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5)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25화(25/82)
플루토의 신전 이야기 – (2)
“꺄아아!.. 하.. 하아..”
하데스 신전의 사제, 파로나가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식이 주입되어 생기는 머리의 통증, 몸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기운.
그녀는 옆에 놓인 물을 급하게 들이키고 주입받은 기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그의 주, 하데스께서 그녀에게 바라는 것은 신전의 부흥과 영향력의 확장.
최종적으로는 기가스.. 라는 괴물들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원하셨다.
잠시 기가스라는 괴물의 외형을 떠올려본 그녀는 끔찍한 외형에 소름끼쳐했다.
뱀의 하반신과 사람의 상반신에 큰 덩치,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 괴물.
“으…”
그리고 그녀가 하데스께 받은 축복은 놀랍게도 꽤 많았다.
마치 델포이 신전에 있는 아폴론의 무녀가 황홀경 속에서 예언을 하고,
여사냥꾼들이 처녀성을 지킨다는 맹세를 통해 아르테미스의 사냥의 가호를 받는 것처럼.
그녀 역시도 모시는 신의 힘을 일부나마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가만히 있어도 재물운이 따르는 부의 축복, 일부 영혼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
거기에 손을 슬쩍 들어올리자 느껴지는 검고 싸늘한 기운.
‘안 그래도 헤카테 여신님의 사제들이 부러웠긴 했지만..’
마법의 여신, 헤카테(Hecate).
인간이 마법을 부리려면 헤카테 여신의 사제나 신도가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마법에 대한 지식을 전수받고 신비로운 힘을 다룰 수 있는 것.
3주신이라는 높은 신격을 모시고 있음에도 여태까지 아무 능력도 주어지지 않았는데.
이승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이시던 그녀의 신이 이렇게까지 해주실 정도면 기가스라는 괴물이 많이 위험한 걸까?
‘하데스님.. 솔직히 조금 무서운데요..’
마지막으로 그녀를 저승의 군주, 하데스의 대사제로 임명한다는 것까지.
‘딱 봐도 저에게는 너무 과분한 책무가 주어진 거 같은데요…’
울상이 된 파로나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그래도 하데스의 사제로서 나름 신앙심은 있는 그녀였기에 결의를 다지던 중..
한 손님이 찾아왔다.
왕가에서 나온 듯 화려하고도 깔끔한 복장을 한 젊은 시종.
“하데… 아니, 플루토 신의 사제님이 맞으십니까? 테베의 정당한 군주이신 폴리도로스 왕께서 사제님을 부르십니다.”
* * *
테베를 건국한 위대한 대영웅, 카드모스의 후손이자 현 테베의 군주.
폴리도로스(Polydoros) 왕은 걸어오는 하데스의 사제를 보고 머리를 감싸쥐었다.
곧 하데스의 사제가 왕에게 예를 취하자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꿈에서 자신을 모르페우스 신이라고 하시는 분이 말씀하시길, 내가플루토의 신전을 부흥시키면 나라가 번성할 것이라는데..”
이것은 분명 신탁(神託)이다.
신탁이란 신적인 존재가 자신의 의지나 경고를 인간에게 전하거나,
특별한 인간의 운명을 예언해주거나 때로는 인간이 신에게 정보를 묻는 것.
“그리고 플루토 신의 사제와 이야기를 나눠보라고도 하셨지.”
안 그래도 자신 이전에 테베의 왕이였던 펜테우스의 죽음에 올림포스 신이 관련되어 있는데..
이번에도 신이 테베에 간섭하는 것인가?
펜테우스는 올림포스에 새로 탄생한 12신, 디오니소스(Dionysos)의 신자들을 핍박한 대가로 죽음을 맞이했다.
디오니소스 신은 술과 광기의 신이였지만, 하데스 신은..
“그래서, 내가 신탁에 따르지 않으면 플루토께서 어떠한 처벌을 내린다고 하셨소? 테베의 백성들을 모조리 저승으로 데려가신다던가?”
폴리도로스 왕이 약간의 두려움과 불쾌감을 느끼는 눈초리로 눈앞의 사제를 바라보았다.
검은 옷을 입은 아름다운 사제의 입에서 튀어나올 말이 이토록 두렵게 느껴진 적은 없었으리라.
그 질문에 사제는 당황한 듯 보이면서도 차분하게 대답했다.
“주 하데스께서는.. 그저 이득만을 말씀하셨을 뿐, 어떠한 처벌도 내리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떠한 처벌도 하지 않으신다고?”
신들은 모두 변덕스럽고,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하다.
적어도 폴리도로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누구라도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다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였다.
자신 이전의 왕이였던 펜테우스가 저지른 실수.
예전에 테베를 어지럽히던 디오니소스 신의 신자들에게 작은 제제를 가했다고..
“으아아악! 어머니 접니다! 펜테우스라고요!”
“수퇘지! 수퇘지다! 죽여어!!!”
“디오니소스 님의 축제를 방해하는 수퇘지다! 죽여버려어!!!”
“아아아아악!!!”
한 나라의 왕을, 그것도 광기에 빠진 자신의 어머니의 손으로 죽게 만들다니.
정말이지 끔찍한 사태였으며, 그 이후부터 모두가 신의 기휘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했다.
하데스 신의 신전에는 절대로 도둑이 들지 않는다던가,
눈앞의 아름다운 여사제에게 그 누구도 추파를 던지지 않는다던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폴리도로스 왕은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보게, 어차피 나는 플루토 신의 뜻을 따를 생각이니까.”
“그것이.. 정말입니다. 모시는 신도들이 늘어날수록 테베에 부유함의 축복을 내려주신다고만..”
저승을 다스리시는 신께서 포도주의 신보다 자비로우시다고?
어차피 죽으면 모두 자신의 백성이 되니까 이승에서는 자비를 베푸시는 건가?
아니면 설마, 이승에 간섭하실 때에는 부의 신으로서만 활동하시는 것이 아닐까.
하데스 신은 지상 아래에 있는 모든 보물의 소유자이시기도 하니..
어찌되었든 신의 뜻은 따라야 하고 테베에 불이익이 가해질 확률은 낮다.
비록 플루토 신의 자비에 맡겨야 하지만… 신의 비호를 일부 받을지도 모르지.
빠르게 계산을 마친 폴리도로스 왕이 찬동의 뜻을 보였다.
“뭐, 일단 알겠네. 그럼 내가 도와줄 일이 있나?”
“일단 왕실의 이름으로..”
* * *
춥고 어둡고 깜깜하고 두려운 지하 세계.
나는 이곳에서 테베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플루토 신의 신상에 기도한다면 부의 축복이 따른다며?.”
“그거 왕실에서 정식으로 공표한 내용이야, 폐하께서 신탁을 받으셨다는 이야기가 파다하거든.”
“허.. 플루토 신께서 이제 우리 테베를 수호해주시는 건가?”
“그 정도는 아닌 모양이야. 다만 신도들에게 부를 가져다주신다고..”
테베에 하나뿐인 신전 안,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내 신상에 힘을 불어넣었다.
신도들이 저곳에 진심어린 기도를 한다면 미약한 부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신전에 기도하고 나오는데 땅바닥에서 드라크마를 주웠어.”
“플루토 신의 다른 이름은 많이 두렵긴 하지만..”
“그곳에 간다고 아레스 신께서 노하시지는 않겠지?”
“무례한 기도를 올렸다고 저승으로 끌려가지는 않으려나?”
테베 외곽에 덩그러니 세워진 내 신전에는 점차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로 부의 축복을 받고 싶은 상인들만이 다녀갔으나,
왕실의 공표와 입소문이 퍼짐에 따라 호기심을 가진 평범한 시민들의 방문도 증가하는 추세.
이승에서 간혹 올라오던 제물의 빈도가 늘어나고,
부의 축복의 효험을 느낀 신도들이 또 다른 시민들을 끌어들인다.
“플루토(Pluto)시여, 제발 아테네로 가는 상행이 잘 풀리도록 해주십시오.”
“제가 이번에 광산으로 들어가는데 혹시 금맥이 매장된 곳이 어디인지..”
대부분 재물 때문이였다.
당연하게도 내가 노린 것이였지만.
비록 하데스라는 이름은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플루토라는 별칭은 모두가 선호하는 부의 신이니까.
인간들이 꺼려한다면 이승에서는 다른 이름의 측면으로 활동하면 되는 일.
“지하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데스 신이시여.. 작년에 돌아가신 저희 부모님께서 잘 지내시는지 그것이..”
“제 친구는 그리 선한 이는 아니였지만 부디 자비를 바라나이다..”
가끔씩은 부의 신이 아닌, 저승의 군주를 찾는 신도들도 있었다.
보통 죽음에 임박했거나 친한 이가 타나토스의 방문을 받았던 인간들.
그들의 기도는 플루토를 연호하는 이들보다 더욱 간절했다.
때때로 정말 간절한 이들의 기도를 듣고 모르페우스을 시켜 종종 죽은 이들을 꿈에서 만나게 해주었다.
물론 모르페우스나 휘프노스의 엄격한 감시 하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였고, 인간들은 꿈에서 깨어나면 대부분의 내용을 잊어먹었지만..
“제발..! 제발 한번만 더 어머니를 뵐 수 있게 해주십시오!”
“크흡.. 아버지의 유언을 꿈에서 들을 줄이야.. 그래도 그곳에서는 잘 지내시니까 정말 다행이네.”
다시금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 내 신전으로 찾아오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렇게 슬프게 기도해도 인당 한번씩이다.. 마음 약해지니까 그러지 말도록.
이때부터 인간들에게서 기이한 소문이 퍼져나갔다.
죽은 가족을 단 한번이라도 다시 보고 싶다면 플루토의 신전으로 가보라는 소문이…
* * *
지하 세계, 하데스의 집무실.
나는 신전의 세가 날이 갈수록 커지는 것을 보고 흡족하게 있었다.
이대로 신전의 영향력이 커진다면 기간테스들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도 있겠고..
여차하면 내가 사제의 몸에 강림할 수도 있겠지.
테베 근처의 반인반사 괴물에게 지인이 죽었다고 기도하는 이가 생긴다면,
그것이 곧 기가스들의 흔적일 것이다.
사제인 파로나도 잘 해주고 있으니 이제 이승에 뿌려놓은 정보망에 기가스가 걸리기만..
“하데스.”
고개를 돌려 확인해보니 긴 은발의 레테 여신이였다.
그녀가 입을 삐쭉 내밀고 다가오고 있었다. 또 뭐가 마음에 안 드시는 거지..!
“하데스, 요즘 테베에 있는 당신의 신전을 키우고 있다면서요?”
“그렇습니다만..”
허공을 바라보듯 멍하니 풀린 레테 여신의 눈동자에 실망이 스쳐지나간다.
설마, 자신의 신전이 없는 것에 슬퍼하는 것일까?
“그런데 왜 제 신상은 옆에 없나요..?”
부부신들은 때로 한 신전에서 모셔지기도 한다지만..
저희가 결혼하지는 않았잖습니까?
레테 여신이 입을 살짝 벌리고 내 얼굴을 쳐다본다.
고운 입술에서 작게 새어나오는 말은..
“저도.. 옆자리에 있고 싶은데..”
비에 젖은 소동물처럼 바라보시면.. 제 심장이 좋지 않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