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2)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22화(22/82)
반란의 이야기
올림포스 구름 위의 신궁(神宮).
신들을 경외하는 필멸자들이 우러러보는 신들의 궁전.
티폰에 의해 한차례 반파되었던 이곳은 다시 한번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 강력한 티폰과 버금가는 외부의 적 때문일까?
크로노스나 기가스, 티탄 신족들의 침입 때문일까?
“젠장.. 이게 무슨 짓입니까! 큰아버지!”
모두 아니였다.
“보면 모르겠느냐, 조카야? 제우스는 이제 끝이라는 것이지.”
“아폴론 오라버니! 왜 그쪽에 서 있는 건데요?”
“내 사랑하는 동생아. 우리의 어머니나 헤라 님이 아닌 인간 여성들이나 쫒아다니는 아버님은 더 이상..”
바로 신들의 왕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내전 때문이였다.
제우스가 잠든 사이 그의 벼락은 숨겨졌고 근육질의 몸은 질긴 가죽끈으로 묶여버렸다.
눈을 뜬 제우스가 당황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포세이돈과 아폴론, 헤라는 묶인 제우스를 올림포스의 한 건물 안에 감금시키고 신들을 불러모았다.
이제부터 제우스를 추방하고 새로운 신들의 왕을 선포하기 위해서.
“웃기지 마십시오! 저는 반대합니다!”
“아레스, 너 하나가 반대한다고 달라질 상황이 아니다.”
“어머니!”
“아니 아폴론 형님, 이러지 마시고 천천히 잘 생각해보십쇼.”
“헤르메스, 나는 이미 충분히 고민한 끝에 행동한 것이다.”
“형님은 이성(理性)의 신이 아니십니까. 정말로 이게..”
“꼭 우리들끼리 이래야겠어? 포세이돈? 우린 아직도 기가스들의 위험에..”
“천공의 신격을 가지고도 티폰에게 패배한 제우스 따위는 내 위에 설 자격이 없다. 헤스티아.”
위대한 올림포스의 신들은 둘로 갈라졌다.
포세이돈을 새로운 왕으로 옹립하려는 쪽과 어떻게든 건물에 갇힌 제우스를 탈환하려는 쪽으로.
“다들 뭐하는 거야! 싸워서라도 아버지를 구출해야지!”
전쟁의 신, 아레스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흥분한다.
다른 신들 역시 긴장하며 신력을 끌어올리고 무기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테나의 창이 번뜩이고 헤르메스가 결심한 듯 카두케우스에 힘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흠. 그거 좋군, 말로만 떠들지 말고 힘으로 의지를 관철해보거라. 이 트리아이나로 상대해주마.”
“크윽..”
“큰아버지! 정말 이러깁니까!”
“젠장할, 우리가 포세이돈 님을 어떻게 이기냐..”
포세이돈이 심드렁한 얼굴로 삼지창을 슬쩍 내밀자 모두가 주춤한다.
제우스와 포세이돈, 하데스.
이 3주신은 다른 신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냐면.. 같은 3주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신들과 싸워도 이길 수 있을 만큼.
“으아아아!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입니다!!”
분을 삼키는 제우스 측의 신들을 둘러보던 아레스가 고함을 내지른다.
그의 몸에서 강렬한 붉은 신력이 일어나고 포세이돈에게 칼을 빼들고 돌진하지만..
탱강! 콰아앙!
“치잇..!”
“새로운 올림포스의 왕에게 건방지구나, 조카야.”
포세이돈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트리아이나를 휘두른다.
푸른 신력이 마치 파도처럼 뿌려지며 도전자의 몸을 그대로 강타.
아레스의 보검이 날카로운 삼지창에게 단번에 부러지며 명확한 격차를 보였다.
결국 전쟁의 신은 짙은 패배의 냄새에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저 자리의 주인이 되는 걸 반대하는 신이 더 있느냐!”
포세이돈이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트리아이나를 들어 황금 옥좌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곳은 12개의 옥좌 중, 평소에 제우스가 앉던 상석(上席).
올림포스의 왕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였다.
이에 제우스 측의 신들이 참담한 침묵에 빠지고 올림포스에는 숨막히는 정적이 맴돌았다.
조용해진 신들을 본 포세이돈이 흡족한 표정으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선언한다.
“그럼 이제 제우스를 추방..”
“나는 반대한다.”
* * *
“나는 반대한다.”
“아니..?”
“무슨,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에게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올림포스의 모든 신들이 동요한다.
그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은 텅 빈 공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기어코 나를 방해하는 건가..”
하지만 기가스나 티탄 신족과의 전쟁에 참전했던 노련한 신들은 목소리의 정체를 알아챘다.
신의 감각에서 완벽하게 벗어나는 이 은신은 단 한명의 신에게만 허락된..
“이것은 퀴네에..! 저승의 주인이시여!”
“내가 섭섭하지 않게 대우해 준다고 했거늘..”
“하데스 큰아버지!”
낡고 오래된 투구와 이지창, 바이던트를 든 흑발흑안의 남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떠한 치장도 하지 않아 초라해 보이는 남신은 매우 음울한 눈과 피곤한 기색을 띠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를 무시할 수 없었다.
“하데스! 지금이라도 이쪽으로 와라, 천공을 제외한 바다의 지배권도 넘길 테니까!”
“그딴 건 필요 없으니 반란이나 그만 둬라.”
그자는 포세이돈과 동등한 3주신, 하데스였기 때문에.
* * *
겨우 늦지 않게 달려왔다.
테티스의 말을 듣고 급하게 올림포스로 올라와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내가 개입하기 전에 제우스가 쫒겨날 뻔했군.
제우스는 어디 있는거지?
“하데스 님!”
“….큰아버지! 포세이돈 큰아버지가 미쳤습니다!”
“휴우.. 저승에서 달려온 거야?”
드디어 살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제우스 측의 신들이 보인다.
아레스, 너는 몸이 왜 먼지투성이에 보검도 박살나 있고… 포세이돈한테 덤볐다가 한방 얻어맞았구나.
반면 포세이돈 측에 있는 헤라나 아폴론은 낭패라는 표정이다.
왜, 내가 이렇게 빨리 개입하지 못할 줄 알았냐?
“으음..”
“포세이돈, 어디 나랑도 싸워볼거냐?”
내가 그에게 바이던트를 겨누자 포세이돈이 침음을 흘리는 것이 보인다.
나만 쓰러뜨리면 신들의 왕 자리는 코앞.
하지만 포세이돈은 그렇게까지 멍청한 신이 아니야.
바다도, 저승도 아닌 곳에서의 나와 포세이돈의 싸움은 지지부진하겠지.
내가 퀴네에로 조금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역시 3주신이니까.
하지만 헤라와 아폴론으로는 이 많은 신들을 이길 수 없다.
세력전에서 명백하게 포세이돈이 열세.
내가 포세이돈을 맡는 동안, 다른 신들이 헤라와 아폴론을 제압하고 제우스를 풀어주면 반란은 끝이다.
“보아하니 제우스는 저 뒤의 건물에 갇힌 모양이네.”
“어떻게 저승에서 여기까지..”
“테티스가 알려줘서.”
헤라, 내가 올림포스에 오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나?
“아니.. 하데스 큰아버지.”
“뭐.”
아폴론, 잘린 티폰의 머리가 타르타로스에 들어가기 전에 짓던 표정은 저리 치워라.
폭풍처럼 몰아치는 파도와도 같던 포세이돈의 기세가 서서히 줄어든다.
그의 트리아이나가 점차 땅바닥으로 내려간다.
“젠장.. 그래. 물러나도록 하지.”
“포세이돈!”
“그럼 뭐 어쩌겠나 헤라. 하데스가 끼어들기 전에 제우스를 추방하지 못했으니 우리의 패배다.”
마치 넥타르를 마시다가 돌을 씹은 듯한 표정인 포세이돈이 물러난다.
정황상 제우스가 갇힌 곳은 저 건물인가?
안으로 들어가보니 역시 신력으로 강화된 질긴 가죽끈에 꽁꽁 묶인 제우스가 보였다.
놈이 나를 보더니 얼굴에 화색을 띤다.
“하데스 형님, 이 제우스를 구하러 와준 것인가?”
“내가 아주 너 때문에 피곤해 죽겠다.”
“아니, 내가 잠든 사이에 벌어진 기습만 아니였어도..”
가죽끈은 바이던트에 잘려나갔고 제우스는 다시 번개를 되찾았다.
이렇게 올림포스의 반란은 진압되었다.
* * *
“항상 야심에 넘치던 포세이돈은 그렇다 쳐도 어떻게 헤라, 당신이 그럴 수 있소! 아폴론, 너도 마찬가지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시끄럽다! 너는 1년간 하계로 내려가 인간들의 왕 밑에서 노예로 일해라! 포세이돈도!”
아폴론과 포세이돈이 잔뜩 어두워진 표정으로 올림포스에서 물러갔다.
그들이 제대로 노예 생활을 하는지 제우스의 독수리가 감시하리라.
“그리고… 헤라, 그대는 1년 동안 발목에는 모루를, 손목에는 수갑을 차고 묶여있을 것이오!”
“….당신 뜻대로 하시죠.”
자신을 향한 반란이 자칫 성공할 뻔했다는 것.
이에 제우스가 분노하자 하늘에는 천둥 소리가 계속 울려퍼지고 있었다.
인간들은 또 제우스께서 우리에게 노하셨다.. 라면서 두려움에 떨겠지.
실상은 그냥 자신의 권위가 위협당한 강간의 신이 역정을 부리는 거다만.
한참을 씩씩대며 분노를 가라앉히던 제우스가 이쪽을 바라본다.
“후유.. 그리고 하데스 형님께는 다시 감사를 표해야겠군.”
“아니, 네가 바람만 덜 피웠어도 헤라가 저러지는 않았을 거 아니냐.”
“그거랑은 별개로 내 자리에 도전하는 이들은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자업자득이 아닌가?
그나마 제우스가 포세이돈보다는 신들의 왕으로서 어울리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은..
“아들까지 반역할 정도면 평소 네 행실에 문제가 있는지 되돌아보는 것이..”
“으흠! 설마하니 아폴론 그 놈까지 그럴 줄은..”
제우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다른 신들이 이곳으로 서서히 모여든다.
반란으로 인해 망가진 건물의 뒤처리나 수습이 끝난 모양.
“하데스 큰아버지! 이번에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네가 올림포스에 나타나 제우스를 도울 줄은 몰랐다.”
“저승의 주인께서 돕지 않으셨다면 자칫 위험할 뻔했습니다.”
마치 어미 닭을 바라보는 병아리들처럼 초롱초롱한 눈길을 보내는 수많은 신들.
이제야 저승 혐오에서 벗어났구나, 깨우친 신들이여.
그럼 지금이야말로 헤파이스토스의 의뢰를 수행할 때,
나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바이던트를 소환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앗.. 저건 아까 퀴네에를 벗고 나타나실 때 들고 계셨던..”
“처음 보는 무기지만 범상치 않은 느낌이 드는군요.”
“하데스, 그건 퀴클롭스 3형제가 새로 만들어준 건가?”
역시 내 강력한 무기의 출처를 궁금해하는군.
그렇다면 모두에게 알려주도록 하지.
아쉽게도 헤파이스토스는 이 자리에 없지만..
“이건 퀴클롭스 3형제를 아득히 뛰어넘는 세계 최고의 대장장이이자 올림포스의 12주신, 헤파이스토스가 내게 만들어준 바이던트(bident)라고 한다. 참고로 멀리 있어도 언제든지 내 손으로 소환되는 아주 좋은 기능을 가지고 있지, 단번에 박살난 아레스의 보검과는 다르게 포세이돈의 트리아이나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으며 내가 자랑하는 투명 투구인 퀴네에랑도 여러 번 부딪혀 본 결과….”
제우스를 포함해 모두가 멍한 얼굴로 내 입만을 바라보는 것을 보아하니…!
역시 내 바이던트가 많이 부러운가 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