인(魚人)이 소라를 이용해 감미로운 선율을 만들어냈다.
포세이돈의 아들이나 그의 휘하에 있는 하급신들의 인사를 적당히 받아주며 안면을 익혔다.
바닷속에도 새로운 신들이 많이 태어났구나. 트리톤은.. 상어들과 놀고 있군.
해초 요리와 암브로시아를 함께 씹으면서 바닷속 광대들의 재롱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말을 하는 문어가 조개껍데기 여러 개를 던져올려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리는 재주도 볼만하네..
아아아아-!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저기 먼 곳, 바다 깊숙한 어딘가에서 분노에 찬 여인의 소리가 들린다.
해류가 휘몰아치고 거센 파도를 불러오는 이 신력은?
“크흠.. 암피트리테가 또 저러는가 보군.”
“네 아내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어?”
“으흠. 내가 종종 다른 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사실을 알아채면 저런다네.”
포세이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바람핀 사실을 아내가 알아채서 이렇게 화를 내는 거다?
너랑 제우스랑 대체 다른 점이 뭐지..
헤라나 암피트리테나 고생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어쩐지 바다의 안주인이면서 연회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
넥타르를 담은 푸른 술잔을 손에 든 포세이돈이 턱수염을 매만지며 말한다.
“쓰읍.. 이번에는 또 어떻게 달래줘야 한다. 그래도 바다의 안주인이 바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바다의 안주인이 바뀔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바람을 피워서 화를 내는거 아니냐?”
놈도 제우스 못지않은 것 같다.
불륜의 신격은 대체 둘 중에서 누가 가지게 될까?
한숨을 쉬고 나도 넥타르를 입에 들이부었다.
진짜 먹는 장소에 따라서 넥타르가 달라지는 게 틀림없다니까.
어떻게 여기서는 넥타르 맛이 이토록 청량할 수가 있지?
전생의 사이..아? 사이다를 마신 느낌.
계속 여기서 연회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갈 시간.
푸른 술잔을 내려놓고 포세이돈과 눈을 마주쳤다.
“뭐.. 이미 짐작하고 있지만, 슬슬 나를 초대한 이유나 말해라.”
“알면서 뭘 물어보는 거지? 네가 생각한 이유가 맞다. 하데스.”
놈이 씩 웃으며 야심찬 미소를 띤다.
“당연히 힘을 합쳐 제우스를 몰아내자는 이야기밖에 없지 않겠어?”
내 그럴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