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1)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21화(21/82)
포세이돈의 이야기 – (2)
“당연히 힘을 합쳐 제우스를 몰아내자는 이야기밖에 없지 않겠어?”
놈의 과감한 발언에도 내가 놀라지 않자 포세이돈이 술잔을 다시 집어든다.
“신들의 왕 자리가 그렇게 탐나는 거냐?”
“오.. 그게 아니지.”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입을 여는 해신.
포세이돈이 손을 올리자 그의 권속들이 황급히 우리 주변에서 멀어진다.
“제우스는 이미 우리 위에 설 자격이 없어. 티폰의 일을 생각해보면…”
“어쨌든 승리했을 텐데?”
“하지만 한번 패하고 힘줄이 잘려 추하게 동굴로 처박혔지. 무려 스퀴테를 들고 싸웠어도.”
포세이돈은 항상 야심이 넘쳤다.
세계의 지배권을 두고 제비를 뽑았을 때, 분명 모두가 기피하는 저승은 내가 뽑았지만,
그는 늘 자신이 천공의 지배권을 가지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지.
하지만 벌써부터 반란을 일으킬 것 같지는 않았는데.
내가 티폰과의 싸움에서 제우스를 도우면서 그에게 실망했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군.
“하늘을 다스리는 신들의 왕이라는 자가 패한다는 건 말도 안 돼. 하데스, 너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하던 제우스는 언젠가 닥쳐올 기가스들과의 싸움을 이길 수 없어.”
헤르메스를 통해 내게 도움을 요청한 일을 말하는 거겠지.
그런데 고작 한번 패한 걸로 제우스를 몰아내는 건 내키지 않다만..
“고작 제비뽑기로 지배권을 정하니까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거야. 그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도 티폰에게 쩔쩔매는 모습은 보기 좀 그렇더군.”
“그래서 나를 끌어들이겠다?”
“물론, 너는 별 관심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제우스만 몰아내면 아주 흡족한 보상을 약속하지.”
아니, 보상 같은 건 필요 없는데 말이지.
애초에 내가 원하는 것은 별로 없다.
“내가 도우면 승산은 있으리라 생각해? 아니다. 질문을 잘못했군..”
“하하하! 당연하지! 저승만 도와준다면 승산은 충분해.”
제우스는 엄청나게 강하다.
신들의 왕, 벼락의 주인, 천공을 다스리는 주신.
모든 신이 힘을 합쳐도 제우스 하나를 이기지 못한다지만..
그건 나와 포세이돈을 제외했을 때의 일.
3주신 중 둘이 합공하면 어느 정도 승산이 있다. 그런데 내가 왜 반란 따위에 동참해야 하지?
너보다는 제우스가 더 나을텐데.
“됐어, 나는 그 반란, 반대하지.”
“만약 하늘의 지배권을 제외하고는 무슨 일이든지 들어준다고 해도?”
“뭘 준다고 해도 나는 지금 이대로가 낫다고 본다만.”
포세이돈이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고심한다.
제우스와 마찬가지로 권력 따위에 넘어가지 않는 내가 이해되지 않는 모양.
“하지만.. 운이 나빠서 지하 밑바닥에 박히게 된 것은..”
“내가 지하로 안 갔으면 너희 둘 중 저승으로 간 쪽이 죽어라 싸움을 걸었겠지.”
“허어.. 하데스 네가 이럴 줄은 몰랐는데..”
잠시 생각하던 포세이돈이 팔짱을 낀다.
“그럼, 제우스가 왕으로서 자격이 부족하다는 근거를 보여주면 되나? 헤라!”
“뭐라고..?!”
포세이돈이 입을 열자마자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던 장소의 뒤편 문이 열렸다.
거기에서 나온 것은 오싹한 미모를 지닌 신들의 여왕, 헤라.
그녀가 싸늘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하데스, 나는 제우스의 만행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요.”
* * *
문을 열고 헤라가 걸어나왔을 때는 조금 놀랐다.
어쩐지 포세이돈이 괜히 반란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였구나.
“아니, 네가 여기로 온 사실을 제우스가 모를리가…”
“제우스는 아내이자 가정의 여신인 내 말을 무시하고 항상 불륜을 저지르죠. 지금도 다른 여신이랑 신나게 놀아나고 있어요.”
그런데 그냥 편하게 말하지, 너한테 굳이 존대를 듣지 않아도 되는데.
네가 신들의 여왕이라는 직위를 가지기 전처럼..
“지금까지 건드린 여신만 수십이 넘어가요. 내가 파악하지 못한 여신들만 해도..”
헤라가 잔뜩 화난 얼굴로 제우스 욕을 한다.
아니, 물론 너는 화날 만도 하겠지만.
“후우.. 어떻게 외모가 자기 마음에만 들면 여신이고 인간들이고 가리지 않고 하룻밤을 보내는 건지! 아주 내 속이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 불길마냥 타들어…”
어어 그래.. 어..
너는 아무래도 반란이 맞는 것도 같다.
이건 말로 해도 듣지 않는 제우스 잘못이 아닐까?
내가 벙찐 얼굴을 하자 포세이돈에게서 자신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봤지? 신들의 왕이라는 자가 가정의 여신을 아내로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네 부인이 바닷속에서 화내는 소리가 안 들리나?”
“…물론 나는 제우스와 달리 하늘의 주인이 된다면 암피트리테만을 바라볼 자신이 있어.”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해라.
그걸 대체 누가 믿냐?
“헤라뿐만 아니라 아폴론도 우리의 계획에 동참할거다. 이 정도면은 네가 없어도 승산이 있겠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하데스, 네가 도와주지 않아도 신들의 왕은 나 포세이돈으로 바뀔 예정인데. 어차피 승리할 쪽에 붙는 것이 뭐가 어때서 그런가?”
이제는 그런 논리로 날 설득하겠다?
아폴론에 헤라, 포세이돈이여도 패배할 것 같은데..
그리고 제우스는 왕권의 신이기도 하다.
너나 제우스나 거기서 거기지만 그나마 제우스가 조금 더 나을지도..
아폴론은 제우스의 아들인데 함께 반기를 들기로 했다니, 자신의 어머니 레토를 놔두고 바람피는 그에게 불만을 가진 걸까?
“제우스는 강해, 너희가 함께해도 방법이 없을걸? 몇 번이고 말하지만 나는 반란 따위는 반대한다.”
“하아… 티폰과 싸웠을 때를 보면 겁쟁이가 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제우스를 몰아내는데 힘을 보태준다면 내 딸, 청춘의 여신인 헤베를 드리죠. 이래도 모자란가요?”
이제는 자기 딸을 준다고 하네..
네 딸이면 나한테는 조카다. 조카.
“내게도 아름다운 저승의 여신들이 있어서.”
“티탄 신족인 팔라스의 끈질긴 구혼을 거절한 스틱스를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항상 어벙한 얼굴로 다니는 레테를 말하는 건가요. 누구든 제 딸보다 아름답지는..”
“거기까지 하지. 나는 이만 가보겠다.”
조금 짜증이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우스에 대한 헤라의 분노는 정당하지만 그것이 내가 반란에 찬동할 요소는 아니다.
포세이돈과 헤라, 아폴론이 모인다고 제우스를 이길 것 같지도 않고, 포세이돈이 제우스보다 신들의 왕 역할을 더욱 잘 수행할 것 같지도 않다.
결론적으로 어차피 패배할 쪽에 끼고 싶지는 않다.
저승의 소중한 동료들을 제 딸과 비교하며 무시하는 듯한 헤라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고.
침음을 흘리는 포세이돈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빌어먹을! 젠장. 일단 알겠어, 하지만 나중에라도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혹시라도 제우스께 알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죠?”
“제우스에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하! 쓸데없는 생각은 그쯤에서 접는 것이 너희에게도 좋겠지…”
헤라의 덧붙임을 마지막으로 나는 바다를 나와 저승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반역해봤자 번개나 얻어맞고 대판 깨질것이다.
포세이돈은 제우스도 계속 경계하고 있고..
내가 지금 제우스한테 알려봤자 포세이돈은 모르겠지만 자기 부인과 아들의 말을 더 신뢰할 확률이 높아.
아직 반란이 일어나지도 않았으니.. 확실한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은 모함이라고 변명한다면 이쪽만 곤란한 입장이 된다.
제우스는 내가 자기 자리에 관심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칫하면 부인과 자신을 이간질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오늘 일을 알리는 것을 보류.
그리고 전생의 내가 기억하기로는, 신들의 왕은 늘 제우스였지.
단 한번도 포세이돈으로 바뀐 적이 없었다.
* * *
둘을 비웃고 떠나는 하데스가 문을 나서자 헤라와 포세이돈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으음.. 하데스가 도와주었다면 필승인데.”
“그에게 괜히 말한 것은 아닐까요? 혹여나 제우스에게 알린다면 위험한데요.”
“그때는 너와 아폴론이 잘 변명하면 될 일, 올림포스와 저승의 거리는 멀어. 그리고..”
포세이돈은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었어. 아테나가 하데스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자신도 동참하겠다고 했으니..”
“지혜의 여신이 도와준다면 한결 수월했을 텐데..”
그들은 아테나에게도 함께 할 것을 요구했으나,
지혜의 여신에게 들려온 대답은 승산이 없으니 거절하겠다는 소리뿐이였다.
“아테나, 제우스는 네가 두려워 너를 임신했던 메티스를 먹어버렸다. 벌써 잊은 것이냐?”
“….저도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버님에게서 승리하려면 최소한 3주신 중 두 분이 함께해야 합니다.”
“하데스를 끌여들여라?”
“하지만 하데스 큰아버지는 권력 다툼 따위에는 관심이 없으니, 제가 동참해도 결과는 뻔합니다.”
그래도 헤라의 끈질긴 설득에 하데스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함께하겠다 했으나..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다.
“제우스 그 놈 따위는 나와 아폴론이 합공하면 충분해!”
“어쩔 수 없네요. 제우스가 방심할 때 기습할 수밖에..”
* * *
포세이돈의 초대가 있고 며칠 후, 나는 저승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언제나와 같은 업무량에 잔뜩 피곤한 기색으로 양피지를 뒤적거리던 중…
“하데스 님! 저승의 입구에 자신을 테티스라고 밝힌 여신이 찾아왔습니다!”
“테티스 여신이? 들여보내라.”
테티스(Thetis).
포세이돈의 부인인 암피트리테와 친자매지간이며 바다의 여신. 그녀가 낳은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하는 영웅이 된다는 프로메테우스의 예언이 있었던 건 기억나는데..
덕분에 제우스나 포세이돈의 구혼을 뿌리칠 수 있었던 그녀가 왜 저승까지 방문했을까.
나와 그녀는 별로 접점이 없는데..
끼익-
푸른 물결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여신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굉장히 다급해 보였고 내게 무언가 부탁할 일이 있어보였다.
“허억… 하데스! 지금 올림포스에서 제우스에게 반기를 든 신들이 있어요!”
“혹시 포세이돈도 거기 끼어 있습니까.”
아주 그냥 내 예상을 벗어나질 않는군.
그래봤자 실패하겠지.
“어떻게 아셨나요..? 제우스가 잠든 틈을 타 헤라 여신과 아폴론, 포세이돈이 기습해서 번개를 빼앗아 버리고 제압했어요.”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군.
그래서 저승으로 도와달라고 온 거구나.
잠든 사이에 기습해서 번개를 빼앗고 제압하다니,
제우스가 포세이돈은 경계했지만 헤라나 아폴론의 배신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나 보다.
포세이돈만 제외하면 권력에 큰 위협이 되는 신은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차라리 제우스에게 의심을 받더라도 헤라를 경계하라고 할 걸 그랬나?
아니, 아니야. 그럼 오히려 나를 경계했겠지.
자기 부인과 아들을 모함하는 형제라고 생각했을 수도..
“헤카톤케이레스 삼형제 중 하나만 잠시 불러주세요! 제우스를 구해야 해요!”
다급하게 도와달라고 외치는 테티스 여신.
하지만 지금 타르타로스는 크로노스가 종종 난동을 부리고 티폰의 머리까지 들어간 상황.
100개의 손을 가진 헤카톤케이레스 삼형제 중 하나를 데려간다면 반란이 진압되겠지만..
타르타로스가 안정되지 않은 이런 상황에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헤카톤케이레스 3형제는 못 불러줍니다. 최근 타르타로스에서 크로노스가 종종 난동을 부려서요.”
“그런.. 하지만 올림포스에서 일어난 반란은..”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테티스 여신이 망연자실한 표정이지만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포세이돈보다는 제우스가 신들의 왕으로서 어울린다.
둘 다 권위적에, 힘자랑이나 일삼고, 아내는 놔두고 강간에 바람이나 피우러 다니는 몹쓸 신들이지만,
“형님은 이미 진정으로 왕이기 때문에 신들의 왕 자리가 탐나지 않는 것이였군”
“이 자리를 빌어 티폰과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신들을 치하하는 자리를 잠시 가지도록 하지”
적어도 제우스는 왕으로서 자각은 있는 모양이니까.
나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준 바이던트를 소환하며 저승의 왕좌 옆에 놓인 허름한 투구를 잡았다.
반란을 일으킨 상대는 3주신 중 하나인 포세이돈,
나 역시 퀴네에를 쓰고 전력을 다해야한다.
테티스 여신이 내 의도를 알아챈 듯 작게 감탄사를 내뱉는다.
“내가 직접 올림포스로 올라갈 테니.”
또 귀찮은 일거리가 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