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7)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27화(27/82)
파에톤의 이야기 – (1)
이곳은 저승, 피할 수 없는 죽음을 겪게 되는 필멸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장소.
세계의 일부를 지배하는 위대한 3주신 하데스가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음..?”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정말 온갖 일이 일어난다.
인간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일들이 발생하지만..
화아아아악!
“이게 무슨..!”
그 누구도 저승이 환하게 밝혀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데스! 하데스! 지금 저승 전체에 빛이 들어왔어요!”
“저도 지금 보고 있습니다!”
레테 여신이 황급히 내 침소로 뛰쳐들어온다.
나는 급하게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와 저승의 상황을 살폈다.
“이게.. 이게 무슨 일이지?”
“아폴론 신께서 저승에 강림하신 건가..?”
“무슨 소리! 제우스 님의 벼락이 저승에 떨어지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가능하지는 않아!”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하데스 님께서는 어디 계시지?”
영혼들은 마치 하데스의 전생, 21세기의 창작물에서나 보이던 태양빛 아래의 뱀파이어들마냥 당황하고 있었다.
그야 당연하게도… 평소의지하 세계는너무 깊은 곳에 있어 빛이 전혀 닿지 않는다.
곳곳에 헤스티아의 화로가 놓여져 있고 불빛이 보인다지만 그것은 아주 미약한 빛.
저승 대부분은 어둡고, 깜깜하고, 춥다.
“이건 분명 아폴론 신께서 노하신 거라니까!”
“제우스 님이 하데스 신과 싸우시는 걸 수도 있어!”
저승 전체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영혼들이 뛰어다니고 관리들은 이 사태를 진정시키려고 하면서도 신들을 찾았다.
그렇다고 해서 신들은 침착하냐..
“지금 이게 무슨 일인가!”
“하데스! 혹시 제우스 신과 다툰 적이 있나요?”
그것 또한 아니였다.
내 집무실에 황급히 뛰어오는 잠의 신, 휘프노스부터 시작해서..
아니, 스틱스 여신님. 그런 적은 없는데요..
“제우스 신이 아니고서야 이런 일을 저지를 수는 없는데..?!”
글쎄, 일단 빠르게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모르페우스, 당장 타르타로스로 내려가 티탄들이 잘 갇혀있는지 확인하도록!”
“예, 옙!”
그 다음으로 저승의 관리들에게 명하여 백성들의 혼란을 최대한 진정시키라고 했다.
또한 빛을 제외하고 다른 이상은 느껴지지 않으니 이승으로 하급 신을 파견해 무언가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라고…
“크으윽! 하데스님!”
….? 방금 이승을 확인하라고 보냈는데 왜 벌써 돌아오는 것이지.
“하.. 하데스님! 태양이.. 태양이 가깝습니다!”
무슨 소리야.
* * *
이승을 확인하러 나갔던 하급신은 몸 이곳저곳이 그을린 상태로 이코르를 흘리고 있었다.
태양이 가깝다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헬리오스 신께서 태양 마차를 지상에 가깝게 몰고 있습니다! 이승은 이미 지옥(Tartaros)입니다!”
“그럴 리가… 또 다른 태양신인 아폴론의 짓인가?”
헬리오스(Helios).
티탄 신족 휘페리온과 테이아의 아들로 태양의 신격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제우스조차 다룰 수 없는 태양 마차를 몰기 때문에 아폴론에게 밀려나지 않고 공동으로 태양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티타노마키아 당시 누이인 달의 여신 셀레네, 새벽의 여신 에오스와 함께 우리 편에 붙은 것도 있지만,
아무튼 그 헬리오스는 단 한 번도 태양 마차를 모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분명 아폴론 신의 힘이 아닙니다! 태양 마차의 말들이 마구 날뛰고 있었습니다!”
항상 온몸이 불타는 신마(神馬)들이 날뛴다고?
나는 여태까지 완벽하게 태양 마차를 몰던 헬리오스의 능력을 믿는다.
태양 마차를 몰던 헬리오스가 아프로디테의 현혹에 걸렸다던가..
기가스의 공격을 받았다던가.. 아니면 대체 뭐지?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저승에 드리운 암운.. 아니 빛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어두운 평소의 저승으로 돌아오자 영혼들과 신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다시 빛이 물러가네요. 대체 무슨 일인 것인지.”
“지금 올림포스에 사자를 파견해 알아보는 건 어떤가?”
“일단 사태가 진정되었긴 하지만..”
“그럴 필요 없네, 내가 원흉을 데려왔으니.”
의견을 나누던 신들은 좌중에 낮게 울리는 중후한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흉신악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검은 날개의 신, 타나토스가 방금 죽은 걸로 보이는 영혼을 데리고 있었다.
* * *
저 영혼이 방금 저승을 밝게 만든 원흉이라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타나토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계속 말했다.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태양 마차에서 떨어져 죽은 영혼일세.”
“일단.. 므네모시네, 기억의 샘물에서 물을 부탁합니다.”
기껏해봐야 10대 후반에서 20대 정도 밖에 되어보이지 않는 남성 영혼.
화려한 금발 머리에.. 어쩐지 생김새가 헬리오스 신을 닮았는데 혹시?
“허억! 이.. 이곳은 어디입니까? 저는 분명..”
“그래, 꼬맹아. 여기는 저승이다. 네가 헬리오스 대신 태양 마차를 몰았나?”
“저.. 저승! 그렇다면 역시..!”
“당장 네가 여기에 오게 된 경위를 낱낱히 고해라. 네가 태양 마차에서 떨어져 죽은 이유까지 전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그 영혼은 타나토스의 윽박지름에 입을 열었다.
“저.. 저는 헬리오스 신의 아들, 파에톤이라고 합니다..”
그 영혼이 풀어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 밑에서만 자란 파에톤.
파에톤이 성인이 되자 어머니는 다 자란 그에게 아버지가 태양신 헬리오스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집을 나온 파에톤은 수많은 여행을 거쳐 아버지를 찾았고,
그의 아버지 헬리오스 신은 아들을 만난 기쁨에.. 스틱스 강에 대고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주겠다고 했…
“스틱스 강… 으읏..”
거기까지 말하자 내 옆의 스틱스 여신이 무언가를 짐작한 듯 신음을 흘렸다. 대부분의 신들 역시 이 사태의 원인을 깨달은 눈치.
일단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 위해 파에톤에게 눈짓을 했다.
“예.. 저는 거기서 어리석은 선택을 했습니다.. 스틱스 강에 맹세한 아버지께 태양 마차를 몰아보고 싶다고 부탁드렸지요.”
“뭐라고?! 미친 인간 같으니..”
“하! 그건 아폴론이나 제우스 님도 몰 수 없는 마차다! 그걸 네놈 따위가..”
“디오니소스 신의 속삭임을 듣기라도 한 거냐?”
태양 마차의 말들은 오직 헬리오스만이 다룰 수 있는 것.
위대한 신의 혈통이나 인간으로 자란 파에톤이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태양의 위치가 지상에 너무 가까워지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는 불 보듯 뻔한 일.
지금 이승은 불타죽은 시체들과 말라버린 나무들로 가득할 것이다.
제우스가 벼락을 던져 태양 마차를 부수지 않았더라면 이승의 생명들이 모두 죽었을지도..
“…그렇게 되어 말들이 폭주하고 지상이 완전히.. 결국은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을 맞고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말문이 막힌 듯한 파에톤이 작게 흐느낀다.
기껏 아버지를 만났는데 어처구니없는 부탁으로 목숨을 잃어버리다니,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후.. 네 판결은 잠시 보류하겠다. 일단 저쪽에서 대기해라.”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수많은 생명을 고통에 빠뜨린 죄는 무겁게 치러야 하는 법.
일단 이승에서 죽은 영혼들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기 때문에 파에톤은 옆으로 보냈다.
잠시 후에 그의 운명이 결정되리라.
* * *
잠시 후, 무거운 침묵 속에서 파에톤은 고개를 숙인 채 꿇어앉아 판결을 기다렸다.
그의 앞에는 큰 책상에 앉아있는 저승신, 하데스가 있었다.
음침해보이는 남신에게서 낮은 목소리가흘러나와 파에톤의 귀에 꽂힌다.
“…판결을 내리겠다.”
이승에 큰 영향을 미친 죄인의 판결을 지켜보는 다른 신들이 일제히 침묵한 가운데,
오직 하데스만이 그의 죄를 논했다.
“너의 치기어린 행동으로 이승에 끼친 피해는 실로 막대하다. 네가 통제하지 못한 태양 마차의 열기에 강이 마르고 수많은 마을과 성이 불탔으며,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명들의 숨이 다했다.”
고개를 숙인 헬리오스의 아들은 그저 눈물만을 흘리고 있을 뿐.
어떠한 항변도 하지 않았다.
“무지는 죄가 아니다. 하지만 그 무지로 인한 책임은 마땅히 짊어져야 한다.”
파에톤은 큰 처벌을 각오하고 있었다.
자신 역시 폭주하는 태양 마차의 위에서 지상의 생명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보았기에.
“아아악! 아폴론이시여! 살려주소서!”
“너무 뜨거워.. 살이.. 타들어..”
“물.. 물을..”
“제우스님.. 어째서..”
그가 보았던 것만 해도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구걸하며 산 채로 익어갔다.
다른 동식물이나 님프, 각종 생명들을 제외해도 말이다.
비록 태양 마차를 몰았을 때 그런 결과가 일어날 것이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했지만,
수많은 생명을 죽인 일에 대한 죗값은 치러야만 한다.
“족히 수백년간 저승의 외곽에서 노역형을 명한다. 그것은 수많은 생명을 꺼뜨린 업보.”
최소한 수백 년, 파에톤의 입가가 굳게 다물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였다.
“또한 너는 환생을 할 수 없으며, 노역형이 끝나도 절대 망각의 축복이 내려지지 않을 것이다.”
레테 여신이 관장하는 망각의 축복은 정신에 한계가 있는 필멸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다.
끊임없이 쌓여가는 기억을 감당할 수 있는 필멸자란 없다.
여린 마음을 가진 주변의 신들은 조금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그뿐,
그들 역시도 파에톤의 처벌이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데스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인 헬리오스 신이 자식인 너를 방치한 점.”
어…?
“그리고 너에게 고의성이 없었다는 점과 그가 섣불리 스틱스 강의 맹세를 한 것을 고려해 약간의 자비를 베풀겠다.”
절망하던 파에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올려 저승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자비..라고?